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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토요일 오전, 주리의 집. 한 줄기 밝은 햇살이 거실 안쪽 깊숙이까지 들어오고 있다. 햇빛을 듬뿍 받아서인지 베란다에 놓인 색색의 화초들은 한층 더 빛나 보인다.
주리는 하늘색 바탕에 색색 도형 무늬의 잠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다. 오른손으로는 AI폰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고, 왼손으로는 고양이 ‘에이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지금 보는 건 인기 만화 ‘멋진 그녀의 하루’. 주로 10대, 20대 여성 독자들이 많고, 연재일인 토요일에는 연재사이트 ‘데일리 툰즈’의 조회수 2~3위를 차지할 정도다.
“역시... 이래서 재미있다니깐. 벌써 몇 시야. 처음 볼 때는 9시가 좀 지났는데, 벌써 10시잖아.”
주리가 한참 만화에 빠져 있던 그 때.
“주리야.”
주리의 아버지, 수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리가 돌아보니, 수현은 운동복 차림으로 안방에서 막 나오고 있다.
“왜, 아빠?”
“오늘 오랜만에 엄마하고 너하고 같이 한 점심 때쯤에 함께 밖에 나가서 뭐라도 좀 먹을까 하는데, 어떠니?”
부모님과 밖에 나가서 하는 외식이라...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둘이서 나가 식사를 한 적은 좀 많았지만, 아버지와의 외식은 좀 오랜만이다. 안 그래도 수현은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온 가족이 함께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는데, 작년에 수현이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나서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할 기회를 얻기 더욱 어려워졌다. 오늘은 실로 몇 개월 만에 얻은 기회.
“점심 말고 저녁은 어때?”
“어... 점심은 왜?”
“어, 아빠 근데 꼭 점심에 가야 되는 거야?”
“아니, 꼭 점심에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어서.”
“점심시간에는 누구 좀 만날 일이 있어서.”
“음... 알았다. 그럼, 이따가 모임 끝나면 전화하거라.”
수현은 현관문으로 향하며 말한다.
“어? 아빠는 어디 또 가?”
“아, 공원 가서 운동 좀 하고 오려고.”
말을 마치고 수현은 집을 나선다. 주리의 어머니 선아 역시 집에 없다. 집 안에는 주리 혼자다. 주리는 소파에 털썩 하고 앉는다.
“아... 이제 뭘 하지...”
“너...”
AI폰에서 HANA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훈이한테 전화는 해 봤어?”
“세훈이? 어제 했는데.”
“아니, 그건 어제 그 일 때문인 거고... 오늘 만날 장소를 어디로 할지 정했냐고?”
“아! 그래... 장소를 정해야지.”
주리는 곧장 세훈에게 전화를 건다.
“어... 여보세요?”
“세훈아, 지금 뭐 해?”
“아... 우리가 몇 시에 만나려고 했지?”
“어... 그거? 한 11시쯤에 만나자고 하지 않았나?”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세훈의 목소리는 마치 막 일어난 사람인 듯 매우 부스스하다. 심지어 듣고 있는 주리도 저절로 졸음이 밀려올 정도로.
“뭐 그렇게 성의 없이 말해? 어제 만나자고 한 건 너 아니었어?”
“아... 그렇기는 한데... 알았어. 11시에 우리 학교 옆에 있는 그 부촌 있지?”
“부촌? 아, 정원 딸린 큰 저택 많은 거기?”
“맞아. 거기 카페거리 하나 있잖아? 거기서 보자고.”
“알았어. 그럼 그 때 보자.”
