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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무슨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메이드복 입은 여자 두 명은 치히로와 올리버의 뒤에 대고 한마디씩 한다.
“아니, 선배님, 그런다고 모를 줄 알아요? 다 안다고요!”
“야, 올리버! 죄지은 거 아니잖아!”
“......”
그 메이드복 입은 여자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치히로와 올리버는 두 여자를 피해 도망가기 바쁘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보던 두 여자는 마치 구경거리를 놓쳐 버린 구경꾼이라도 된 것처럼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에이, 왜 도망가는 거야? 모처럼 제대로 히어로 연기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마치 그 <자가발전 전대 파이브 제이즈>에 나오는 ‘자가발전 전대’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단 말이야!”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던 두 여자는, 잠시 멈춰 서더니,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대로 앞으로 직진한다. 그리고 익숙한 사람들을 마주친다.
“어, 뭐야! 너희들 여기 있었네?”
메이드복을 입은 두 여자가 마주친 건, 만화부 부스로 돌아가던 민과 친구들. 민은 손에 경품으로 보이는 상자 몇 개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있다. 민은 그 두 여자를 돌아보더니, 곧바로 한마디 한다.
“여기는 웬일이야?”
민의 말을 들은 검은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묘한 웃음을 짓더니 바로 말한다.
“놀러 왔지. 우리는 이런 데 오면 안 되나?”
“아니, 안 된다는 건 아닌데... 너한테 이런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어... 뭐, 몰랐겠지. 서언이 오빠, 진언이 오빠도 모르니까.”
“정말... 인 거야?”
“그럼. 너도 이거 오늘 처음 알았잖아?”
“뭐라고 해야 하나... 확 깨네.”
민은 어이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자기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알아내기라도 한 건지, 그 메이드복 입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를 잠시 보더니, 이윽고 다시 한마디 한다.?
“그런데 언주야, 매번 이런 거 입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네 상상에 맡기도록 하지. 친오빠도 모르는데 삼촌은 오죽이야 하겠어?”
때마침 친구들이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게 보인다. 민은 그 언주라고 불린 메이드복 입은 여자를 한 번 더 돌아본다. 아무리 봐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건 덤이다.
이틀 뒤, 월요일.
치히로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 길이다. 평소처럼 사람들이 꽉 차서 저마다 다양한 곳을 보는 사람들을, 치히로는 물끄러미 보며 관찰하고 있다. 토요일에도 입고, 일요일에도 입었던 그 노란색 후드티를 지금도 교복 위에 걸쳐 입고 있다. 그리고 주머니에는 물론 마스크도 넣었다. 오래전부터 해오다 보니 이제는 버릇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얼굴 살피기. 이 중에 분명히 빌런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해 오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빌런이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사고를 친다든가, 아니면 난동을 부린다든가 하는 경우가 꼭 있었다. 그래서 치히로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공간 안에서는 더더욱 관찰하게 된다.
그때, 치히로의 전화에서 메시지 도착음이 울린다.
♩♪♬♩♪♬
“응?”
얼른 메시지를 본다. 치히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긴급공지 : 미린초등학교, 미린중학교, 미린고등학교 동아리 총연합회]
[이번 주 수요일부터 다음주 금요일까지를 동아리 교류 주간으로 지정하니, 모든 동아리의 부장, 매니저, 총무 여러분께서는 이 점 숙지하시어 동아리 구성원들이 교류 주간을 즐길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오후에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뭐야, 당장... 내일 모레부터라고? 아니, 이런 걸 왜 갑자기 말도 없이 하는 건데?”
치히로는 크게 당황한 건지, 주위 사람들이 한 번씩 치히로를 돌아볼 만큼 큰 소리로 말한다.
“왜 이런 건 미리미리 말해주지 않는 거냐고!”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진 치히로는, 얼른 부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혹시 너희들 아는 동아리 있으면 이따가 수업 끝나기 전까지 하나씩 적어서 줘]
막 그렇게 메시지를 적고 나서,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그때.
“뭔가... 심상치 않은데...”
그렇게 중얼거린 치히로가 앞을 보니, 과연 치히로의 예감대로,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미린고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몇 명 서 있다. 치히로에게 익숙한 얼굴은 아니다. 그런즉, 선배나 후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라는 말인가?
