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썼던 일본의 기묘한 은행사정에 이어, 이번에는 기묘한 대학사정에 대해서 써 볼까 싶어요.
일본 특유의 대학사정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대략 이 정도로 보면 되어요.
구 제국대학 출신의 국립대학, 사립대학의 시스템, 여자대학 관련의 특이사항, 국립대학으로 착각하기 쉬운 사립대학, 에키벤대학, 응원문화 등이 있어요.
일본의 최고 명문대학이라고 하면 역시 구 제국대학 출신의 국립대학을 들 수 있어요.
북부부터 거명하면 홋카이도대학, 도호쿠대학, 도쿄대학, 나고야대학,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큐슈대학의 7개인데, 이것들이 일본의 대학의 최고봉이면서 사립대에 대해 많은 분야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어요.
이 7개 국립대학은 큐슈대학이 예술공학, 디자인전략 관련의 전공을 개설한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예술관련 전공을 두고 있지 않은 것 또한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다, 오사카대학 및 큐슈대학을 제외하고는 출신자 중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든지, 큐슈대학에서는 새로운 초우라늄원소를 발견했다든지 하는 업적을 이루기도 했어요.
이 7개 국립대학 출신자들로 결성된 연합총동창회인 일반사단법인 학사회(学士会)가 있어요. 이것 또한 특기할 사항.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이러한 것들이 있어요.
명문 사립대학으로 잘 거명되는 학교들을 약칭하는 말로서 소케이, MARCH 등의 용어가 있어요.
소케이(早慶)는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과 케이오대학(慶應義塾大学)의 한자표기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로서 매년 정기 스포츠대항전인 소케이센(早慶戦)을 열고 있기도 해요. 영국의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우리나라의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경우가 이 대학들과 비슷한 유명사례.
MARCH는 메이지대학(明治大学), 아오야마학원대학青山学院大学), 릿쿄대학(立教大学), 츄오대학(中央大学), 호세이대학(法政大学)의 로마자 표기에서 한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고, 3월, 행진 등을 뜻하는 영단어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MARCH는 도쿄에 소재한 명문 사립대 5개교를 묶어서 말하는 이외에는 이 대학들이 연합하여 행동하는 경우가 없다 보니 사용빈도는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어요.
사립대학의 학생충원방식에 있는 특이한 시스템 중의 하나는 상당부분 보장된 순혈주의.
그러니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특정 사립대학 계열의 각급학교를 다니게 되는 학생들의 비중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죠. 특히 이것으로 유명한 대학이 앞서 언급한 케이오대학.
일본의 여자대학 중 특이한 것으로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나라여자대학 및 여자미술대학이 있어요.
대체로 여자대학은 사립인 경우가 많고 국립인 경우는 그렇게 예를 들기 쉽지 않아요. 앞서 Remember, it's Russian 2. 제정러시아의 선구자들에서 잠시 언급했던 예카테리나 2세 여제의 스몰니 학원과 같은 상류층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 등의 사례는 있지만 학문연구와 자치가 보장된 대학의 기준을 만족한다고는 보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우리나라의 여자대학은 사립만 존재하죠.
그런데 일본에는 국립 여자대학이 2개 있어요. 도쿄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및 나라의 나라여자대학. 이외에도 공립 여자대학도 존재하는 등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여자미술대학이라는 대학도 있어요. 이름 그대로 여자대학이면서 미술분야에 특화된 대학. 도쿄의 5대 미술대학 중의 하나로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립미술대학이자 출신자들의 활약상 또한 두드러진 것으로 명성이 높아요.
사립대학 중에는 이름에서 국립대학으로 혼동할만한 곳이 있어요.
国立音楽大学. 이 한자를 보고 어떻게 읽을까요?
아무 정보가 없다면 국립음악대학, 일본어 발음으로는 코쿠리츠온가쿠다이가쿠(こくりつおんがくだいがく)라고 읽는 게 일반적이겠죠. 그런데 이 한자표기의 대학은 国立 부분이 코쿠리츠가 아니라 쿠니타치(くにたち)이고, 그래서 학교명도 쿠니타치 음악대학이 되어요.
