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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모두가 들으라는 듯 자기소개를 마친 오스카라는 남학생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는 자신 있게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오스카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 남학생,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긴다. 악의를 품고 있다든가 음침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무언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 선배님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지나가 문득 말한다.
“어, 그래?”민의 옆에서 지나가 홀로그램 하나를 보여 주는데, 거기에는 오스카의 활동 영상이 나와 있다. 단순한 동아리 총무가 아니라, 거의 선수라고 봐도 좋은 정도로, 대회에도 몇 번 나가서 수상도 했다.
“잠깐, 자신을 동아리 총무라고 한 건, 그렇다면...”
민뿐만 아니라 나디아와 하야토 역시 심상치 않게 여길 그때.
“저기, 저기, 선배님!”
막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며 숨이 찬 듯 말한다. 마구 손을 내저으며, 기겁한 듯한 표정은 덤이다.
“이건 반칙이에요! 교류 주간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런 걸 하면 어떡하냐고요!”
윤진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인다. 윤진을 보자마자, 거기에 있던 만화부원들은 당황했는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윤진은 벌써 오스카의 바로 앞까지 왔다.
“스케이트보드 타기 좋아하고 또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건 잘 알겠는데, 선은 좀 넘지 말자고요. 알겠죠?”
하지만 윤진의 그런 말을 듣고서도 오스카는 오히려 태연하다.
“아니, 내가 뭘 홍보같은 걸 했다고 그러냐? 애들이 그냥 와서 내가 하는 걸 봤을 뿐인데.”
“들었거든요? 사람들이 모이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아리 홍보 하는 거 말이죠.”
“무슨 소리야!”
하지만 오스카가 말하려던 것과는 달리,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민도, 민과 같이 온 4학년생들도, 그리고 중학생들도.
“저기... 선배님?”
윤진이 다시 말하자, 오스카는 얼굴을 찌푸리려다가, 윤진의 표정이 온화하게 바뀌자 얼굴이 풀어진다.
“이건 못 본 걸로 할 테니까, 내일까지는 좀 참아 주세요. 알겠죠?”
“음... 그냥 스케이트보드만 타는 건 상관없잖아, 안 그래?”
“네, 그렇죠. 홍보만 안 하면 되기는 한데...”
오스카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서 말한다.
“모르기는 몰라도, 은근히 규정 피해 가면서 하는 동아리 많을걸? 너희는 그래도 대형 동아리니까 그런 규정 지켜도 활동할 수 있잖아. 우리 같은 소규모 동아리는 필사적이라고.”
“네, 그럴 것 같기는 한데...”
“그럼 이해하지? 동아리 언급만 안 하면 되잖아. 나 계속 보드 탄다.”
그러고서 오스카는 계속 보드를 탄다. 윤진은 자리를 뜨려다가, 어느새 자리에 서서는 오스카가 보드 타는 걸 계속 구경하게 된다.
“민이 형, 저 선배님 잘 타지?”
한쪽에서 넋을 놓고 구경하던 민의 옆에서, 노아가 쿡쿡 찌르며 말한다. 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오스카는 어려운 동작도 능숙하게 해내며, 어느새 더 모여 있는 사람들의 동경과 시샘이 어린 시선을 한눈에 받는다. 그러면서도 윤진에게 마치 한번 모이자는 듯, 빙긋 웃어 보이는 건 덤이다. 민의 귀에, 윤진이 한마디 하는 것도 들린다.
“이야, 저러면 인정해야지.”
아무튼 그런 일이 다 끝나고, 시간은 12시 40분쯤.
“이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벤치 위에 과자와 음료수를 그대로 놔뒀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잊어버린 채였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다 보니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됐지? 벌써 다들 지나가면서 하나씩 주워 먹거나 한 거 아니야?”
얼른 아까 앉았던 벤치로 가 본다. 음료수와 과자는 그대로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다. 그 길로 과자와 음료수를 가지고, 교실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날 오후 3시, 지온은 평소 하교하는 시간에 교문을 나와 자기 집으로 향하고 있다. 교문과 벽에는 평소와는 달리 여러 종류의 포스터와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의 내용으로 봐서는 학교 동아리들을 홍보하는 내용이기는 한데, 정작 동아리 이름과 동아리방 위치 같은 건 나와 있지 않다.
