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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라고?”
마린은 아이란의 말을 잘 듣지 못했는지, 되묻는다. 그러자, 아이란은 다시 한번, 분명하고 똑똑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니까, 저 선배님하고 비슷한 복장을 한 애들을 잘 보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예를 들자면, 온통 검은 고딕 복장을 한 나 정도 키의 여자아이하고, 또 한 명은 온통 흰색의 아이돌 복장을 한 듯한...”
“에휴, 넌 또 그 생각만 하냐?”
아이란의 그 말을 듣자마자, 마린이 마치 자신이 바로 옆에 앉은 나디아라도 된다는 듯, 핀잔 조로 말한다.
“만약에 옆에 나디아가 있었으면 너 또 뭐라고 한 소리 들었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지?”
그 말을 듣고 아이란이 돌아보니, 나디아는, 아이란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조금 먼 자리에 떨어져 있다. 그래도 아이란의 그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 입을 삐쭉 내민 게 보인다.
“아, 그렇기는 한데...”
그리고 그때, 미아가 아이란과 나디아가 하는 말을 들은 듯, 그쪽을 돌아보며 말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 그런 애들하고는 성향이 완전히 다르거든? 오해는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미아가, 아이란의 앞에 놓인 책들의 표지를 본 모양인지, ‘어이없음’과 ‘재미있음’이 반반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설마 여기 있는 디저트들도 커플을 만들거나 할 건... 아, 이미 만들고 있겠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윤진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윤진에게 한마디를 부탁한다.
“저, 선배님! 이제 한마디 해 주시죠!”
“그래, 맞아. 다들 여기 온 걸 환영하고...”
윤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마치 준비해 오기라도 한 듯, 가방에서 만화책 몇 권을 꺼내더니 말한다.
“홈카페 동아리라서 내가 말하는 건데, 다들 <디저트의 왕> 안 본 사람, 없겠지?”
“아, 당연히 봤죠!”
미아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저희 같은 사람들한테 그건 필수도서라고요.”
“오, 그래? 그러면 다 읽어봤겠네? 그럼 어디 한번 질문을 던져봐도 될까?”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그 사람은 윤진의 옆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토니다.
“여보세요...?”
그런 토니를 보자마자, 윤진은 곧바로 토니를 돌아보더니, 마치 금방 잡아먹기라도 할 듯한 표정을 하고 말한다.
“토니, 또 시작이냐. 동아리 시간에는 좀 동아리에 집중하고...”
“어, 선배님, 저 방금 전화 끊었어요.”
토니는 마치 왜 그러냐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능청스레 대답한다.
“전화하려던 거 아니었어?”
“그냥 광고 전화였다고요.”
사실은 그리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기는 하지만, 그냥 말도 안 하고 끊어 버렸던 것이다. 토니의 입장에서도 잘 연락하지도 않던 후배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오면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토니의 옆에서 또 미아가 입을 연다.
“토니? 왜 또 이상한 애하고 전화하냐?”
“아, 아니야! 무슨 이상한 애하고 전화를 해? 너 무슨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 아니겠지?”
“환청이라니! 네가 양심이 있으면 좀 그런 말은 하지 말지.”
토니의 그 말을 듣자, 미아는 갑자기 표정이 바뀌어서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마치 180도 달라진 듯한 목소리로, 만화부실에 가득 울릴 정도의 소리를 내지른다.
“토니! 또 헛소리할래!”
“어... 그러니까...”
갑자기 변한 미아의 목소리와 태도에 얼이 빠진 건지, 토니는 거기에서 한 마디도 더 하지 못한다. 그걸 보더니, 미아는 또다시 조금 전의 차분해진 얼굴과 목소리로 돌아가, 윤진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 뭐 딱히... 내가 너한테 그런 건 아닌데...”
윤진도 어색한지, 한편으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미아를 보고 애써 웃어 보이며 말한다. 불과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마치 인격을 갈아 끼운 듯 확 바뀐 미아를 본 후배들은 저마다 귓속말로 무언가를 수군거린다. 그중에는 당연히 민과 친구들도 있다.
“나는 일부러 하라고 해도 저렇게는 못 하겠는데...”
리카가 그렇게 말하자, 민의 옆에 앉아 있던 토마는 리카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은근히 약올리는 건지, 아니면 불만을 드러내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로 말한다.
“어... 그래. 너하고 카즈가 한몸에 들어가 있으면 저렇겠네.”
“뭐, 뭐야!”
“아니, 그냥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그러냐?”
순간 주위가 더워진 것 같다. 토마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다툼으로 이어지려고 할 즈음...