주리는 전화를 끊는다. 그러고 보니, 세훈은 왜 그렇게 졸린 소리를 낸 건지, 아무래도 어제 좀 격렬하게 싸웠다니까, 그것 때문에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그건 그렇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하게 옷을 좀 갈아입어 볼까... 아니, 그 전에, 멋진 그녀의 하루 조금만 더 봐야겠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아무래도 거기 나오는 남자 주인공 중 ‘강우’라는 캐릭터는 작가의 그림 실력까지 더해져, 출중한 외모에다가 성격, 능력, 거기에다가 운동 실력, 연주 실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캐릭터라 독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뭐, 뻔하디 뻔한 캐릭터지만, 이러니 독자들이 안 모일 수가 있나. 주리는 한 회차를 다 볼 때까지 손에서 AI폰을 놓지를 못한다.
어느덧, 스크롤이 맨 밑에까지 내려오자, 주리는 한숨을 한 번 쉰다. 이렇게 오늘도 주리의 눈을 즐겁게 한 한 회차가 끝난다. 시계를 보니 10시 15분. 이제는 정말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 주리는 에이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언니 갔다 온다. 아빠 올 때까지 잘 놀고 있어. 알았지?”
에이미는 ‘야옹’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소파에 드러눕는다. 주리는 에이미를 보고 한 번 웃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약 10분 후. 주리가 방에서 나온다. 파란 바탕의 체크무늬 티셔츠에 흰 미니스커트를 입고, 머리에는 검은 반다나를 둘렀다. 항상 그렇기는 하지만, 귀걸이 역시 늘 끼던 게 아닌 새로운 것을 끼고 나왔다.
“언니 어때? 멋있지?”
주리는 에이미를 보며 말한다.
“그럼, 언니 진짜로 갔다 온다. 잘 놀고 있어!”
에이미는 주리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소파에서 뒹굴기만 할 뿐이고, 주리는 그런 에이미를 보고 웃으며 집을 나선다.
시간은 오전 11시. 메이링, 앨런, 레아 세 명이 미린역 남쪽의 카페거리를 걷고 있다. 메이링은 푸른 바탕에 물방울 무늬의 티셔츠와 핫팬츠를 입고 있고, 머리에는 검은 반다나를 두르고 있다. 앨런은 남방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캐주얼 차림이다. 레아는 수수한 원피스 차림이고 베레모를 쓰고 있다.
“이렇게 밖에 나오기 좋은 날도 없지. 안 그래?”
“그렇죠, 변호사님. 꼭 주말이면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흐리고 그랬는데, 오늘은 굉장히 맑네요. 마침 오늘은 소송 업무도 없고... 주말에 이런 날씨는 한 달 만에 처음이죠, 아마?”
앨런의 말에 메이링과 레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메이링이 레아를 보고 말한다.
“네가 원래 살던 데는 어떠니?”
“제가 살던 데요? 카라미아 말이죠?”
레아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 다시 메이링을 보며 말한다.
“하, 카라미아도 여기만큼 더워요. 확실히 습도는 거기가 더 낮고요... 대신에 뜨거운 바람이 좀 불어요. 라메주 행성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는 은근히 좀 시원한 게 좋더라고요. 아버지는 저하고 반대이신데, 그 뜨거운 바람을 어찌 그리도 좋아하시는지... 늘 그것 때문에 집에서 다퉜죠.”
“너희 아버지... 대신관이라고 하셨나?”
“네... 맞아요. 대대로 대신관을 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46대인가, 48대인가 그럴 거예요.”
“48대 정도면... 평균 얼마나 하는 거지?”
“짧으면 100년 정도에서... 길면 700년 정도 할걸요. 우리 이레시아인들 수명은 ‘마카란’들의 10배 정도 되잖아요.”
“혹시... 너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올해로... 94살이네요. 마카란들 나이로 환산하면 13살 정도죠. 영아기가 짧은 대신 유년기가 좀 길거든요.”
“아, 그래?”
“저... 변호사님.”
메이링과 레아의 사이에 앨런이 끼어들며 말한다.
“왜, 앨런?”
“세훈이하고 주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카페 안에 들어왔으니까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는군요.”
“어느 카페?”
“‘쿠쿠스 가든’이요.”
“쿠쿠스 가든? 거기가... 어디였지?.”