“궁금한데. 그런데, 내 느낌은 빌런 쪽에 더 가까워.”
한편 학교 근처의 주택가. 여느 월요일처럼, 민의 발걸음은 다소 무겁다. 민의 초능력이 얼마나 강할지라도, 월요일 아침 등교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건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휴...”
그러고 보니 토요일과 일요일은,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것 같았다. 토요일이 매우 정신없고 사건도 많았던 지옥의 입구 어딘가 같은 기분이었다면, 일요일은 그 반대로 평온했다.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커다란 사건 같은 게 터지지 않다 보니 토요일보다는 상대적으로 천국으로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토마는 괜찮나...?”
그랬다. 토요일에 일련의 사건이 끝나고 나서, 토마는 윤진과 함께 요시노 감독의 사인회장으로 간 이후, 코믹 페스타가 다 끝났을 때 한 번밖에 못 봤고, 어제도 못 봤다.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고, 길거리 같은 데에서 보인 적도 없어서, 혹시 토마가 잘못되거나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어?”
토마가, 바로 뒤쪽에 걸어오는 게 아닌가. 물론 토마 혼자만 걸어오고 있는 건 아니다. 옆에 다른 친구 3명도 같이 있다. 한 명은 유, 그리고 조금 몸집이 있는 갈색 파마머리의 남자아이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그 신입 부원들 중 한 명이다. 아직 만화부에서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민은 명단에서 봤다. 이름은 ‘쿠리카라 료’라고 하고, 이번 달 초에 H반에 전학 왔다. 만화부에 들어오기 이전에도 몇 번 봐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같은 반의 코니다.
토마는 며칠 전에 비하면 좀 음침해 보이던 얼굴색은 많이 없어졌기는 한데, 왜인지 모르게 그 신입 부원을 좀 많이 피하는 듯한 얼굴이다. 민은 그런 토마에게 말을 걸기 전에, 그 신입 부원에게 다가간다. 료 역시 토마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모르게 사람들 낯을 가리는 듯하나, 토마와 비교하면 그 분위기가 다르다. 토마는 무언가를 숨기는 게 아직도 많이 보이지만, 료는 그런 건 안 보인다.
“너하고 비슷한 친구 생겨서 좋지?”
“어... 그럼!”
료는 부정하지는 않는지, 민의 말에 긍정을 보인다.
“토마라는 애, 뭔가 많이 숨기는 것 같기는 한데.”
“그저께 처음 만났는데 이 정도로 붙어 다니다니.”
옆에서 유와 코니도 은근히 웃으며 말한다.
“토마는 좋겠어. 성격도 비슷하고, 초능력도 궁합이 맞는 친구가 생겨서.”
“그런 말은...”
토마는 둘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시 입을 닫고는 한숨을 푹 쉰다.
“오, 동의하는 것 같은데? 좋아, 좋아! 토마, 네게는 이런 친구가 필요하다고!”
“......”
민의 그런 말에 토마는 마치 항의라도 하려는 듯 입을 내밀려다가, 잠시 후 무언가를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내밀려던 입을 도로 다문다.
“뭐야... 우리 학교에 저런 애도 있었나?”
치히로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 미린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 총 4명이다. 하지만 전혀 본 적 없는 여학생이 한 명 끼어 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전부 1학년 후배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이니만큼 오며가며 몇 번씩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전혀 본 적 없는 이 여학생,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것 때문인지, 치히로의 심장은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거기에다가, 이 여학생이 앞에 서자, 갑자기 극지대에서 불어오는 듯한 찬 바람이 치히로의 심장 속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은 덤이다. 이 여학생이, 치히로가 그렇게 찾던 빌런일 수도 있겠다...
“후, 후우우...”
그렇게 치히로는 심호흡을 한번 한다. 빌런은 생각보다 온화한 인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선량하게 겉모습을 치장할 수도 있다는 어느 만화의 히어로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지금 앞에 서 있는 여학생에게서, 빌런이 느껴지는 건 치히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의 울림이다. 그 울림을 쫓아, 치히로는 지금 앞에 선 여학생을 더욱 더 강한 눈빛으로 탐색한다.
