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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방울방울

파스큘라, 2016-04-26 03:16:23

조회 수
205

(* 본문에 언급되는 관련 단어들은 특성상 원문 그대로 표기하고 괄호로 주석을 달았습니다.)

제목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1991년 지브리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

 

 

안녕하세요. 파스큘라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피규어 하나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20160425_194956.jpg


소개할 물건은 이것.

'오타쿠: 인격=공간=도시 2004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9회 국제건축전-일본관 피규어 부록 카탈로그'라는 긴 이름의 책으로 이름 그대로 표지의 부록 피규어를 포함해 이 책 자체가 2004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최되었던 2004 베네치아 비엔날레 제9회 국제건축전의 일본관 카탈로그 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책 자체가 카탈로그인 만큼 현지에서의 판매를 기본으로 했지만, 내수용으로도 상당수 풀린 모양. 물론 제가 이역만리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이런 행사 같은걸 알기는 커녕 관심조차 가질리 만무한 만큼, 목적은 오로지 동봉된 부록 피규어입니다.

 

20160425_195214.jpg


내용물은 간소합니다.

이런 류의 부록 동봉 서적이 으레 그렇듯 두께의 대부분은 전체를 덮어씌우는 커버가 달린 피규어 보호 상자가 차지하고 있고 오른쪽에 딸린 붉은색 표지에 오타쿠 라고 큼직하게 쓰여진 것이 약 64페이지 내외의 본서입니다. 본서는 개최지 이탈리아의 언어인 이탈리아어, 세계 공용어인 영어, 책의 본질이 일본관 카탈로그에 내수용으로도 풀린 만큼 자국어인 일본어의 3가지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단 명목상으론 일본관에 대한 소개를 담은 카탈로그이긴 하나, 메인으로 떡하니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제목에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오타쿠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이야기, 오타쿠의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 다른 나라의 오타쿠 문화에 대한 내용 등등 대부분의 내용이 오타쿠와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된 자그마한 책자입니다.

 

발매 연도가 연도인 만큼 수록된 내용은 2004년 까지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언급이나 사진에 담긴 작품들도 딱 이때 즈음의 것들(코믹 파티, 우타와레루모노(칭송받는자), 시스터 프린세스 등등). 이 책이 바라보는 세상에서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이야 이미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 계열 서브컬처와 관련된 활동 그 자체를 상징하는 단어로 정착된지 오래지만 12년 전 오타쿠 문화가 막 번창하던 시기에 그 시절의 눈으로 바라보며 평가하는 오타쿠 문화에 대한 내용인 만큼 그때와는 모든 것이 상전벽해로 느껴질만큼 변한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굉장히 재밌습니다. 사진이나 내용 모두 2000년대 초반의 시간에 멈춰있는 만큼, 80년대에 촬영된 전자상가이던 시절의 아키하바라 사진, 거리 사진에서 매장의 진열대에 표기된 판매중인 닌텐도의 게임 콘솔이 '닌텐도64'나 휴대용 '게임 보이' 라는 점, 사진에 실린 작품들이 이제는 신세대들에게는 이런게 있었나 싶고, 구세대들에게는 거의 추억이나 "그땐 그런게 있었지" 정도의 작품들이라는 점이 특히나 그렇습니다. 또 본문에는 언급되진 않지만, 세대 차이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가 2004년 당시의 '코믹 마켓(Comic Market *)'이 C66인데, 올해 여름에 개최 예정인 '여름 코믹마켓(통칭 나츠코미)'이 C90이죠.

(* 아래에서 언급될 원더 페스티벌과 더불어 일본의 양대 오타쿠 관련 행사이자, 동시에 일본의 오타쿠 문화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한 일본 서브컬처 계열 최대의 행사입니다. 약칭 '코미케(コミケ)'. 1975년 12월에 처음 개최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이름처럼 주로 수많은 서클과 작가들이 내놓는 방대한 양의 동인지 판매를 메인으로 하고 있지만, 비단 동인지 뿐만 아니라 서브컬처와 관련된 거의 모든 굿즈를 취급하며 물론 코스프레 역시 코믹 마켓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 편의상 일반적으로 동인 계열에서 부르는 약칭은 코믹마켓○○나 C○○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는 여타의 행사와 마찬가지로 '제○○회'라는 의미. 매년 2회 개최되므로 숫자도 매년 2씩 증가되어 올해 여름 개최 예정인 여름 코믹 마켓은 C90으로 예정되어 있고 올해 후반기에 열릴 겨울 코믹 마켓(후유코미)은 자동적으로 C91이 되죠. 때문에 숫자만 보고도 이것이 몇년도의 어느 계절에 개최된 행사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게 특징. 일반적으로 변동 사항이 없다면 개최 장소는 오다이바의 도쿄 국제전시장, 통칭 도쿄 빅 사이트에서 개최됩니다.)

