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8)

앨매리, 2019-05-17 17:41:59

조회 수
156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8) The Crusaders Walk Like An Egyptian 2


? ? ? 쿠죠 가의 우람한 대문을 지나치고 길바닥에 쓰레기는 물론이요 나뭇잎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골목을 걸어서, 저택이 다른 집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기에 거리가 벌어졌다고 실감한 순간, 볼펜 심처럼 피부를 콕콕 찔러대는 적의를 느낀 모토코는 간에 기별도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한 코웃음을 치고 SP1을 불러냈다. 그녀의 그림자에서 솟아올라 소리 없이 걸어 나온 SP1은 형광등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깜박였다.

? ? ?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 ? ? "설명은 생략한다. 처리해."

? ? ? SP1은 모토코를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는 여러 개의 여학생 인형을 보고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폐가에서 호되게 박살난 이후 어디 구석에 처박혀 숨어있었는지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모토코가 죠스타 일행과 함께 일본을 떠난다는 사실을 몰래 엿듣고 쿠죠 가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우르르 몰려온 모양이었다.

? ? ? SP1은 가볍게 땅을 박차고 도약해서 나이프를 쥔 오른손과 주먹을 쥔 왼손을 휘두르며 제일 가까이에 있던 인형을 깔끔하게 박살냈다. 뒤쪽에 있던 인형 몇 개가 발악하려는지 손을 뻗어 SP1을 붙잡으려 했으나, 손가락 한 개조차 양복 자락마저 스치지 못하고 그대로 물 흐르듯 움직인 그의 나이프에 베이거나 주먹에 정통으로 맞아 어설프게 쌓여있던 나무 블럭이 무너지는 것처럼 허무하게 분해되어 산산조각나 쓰러졌다.

? ? ? 이틀 연속으로 이어진 전투 덕분에 성장한 것일까? 처음에 폐가에서 싸울 적과 비교하면 전원 불러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느껴졌고, 실제로 SP1이 인형을 부수는 데에 소모된 힘도 그때보다 훨씬 적은 것 같았다.

? ? ? 구두 끝으로 인형의 잔해를 골목 구석으로 밀어내며 먼지나 파편이 잔뜩 묻기라도 했는지 손바닥을 탈탈 터는 SP1을 보는 모토코의 마음 속에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자니, 마을에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를 인형이 식도를 통과하지 못한 생선뼈처럼 걸렸다. 레인보우와 육신의 싹에 세뇌된 카쿄인이 목적을 위해 제3자를 일회용품마냥 이용했던 것처럼, 머더 돌즈의 스탠드사도 제3자뿐만이 아니라 그녀와 관계된 사람들까지 이용해 피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들었다.

? ? ? "어떻게 하면 그 인형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까……."

? ? ? "주인님, 놈의 인형들은 우선적으로 주인님만 노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마을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유인하는 게 어떨까요? 제가 주인님 옆에 딱 붙어서 지켜드릴 테니, 안전은 걱정하시 마십시오."

? ? ? 인형을 일망타진할 방법을 고민하는 모토코에게, SP1이 정중한 태도로 제안했다. 그의 말대로 머더 돌즈의 스탠드사는 스페셜즈가 나와있든 말든 상관없이 무조건 모토코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모양이었고, 그렇다면 인형이 모토코에게 어묵 조각에 꼬이는 생쥐처럼 몰려들 때마다, 경호를 맡은 스페셜즈가 쥐덫에 잡힌 생쥐를 보고 흥미가 생긴 고양이 같이 느긋하게 다가가 꽃을 꺾듯이 여유롭게 인형을 박살낸다. 실로 심플하고 마음에 드는 작전이었다. 모토코는 생쥐를 가지고 어떻게 놀지 궁리하는 변덕스러운 고양이처럼 슬쩍 미소지었다.

? ? ? "그럼 맡겨둘게, SP1."