“이상하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런 건 안 붙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자세히 보니, 후드를 입은 5명의 사진이 붙어 있다. 노란색, 검은색, 빨간색, 흰색,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인데, 그중 가운데에 있는 노란색 후드티를 입은 남학생이 유독 신경 쓰인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내가 아는 얼굴 같기도 하고. 그런데 다들 마스크는 왜 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온은 머리를 흔들고는, 제 갈 길을 간다. 그렇게 또 발걸음을 옮기던 중 또 누군가와 마주친다.
“뭐야, 윤진이 형?”
“그래, 이해하지.”
“이해... 하다니요?”
“아니나 다를까, 다들 저런 편법을 쓰고 있잖아.”
“그렇다고 만화부만 안 하자니 그건 또 만화부한테만 불리할 거 아니에요.”
“맞아.”
윤진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제 와서 안 하자니 그건 또 우리가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뭔가 해야지. 다들 하는 것만큼.”
“하지만, 어떻게요?”
지온의 그런 말을 듣자마자, 윤진은 보라는 듯 전화를 꺼내들더니,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토니? 아직 학교냐?”
“네... 예리도 같이 있어요.”
“잘됐네! 너희들, 당장 부실 안에 있는 포스터 가져다가, 학교 안에 사람들 눈에 잘 띌 만한 데 있으면 하나씩 붙여 놔.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고서 전화를 끊고 나서, 윤진이 또 무언가를 말하려고 막 입을 열려는 그때...
“야, 야! 너 잠깐 거기 서 봐!”
또 다른 남학생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니, 음침한 표정을 한 남학생이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온과 윤진을 향해 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온도 윤진도 잘 아는, 어느 여학생을 향해 가고 있다. 다름 아닌 현애다.
“C반의 슬레인이잖아? 저 애는 저렇게 우리 부원한테 관심이 있는 거야?”
윤진이 이상하다는 듯 말하자, 지온이 바로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겨서는, 그걸 가지고 좋다고 나대다가, 현애한테 된통 당했죠. 그게 2주 전이었나?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막 분하다고 설욕을 해야겠다고 그러던데요.”
“대체 뭘 했길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진은 막 현애에게 다가가려는 슬레인을 잡아 세우지만, 슬레인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화가 나기라도 듯 고개를 윤진 쪽으로 홱 돌리더니 입은 더욱 비뚤어지게 열고 말한다.
“아이, 선배님은 또 뭔데요. 괜히 남의 기분 망치려고 작정했어요?”
“뭐... 그래. 숨기지는 않도록 하지.”
윤진은 슬레인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태연히 말한다.
“그런데 저 애는 우리 부원이거든? 우리 부원 챙기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
슬레인은 잠시 말이 없다. 그러고서 다시 현애를 노려보자, 현애는 당치도 않다는 듯 슬레인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진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야?”
“......”
슬레인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 말이 입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리기라도 한 듯, 말을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진에게 겉으로는 큰소리는 쳤지만, 속으로는 여기에 서 있는 지온과 윤진, 현애의 눈치를 자꾸만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슬레인이 한심하기라도 했던 건지, 지온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
“정 누군가의 위세를 빌리거나 하고 싶으면, 어디 동아리에라도 들어가는 게 어때? 그게 너한테는 더 이득일 것 같은데.”
“으음...”
슬레인은 잠시 말이 없더니, 그 길로 몸을 돌려서 지하철역 방향으로 간다.
“에이, 싱겁기는.”
지온이 그렇게 한마디 하고는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발이 잘 떼어지지가 않는다. 마치 진흙탕에 두 발을 들여놓기라도 한 것처럼 끈적거리는 데다가, 발을 옮기면 더욱더 그렇다.
“뭐야, 이건... 왜 이래?”
지온은 조금 당황했는지 발을 높이 든다. 발밑에, 무언가 끈적한 게 마치 엿가락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그 만화에 나오는 늪지대 같은데요?”
“아, <라리의 모험>? 그래. 좀 많이 닮았잖아.”
윤진은 뜸 들이는 것도 없이 바로 말한다.
