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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파괴가 초래하는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나...

SiteOwner, 2023-02-26 13:13:02

조회 수
137

오늘 읽은 신문기사에서 황당한 표현을 봤습니다. 

어휘를 파괴해서 줄여쓴 과도한 축약. 그것도 국내 메이저 언론이 이런 식의 표현까지 남발하는 행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 그 자체입니다.


이게 지금 메이저 언론의 기사제목으로 보입니까?

짙은 회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브라우저에서 광고를 차단하도록 설정해서 그런 것임을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CHOSUN-20230225.JPG

이미지 출처

마라탕·짬뽕 단골재룐데…中목이버섯, 238배 잔류 농약 검출 (2023년 2월 25일 조선일보)



문제되는 표현은 "재룐데" 라는 것. 이것은 "재료인데" 를 줄여서 구어식으로 쓴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이것은 주관적인 요인인 심미적 문제는 물론 객관적인 요인인 검색의 효율을 이중삼중으로 떨어뜨리다 보니 문제가 됩니다.


이전부터 지적한 사이시옷 문제와 겹쳐 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2010년대 이후로 사이시옷에 대해 변태적으로 집착하는 국내언론의 행태 덕분에 "재룟값" 이라는 표현도 범람합니다. 이 경우 "재료" 라는 어휘를 검색해야 하는 경우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특정 문서의 내용이 재료의 가격에 대해 논하는데 제목이든 발문이든 본문이든 사이시옷이 적용되어 "재룟값" 이라는 어휘만 등장한다면 이 문서는 "재료" 로는 검색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사이시옷에 대한 변태적인 집착 덕분에 정보관리에 왜곡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검색엔진에 리다이렉트(Redirect) 기능을 부가한다든지 해서 해결하거나 하는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는 못합니다. 특정 텍스트를 정확히 검색해야 할 경우, 이를테면 "재료" 라는 어휘의 빈도를 조사할 경우 예의 리다이렉트 기능으로 "재료" 와 "재룟" 이 동일하게 인식되면 여기에서도 결과의 왜곡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검색엔진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더라도 검색하는 사람이 예의 "재료" 라는 어휘를 검색할 때 이것이 "재료" 로 쓰이는지 "재룟" 으로 쓰이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즉 일관성 없는 표기가 이중의 헛수고를 강요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위의 "재룐데" 를 추가하면 이 헛수고가 떠 늘어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표현이 더 늘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재료를" 을 줄여서 "재룔" 이라고 쓴다든지 하는 행태. 실제로 "재룔" 은 웹검색을 해 보면 사용례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메이저 언론에 등장하지 말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습니까? 이미 "왕따", "역대급", "케미", "존버", "존맛탱" 등의 속어가 매스미디어에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다 이제 "재룐데" 라는 어휘도 쓰입니다.


그러면서 10월 9일 되면 한글파괴를 막자는 헛소리나 아무도 안 쓸 괴상한 말만 만들어내면 되겠지요.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누가 더럽히는지 명백한데도 이에 대해 어떠한 지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씁쓸한 마음을 안고 "황야에서의 외침" 을 의미하는 라틴어 어구 하나를 되내입니다. Vox clamantis in deserto.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Lester

2023-02-26 21:20:43

자료 검색의 문제를 생각해보니 더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네요. 물론 본문에 있는 (목이버섯이나 농약 같은) 다른 단어들로도 검색할 수 있겠지만, 기사 제목이나 본문에서 지적하는 주제인 '재료'로 검색하는 것보다는 정확도가 떨어지겠죠. 어쩌면 이 역시 정보의 범람, 혹은 검색 속도 및 편리성의 증가로 인한 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잘만 검색되잖아" 하는 식으로 문제 없다고 우기는 거죠. 그러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SiteOwner

2023-03-05 20:12:49

그렇습니다. 사이시옷 남발이나 과도한 축약 같은 것들이 바로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꽤나 더러운 비유이지만 이런 상황입니다. 수도사업소에서 각 가정까지 수도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중 임의의 위치에서 누가 똥을 집어넣는 상황. 분명 시스템 자체는 멀쩡하게 돌아가지만 어디서 똥물이 나올지 예측도 대비도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바로 사이시옷이나 과도한 축약이 일으키는 폐해와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중장비로도 못 막을 정도로 상황이 급전직하중입니다.

대왕고래

2023-03-04 02:55:18

저렇게 쓴 기사가 통과되는군요. 저런 기사가 모두 보는 자리에서 나오는 거네요.
재료인데 라는 말을, 그걸 줄이겠다고 재룐데 라고 적은 기사가요. 저렇게 구어체로 적을 거 같으면, 나중에는 조금 안 좋은 내용의 기사가 나오면 중간에 욕이라도 섞어서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한번 선 넘기면 내리막길 가듯이 확 넘어가니까요. 경계가 필요해요.

SiteOwner

2023-03-05 20:17:26

그렇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기고하는 문인들조차도 저런 것에는 자각이 없는지 그냥 넘겨 버립니다.

사실 이미 욕설도 엄연히 들어와 있습니다. "왕따", "존버", "존맛탱", "뒷담화" 등의 것들이 매스미디어의 용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뒷담화" 가 왜 욕설이냐 싶겠지만, 사실 저 용어는 1990년대에 유행했던 "뒷다마 깐다" 라는 당구 쪽에서 성행했던 비속어에서 유래합니다. 그게 나중에는 이야기를 뜻하는 한자어인 담화(談話)로 바뀌면서 마치 그냥 뒤에서 남몰래 하는 이야기라는 정상적인 어휘같이 보일 따름이지 이게 그렇게 포장되었다고 해서 어원까지 속여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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