? ? ? "SP1, at your service."

? ? ? 모토코의 말을 위트 있게 받아낸 SP1이 약 한 세기 전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처럼 허리를 숙여 품위 있게 인사하자, 그의 뒤에서 부르지도 않은 SP3와 SP5가 애꿏은 SP6의 멱살을 붙잡은 모습으로 뿅 튀어나와 조삼모사 일화의 성난 원숭이처럼 우우거리며 항의했다.

? ? ? "마스터, 치사하다! 우리한테도 맡겨 달라구! 마스터~ 우리도 이뻐유~."

? ? ? "맞아, 맞아! 주인님아, 어째 SP1만 예뻐하는 것 같다?"

? ? ? "케헥……."

? ? ? "애꿏은 동료 괴롭히는 너희들한테 이쁜 구석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만 괴롭히고 얼른 들어가!"

? ? ? 모토코는 숨을 쉴 필요가 없는 스탠드인데도 멱살을 잡혀서 위축된 탓인지 기침하는 SP6를 보고 짜증 섞인 눈빛으로 두 말썽쟁이를 한 번씩 노려봐준 후, 먹을 거에 귀찮게 꼬여드는 파리를 쫓는 듯한 손짓과 함께 튀어나온 셋을 되돌리고 SP2, SP4를 불러냈다. 대신 불려나온 둘은 목과 어깨의 근육을 푸는 동작을 하며 명령을 내려달라는 태도를 취했다.

? ? ? "후……. 그렇다면 아가씨가 이뻐하는 건 역시 우리들인가? 이거 은근히 부담되는군 그래."

? ? ? "음, 주인이 믿고 맡기면 당연히 해내야 하는 법이지."

? ? ? "잡담은 거기까지. 지금부터 인형을 유인할 거니까 주변을 잘 봐줘. 오는 족족 바로 박살내버리고."

? ? ? "Aye, aye. ma'am."

? ? ? SP1에게 오른쪽, SP4에게 왼쪽, 그리고 SP2에게 뒤쪽을 맡긴 모토코는 이것은 좋은 것이라는 심정으로 위풍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스페셜즈를 못 보는 제3자가 보면 그녀의 작고 아담한 체구 때문에 위풍당당하다기보다는 귀엽다고 느껴지겠지만…… 신기하게도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다들 방학과 휴가철이 시작된 김에, 쉴새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치여 누리지 못한 잠의 꿀맛을 실컷 맛보려고 늦잠 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공항이든 관광지든 상관없이 사람이 미어터지는 혼잡함을 피해 일찌감치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길거리에서 사냥감을 잡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맹수처럼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스탠드 인형 특유의 음침하고 꺼림칙한 분위기에 불안한 조짐을 느끼고 이불 바깥은 위험하다는 심정으로 그냥 집 안에 머물러 있는 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 ? ? 걷는 속도를 일부러 최대한 느리게 해서 인형이 나타나기만을 벼르던 모토코는 아까처럼 피부를 콕콕 찔러대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자 의아함을 느꼈다. 부르지 않아도 튀어나왔던 아까와 달리, 머피의 법칙이라도 적용되었는지 막상 인형이 보이는 대로 부숴버리려고 작정하자 기이하게도 거리에 인형은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아 을씨년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기에, 모토코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디오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질문했다.

? ? ? "스틸 씨. 혹시 인형의 기운도 감지할 수 있겠어?"

? ? ? 『정신을 집중하면 아예 안 느껴지는 건 아니다만…… 스탠드사의 기운에 비하면 너무 흐릿해서 감지를 했다 해도 긴가민가해서 바로 알려주긴 힘들겠구나. 그런데 모토코.』

? ? ? "왜?"

? ? ? 갑자기 말을 돌린 스틸이 상사에게 보고할 중요한 안건을 앞두고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샐러리맨처럼 뜸을 들이더니, 치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천천히 말을 꺼냈다.