 

기본적으로 일본 내에서의 오타쿠 문화의 소개, 번창하는 역사, 현재와 미래의 모습, 아키하바라 관련 등이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하지만 '오타쿠의 온라인 커뮤니티' 라는 챕터에서는 공간적 한계를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서로 만나 즐기는 예시로서 한국의 마비노기 게임 스크린샷이 실려있고 '오타쿠의 월경(越境)'이라는 챕터에서는 국제적인 오타쿠 문화의 유행을 다루면서 한국의 오타쿠 문화에 대한 내용도 짤막하게 실려 있습니다. 글을 쓰기위해 자료를 조사해보니 원래 이 책 자체도 한국어 번역본으로 부록 피규어까지 동봉해서 판매될 예정이었던듯 싶은데, 그럴거라는 예정만 남겨져 있을뿐 이 책의 한국어판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네요. 결국 나오지 못한건지, 아니면 나왔지만 10년이 지난만큼 잊혀져 버린건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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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이것이 이 책에 부록으로 포함된 '신요코하마 아리나 in 아키하바라'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비넷 피규어입니다. 아키하바라의 모습이 익살맞게 표현되어 있고, 신요코하마 아리나 라는 이름의 키 55m 짜리 여자애가 (노선 색을 보아) 야마노테선에 올라탄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습니다. 본서 내에도 비넷의 배경이 된 실제 아키하바라를 배경으로 촬영한 실물 피규어의 사진과 스케치, 그밖에 잡다한 설정이 실려있습니다. 또한 이것과 비슷한 시기에 발간되었던 피규어 동봉 서적 '주간 나의 오빠' 시리즈와 같은 포멧, 같은 제작사(카이요도(KAIYODO *) & 무빅), 같은 원형사(오오시마 유우키)로 사실상 한가족이라고 봐도 무방. 본서에 스케치와 함께 수록된 캐릭터 소개는 이런 느낌입니다.

(* 한자로 '해양당海洋堂'이라고도 표기되는데, 피규어에서 묘사되는 아키하바라의 건물 간판에도 적혀있습니다.)

 

신요코하마 아리나 GOES TO SCHOOL !!

아리나는 신장이 55미터.
조금 키가 큰 것이 콤플렉스 인듯 하다.
거리를 걸을 때면 모두 시선을 혼자서 끄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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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인 아키하바라 비넷의 이모저모.

태생이 12년전 서적 부록 피규어인 만큼 지금의 눈으로 보기에는 가챠폰보다도 약간 낮은 퀄리티지만, 이모저모의 디테일은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굉장히 놀라운 수준입니다. 라옥스(LAOX), 토라노아나 같이 아키하바라를 대표하는 매장이 재현되어 있음과 더불어 아키하바라에 걸맞게 카타카나와 한자로 전기, PC, 비디오, 라디오, 갸루게(Girl Game *), 모에, 피규어, 동인지, 코믹, DVD등 아키하바라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단어들이 빼곡하게 적힌 간판의 묘사가 재밌습니다.  그밖에 아리나가 밟고 있어서 부서진 노면과 거기에 휘말린 자동차의 묘사, 간판에 그려진 촌스럽지만 어딘가 정감넘치는 캐릭터, 일본의 양대 오타쿠 행사, '원더 페스티벌(약칭 원페/원페스 *)'이 적힌 조그만 비행선이 매력 포인트.

(* 단어 자체는 말그대로 귀여운 미소녀(Girl)가 나오는 컴퓨터 게임(Game), 즉 흔히 말하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미연시) 입니다.)

(* 코믹 마켓처럼 매년 여름/겨울에 개최되는 피규어/개러지 킷 동인 이벤트입니다. 코믹 마켓이 주로 동인지를 비롯한 서브컬처 계열 굿즈 전반을 취급한다면, 이쪽은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메인으로 하여 수많은 회사의 수많은 신작들이 이 행사를 통해 출품 및 공개됩니다. 출품작 중 발매 예정인 일부 제품들은 실제로 제품으로 출시되는게 보통이지만 참고 출품으로만 남는 경우도 많습니다.)

 

 

 

해서 소개는 이쯤 해두고, 이것은 사실 제게 있어서 의미가 남다른 피규어입니다.