그리고 치히로의 확신이 막 머릿속을 뚫고 올라오려는 그때...
“선배님!”
그 여학생의 목소리다. 날카롭다. 마치 고드름으로 후벼 파는 것처럼. 어떤 물리적인 수단 없이 말만으로도 얼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다. 치히로는 급히 할 말을 생각해 보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가 않는다.
‘안돼... 명색이 히어로 동아리인데 이래서는...’
순간적으로나마 피부로 느꼈다. 얇은 얼음이 온몸을 덮었다가 그의 피부에서 깨져 버리는 듯하다. 치히로의 무게추가 빌런 쪽으로 점점 기운다.
“무슨...”
그렇게 잔뜩 긴장한 치히로가 입을 열려는 그때.
“미린고등학교 2학년 맞죠? 왜 그렇게 몸을 사려요?”
“아, 아니...”
치히로의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옆에 선 남학생에게 묻는다.
“야, 지온아, 맞지? 우리 학교 선배지?”
“어, 맞아. 그렇게까지 친한 선배님은 아니기는 한데...”
그제야 치히로의 머릿속에 생각난다. 눈앞에 있는 갈색 머리의 여학생 외에, 다른 두 남학생은 각각 지온과 세이지일 터다. 검은 머리의 여학생의 이름은, 아마도 주리일 테고.
“지온이... 맞지? 만화부... 였던가?”
“네, 지난 주부터요.”
“하아...”
“어? 선배님이 어떻게 알아요?”
“아... 그런 일이 있어.”
그렇게 얼버무리려는 치히로에게 지온이 막 뭐라고 물어보려는 찰나, 그 옆의 여학생이 끼어든다.
“아, 선배님, 제 소개가 늦었네요. 1학년 G반의 남궁현애라고 해요. 이번 달 초에 전학 왔죠. 잘 부탁드려요.”
그 여학생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소개를 그렇게 하니 약간, 아니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치히로도 자기소개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때...
“뭐야...”
이미, 미린대역에 열차가 도착했고, 사람들이 내리고 있다. 치히로 역시 인파 속에 섞여 열차에서 내린다. 어느 정도 갔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 후배들이 말이다.
“왜 안 보이는 거야. 내가 인사하려고 했더니만.”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어물쩍거리다가는 지각할 것이다. 그 후배들과는 만날 수 있으면 조금 이따가 만나기로 하고, 치히로는 얼른 발걸음을 옮긴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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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2-14 00:29:10
역시 현애의 존재감은 엄청나네요. 치히로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치히로가 빌런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쎄요. 빌런이라기보다는 아치에너미(Arch-enemy), 즉 주적의 개념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네요. 아무래도.
토마와 료는 확실히 비슷한 듯 다르죠. 음험한 성향이 강한 토마와 낯가림이 심한 료는 동류가 될 수 없어요.
기성 창작물의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토마는 내가 인기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 탓이야의 주인공 쿠로키 토모코에 가깝고 료는 봇치더락의 고토 히토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쿠로키 토모코는 타인을 잘 폄하하는데다 독선적이고 피해망상에 빠져있는데다 뭐 하나 도움될 여지도 없지만 고토 히토리는 의사소통 능력만 낮을 뿐이니까요.
시어하트어택
2023-02-26 21:18:19
단순히 의사소통 능력이 낮은 것과 음침한 건, 마드리갈님 말씀처럼 큰 차이가 있죠. 그래도 저걸 누군가가 억눌러 주기만 한다면, 통제받지도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습니다.
SiteOwner
2023-03-01 21:29:06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 미래의 성간여행이 실현된 세계에조차도 이렇게 한 전시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또 만나는 것을 보면 세상이 좁다는 말은 현실세계에서보다 더욱 크게 다가오겠지요. 게다가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는 현애는 아예 다른 시대를 살아았던 지구 출신 사람들이니까 이레시아인들같은 이종족을 제외하면 지구인 계열의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이질적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작중 배경의 기후가 대략 아열대인 것으로 아는데, 그래서 현애가 상대적으로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3-05 20:48:06
아무리 별도의 인물들이 별도의 작품에서 활약한다고 해도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저렇게 만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어디든 마당발 역할을 하는 사람이 꼭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