? ? ?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만, 왜 머더 돌즈의 인형들을 전부 처리하고 떠나려는 게냐? 놈의 타겟은 너와 죠스타 일행에 한정되어 있다. 일본을 떠나면 너희를 쫓아가려고 인형들도 활동을 멈출 텐데, 굳이 힘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 ? ? 모토코는 스틸이 특급 기밀이라도 말할 것처럼 뜸을 들였던 것치고는 그녀의 입장에서 별 거 아닌 질문을 했기에 어깨를 으쓱하고 싶었지만, 어딘가에서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몰라서 대신 눈썹만 까딱였다.

? ? ? "……글쎄, 여태까지 DIO의 자객들이 보여준 패턴을 보면 녀석이 우리가 여길 떠나도 다른 사람을 습격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 혹시 모르지. 화풀이로 자기 눈에 사람이 보이는 족족 습격할지도 모르고. 난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놈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그렇구나. 알았다. 대답해줘서 고맙네. 역시 네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 ? ? "이 정도 가지고 뭘."

? ? ? 작게 속삭이는 스틸의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모토코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기려 했지만, 스틸이 자신을 대견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참았다. 아까 스페셜즈 중 제일 시끄러운 SP3와 5가 들어가긴 했으나, 괜히 다른 방법으로 초를 쳐서 집중력을 흐트러트릴 필요는 없었다. 모토코는 칭찬에 기뻐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하고 다시 인형 사냥을 개시했다.

? ? ? 모토코는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헌팅'해 달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부디 주워가 달라고 주장하는 거북이마냥 거리를 느릿느릿 걸어다녔다. 처음 머더 돌즈와 대면했을 때와 달리, 그녀는 생각만 해도 벽처럼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느낌이 드는 스페설즈 덕분에 폐가에 숨어서 인형이 폭발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바들바들 떨었던 그 순간과 정반대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해서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마을 구석구석을 활보했다.

? ? ? 그녀의 집으로 가는 골목을 지나 자주 들리는 편의점도 뒤로하고, 재활용품 가게와 작은 여관과 친구들이 방앗간에 드나드는 참새마냥 매일 들락날락하는 카페도 관심 밖에 두고, 골목 구석에 서 있는 자판기를 들여다보며 음료수 캔 표면에 표시된 이름이나 일러스트 또는 캔 아래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천천히 훓어보거나, 바닥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걸으면서 보도 블록을 하나씩 세어보기도 했다.

? ? ? 겉으로는 생각을 그만둔 자세로 아무 생각 없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천적을 경계하는 초식 동물처럼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운 모토코는 시야에 무성하게 자라 보도 블럭 사이를 파고들다 못해 아예 들어올린 잡초더미가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

? ? ? 거인이 심심풀이로 억센 힘을 가한 것마냥 찌그러진 철문과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형편없이 무너진 담장, 허무하게 부서져 내부를 가감 없이 드러낸 벽과 지붕, 귀퉁이 쪽만 남기고 모조리 깨지고 흩어져서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정도인 유리창. 보이지 않는 기묘한 '인력'에 이끌린 것일까, 어느새 동네를 한 바퀴 돈 그녀가 도착한 곳은 처음으로 스탠드 전투를 경험했던 그 폐가였다.

? ? ? 모토코가 철문의 찌그러진 부분에다 손을 대고 슬쩍 힘을 주어 밀자, 철문이 안쪽으로 밀려나면서 난 칠판을 손톱으로 긁을 때와 비슷한 소음이 그녀의 고막을 괴롭혔다.

? ? ? 그러자 아까의 을씨년스러움은 위장이었다고 말하듯, 철새 같이 무리를 지어 열 개는 가뿐히 넘어가는 마트료시카와 여학생 인형이 자석에 유도당한 철가루처럼, 소음에 이끌려 골목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튀어나왔다. '헌팅'하기 위해 나타났지만 실제로는 헌팅당하기 위해 나타난 인형들이 몰려와 자신을 포위하기 위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모토코는 어정쩡하게 열린 철문의 틈새 사이로 비집고 뛰어들며 본격적으로 헌팅을 선언했다.