“여기서 20m 정도만 가면 나와요.”
“아, 그래? 바로 이 근처잖아. 가자.”
카페거리 한복판에 있는 카페 쿠쿠스 가든. 나무가 주가 된 외관과 현관 및 창가의 풍성한 화초가 눈길을 끄는 곳이다. 일행은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나서, 창가에 있는 테이블 하나를 잡아놓고 앉는다. 메이링은 창밖을 한 번 내다보고, 또 가게 안쪽을 둘러보더니, 세훈과 주리에게 묻는다.
“여기 누가 오자고 한 거야?”
“아, 주리인데요.”
“어, 그래?”
“혹시, 뭐 불편한 거라도...”
“아니, 잘 선택했다고.”
주리는 세훈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하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왜 그래?”
“아, 저는 공원 앞에 있는 ‘카페 비스타’ 체인점을 가려고 했거든요.”
“에이, 거기는 매일 사람들로 북적이잖아. 평일에도 자리가 꽉꽉 차 있지. 잘한 선택이야.”
어느 새, 테이블의 벨이 울리고, 앨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운터로 가서 잔 5개가 올려진 쟁반을 가져온다. 2개는 아메리카노 커피, 1개는 에스프레소, 1개는 파인애플셰이크, 1개는 딸기스무디. 메이링은 딸기스무디를 가져가고, 주리는 파인애플셰이크를 가져간다. 앨런은 에스프레소를 가져가고, 세훈과 레아가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다들 한 모금씩 마시고 나자, 세훈은 주위를 한 번 돌아본다. 혹시나 누군가 엿듣지는 않을까, 클라인 패거리가 있지는 않을까, 유심히 본다. 한 번 주위를 돌아본 세훈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사실은... 이걸 말하려던 건데...”
“음, 뭔데?”
“어제... 공격을 받았어요.”
“공격을... 받았다고?”
“그 클라인이라는 남학생한테?”
메이링과 앨런은 걱정과 의문이 반반씩 섞인,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세훈에게 묻는다.
“아니오. 클라인은 아니었어요.”
세훈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클라인의 친구였고, 그 패거리에서 서열이 클라인 다음인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클라인은 아니고,? 클라인의 친구와 싸웠다는 이야기지?”
“네... 맞아요. 이름은... 김예준이었고요.”
세훈은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 남학생은 폐건물로 저를 불러냈어요. 한 사흘 전부터였죠. 자세한 건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친구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저를 아체토역 근처의 폐건물로 오라고 했죠. 그리고 대면하니까, 처음에는 회유를 하더니, 그 회유가 안 통하니까 자기 능력을 사용해서 공격했죠. 신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서 벽을 맨손으로 부수더군요.”
“신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고?”
“네, 맞아요. 초반에는 두 손만 단단하게 만들 수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두 손뿐만 아니라 온몸을 다 그렇게 할 수가 있었더라고요.”
“혹시... 어떻게 대처한 건지 말해 줄 수 있을까?”
“제가 한 건 그냥 피한 게 전부였어요.”
세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하지만 그냥 피한 건 아니었고요, 그때그때 상황 봐가면서 대처했어요. 중간중간에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그래도 처음에는 피하기만 한 거 아니었어요?”
세훈의 AI시계에서 NURI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 그래... 그랬지. 너 덕분에 그래도 좀 잘 대처했지만 말이야.”
세훈은 조금은 NURI의 말에 언짢아하면서도, 고마움은 잊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NURI 덕분에 싸움이 좀 더 빨리 끝난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피하는 걸 비겁하다고 하겠지.”
메이링이 앞에 놓인 딸기스무디를 마시며 말한다.
“하지만, 그 때 네게 놓인 조건하에서는, 정말 훌륭한 전략이었어. 너하고 예준이의 대결은, 주어진 조건부터가 불리했잖아. 그리고 처음에는 그렇게 도망만 다녔을지는 몰라도, 마지막에 이긴 건 너였잖아, 맞지?”
