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법상 21세기의 시작은 2001년 1월 1일이지만 시대로서의 21세기의 시작은 그 해의 9월 11에 일어난 9.11 테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건은 그 자체로도 규모가 심대했는데다 미국의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대량살상공격인데다 세계도시 뉴욕에 대한 무차별 테러로서 안보의 패러다임을 통채로 뒤흔들어놓은 사건이었다 보니 21세기 이후의 국제정치와 안보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어요. 그래서 국제정치학계에서는 9.11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시대를 나누어 보기도 해요.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로서 국가 이외의 것, 특히 절대로 실체가 용인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테러조직이 부상해 버리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 "인간안보" 라는 개념이 창안되기도 했어요.

사실 작년 가을에 테러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하여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매우 양상이 비슷해요. 그런 식으로 기존의 전쟁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방식도 바로 9.11 테러가 원조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대규모 재해를 보는 국내의 여론은 양분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게 그냥 보혁갈등이 아니예요. 사건을 사건 그 자체로 보려는 정상적 시각과 모종의 목적을 위해 왜곡하는 음모론적 시각이 대립하고 있고, 후자의 것이 전자의 지위를 넘보거나 아예 압도하는 경우도 있을만큼 가치체계 자체가 헝클어져 있어요. 이것 또한 9.11 테러에서 보여준 테러조직의 지위 급부상과 똑같다는 게 참담해요. 그리고 군대와 경찰의 존립기반이 위험해지고 있고...

운영진으로서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9.11 테러는 포럼에서 언급이 금지되어야 할 사안도 아닌데다 이용규칙 게시판 제8조에서는 제목이 본문의 내용을 암시할 수 있도록 작성될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과거의 버즈피드(BuzzFeed)나 현재의 국내언론이 견지하는 식의 화법을 굳이 포럼에서까지 준용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확인 후 수정을 부탁드릴께요.

21세기가 시작된 지 몇십년 혹은 몇 년 뒤가 아니라 2001년에 벌어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테러 때문에 '21세기는 앞으로 이런 일만 벌어질 것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줬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테러조직이 부상하면서 nation(국가, 국민, 민족)이란 개념이 다른 의미로 명확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일전에 어디선가 폴리포닉 월드에 대해 global과 international의 차이를 언급하셨던 것 같은데 이제 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전자가 '위 아 더 월드'라면 후자는 맺고 끊음이 철저해 보인다고 할까요.

한편으론 괴악한 상상일지도 모르는데, 이게 뭔가 나치 독일과 비슷한 파시스트 세력의 등장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럼 규칙상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좌우 양쪽으로 모두 가능한 시나리오이긴 합니다. 어차피 정치와 여론이란 머릿수와 목소리 싸움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사회가 양극단화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청년인구 감소로 인해 다같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그거 나눠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제3의 가능성도 있지만요.

지적하신 낚시성 제목은 바로 수정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래! 이 미제 괴뢰녀석들! 우리가 난리피운다고 너희들이 뭘 어쩔거냐"고 의기양양해 하던 북한이 누구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테러는 인류 안보의 위협이고 우리는 이것을 결코 용인하지 못한다"고 자신들은 이 테러와 전혀 연관이 없다는걸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으로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를 보여주었죠.

"백주대낮에 하이재킹 당한 여객기가 뉴욕 한복판에서 자살폭탄테러의 흉기로 쓰인다"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사상 초유의 사태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 순간 세계의 모든 것을 뒤바꿔버렸죠.

북한의 그 손바닥 뒤집는 듯한 태도는 정말 여러가지로 대박이었죠. 제아무리 북한이라도 거기서 대응 잘못하면 바로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밖에 없겠죠. 러시아와 중국도 손절할 게 뻔한데 북한 '따위'가 짖어봤자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돌아갈 테니까요. 이렇게 자기 생계가 걸린 건 귀신같이 알아챈다는 점이 향후 대북 관련 문제에 대해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북한의 기술력으로 항공기 테러 같은 걸 기획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9.11 테러 당시 깨갱하며 수그렸던 당시 북한의 대응이 지금 북한 사회에 퍼지면 반응이 어떨지도 궁금하네요. 어차피 김정일(2011년 사망) 치세라 진작에 없었던 일 취급받을 것 같지만요.