? ? ? "작전 개시다, 스페셜즈! 이것들을 전부 때려부수고 간다! 먼저 수류탄 투척!"

? ? ? "Aye aye, ma'am!"

? ? ? 고개를 끄덕인 스페셜즈는 우렁차게 기합을 외쳤고, SP1과 SP4가 각자 수류탄을 들어 인형이 제일 많이 모인 쪽으로 투척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눈 앞의 먹잇감에 정신이 팔린 들개 떼처럼, 입구를 지키는 SP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토코를 쫓아 폐가 안으로 들어가려던 여학생 인형 몇 개가 폭발에 휩쓸렸다. 앞의 인형을 방패 삼아 폭발의 여파를 막거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기에 아슬아슬하게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다른 인형들은 폭발 직후 날아온 SP2의 총탄에 머리 부분을 관통당해 픽픽 쓰러졌다.

? ? ? "좋았어, 다음은 각자 공격!"

? ? ? 스페셜즈의 선공을 통한 상황 변경이 발생함과 동시에 모토코의 다음 명령이 내려왔다. 철문 오른쪽에서는 SP4가 달려드는 여학생 인형의 팔을 붙잡아 번쩍 들어서 가까이에 있는 마트료시카에다가 장작 패는 도끼처럼 내리찍어 일석이조로 간단하게 부숴버렸고, 왼쪽에서는 SP1이 주먹을 휘둘러 다른 여학생 인형의 안면에 명중시키고 뺨 부분에 금이 간 인형이 비틀거리자 곧바로 발차기를 강하게 날려 배 부분에도 구멍을 뚫어주었다. 철문 바로 앞에서는 SP2가 주변을 둘러보며 골목 어딘가에서 또 튀어나올지 모르는 인형을 경계하는 동시에 시기적절하게 총을 쏘아 다른 인형을 맞추며 SP1과 4를 지원하고 있었다.

? ? ? 비교적 안전한 철문 안쪽에 선 모토코는 리듬을 타면서 머더 돌즈의 인형을 흥겹게 박살내고 있는 SP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바닥에 흩어진 잔해를 바라보며 스페셜즈가 부순 인형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마트료시카는 방금 SP4가 휘두른 여학생 인형에 맞아 산산조각난 것까지 포함하면 15개, 여학생 인형은 SP1의 발차기에 맞아 쓰러진 것까지 포함하면 6개.

? ? ? 등교하다가 습격당한 저번과 달리 여유가 있었기에 여학생 인형을 꼼꼼히 살펴본 모토코는 이제 보니 인형이 걸친 교복의 재질마저 자신이 입은 교복과 완벽히 똑같은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용케 걸리지 않은 게 용할 정도라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거기에 더해 아예 새 것을 사서 입히기라도 했는지, 블라우스의 칼라는 각이 아주 예술적이게 세워져 있었고 노란색 타이는 실오라기 풀린 곳이 전무한데다가 플리츠 스커트의 주름은 어디 하나 흐트러진 데 없이 전체가 다 자로 잰 것처럼 균일하게 잡혀 있었다.

? ? ? 인형을 부술 때 나는 요란한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자 모토코는 다시 고개를 들었고, SP들은 손을 탁탁 털면서 이제는 원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부서진 잔해를 발 끝으로 밀어 담장 바로 밑에다 쌓아두며 작전 종료를 선언했다.

? ? ? "임무 완료.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주인님."

? ? ? "후……. 몇십 개가 몰려오든, 패턴이 다 똑같아서야 기습하는 의미가 없지."