“슬레인 이 녀석, 왜 나한테 이래?”
“몰라. 아마도 너를 만만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어우, 내가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쥐어패고 싶은데!”
“야,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듣고 있던 현애가, 마치 강 건너 일이라는 듯 말한다. 지온은 잠시 표정이 썩으려는 듯하다가도, 차가운 기운이 지온의 발밑에 퍼지자 금방 표정이 누그러진다. 윤진도 마치 맞장구 치듯 한 마디 덧붙인다.
“멀리는 안 갔을 테니까.”
“어? 어떻게요?”
한편 그 시간, 교문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주택가의 소공원.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데...”
누군가가 분수대 앞에서 발을 움직이지 못하며 허둥대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슬레인. 슬레인의 두 발뿐만 아니라, 두 손 역시 분수대에서 떼어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완전히 찰싹 붙어 버렸다든가 하는 건 아니다. 질척거리는 끈끈한 무언가가 분수대로부터 슬레인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이건 내 능력이야... 그런데 왜 내가 내 능력에 당하고 있는 거냐고...”
발버둥을 칠수록, 슬레인의 팔다리는 더욱 꽉 조여 온다. 그것도 분명 슬레인의 능력일 터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려고 할수록 반대로 되어 버린다.
한편, 분수대 근처에 있는 정자. 민과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가운데에 있는 홀로그램에 나오는 게임 영상을 열심히 보고 있다. 거기에 나오는 영상은 당연히 <트리플 버스터즈>. 꼼수나 버그를 이용한 공략법은 아닌, 그냥 평범하게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를 진행하는 영상이다. 다들 말이 없다. 말을 할 틈도 없다. 민이 사 온 샌드위치를 한 입씩 베어 물고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코니의 고개가 우연히 분수대 쪽으로 돌아간다, 슬레인이 버둥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 뭐야. 저 형 왜 저래? 공원에 덫 같은 거라도 놨나?”
“덫이라니? 뭐가 걸리기라도 했어?”
코니의 말이 걸렸는지, 민 역시 코니를 따라 분수대 쪽을 돌아본다. 그 말대로, 민도 슬레인이 보인다. 눈이 한순간 마주치는 것 같다. 그 ‘제발 여기서 구해 달라’며 애원하는 듯한 눈이 말이다. 민이 그 길로 달려가서 슬레인이 허둥거리고 있는 곳에 다다르니...
“야! 네가 도대체 왜 오는 거야!”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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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2-15 15:54:47
도망쳤던 슬레인이 재등장했는데 역시 좋은 꼴은 못 보네요.
게다가 이전에 있었던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능력의 표적이 되어서 몸부림치고 있지만 방법이 없네요. 여기서 윤진의 피드백 능력이 작용한 거네요. 그가 일부러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슬레인의 공격적인 태도에 대한 반응이 상황을 발동시켜 버린 것인지...
윤진이 왜 그렇게 영업에 적극적이었는지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교내의 동아리 간의 분위기가 이렇게 드러나니까. 큰 동아리는 큰 동아리대로, 작은 동아리는 작은 동아리대로.
시어하트어택
2023-02-19 22:06:20
아무래도 윤진이 자기 부원들을 지키려고 하는 생각이 저렇게 슬레인을 옴짝달싹못하게 했겠죠... 아무래도 부원들이 늘어나면 윤진이 그렇게 챙기고 책임져야 하는 부원들도 늘어나겠지만, 그것도 윤진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SiteOwner
2023-03-08 21:37:51
금지되지 않았으니까...참 좋은 구실이지요.
오스카의 발언을 보니, 꽤 더러운 비유이긴 하지만, "이곳에 오줌을 누지 마시오" 라는 표지판이 세워진 곳에 똥을 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승박덕한 감도 떨쳐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오스카를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것 같고 여러모로...윤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슬레인의 점착능력이 자신에게 작용해서 난리군요.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이런 때를 위해 있는 듯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3-12 20:47:08
법령이나 규칙 같은 것의 허점을 파고들어 가며 최대한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저쯤 되면 윤진도 뭘 안 할 수가 없지만요...
그리고 슬레인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되었는지는, 역시 슬레인이 잘 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