“네... 그렇죠.”
“저는 말이죠...”
주리가 입을 연다.
“세훈이가 그 선배하고 싸운 날, 세훈이가 가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어요.”
“하긴, 세훈이가 오지 않으면 일주일에 한 명씩 누구를 패 버리겠다, 그렇게 협박하니까 그렇기도 하겠지.”
“그것보다도, 저는 그 날의 세훈이한테서, 뭐라고 해야 하나... 평소에 느끼지 못한 걸 느꼈어요. 제가 아는 세훈이의 눈빛이 아니었어요. 그 뭐라고나 해야 하나... 투지라고 해야 하나, 분개라고 해야 하나...”
“뭐, 아무튼, 평소와는 눈빛이 달랐다, 이 말이지.”
메이링은 딸기스무디를 다시 한 모금 마신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좀 조사해 본 게 있는데 말이지...”
메이링은 가방에서 서류를 몇 장 꺼낸다.
“조... 조사요?”
“그 패거리에 속한 학생들 몇 명을 은밀히 조사했거든.”
“어... 어떻게요?”
“너희들도 알겠지만, 미린 초, 중,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까지 해서 초능력자들이 많지. 그것도, 그냥 많은 게 아니잖아? 당연히 VP재단에서도 몇 명의 조사원들을 파견해 조사를 하고 있지. 신원은 밝힐 수 없지만 말이야.”
“아... 네.”
“그래서... 일단은 여기를 좀 봐.”
메이링은 서류들을 세훈과 주리에게 보여 준다. 사진, 이름, 해당 학생들의 학교 성적, 부모 및 가족의 인적사항 같은 정보가 적혀 있다.
“능력이 쓰인 것도 있고 안 쓰인 것도 있어. 안 쓰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비능력자라는 건 아니고, 능력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일 뿐이야.”
“이 문서들... 가져가서 봐도 되나요?”
“아니. 그 문서들은 다 보면 다시 주어야 해.”
세훈은 그 서류들 중 우선 하나를 본다. 세훈이 보는 그 문서에는,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우선, 이름은 ‘베리 비숍’. 며칠 전에 G반을 자기 능력으로 장악하려고 했던 F반의 그 학생이다. 아버지 헨리 비숍은 유통업체 전무, 어머니 크리스틴 비숍은 대학 교수라고 되어 있다. 적힌 능력은 ‘정신 조종’. 또 ‘미등록자’라고 쓰인 붉은 글씨가 눈에 띈다.
“호오... 이 녀석, 의외로 좀 배경이 있는 집이었군. 그런데도 친구가 없었던 걸 보면, 성격이 보통 나쁜 게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조사원들이 그 녀석을 더 조사해 봤는데...”
앨런이 입을 연다.
“비숍 부부는 현재 별거 상태라더라. 비숍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다툼을 보고 자랐다고 하고. 그래서 비숍이 비뚤어졌을 가능성이 크지.”
“아... 어쩐지, 뭔가 있다 했어요.”
“세훈아, 비숍은 아무것도 아니야.”
주리가 또 다른 서류 두 장을 보여 주며 말한다.
“이걸 잘 보라고.”
“어...? 뭐야.”
세훈은 그 서류들을 가져다가 찬찬히 살펴본다. 우선, ‘첼시 오쇼네시’라는 학생. 세훈과 동급생으로, 아버지는 우주군 장군 윌리엄 오쇼네시, 어머니는 첼리스트이자 음대 교수 미리암 오쇼네시라고 나와 있다. 그 다음으로는, 역시 동급생인 ‘궈칭칭’.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린이 모델로도 활동했고, 현재도 드라마, 영화 등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라고 나와 있다. 할아버지는 국회의원 궈창린, 아버지 역시 배우 궈웨이린, 어머니는 가수 저우페이페이. 모두 세훈은 명함도 내미지 못할 집안들이다. 그러나 세훈은 그 인적사항보다도, 사진을 더 유심히 본다. 그리고 세훈은 그 두 사람의 사진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여기 좀 봐봐.”
