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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드리워진 금주법의 그림자, 김영란법

SiteOwner, 2015-03-04 23:31:57

조회 수
265

소위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는, 부정청탁 및 금픔수수에 관한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전국이 시끄러운데, 통과 다음날인 오늘 당장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움직임이나 벌써부터 법을 개정해 보겠다는 목소리가 감지되는 등 혼란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불투명하고 부정부패한 사회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고 또한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수수를 옹호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이 도덕주의라는 도그마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1919년 미국에서 제정되어 1920년에서 1933년까지 유효했던 금주법(Prohibition Law)입니다.


이 금주법을 보면 취지 하나는 참 좋습니다.

술에 의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는데, 이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일단 진짜 의도는 특정 계층에 대한 국가단위의 증오정책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유입되는 독일계 이주민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업종인 양조업을 고사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독일계를 증오한다고 해서 술을 박멸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합니다.

미국인들 다수가 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라 유럽의 음주문화도 같이 북미의 땅에 널리 정착시켰던 터라 이러한 실정 자체를 무시한 도덕주의적 법안 자체가 성공할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또한 미국은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북부는 캐나다, 남부는 멕시코와 닿아 있고, 카리브해에는 여러 섬나라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현대의 군사력이나 경찰력으로도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과연 20세기 초에 가능했을까요? 그랬기에, 미국 국내에서 만들지 않아도 국외에서 조달하면 될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미국내 생산은 위법했기에 여기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유입되었습니다. 이익실현의 수단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폭력단이 활개를 쳤고, 게다가 밀조주는 품질관리 같은 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독극물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에 밀조주를 마시고 죽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게다가 정책입안자들은 그 금주법 뒤에서 아주 방탕한 음주를 즐기고 있는 등 부정부패는 그 극한을 보여주고 있었고, 대부호들은 해외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즉 위정자들과 사회지도층이 지키지 않게 되어 금주법은 법으로서의 권위 자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도덕주의적 발상이 오히려 사회기풍을 어지럽혀, 폭력에 호소하는 풍조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영화에서 보는, 검은 승용차를 타고 갑자기 나타나서 톰슨 기관단총을 난사한 후 자리를 뜨는 검은 양복의 괴한들로 대표되는 문제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금주법의 문제를 통해 김영란법을 보면, 금주법의 전철을 어떻게 이만큼 그대로 따라했나 싶을 정도입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를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직자를 예비범죄자로 상정한 데에서 첫째 패착, 공직자의 범위를 과도할 정도로 넓게 잡아서 누구든지 범죄자 낙인을 찍을 수 있게 한 것이 둘째 패착, 그리고 국회의원, 시민단체, 대기업 관계자나 변호사, 의사 등을 제외시키는 방식으로 빠져나갈 사람들은 미리 다 빠져나갈 수 있게 한 것이 셋째 패착이 있습니다. 이렇게 금주법과 똑같은 발상을 21세기에 반복하겠다는데, 이게 어떻게 성공하겠습니까. 그러니 헌법소원, 개정 등등의 말이 통과 다음날부터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역사를 외면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그래서 이 말을 일본에 대해서 잘 쓰고는 있는데 글쎄요.

이미 실패한 20세기 도덕주의에서 교훈을 배우기는커녕 그걸 21세기에 아무런 비판없이 답습하고 있는 국내 정계를 보니 우리야말로 역사를 외면하는 나라에 사는 것 같아 앞날이 걱정됩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9 댓글

안샤르베인

2015-03-04 23:43:16

가장 감시해야 할 대상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거에서부터 실패하기 딱 좋아 보이네요.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SiteOwner

2015-03-04 23:54:36

맞습니다. 이러니까 정계에서 관피아 어쩌니 하는 말 자체가 설득력 없는 설득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또 굉장히 웃기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논리가 온라인 게임의 셧다운제에도 나타난다는 것을 혹시 아시는지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비판해야지 어떻게든 그 범죄를 게임과 엮어서 게임을 악마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은, 입법은 국회가 해 놓고 잘못은 그 법에 따라서 업무를 수행한 공무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판단이 한 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패착을 반성하지 않으면 몇번이라도 충분히 반복된다는 훌륭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TheRomangOrc

2015-03-05 01:10:14

예시가 된 금주법 자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단 한 번도 성공적이었던 적이 없었죠.

이것에 비견될 정도이니 해당법은 아무래도 올 해 최대의 이슈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이게 어떤 흐름을 만들게 될지 참으로 걱정되네요.

SiteOwner

2015-03-08 23:00:13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블랙유머가 하나 있습니다.

"도덕" 을 잘못 발음하면 "도둑" 이 되고, 잘못 쓰면 "도적" 이 된다...


그렇다 보니 도덕주의를 외치는 자들의 합법적인 도둑질, 도적질로밖에 안 보입니다.

게다가 아니나다를까, 이러한 의심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품수수가 가능한 친족의 범위를 4촌에서 8촌으로 늘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이라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로스쿨 졸업자가 고위공직을 독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등이 추진되는 꼴을 보니 아예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왕고래

2015-03-05 01:36:06

간단히 말해, 흔히 말하듯, 답이 안 나오는군요.

체가 걸러내야 할 것을 걸러내지 못하면 그걸 제대로 된 체라고 부르기는 힘들겠지요.

그냥 보여주기식이나, 빠져나올 계층이 편하라고 만든 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SiteOwner

2015-03-08 23:13:47

저렇게 법을 만드는 것은 아예 부조리를 제도화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건 그 입안자들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는 못합니다. 결국 불신을 조장하여 그들의 정치적 입지 자체를 발밑부터 무너뜨리기에 딱 좋으니까 푼돈 단위로는 똑똑하지만 목돈 단위로는 그냥 바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시간에 맡겨야겠습니다.

Lester

2015-03-06 14:21:13

확실한 기준과 조항이 없이 무조건 도덕론적이라서 패착인 건가요?

Lester

2015-03-09 09:14:59

간단한 동화 하나가 생각나네요.


왕이 세상의 현자에게 물었다.

"세상을 잘 사는 비결이 뭡니까?"

현자가 답했다.

"좋은 일은 많이 하고, 나쁜 일은 적게 하는 겁니다."

왕이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아니, 그건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게 아닙니까?"

그러자 현자가 웃으며 말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것이지만, 여든 살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힘든 것이랍니다."

SiteOwner

2015-03-08 23:18:52

그렇다기보다는, 도덕주의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틀렸다 보니 확실한 기준과 조항 여부는 상관없습니다.

원래 전제가 틀리면 그 위에 쌓은 것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합니다. 금주법과 김영란법 모두 도덕주의적인 전제라는 현실을 무시한 발상에 기초했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의 소설에 묘사된 모습을 보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위스키 병 밑부분의 유리를 녹여서 위스키를 다량 빼낸 후에 거기에 에테르를 혼입하고 다시 뚫은 부분을 막은 밀조주가 나오는데, 마시고 안 죽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도덕주의의 결말이 비도덕의 일상화임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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