? ? ? "음, 맞는 말이지. 세뇌당한 카쿄인에 비하면 갓 부화한 병아리 수준이었다. 주인이여, 육탄전이 특기가 아닌 SP5나 6를 불러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군."

? ? ? SP1은 인형들을 부수면서 급격하게 움직이느라 흐트러진 넥타이를 이리저리 움직여 원래 자리에 맞추었고, SP2는 권총을 손가락에 끼워 현란하게 휘리릭 돌린 다음 허리춤에 찬 홀스터에 정확히 끼워넣었다. SP4는 팔짱을 끼고 구두 끝으로 머리만 간신히 남은 마트료시카를 툭툭 건드렸다.

? ? ? "다들 수고했어. 이제 들어가도록 해."

? ? ? 어느새 SP3와 5한테서 장난기가 옮은 건지, 사라지기 직전 자신을 보며 거수경례하는 세 SP들을 본 모토코는 피식 웃고 철문 앞에도 수북히 쌓인 인형의 잔해를 발로 툭툭 밀어내면서 바깥으로 슬그머니 빠져나오다, '배고픈 고양이에게 딱 걸린 생쥐' 같은 감각에 흠칫 놀라며 시선이 느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 그곳에는 손질이 잘 되어서 결이 좋은 금발을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어서 엘리트 같은 기품이 은은히 흘러나오는 남자가 서 있었다. 카쿄인만큼 풍성하지는 않으나 남자 역시 이마에 구불거리는 앞머리를 늘어트리고 있었으며, 눈동자는…… 보고만 있어도 무척 섬찍하게, '굶주린 고양잇과 맹수와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의 공포'가 스멀스멀 솟아오를 듯 했다. 모토코는 실례가 되지 않도록 시선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 남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 ? ? "저 저택,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빈 집이지……. 자네, 혹시 그 집 딸인가? 이 집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던데……."

? ? ?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힘이 없는 듯 하면서도, 기묘한 무게감이 실려있었다.

? ? ? "아뇨…….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냥, 여기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것뿐이에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 ? ? 모토코는 혹시라도 의심을 사지 않도록,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해 목소리가 떨리거나 이상해지지 않도록 다른 일상적인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첫 번째 배경음악을 열심히 떠올리며 하지 말라는 짓을 몰래 하다 엄마한테 걸린 아이가 엄마의 분노를 피해 도망갈 틈새를 찾는 것처럼, 남자한테서 빠져나갈 구석을 찾아보았다.

? ? ? "그런가……. 그래도 위험하니까 호기심에라도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는 말이 있으니까."

? ? ? "아, 네. 충고 감사합니다."

? ? ? 모토코는 남자의 말에서, 심지에 불이 붙은 다이너마이트를 발 바로 밑에서 발견한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기에 짤막하게 대꾸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남자를 지나쳤다.

? ? ? 그냥 한 두 마디 주고받은 것뿐이지만, 한여름인데도 이상하게 한겨울인 것마냥 싸늘한 칼날 같은 찬바람이 피부를 한 번 슥 훓고 지나간 듯 해서, 모토코는 무의식적으로 팔을 문질렀다. 소름이 도톨도톨 솟아있어서 까칠까칠한 카펫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 ? ?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남자에게서 멀어진 모토코는 마침내 등 뒤로 끈질기게 따라붙던 남자의 시선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동네를 1/4 바퀴 도는 것에 맞먹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자, 피스톤으로 억누르고 있던 공기가 한계까지 팽창한 끝에 펑 터지듯 한숨을 토해내며 소름이 돋은 팔을 빠른 손길로 연달아 문질렀다.

? ? ? "……저 남자, 대체 뭐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

? ? ?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받은 느낌은, 마치 바닥을 알 수 없는 빙하의 크레바스를 들여다보는 듯한 섬뜩하고 음침한 공포였다. 척추에다가 얼음물을 들이붓고 휘젓는 것만 같은 감각에 모토코가 이빨이 딱딱 떨리는 것을 막으려 턱으로 손을 가져가자, 스틸이 불난 집에 기름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를 투척했다.