세훈은 주리를 부른다.
“여기 이 얼굴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그걸 너한테 준 거라고.”
주리는 세훈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아직도 누군지 모르겠어? 바로 알아봐야 할 거 아냐.”
세훈은 주리의 말을 듣고서야, 첼시 오쇼네시와 궈칭칭이 누군지 알아낸다.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해, 항상 둘이 붙어 다니고, 주로 클라인과 그 패거리가 있는 곳 근처에 있으며, 세훈을 보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킬킬대던 여학생들. 그들이다!
“아... 그 애들일 줄이야.”
세훈은 탄식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 정도 애들이면 딱 한 번에 알아봤어야지, 안 그래?”
“맞아...”
세훈은 왜 자신은 남들 한 번에 알아볼 걸 두 번 세 번 해야 알아보나, 하고 질책한다. 그것도, 세훈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인데, 이러고나 있으니 자신이 더 한심해진다.
“다른 자료들도 한 번 줘 봐.”
“여기.”
세훈은 주리에게서 나머지 서류들을 넘겨받는다. 그 서류들도 하나하나 살펴본다. 먼저 보이는 이름은 ‘다니엘 올손’. 초등학교 6학년생이다. 아버지 ‘알프레드 올손’과 어머니 ‘크리스틴 올손’은 모두 중형 재벌 ‘올손 그룹’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보다도 세훈이 더 주목한 건 다니엘 올손의 체격이다. 키는 177cm, 몸무게는 75kg. 웬만한 성인 이상의 체격이다. 그 나이에, 벌써! 저 정도의 조건이니, 클라인의 패거리에 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세훈은 생각한다. 이어서, 세훈은 또 한 장의 서류를 넘겨본다. 이름은 ‘앤서니 탤리’. 고등학교 1학년생. 사용하는 능력은 다리 강화. 어머니는 3선 국회의원 ‘신시아 예이츠 탤리’. 또 한 장을 넘겨본다. 이름은 ‘하마나카 마히로’. 중학교 2학년생. 사용하는 능력은 위장술. 아버지는 방산업체 ‘탈로스 컴퍼니’의 대표 ‘하마나카 코이치’. 또 한 장 넘긴다. 이름은 ‘고한영’. 고등학교 2학년생. 아버지는 ‘5대 로펌’ 중 하나인 K&C의 파트너 변호사 중 하나인 ‘고재윤’. 그리고... 세훈은 이제 막 또 한 장의 서류를 넘겨보려 한다.
“그거 입수하는 데 많이 어려웠어요.”
레아가 세훈이 막 서류를 보려는 걸 보고 말한다.
“어... 너도 정보원이었어?”
“목소리 줄이라니까요!”
세훈은 그 서류를 살펴본다. 이름은... 빈센트 로스 클라인. 거기에 금발의 미형의 사진까지. 확실하다. 개학식 날, RZ백화점에서 세훈에게 굴욕감을 안겨 주려 한, 그 남학생. 거기에 세훈 한 명만을 특정해 노리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문서에는 다른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클라인의 가족이 누군지도 나와 있다. 아버지는 피터 클라인. 재정성의 고위 공무원, 자세히 말하자면 경제기획국 물가관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어머니는 아멜리아 클라인. 정신과 전문의로, 결혼 전 성은 ‘투생’.
자료들을 보고 나니 세훈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훈은, 메이링이 준 자료들을 보기 전에는, 클라인의 패거리나 다른 불량 학생들은 거의 모두 불우한 가정 출신일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세훈을 괴롭히던 또래 아이들이 거의 모두 임대 주택 출신이었던 것이 그런 편견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왜 이렇게 집안도 좋은 애들이 자꾸 이상한 길로 빠져드는 걸까? 세훈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렇게 넋놓고 있어?”