어릴때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원더짱 님이 올리신 주간 나의 오빠 부록 피규어 시리즈의 리뷰에 이 피규어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었죠. 배경이 되는 도시나 여자애가 굉장히 귀여워서 갖고싶어했지만 그땐 너무나도 어렸던 때라 지나칠 수 밖에 없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부터는 발매 시기가 시기인지라 구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그냥 남들이 가진 사진만 보면서 부러워했는데 최근 혹시나 해서 아마존에 검색해보니 매물이 존재하는걸 보고 바로 결제해 어제 오후에 수령 했습니다. 게다가 중고품이라고 하길래 어차피 10년이 넘은 만큼 별 기대도 안하고 샀지만 말이 좋아 중고품이지 10년이 지난 책에 변색이나 흠집 하나 없고, 동봉된 부록 피규어도 비닐 포장 그대로인 미개봉 신품이 왔더군요(일본은 그냥 사람 손을 한번만 거쳐도 무조건 중고품으로 취급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어릴때부터 동경해오고 부러움만 가지던 피규어를 이렇게 손에 올려놓고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입니다. 앞으로 몇년이나 이 취미를 지속할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얘만큼은 끝까지 대리고 갈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12년 후의 미래에 제가 이 취미를 계속하고 있고, 이 신요코하마 아리나가 제 손 안에 있고, 폴리포닉 월드가 그때까지 문을 열고 있다면, 12년후의 제가 24년 전 처음 보고 동경하던 피규어를 마침내 손에 넣은 12년 전의 제가 느꼈던 감동(지금 느끼고 있는 감동)을 세월을 초월해 다시금 이곳에서 떠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오타쿠가 뭔지조차 모를 때부터 오타쿠 문화에 반했던 12년 전의 나에게

지금은 오타쿠가 되어 동경하던 피규어를 손에 넣은 12년 후의 내가 세월을 넘어 이 책을 바친다.

12년 후의 내가 또 다시 신요코하마 아리나와 함께 지금의 내게 되돌아올 수 있도록...

파스큘라
東京タワーコレクターズ
ありったけの東京タワーグッズを集めるだけの変人。

4 댓글

마드리갈

2016-04-27 14:21:25

상당히 재미있는 것을 입수하셨군요.

그리고 저것이 이탈리아에서 열린 전시회에 개설된 일본관의 카탈로그인 점도 재미있고, 그것도 막 끝나거나 진행중인 행사의 물품도 아닌 12년전의 행사에서 배부된 것이라는 게 더욱 흥미로와요. 정말 이런 것도 인연이랄까요?


피규어에 나온 아키하바라 풍경을 보니 실제 업체의 상호를 변형한 것도 있어서 재미있게 보여요.

언급하신 라옥스(LAOX)는 LeOX로 바뀌어 있고, 한때 아키하바라 및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가전양판점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져 에디온으로 이름이 변경된 이시마루전기(石丸電?)는 두번째 한자가, 맥 관련 전문점인 아키바칸(秋葉館)은 마지막 한자가 바뀌어서 아키하바라로 바뀌어 있어요.


추억은 방울방울 애니는 본 적이 없지만 옛날 노래가 많이 쓰인 것은 알고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미야코 하루미의 1968년 발표곡은 좋아하게 된 사람(好きになった人).

파스큘라

2016-04-29 00:09:34

특히나 제게는 어릴때부터 갖고싶었고 동경해오던 피규어라서 지금 이렇게 제 손에 들어왔다는게 너무나도 감격스럽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런거야말로 인연일지도요.

 

과거의 아키하바라는 우리나라의 용산처럼 각종 가전제품이나 컴퓨터 부품 같은걸 취급하던 전자상가 밀집 지역이었다고 하고 사실 오타쿠 문화의 성지가 된 지금도 아직도 반쯤은 그런 이미지이긴 한데, 정말 아키하바라 처럼 상전벽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동네도 드물거같아요.

SiteOwner

2016-04-30 23:44:54

소개해 주신 피규어는 아키하바라 그리고 그곳에서 발원한 오타쿠 문화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네요.

이미 오래전에 열린 행사의 카탈로그와 인연을 맺게 되다니 정말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키하바라는 가보면 정말 재미있는 지역입니다. 간혹 이른 아침 시간대에 가면 메이드카페 등의 홍보영상을 촬영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 등 숨겨진 재미도 가득합니다.

아키하바라라는 지명 자체도 그에 얽힌 유래가 좀 재미있습니다. 원래는 아키바노하라, 아키바하라, 아키바가하라 등 온갖 읽기가 난립했다는데, 19세기말 철도가 건설되던 시기에 한 철도관료가 지명을 잘못 읽어서 현재의 아키하바라로 정착했다는 일설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秋葉만 보면 확실히 아키바로 읽힌다는 점.


재미있는 아이템을 볼 수 있었으니 저도 답례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아키하바라 홈페이지입니다. 한동안 안 들어가봤는데 요즘도 있나 싶어 기억한 주소를 입력해 보니 여전히, 그러나 대개편되어 존속하고 있습니다. 주소는 akiba.or.jp입니다.

파스큘라

2016-05-06 01:25:51

한편으론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나온 물건이 시간을 넘어 이렇게 제 손에 들어오게 됐으니까요.

 

전자상가가 어느 순간부터 오타쿠 문화가 유입되어 성지로까지 불릴 정도로 발전하게 된건지도 궁금하고, 다들 늘상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 표기법으로는 나오기 힘든 발음임에도 그냥 부르다보니 정착되버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죠. 일본 여행을 가면 한번쯤 가보고 싶기는 한데 참 가깝고도 머네요.

 

답례 감사합니다 :)

한번 들어가보니 이것저것 꽤 재밌는 것들이 많네요. 특히 24시간 라이브 카메라 같은 종류의 영상을 되게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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