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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와 원작과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마드리갈, 2017-08-24 22:25:20

조회 수
269

저는 애니를 볼 때 되도록 사전정보 없이 감상하고 있어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코믹스, 라이트노벨, 게임 등의 원작 미디어가 따로 있는 경우에도 일반적이라서, 나는 친구가 적다, 마요치키 같은 것들은 애니를 보고 원작 라이트노벨을 구독하는 식으로 갔어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같이 원작이 오래전부터 아주 유명했지만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애니화가 된 작품의 경우는 아직도 원작 코믹스를 읽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관행이 살짝 달라져 있어요.
발매 당시부터 좋아해서 구독했던 코믹스 첫 갸루(はじめてのギャル)의 경우는 이제 4권까지 나온 상황인데 벌써 애니화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경우가 원작을 아는 상태에서 보는 첫 애니가 되어 있는데...
첫 갸루의 경우 캐릭터설정과 주요 사건의 골자를 제외하면, 원작과 애니의 구성이 판이하게 달라져 있어요. 각 등장인물들의 등장상황, 자잘한 이벤트 등은 조금씩 다르게 각색되어 있거나 완전히 재구성되어 있고, 원작에는 아예 없는 오리지널 내용이 추가되어 있거나 원작에서 자세히 묘사된 상황이 간략화되어 있거나 등등, 확실히 많이 달라진 게 보이죠. 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어요. 애니화된다고 해서 원작의 전개순서나 이벤트를 100% 그대로 추종할 필요는 없고, 애니는 코믹스나 라이트노벨과는 형식이 다른 미디어니까, 각각의 미디어의 형식의 특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겠죠. 이를테면, 기어와라 냐루코양,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되어 있다 등에는 애니화되었기에 가능한 것들, 이를테면 성우개그 같은 묘사가 들어갈 수 있을테니까요.

게임을 기반으로 한 경우, 특히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을 애니로 각색할 경우에도 이런 고민이 충분히 발생할 듯해요.
아마가미같이 인물별로 독립된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포토카노처럼 공통루트를 방영회차의 전반에 반영하고 후반의 한 회차씩을 개별 인물에 할당할까, 사랑과 선거와 초콜릿같이 특정 인물에 집중하지 않는 식으로 진행할 것인가, 그리자이아 시리즈같이 플레이어 캐릭터 중심으로 만들까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이렇게 선택의 폭이 다양한 만큼 리스크도 커지겠죠.

그런데, 재구성을 넓게 인정하는 관점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통한다고 보장할 수도 없나 보네요.
원작의 영상화에 충실하다면, 원작을 알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만족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거예요. 반면에 원작을 재구성하거나 오리지널 전개로 갔을 경우에는 원작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있고, 아예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완전히 버림받을 수도 있으니 이것도 참 애매하죠. 과연 어디까지 재구성하는 것이 좋을까, 오리지널 전개는 어느 정도까지가 적정선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저는 캐릭터 원안, 주요 사건 및 주제의식 등의 골자를 유지하는 한에서는 나머지는 재미있게 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최대한 제작진의 재량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가 궁금해지네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8 댓글

안샤르베인

2017-08-24 23:07:28

저는 개인적으로 원작이 있는 작품같은 경우에는 일단 원작에 충실한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라 원작과 다른 점이 있으면 괴리감이 심해지긴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원작과 다른걸 무조건 싫어하진 않는지라 애매합니다.

마드리갈

2017-08-24 23:13:06

일단 원작에 충실한 것을 선호하되, 작은 변화 정도는 허용범위 이내면 괜찮다고 이해해도 좋을까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경우, 원작을 접한 뒤 애니를 본 팬들이 대체로 안샤르베인님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원작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의 이름이 새로이 붙거나, 등장인물의 등장순서가 소폭 바뀐 이외에는 대체로 원작을 아주 충실하게 재현해서 감동받았다는 평이 있었어요.