주리가 세훈을 보고 말한다.
“아... 아니... 그냥.”
“너도 그 애들이 참 이해가 안 되지?”
메이링은 세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네... 맞아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나도 요즘 느끼는 게, 미린 초중고등학교를 조사하다 보니, 인간의 성품이란 건 원래 선한 건가 악한 건가에 대한 의문까지 들지. 뭐 이건 인류 역사가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심오한 문제이긴 하지.”
“참... 어려운 상황이네요.”
주리가 세훈을 한 번 돌아보고는 말한다.
“분명 세훈이 혼자서 대처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세훈이 개인의 문제로만 놔둘 수는 없고... 누군가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거라면 있기는 있어. 세훈이한테 소개해 주었기도 하고.”
앨런이 입을 연다. 세훈은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한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그런 수단은 사용하기 어려울 거야.”
“아... VP재단 기동대 말이군요.”
레아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말한다.
“하긴, 학교 안에 그런 사람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면 아무래도 문제가 더 커지겠죠.”
레아는 이어서 세훈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런데요, 선배님. 꼭 기동대가 아니라도, 도울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맞아...”
세훈은 조금은 자신이 없이 말한다. 물론, 비숍과 싸울 때처럼 누군가가 도와 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예준과의 싸움 때처럼 혼자서 싸워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게다가 그 패거리는 세훈을 고립시키려 별의별 수를 다 쓸 것이다. 거기에다가, 세훈을 ‘겁쟁이’로 몰아가려는 공작을 펼지도 모르고...
“뭐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거야?”
주리가 말없이 멍하니 있는 세훈을 보고 말한다.
“아... 아니...”
“내가 전에도 말했지?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마. 설령 다른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려도, 나는 네 편이라는 걸 잊지 마. 알겠어?”
“아... 알았어.”
세훈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주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 오후 1시. 세훈은 일행과 점심식사까지 다 마친 다음, 미린역 사거리에서 나머지와 헤어지고 나서 혼자서 집으로 향한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아까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하자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 서류들을 보고 나서부터 걱정거리들이 또 마치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듯 머릿속에서 꾸물거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아예 몰랐다면 좋았을 걸, 아니면 차라리 그 패거리의 정보를 속속들이 꿰뚫었다면 좋았을 걸... 괜히 상상력이 이상한 쪽으로 나타나서 세훈의 머릿속을 자꾸만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카페에서 일어나기 전에 메이링이 마지막에 한 말은 뭔가 조금은 뜬금없으면서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엘더 박사님이 언제 한 번 너를 보고 싶다더라...
왜일까? 왜 엘더 박사는 세훈을 콕 집어서 보고 싶다고 한 걸까? VP재단의 선임 연구원씩이나 되는 높은 분이 왜 일개 학생인 나를 그렇게 집어서 말했지? 물론 나쁜 이유에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에 상대했던 비숍, 예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클라인이 반드시 세훈을 무릎 꿇려서 오라고 했다’... 왜일까? 왜 다들 나를 그렇게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왜? 왜?
“아후우우우...”
세훈은 크게 한숨을 내쉰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씩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세훈을 쳐다보고 지나간다. 젊은 커플이건, 유치원생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건, 나이 지긋한 노신사건, 누구건 간에. 심지어 중년 여성 한 명은 세훈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여성은 마치 ‘구호단체 광고에 나오는 전쟁 난민들을 보는 듯한’, 그런 연민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었다. 세훈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황급히 그 여성의 눈을 피한다. 그리고 걸음걸이를 좀더 빠르게 해서 걷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어느 정도는 피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갔을까. 중심가에서 멀어지자,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진 게 눈에 띈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미린중앙공원이 나온다. 시간을 보내기에는 거기가 충분할 거다...