“자, 얘들아, 조용, 조용! 그렇게 시끄럽게 말할 시간에 이걸 좀 먹어보면 어때?”
홈카페 동아리의 ‘한나’가, 어느새 가져온 마레를 담은 그릇을 보여주며 말한다. 어느새 줄리안도 옆에 앉아서 마레가 담긴 그릇을 호기심에 넘치는 눈을 하고서 바라보고 있다.
“오, 이게 그 마레라는 디저트죠?”
“이야, 마레라고? 나는 처음 보는데, 이게 그렇게 맛있는 거라고 했지?”
“맞아. 잘 봤네.”
한나는 마치 자신이 여기 있는 마레를 직접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자, 선배님, 봐요!”
“응?”
한나가 줄리안 쪽을 돌아보자, 줄리안의 손 위에는 어느새 둥그렇게 뭉친 물방울이 올려져 있다. 색깔만 다를 뿐, 마레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이건 그냥 물방울이잖아. 마레는 아니야.”
“에이, 그래도 한번 만져 보면 알 텐데!”
줄리안이 막 그렇게 장난스럽게 자신이 만들어낸 물방울을 한나에게 내밀려는 그 찰나.
“야! 토니! 또냐!”
미아의 또다시 확 내려간 목소리가, 만화부실 안을 채운다.
그리고 그 시간, 방송실.
“그러니까...”
아멜리는 방송실 안에 깔린 트랙에서 주행 중인 RC카 2대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 건지, RC카를 조작 중인 해진을 돌아보며 말한다.
“정성스럽게 트랙을 깔아준 것까지는 좋은데, 좀 많이 신경이 쓰이거든? 뭐라고 해야 하나... 엔진 소리를 좀 작게 해 주든지, 아니면 트랙에 매트 같은 거라도 깔아주든지 하면 좋을 텐데...”
“이건 일종의 정체성 같은 거라고요, 선배님. 절대 양보 못 하죠.”
해진이 질 수 없다는 듯 말하자, 아멜리는 헛웃음을 짓다가, 곧이어 한마디 한다.
“그렇다면, 나하고 RC카 대결을 한번 해 보자고!”
“네...?”
해진은 아멜리의 그 제안이 당황스러웠는지, 잠시 후 알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연다.
“좋아요, 선배님의 신청을 받아들이죠. 만약에 제가 이기면 어떻게 할래요?”
“네가 이기면? 음...”
아멜리는 자신이 제안을 해 놓고도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건 아닌지, 잠시 말이 없다. 그걸 본 조셉은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쉰다.
‘에이, 선배님은 또 왜 저래! 왜 저렇게 감당할 수 없는 일만 벌여 놓냐고!’
하지만 아멜리는 의외로, 조셉이 듣기에 그렇게 크지 않은 제안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비싼 RC카를 주지. 너도 보면 아마 가지고 싶어 할걸. 어때?”
“오! 그거 좋죠!”
조셉은 ‘휴’ 하며 안도한다. 아멜리의 입에서 그 경품 응모에 관한 이야기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아멜리의 그 말에 해진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말한다.
“좋아요, 선배님. 선배님이 그렇게 도전해 오니 저도 감사하죠. 그럼 저도 제 컬렉션 중에 제가 가장 RC카를 하나 드리죠. 됐죠?”
그렇게 해진이 말하고 보니, 어느새, 아멜리는 컨트롤러를 두 손에 쥐고 있다. 해진이 뭐라고 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걸 보고 당연히 해진의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진에게 대결을 신청한 사람들 중, 이 정도로 공격적으로 도전해 오는 사람은 처음이다. 비록 선배이기는 하나, 이렇게까지 나오니 해진으로서도 도전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 시작하자.”
“좋아요. 준비됐죠?”
그리고 그 시간, 도서관.
“역시 우리 동아리로서 로망은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 아니냐?”
“야, 그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리하르트와 차논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 와중에 책상에 가득 쌓인 책들과, 거기에 대해서 뭐라도 이야기할 준비를 마친 도서부원들과 MI스터리 부원들은 덤이다.
“어서 그 요즘에 일어나고 있는 초능력 괴담 중 아는 거나 좀 이야기해 줘.”
차논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연다.
“그럼, 요즘 화제가 되는 그 마왕성 이야기나 좀 해 볼까.”
“저기, 선배님.”
듣고 있던 세훈이 차논을 보더니 넌지시 입을 연다.
“그건... 좀 뻔한 주제 아닐까요.”
“뻔하다니? 이만한 화제성을 가진 이야기도 없는데.”
