사진의 배는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DE-413 "새뮤얼 B. 로버츠(USS Samuel B. Roberts)".
1944년 1월 20일 진수되어 1944년 10월 25일 침몰한 배수량 1700톤 급의 소형 호위구축함입니다. 겨우 9개월 남짓의 짦은 함생을 살았던 이 배가 유명해진 것은 그의 마지막 전투였던 "사마르 해전(Battle off Samar)" 에서의 일화 때문이었죠. 함명은?1942년 9월 27일 일본군 해군에 포위된 상륙정 부대를 구하기위해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새뮤얼 부커 로버츠 주니어(Samuel Booker Roberts, Jr.)에서 따왔습니다.
레이테 만을 향하던 미국 해군의 호위 항공모함 부대 "태피 3"는 운 나쁘게도 일본군 함대와 조우합니다. 그것도 구리다 타케오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 해군 최정예 함대였던 통칭?"구리다 함대". 당시 태피 3는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6척, 플레처급 구축함 3척,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4척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부대였던 것과 반대로 구리다 함대는?야마토급 전함 야마토(!),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를 필두로 한?전함 4척,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1척으로 이루어진 대함대였습니다. 구리다 함대는 태피 3를 윌리엄 홀시의 미국 해군 제3함대로 인식하고 재빠르게 격파하기위해 전투에 나섰습니다.?
고작해야 2500톤급에 불과한 플레처급 구축함이나 1700톤급에 불과한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7척을 가지고 전함 4척을 상대하는건 불가능했고 혹시 모를 아군으로의 피해를 막기위해 퇴각조차 거절당한 태피 3의 운명은 풍전등화였죠.
허나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플레처급 구축함 USS 존스턴은 기함의 명령도 없이?적진을 향해 돌격합니다. 존스턴의 돌격을 필두로 다른 구축함들도 차례차례 승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전장에 나서며 그렇게 사마르 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호위항공모함 역시 자신들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건 구축함들을 위해 바쁘게 함재기들을 출격시켰고 실어보낼 수 있는건 폭탄이든 어뢰든 기관포든 뭐든 전부 달아서 날려보냈으며, 개중에는 심지어 중순양함과 포격전을 치룬 호위항모도 있을 정도였죠.
결과적으로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타카오급 중순양함?초카이가 원인불명의 이유로 유폭하며?전투불능, 모가미급 중순양함?쿠마노가 존스턴에 의해 함수와 함교가 파괴되어?전투불능,?스즈야는 존스턴의 뇌격에 피격된 상태에서 태피 3 함재기의 폭탄 2발에 연이어 피격당해 이탈하지만 이후 태피 2의 공격에 의한 유폭으로?전투불능, 토네급 중순양함?치쿠마는 새뮤얼 B. 로버츠에게 3번 포탑과 함교가 파괴되고 태피 3 함재기의 뇌격에 함미가 피격되어?전투불능이 되는 등. 중순양함 6척이 구축함 7척과 싸워?4척이 격파당하는 굴욕적인 전적과 함께 퇴각합니다. (이것이 후에 구리다 타케오 제독 최대의 실책이라 불리우는 일명 구리다 턴.)
야마토가 제대로 싸웠다면 구리다 함대가 가뿐히 이겼을 이 해전에서 고작 2500톤급에 불과한 플레처급은 배수량 차가 6배에 달하는 1만 5천톤급 모가미급 중순양함을?격파(!)하고, 1700톤급에 불과한 존 C. 버틀러급은 배수량 차가 7배를 넘는 1만 3천톤급 토네급 중순양함을?격파(!)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으며, 그나마 차례차례 명중탄을 내며 태피 3 구축함들을 요격하던 콘고급 순양전함과 다르게 배수량 6만 8천톤급 초거대 전함 야마토와 4만 3천톤급 거대 전함 나가토는?배수량 차가 20배를 넘는?히어만의 어뢰에 다급하게 이탈하며 태피 3와 분전하는 다른 함들을 놔두고?도주(...). 주포 한방 맞추기만 하면 격침시킬 수 있는 구축함 하나를 상대로?거대 전함 2척이 격퇴(!)당하는?굴욕을 남기게 되었죠.
허나 이러한 분전의 결과 태피 3의 구축함들은?USS 히어만 하나를 남기고 전멸. 호위 항모도 USS 갬비어 베이가 포격에 의해 격침되고 USS 세인트 로가 역사상 처음으로 카미카제에 의해 격침되는 등, 기적과도 같은 승리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가장 먼저 전장에 뛰어들어 플레처 무쌍을 펼친 존스턴과 뒤따라 나선 호엘은 구리다 함대의 집중포화를 두들겨맞고 격침, 새뮤얼 B. 로버츠 역시 치쿠마를 상대하며 5인치 주포탑 하나가 파괴되는 등의 피해를 입으면서도 분전하다 결국 콘고의 14인치 주포탄에 피격되어 격침되었습니다.