공원에 다다르자, 세훈은 발 가는 대로 걷는다. 대형 조각상이 가운데에 있는 ‘동남광장’에서부터 시작해, 석상, 철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정원도 가고, 잔디밭 가운데 조성된 야외 공연장도 간다. 그 중에서도 세훈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공원 한가운데 있는 큰 호수. 이름은 ‘미린호’라고 하는데, 여기 미린 신도시가 처음 생길 때부터 있었다고 들었다. 물론 미린고등학교와 연결된 미린대 캠퍼스에 있는 ‘무지개 호수’도 있기는 하지만, 여기 미린호와 비교할 바는 못 된다. 데크가 마련되어 있어 호숫가와 호수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도 있고, 자연에 가깝게 수생식물들을 심어 조성되어 있는 곳도 있고, 가운데에는 나무와 풀로 우거진 섬도 하나 있고, 오리배도 탈 수 있다. 그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 아무리 마음이 금방이라도 화산이 터질 듯한 불안감이 밀려오더라도,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해진다. 그래서 세훈은 이곳을 많이 찾는다. 평소에 이 호수로 가는 방법은 세훈이 사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서북광장에서부터 시작해서 온실을 지나서 가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중심가에서부터 왔기에 동남광장에서부터 여기로 왔다. 그래서 첫 느낌은 많이 달라도, 역시 여기구나 하는,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든다.
우선은 호수 쪽으로 탁 트여 있는 ‘호반광장’을 지나, 호숫가에 마련된 데크를 천천히 걷는다. 데크에는 사람들도 많이 없어 걷기에 딱 좋다. 마침 미풍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온다. 데크 옆에 있는 호숫가의 연, 창포 등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하늘하늘 몸을 흔든다. 그 광경을 보니 복잡했던 마음 속이 전부 정화되는 느낌이다. 이 느낌... 이래서 호수를 찾는 것이다. 이래서 이 호수가 좋은 거다. 세훈은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저기...”
바로 그 때, 누군가 뒤에서 세훈을 부른다.
“누구...”
세훈이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세훈을 부른 그 사람, 그 사람을 본 순간, 세훈은 놀라서 뒷걸음질 친다. 몸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하마터면 데크의 난간을 넘어가 그대로 호수에 빠질 뻔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느껴지는, 개학식 날의 그 이상한 느낌까지... 어느 새, 세훈은 그와 마주보고 서 있다. 이 익숙한 위화감...
“오랜만이군, 안 그래?”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개학 첫날의 악몽으로 남아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좁은 데크 위에서! 세훈은 급히 주변을 돌아본다. 100m 이내에는 사람이 없다.
“왜 그렇게 다급하지? 진정해, 진정하라고.”
“서... 선배...”
“그간의 전적이 대단하더군. 2주도 안 되었는데 비숍도 이겼고, 또 내 둘도 없는 친구도 이겼어. 그것도 아무 능력도 없이 말이지. 대단해, 대단해.”
클라인은 무슨 뜻인지 모를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손뼉까지 친다.
“그래서 말인데, 그 두 사람이 혹시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것 없었나?”
“그건...”
“아! 굳이 말을 안 해 줘도 될 것 같군. 잘 알고 있으니 말이야. 자! 여기서 네게 선택권을 주지. 어떻게 하곘나?”
“선택권이라니?”
“아 참, 선택지는 두 가지야. 지금 바로 내게 무릎을 꿇고 내 밑으로 들어오든가, 아니면 내 손에 쓰러지든가. 자, 선택해라. 선택은 네 몫이다.”
세훈은 심호흡을 한다. 지금 여기는 호숫가에서도 데크 출입구에서도 한참 떨어진, 그야말로 호수 한가운데. 사람들이 좀 지나가면 모를까. 100m 이내에 있는 사람은 세훈과 클라인, 단 둘뿐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세훈은 왼손을 들어 AI시계를 보려 한다.
“아, 인공지능한테는 물어 보지 말라고. 그건 반칙이야.”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기서 무방비 상태로 클라인과 싸우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숨도 거칠어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찌릿찌릿해지기까지 한다. 한 1분 정도 후, 세훈은 어렵게 어렵게 입을 뗀다.