마키

2017-08-25 00:41:44

히다마리 스케치 애니메이션은 1기와 2기 x365가 코믹스 1~3권 분량의 에피소드를 적절히 추리고 편집해서는 주된 스토리가 없다는 일상물 장르의 특성을 살려서 마치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처럼 에피소드를 뒤섞어서 배치해놨죠.


그래서 보통 인트로를 담당하는 입학식 장면 같은게 난데없이 2기로 배치되는가 하면 시간대별 변화(대표적으로 히다마리장 간판)가 중구난방으로 섞여있는데 이를 방영순서를 무시하고 극중 날짜 순이나 코믹스 에피소드 순으로 순차 감상하면 그제야 인과관계가 맞춰지게 되는 재밌는 구성을 취하고 있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구성일지도.


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역으로 저렇게 섞어놔도 어차피 과거의 이야기는 언급 정도로만 떼우면서 넘기기 때문에 아무거나 하나 골라잡아 봐도 감상에 크게 문제될게 없다는 장점도 생기죠.

마드리갈

2017-08-25 10:59:09

히다마리 스케치는 재구성을 많이 해 놓았군요. 그래서 시청할 때 진입장벽 없이 편하게 볼 수 있었고, 다 본 다음에는 이야기의 선후 및 인과관계가 전부 이해되었군요. 확실히 재미있는 방법이예요. 애니화를 할 때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게 보여요.


애니를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회차순번대로 말고 제목에 나온 날짜를 기준으로.

Dualeast

2017-08-25 08:37:16

원작에 충실한 쪽을 선호합니다만, 그러면서도 원작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려고 변경하는 건 긍정적으로 봅니다. 특히 테일즈 오브 제스티리아처럼 원작의 평가가 극도로 안 좋을 경우에는 더더욱...

마드리갈

2017-08-25 11:02:58

원작의 골격을 확고히 유지하면서 보완점을 추가하는 것을 선호하시는군요.

하긴, 원작의 재구성과 타 장르와의 융합을 내세우다가 망한 것도 있긴 있으니까요. 아이돌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아이돌과 로봇의 조합이 시도되었지만 아이돌 업계를 다룬 것에도 실패하고 로봇애니의 측면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괴작이었으니...


테일즈 오브 제스트리아는 원작과 애니에 대한 평이 크게 다른가 보네요?

Lester

2017-08-26 17:40:47

저도 가급적이면 원작을 살리는 쪽을 중시합니다만, 여러가지 여건상(ex. 원작의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애니 쪽 진도가 앞질러 버린다든가)의 경우엔 애니 제작진의 재량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그와 별개로 저는 원작(이 경우 만화)이건 영상물이건 스토리의 진행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원작의 진행과 거의 동일한 영상물이라면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물론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성우 배정 등을 통해 세세한 설정이 덧붙는 것은 좋죠. 하지만 사건 전개에 큰 변화가 없다면 '그게 그거지' 같아서요. 그러한 이유로 독자적인 스토리와 시간, 흐름, 맺고 끊음이 존재하는 극장판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그러나 같은 극장판이라도 실사영화로 만들어진 경우는... 포기했습니다. 시각적인 차이 때문일까요?

마드리갈

2017-08-26 20:38:25

그러시군요. 기본적으로 원작을 살리되 여건에 따른 재량발휘를 존중하는 편을 좋아하시는군요. 역시 이 방향이 가장 지지를 얻기 좋은 건가 싶네요.


애니의 실사영화화는 뭐랄까, 너무 처참하다고 해야겠죠. 원작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나머지 재구성이 아니라 기획의도가 뭔지도 모를만큼 혼란스러운 것도 꽤 많아요. 이를테면 나는 친구가 적다, 암살교실, 진격의 거인 등이 그러했어요. 테르마이 로마이, 사랑한다고 말해, 아오하라이드, 늑대소녀와 흑왕자, 나만이 없는 거리 등은 그나마 나쁘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요. 어차피 애니와 실사가 같아야 할 이유도 없고, 관객들도 이런 건 이해하고 있을텐데, 어디가 잘못된 건지, 역시 일본 미디어 업계의 악관행이 만악의 근원인가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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