그로부터?78년이 흐른 2022년 6월.
미국 해양기술업체 캘러던 오시애닉에 의해 필리핀 심해 깊은 곳에서 새뮤얼 B. 로버츠의 잔해가 발견되었습니다. 함번 DE-413과 애칭 "새미 B(Sammy B)"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함체는 토네급과 사투를 벌였던 흔적과 마지막 치명타였던 콘고급의 주포탄 피격 흔적이 남아있어 격렬했던 사마르 해전에서의 분투를 그대로 이야기해주고 있죠. 불리한 상황에서도 아군을 구하기위해 용맹하게 일본군과 싸웠던 과달카날의 영웅 새뮤얼과 그의 이름을 따와 그 이름에 걸맞는 무쌍을 펼친 필리핀 해의 영웅 새뮤얼은 지금도 필리핀 해저 깊은 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새뮤얼 B. 로버츠는 필리핀 해저?수심 6,895 m 지점에서 발견되면서?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에 침몰한 배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전 기록은 2019년 10월 30일 수심?6,460 m 지점에서 발견된 USS 존스턴.)
https://m.yna.co.kr/view/AKR20220625039000084?section=international/all
(연합뉴스 기사)
https://www.bbc.com/news/science-environment-61925862
(BBC 뉴스,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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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1-13 23:36:21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네요. 그리고 그 영웅적인 승리의 대가는 매우 컸고...
78년이 지나서야 그 해전의 영웅이었던 미 해군의 구축함 새뮤얼 B. 로버츠의 잔해가 수심 6,859m 지점에서 발견되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데다 또한 바다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새삼 느끼게 되네요.
1944년의 전투도 기적, 그리고 2022년의 발견도 기적...
이렇게 세기를 넘은 기적을 알게 되네요.
마키
2023-01-14 07:44:34
미국 해군에겐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지만 일본 해군에겐 그야말로 굴욕 그 자체였죠.
야마토의 자매함 무사시가 침몰한 시부얀 해전이나 야마토 최후의 싸움이었던 천1호 작전은 적이 작정하고 레이드를 벌이는 상황이었으니 전함 혼자선 뭘 할 수가 없는 싸움이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했지만 여기선 중순양함들이 구축함에게 포격전으로 격파당하고 최강의 전함이라는 것들이 구축함에게 구축당했으니까요.?
같은 전장에서 싸운 배 중 구축함 USS 호엘과 호위 항모 USS 갬비어 베이도 찾고있지만 아무래도 수심이 수심인데다 위치도 불명확 하다보니 난항을 겪고있다는 모양이에요
SiteOwner
2023-01-21 14:39:34
수면하의 세계란 우주개발이 시도되고 있는 현대에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 세계입니다.
당장 2022년만 하더라도 지독한 가뭄으로 내수면이 낮아지면서 오래전에 사라졌던 것이 새로이 발견되었는가 하면, 전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조유나 양 가족 실종사건의 결말 또한 3인가족이 탑승한 승용차가 바다에 빠져 전원사망으로 끝난 것을 알기까지에는 시일이 꽤 지난 뒤였습니다. 당장 내수면이나 선착장 부근도 그런데 심해라면...
1944년의 그 전투는 정말 기적 그 자체였군요.
지금이야 거대전함은 이미 오래전에 퇴역한데다 구축함이 커져서 과거의 중순양함만하게 커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구축함은 고속으로 접근하는 어뢰정의 접근을 막아내는 보조적인 역할이 강한 소형함정이었고 지금의 초계함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구축함들이 중순양함들을 대거 격파하고 전함까지 구축했다는 건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마키
2023-01-25 22:31:35
일본에서도 1996년 우오즈시 츠보노 온천장에 담력시험을 하러 갔던 여고생 두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실종 24년만인 2020년 3월 4일. 토야마현 후시키 토야마항에서 바다에 빠져 있는 승용차가 우연히 발견되어 인양되었죠. 조사 결과 차 안에 있던 유골은 24년전 실종되었던 그 여학생들로 밝혀졌으며, 사인은 운전미숙으로 추정된다는걸로 종결되었구요.
흥미가 생겨서 다른 군함들의 말로도 찾아봤는데 기회가 되면 정리해 올려볼까 하네요.
적어도 야마토가 제대로 싸웠다면 지금의 아무것도 안한 해상호텔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보다는 그래도 뭐라도 하긴 했다고 평가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죠. 현실은 1만 3천톤급 중순양함이 1700톤급 호위구축함에게 포격전으로 패배하고, 6만 8천톤급 전함이 2500톤급 구축함에게 구축당하는 추태의 연속이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