“그러니까 그건, 미스터리라든가 괴담이라기보다는 어떤 할 일 없는 녀석의 장난에 더 가까운 일이잖아요? 그런 거 말고, 괴담이요, 괴담.”
“괴담이라... 좋아.”
세훈의 그 말에, 차논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는 지우에게 눈짓한다. 미리 준비해 온 무언가를 꺼내오라는 듯한 눈빛에, 지우는 바로 가방에서 준비해 온 무언가를 꺼낸다.
“너희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미스터리라고.”
챠논은 마치 보물상자에서 보물을 꺼내기라도 하는 듯 말한다.
한편 만화부실. 토니는 미아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던 건지 딴짓을 할 생각조차도 못 하고 가만히 앉아 있고, 다른 만화부원들은 홈카페 동아리 부원들이 가져온 다과 세트를 가지고 이것저것 해 보고 있다. 그러던 중, 미아의 눈에 들어오는 만화부원들이 보인다.
“어, 너희들 제법 하잖아.”
타이나가 토쿠에게 자기네 예법에 따라서 잔에 음료수를 따르는 장면을 보자, 미아는 그 모습이 흥미로운지, 바로 앞에 앉아서 그걸 지켜보기로 한다. 미아 역시도 이레시아인들의 신분 차이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이윽고 토쿠의 앞에 놓인 음료수 잔이 다 채워지자, 미아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너희들한테 잘 맞는 음료가 있을 것 같은데...”
미아는 잠시 자신의 앞에 놓인 무언가를 넘겨보더니, 이윽고 어떤 음료를 하나 고르더니, 타이나와 토쿠의 앞에 보여 준다.
“자! ‘쿠치’ 행성에서만 나는 이끼에서 추출한 색소를 넣은, 이른바 ‘5층 파르페’인데, 너희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한번 먹어볼래?”
“어...”
토쿠와 타이나가 그걸 보고는 망설이는 듯한 눈빛을 보이자, 미아는 다시 한번 말한다.
“자, 망설이지 말고! 이거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은 계속 맛 들이게 된다니까? 어서...”
그런데, 막 말을 더 하려는 미아의 눈에, 또 무언가가 들어온다. 그건 다름 아닌, 민과 친구들이 있는 방향이다. 토마가 옆에 있는 잿빛 크림을 투명한 음료가 들어 있는 잔 안에 붓고 막 섞던 참이다.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별안간, 또다시 미아의 목소리가 확 변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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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7-14 20:49:16
꼭 그런 사람 있죠. 자기가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망상과 헛소리로 타인을 마음대로 평가해 놓는 자라든지, 이상한 짓을 상습적으로 하면서도 타인이 그걸 간파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거라고 착각하는 자라든지. 아이란과 토니가 각각 그런 경우네요. 제가 미아라도 저렇게 폭발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한동안 조용히 처신하던 토마는 또 뭘 하려는 걸까요. 아직 혼이 덜 난 것인지...
시어하트어택
2023-07-16 23:26:27
아이란은 그렇다쳐도 토니는 정말 예의를 안 챙겼나 싶을 정도의 행동을 계속 보여 줍니다. 미아가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은데, 토마는 또 무슨 일을 벌였는지, 봐야 알겠습니다.
SiteOwner
2023-08-18 21:13:14
예전에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소설가 박완서의 말인 "한 개의 돌멩이로도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 라는 것이 아이란을 보니 확실히 실감할 수 있겠습니다. 작중에서 가장 행복한 인물같군요. 그리고 나디아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은 나디아를 낳았으되 아이란은 왜 또 낳았느냐고.
미아가 저렇게 표변하는 것, 저는 좀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도 동생도 저런 경향이 있다 보니.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이상한 짓에 대해서 그걸 본 제3자가 왜 그렇게 특정인과 반목하느냐 물어본 적이 있었길래 대답해 준 게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과 반목한 적 없다. 그가 하는 이상한 짓이 위험해서 경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왜 이상하게 몰아가는지 그것부터 납득이 안되는데?" 라고 대꾸하니 그가 더 이상 말을 못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라이터를 켜고 거기에다 살충제를 뿌리는 것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는 지금도 될 일이 아니긴 합니다만...
역시 다른 종족의 문화를 보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잘 봐둬야겠지요.
시어하트어택
2023-08-20 21:01:04
아이란은 그 나이대 때문에 조금은 제약이 있기는 해도, 상상력이 무궁무진하니 여러 가지 취향의 소설이나 만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행복한 거겠죠.
미아가 저러는 게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미아의 태도 변화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극단적일 수도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