9.11 테러는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을까를 생각했는데 유력후보 중의 하나가 북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마키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북한이 그 사건과 자신들의 관련성을 철저히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 다음해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개최국 미국팀의 입장 또한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심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당시 테러의 피해를 입어 손상된 큰 성조기와 같이 미국 선수단이 입장한 그 자체가, 누구든지 결연한 의지에 반대하는 자들은 쳐죽여 버리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나 다름없었고, 이후 이라크전에서는 참전을 결정한 영국과 폴란드가 수혜국이 되는 한편 개전에 반대한 독일과 프랑스가 큰 냉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긴 하지만, 만일 그때 뉴욕시에 강력한 방공망이 구축되어 그렇게 돌진하는 여객기를 격추해서 세계무역센터에의 돌진을 막았다 하더라도 결코 곱게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겠지요. 그 경우 분명 피해는 더욱 가볍지만, 위기상황의 모면을 위하여 자국 민항기에 대공화력을 투사하여 승객들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게 분명합니다. 즉 어떠한 경우라도 선택지 자체가 없기에 9.11 테러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나저나 미국의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Minoru Yamasaki, 1912-1986)의 여러 업적 중 공공주택단지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는 의도와는 달리 슬럼화되어 1955년에 개업했지만 20년도 역사를 채우지 못하고 1972년부터 폭파해체되어 결국 1976년에 모두 사라졌고, 또다른 역작인 세계무역센터는 그때의 테러공격으로 둘 다 무너지고...당시 폭발력을 추정해 보면, 각각의 건물에 충돌한 보잉 757 및 767 여객기의 탑재연료량으로 볼 때 히로시마원폭의 1/7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야마사키의 건축사무소인 Yamasaki & Associates 또한 2009년에 해산되고 이후에 그 사무소에 근무했던 임직원 중 1명이 그 회사의 지적재산권을 사들여 그의 이름을 잇는 새로운 회사인 Yamasaki Inc.를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중국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세계제일이던 미국이 두들겨맞은 상황이니만큼 그 메시지는 누구라도 잘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미국이 아메리카 합중국 즉 여러 주(state, 국가라는 의미도 있음)들의 연합체여서 출신지를 더 중시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세계제일적인 이미지가 손상됐다 싶을 때 끓어오르는 애국심과 자긍심이 미국의 저력인가 싶어서 여러가지 의미로 놀랍고 또 무섭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진압용 폭격으로 희생될 소수의 인질과 VX가스 테러로 희생될 대다수의 시민들 사이에서의 저울질'은 예술적 폭발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의 "더 록(1996년작)"에서도 잘 나오죠. 영화에서는 한참 고뇌하던 대통령이 '하지만 테러는 용납 못한다'라면서 폭격을 지시하고 오락영화답게 잘 수습되어 해피 엔딩을 맞이합니다만... 9.11 테러로부터 5년 전, 즉 뉴 밀레니엄 이전이었기에 아직 낭만적인 생각이 남아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영화계의 기술이 발전한 것도 있겠지만 2001년 이전의 영화들이 (장르에 상관없이) 주황빛에 가깝게 대체로 따스했지만 2001년 이후로는 푸른색 계통의 냉랭한 분위기가 도는 것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루이트 아이고는 실제 거주민의 생활양식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기획 때문에 실패한 불운의 역작이죠. (그래서 과소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더군요) 이것이 미국 사회의 붕괴를 드러내는 소재로 안성맞춤이라 생각했는지, 여러 작품에서 사용된 바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게 1982년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 호피어로 '균형 잃은 삶'을 뜻함)"의 소제목들 중 하나이자 동명의 사운드트랙(필립 글래스 作)인 Pruitt Igoe입니다. 2008년작인 게임 GTA 4의 트레일러 음악(이후 인게임 라디오 방송으로도 추가)과 2009년작 영화 "왓치맨"의 사운드트랙으로도 사용됐기에 이쪽으로 접한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음악만으로도 위압적인데 영상과 같이 보니 그 효과가 배가 되네요.

기억이 납니다. 그날 신문이 대문짝만하게 제목을 실었고, 테러 기사만으로 거의 반 이상을 채웠죠. 그때 사망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해서도 다시 찾아보고 있는데, 평범한 일상이 공포로 뒤바뀐 그 현장은, 그야말로 '비현실'에 가까웠을 겁니다.

그리고 납치로부터 붕괴까지의 모든 사건이 3시간 남짓하는 시간 동안 일어났죠. 그 3시간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 보면, 21세기의 서막을 연 대사건임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