이 대학 이름이 왜 그런가 하면, 개교 당시의 설립장소가 도쿄의 쿠니타치시(国立市). 이 도시의 이름의 기원 또한 기묘한데, 시내를 관통하는 철도인 츄오본선(中央本線)의 신설역 이름이 코쿠분지(国分寺)와 타치카와(立川)의 중간이라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것이 쿠니타치(国立)이고 이것이 이후 행정구역 재편으로 신설시의 이름이 되어서 그래요.
오늘날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에키벤대학(駅弁)이라는 용어도 있어요.
이것은 평론가 오오야 소이치(大宅壮一, 1900-1970)의 돌출발언에서 기인하는 것.
일본은 패전후 미군정하에서 최고사령부(GHQ) 주도로 1개 현마다 국립대학을 1개씩 갖출 것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혁을 단행했어요. 그래서 1949년부터는 대학이 많이 생기게 되었어요. 군부의 독주를 저지할 수 없었던 이유에 건전한 지식인층이 두텁지 않아서라는 지적이 있다 보니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에 투자가 많이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일류라고도 말할 수도 없는 몰개성한 대학이 현마다 하나씩...", "급행열차의 정차역마다 대학이 있네?" 등의 표현으로 조소하기 일쑤였어요.
이것을 두고 평론가 오오야 소이치는 이렇게 말했어요. "급행이 서는 역에는 에키벤, 즉 도시락이 있고, 에키벤 있는 곳에는 신설대학이 있다(急行の止まる駅に駅弁有り、駅弁あるところに新制大学あり)" 라고 야유한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에키벤대학이라는 조어는 차별적인 시각, 전근대적인 엘리트주의, 해당 대학의 출신 및 관련자들을 바보 취급하는 문제투성이의 어휘여서 사어로 전락했어요.
일본의 문화 중에서 굉장히 기괴하게 여겨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학의 응원문화.
보통 응원단장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검은색 가쿠란을 입고 왼쪽 소매에 완장을 착용한 남학생이 로보트처럼 움직이며 큰 소리로 응원단을 지휘하는 것. 이 영상에 나오는 것이 전형적인 응원활동의 모습이니까 참고하시면 되어요. 물론 여학생이 응원단장인 경우도 드물게 있어요.
약간 특기할 만한 것이, 릿쿄대학의 응원가.
제목도 가사도 영어로 되어 있는 St.Paul's will shine tonight. 여기에서 들을 수 있어요.
1874년 설립, 1922년 대학승격의 역사를 가진 이 릿쿄대학은 기독교 계열의 대학인데다 응원가 또한 저렇다 보니 한참 미쳐 돌아갈 때인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냈을 것이 추정되어요. 실제로 1941년에는 외국인 교수들이 본국으로 송환되고 1943년에는 학내의 교회도 폐쇄되었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일본의 기묘한 대학사정을 몇 가지 쟁점 위주로 알아봤어요.
바로 옆 나라라고 해도 이렇게 특이한 사정이 있는 게 매번 신기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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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19-04-24 09:34:35
일본은 아직 북미나 서유럽 국가들의 것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학이 시작한 역사도 길고, 지방색도 상당히 강하다 보니 대학문화가 꽤 다양하게 발전해 있어요. 그래서 기묘한 것들도 꽤 많아요. 또한 대학진학률이 높지 않다 보니 대학문화가 일종의 "그들만의 문화" 로 정착해 있는 경우 또한 꽤 있어요. 이를테면,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 중에, 후쿠오카현 쿠루메시에서 내장요리를 독일어로 부르는 관행 등이 있어요. 메이지 시대에 쿠루메 시내의 의과대학 학생들이, 독일어로 배우던 의학에서 기인하여 각종 내장요리에 사용되는 부위를 독일어로 지칭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언급해 주신 대학 중 창작물에서 언급되는 경우는 이 정도로 알고 있어요.
도쿄대학은 러브히나, 최강입시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 등에서 언급되어요.
케이오대학은 변두리로켓에서 언급되고 있어요. 주인공 츠쿠다 코헤이 및 딸 리나가 모두 케이오대학 출신.
케이오, 와세다의 두 대학 이름을 적당히 변형한 것도 등장하죠.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방법에서 카스미가오카 우타하가 진학하는 대학이 소오 대학인데, 이것의 한자는 早応大学. 와세다(早稲田)와 케이오(慶應, 応은 應의 신자체)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가공의 대학명인 것이 보이죠.
역시 조롱은 좋지 않죠. 그러니 사어로 전락할 것도 이미 예정되어 있었을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