? ? ? 『저 남자……. 방금 확신했다. 나를 죽인 남자다. 내가 죽고 나서, 댄 펜으로 나의 기억을 근처에 있던 책에다 담았을 때 느꼈던 기운과 완벽히 똑같은 기운이다.』

? ? ? "뭐……?!"

? ? ? 모토코의 발이 액체화되어 바닥에 강제로 융합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경악과 공포로 가득 차서 쉴새없이 덜덜 떨리는 시선이 라디오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향했다.

? ? ? "그, 그렇다면 뭐라도 어떻게든 해야 되는 거 아냐?! 죠, 죠스타 씨나 압둘 씨한테 알려서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 ? ? 『그 점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 남자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났어. 저 녀석을 쫓는 자들은 한 둘이 아니야. 이미 그 사람들에게 놈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흘려놓았다. 녀석도 자신을 쫓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 마을에서 섣불리 날뛰지 못할 거다. 날뛰는 그 순간을 노리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니까.』

? ? ?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 저 남자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 ? ? 그 남자를 쫓는 자들이 있다고 하지만, 행방에 대한 단서 제공 외에는 별 다른 대책이 없었기에 너무 안일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현실에서는 단서가 있다고 해도 게임처럼 한두 번 슥 훓어본 다음 범인을 바로 찾아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범죄 현장은 범인이 잘만 하면 교묘한 증거 조작이 가능한 데다가 현장에 남아있는 증거가 사건과 무관한 제3자나 다른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훼손될 확률도 존재한다. 어쩌면 거꾸로, 추적자들에게 넘어간 단서를 함정 삼아 그들을 농락하고 비웃으며 보란 듯이 사람을 죽인 후 이 마을을 유유히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모토코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 ? ? 『걱정하지 말거라. 너희에게 DIO라는 숙명의 적이 있다면, 저 자 역시 그를 쫓는 자들에게 있어 숙명의 적이다. 내가 장담하마. 이 마을에서 나 이외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는다. 이곳에서 놈과 추적자들의 결판이 나겠지.』

? ? ? "……그걸 어떻게 확신해?"

? ? ? 『지척에 추적자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네가 조금만 움직이면 그 사람들과 바로 만나겠지. 정 믿을 수 없다면 한 번 직접 확인해 보거라. 그리고 집에 가서 이집트로 떠날 준비를 서둘러야 되지 않겠느냐?』

? ? ?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따진 모토코는 그녀를 다독이며 어르는 스틸의 말을 듣고도 못 미더워서 한숨을 작게 푹푹 쉬며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걸음을 옮겼다. 그냥 입에 발린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1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보였던 남학생 세 명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 ? ? 한 명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인지 리젠트 머리를 하고 죠타로의 가쿠란만큼 눈에 띄게 개조된 가쿠란을 걸쳤으며, 다른 한 명은 양아치라고 광고하듯 인상이 험상궃게 생겼고 리젠트 머리의 남학생과 마찬가지로 가쿠란 상의에 달러를 포함한 각국의 화폐 기호 모양 액세서리를 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토코만큼 작은 키가 인상적인 소년은 머리카락이 불꽃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솟구쳐 있었다.

? ? ? 남학생들은 시시덕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와중에도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모토코를 봤는지 걸어오다가 살짝 옆으로 옮겨갔다.

? ? ? "오쿠야스~. 방학인 김에 통 크게 한 번 쏴주면 안되겠냐? 너 돈도 많잖아. 나중에 용돈 생기면 한 턱 쏠 테니까, 기브 앤 테이크 콜?"

? ? ? "오! 그 말 잘 받아주마, 죠스케. 그럼 토니오 씨의 이탈리아 요리나 먹으러 가자! 가는 길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지! 거긴 답이 없을 정도로 엄청 맛있어! 코이치도 거기서 음식 먹으면 키가 쑥쑥 클지도~?"