“선배...”
“오? 드디어 답을 냈나?”
“그러니까 말이지...”
“왜 그렇게 답을 주저하나? 답을 내는 데는 3초도 안 걸리는데.”
“답을 내는 걸 일주일 연기하도록 하지.”
“호오, ‘연기’한다고?”
클라인은 재미있다는 듯 얼굴에 웃음을 가득 흘리며 말한다.
“그럼 일주일 후면 답을 낼 수 있다 이건가?”
“물론이지.”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도대체 이걸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무 능력도 없는데 허세를 부릴 뿐이 아닌가... 세훈은 클라인의 입만 바라볼 뿐이다. 어떤 말이 떨어질지, 떨린다. 온 몸이.
“하하하... 좋아.”
클라인은 마치 세훈에게 아량을 베푸는 듯 큰 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일주일 후, 3월 29일에 다시 보도록 하지. 나는 네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네 친구, 앤드루 카슨처럼 말이지.”
“......”
“단, 장소는 당일에 알려 준다. 기대하고 있으라고. 가 봐.”
세훈은 말없이 클라인의 앞을 지나,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세훈의 뒤에서 이상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 든다. 조금 전에도 느꼈던, 바로 그 이상한 느낌이다.
“아, 내가 하나 빼먹고 안 말해 줬는데...”
“그게... 뭐지?”
“만약에 빨리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네 친구들 신변에 문제가 생길 거야. 알았나?”
“이... 이봐...”
“내가 할 말은 끝났군. 그럼 가도 좋아. 이만.”
말을 마치자마자 클라인은 세훈이 왔던 방향으로 간다. 점점 멀어지는 클라인을 보며, 세훈은 소리를 지르려다가 한숨만 크게 내쉰다. 도대체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세훈은 자책감이 든다. 차라리 혼자 병원신세를 지면 졌지, 친구들이 휘말리게 될 줄이야... 세훈은 터벅터벅 걷는다. 처음 이 공원에 올 때만 해도 공원의 풍경을 보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치 판타지 소설 ‘어둠을 가로지르는 기사’에 나오는 괴물들과 도적들로 가득 찬 늪지대를 지나는 느낌이다. 똑같은 공원인데 어쩌면 이렇게 다른 느낌인가... 그리고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하지만 도망가면 안 된다... 도망가지 말자. 절대 숨지만 말자. 세훈은 이렇게 다짐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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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9-02-22 13:56:04
여러모로 놀라운 것들이 보여서 읽으면서 역시 이 세계는 범상치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네요.
전반적인 생활상은 현실세계에서보다 기술문명의 혜택을 조금 더 많이 받은 정도를 제외하면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레시아인의 수명 관련을 보고는 역시 엄청나다는 인상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다니엘 올손의 체격은 정말 엄청나네요. 초등학교 6학년인데 벌써 177cm의 키에 75kg의 체중...스포츠 유망주로도 발탁될만한데 그런 뛰어난 피지컬을 지니고 있으면서 문제의 클라인 패거리에 가담해서...재능낭비네요, 여러모로.
세훈의 마음가짐은 정말 대단해요. 이제 그 마음가짐이 부러지지 않음을, 그리고 그를 위협하는 클라인 패거리의 뜻이 통하지 않음이 실현될 것만 남았어요.
SiteOwner
2019-02-28 23:48:49
친구란, 힘든 순간에도 같이 있어주고 응원하고 도움을 주는 존재.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특히 살아오면서 그런 친구를 사별하기도 했고, 믿었던 사람에게 크게 배신당한 적도 있다 보니, 이 가치를 우선시합니다. 그런 점에서 힘든 순간을 겪고 있는 세훈에게 주리는 참으로 좋은 친구입니다. 역시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갖고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훈의 앞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게 이렇게 잘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