? ? ? "오쿠야스 군! 진짜! 놀리지 말라고!"

? ? ? "농담이야, 농담!"

? ? ? 리젠트 머리가 인상적인 남학생이 팔꿈치로 쿡쿡 찌르면서 능청맞게 말하자 잠시 고민하는 듯 했던 험상궃은 인상의 남학생이 고민 따위는 사치라는 태도로 빠르게 승낙했고, 옆에 있던 키 작은 남학생은 험상궃은 인상의 남학생이 농담 삼아 덧붙인 말을 듣고 펄쩍 뛰며 항의했다.

? ? ? 한쪽에서는 걸어가고 반대쪽에서는 걸어오며 팔이 닿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모토코와 리젠트 머리 남학생의 시선이 얼핏 스쳤다. 아까 그 남자와 달리, 아주 산뜻하고 상쾌한 눈빛이었다. 리젠트 머리의 남학생이 다시 고개를 돌려 두 친구들과 다른 잡담을 나누며 멀어져 갔다.

? ? ? "이상하네. 왠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인걸……."

? ? ? 모토코는 리젠트 머리의 남학생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마치 죠타로를 볼 때와 비슷하게 기묘하고 낯익은 느낌을 받은 것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둘 다 보고만 있어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과 신뢰감을 솟구치게 했으나, 차이점이라면 죠타로는 '백금' 같은 굳건한 분위기이며 듬직함이 느껴졌고, 남학생은 '다이아몬드' 같은 견고한 분위기이며 친근함이 느껴졌다.

? ? ? 『스탠드사와 스탠드사는 서로 끌린다는 말을 기억하나? 저들과 네가 인연을 만들 날은 훗날 다가오겠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말이다. 스탠드사 간의 만남은 우연이면서도 필연. 인연이라는 건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

? ? ? 스틸은 무언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예언 같이 들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모토코는 세 남학생에 더해 폐가 앞에서 만났던 양복의 남자도 떠올리며, 별로 달갑지 않은 인연이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걸음을 마저 옮겼다.


? ? ? *


? ? ? "다녀왔습니다……."

? ? ? "오, 왔니?"

? ? ? 쿠죠 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머더 돌즈의 인형을 유인하고 부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는지, 스페셜즈에게 쓸데없이 막 튀어나오지 말라고 으름장에 가까운 신신당부를 한 후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마침 거실에 있던 히로히코와 인사하고 시계바늘을 확인한 모토코는 짐 쌀 시간도 얼마 없다는 생각에 절로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죠셉과 말을 맞추기로 약속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면 그녀는 중요한 순간에 하는 거짓말을 잘 못했다. 표정에 다 드러나기라도 하는지 부모는 물론이요 언니나 친구들도 귀신같이 알아채서 자주 곤란해졌던 탓에 모토코는 아예 최대한 거짓말을 안 하는 쪽으로 행동하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가족들을 잘 속여넘기고 설득할지 마땅한 묘책이 생각나지 않아 머리가 쿡쿡 쑤셔오는 것만 같았다.

? ? ? "어제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엄마한테서 들었다. 잘 자고 왔니?"

? ? ? "네, 친구네 어머니 덕분에 잘 자고 왔어요. 저……."

? ? ? 그렇지만 홀리를 구하겠다고 약속하고 왔으니,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이상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한다고 결심한 모토코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낙장불입이니 속전속결로 가기로 결심했다. 어제 하루 겪었던 일을 간략하게 묻는 히로히코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 ? ? "아빠, 어제 묵었던 친구네 가족이랑 같이 이집트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어요."

? ? ? 모토코는 심장이 터질 기세로 쿵쿵거리고 극도로 긴장한 탓에 귓가에서 모기가 윙윙거리는 듯한 환청도 들으며 침을 꿀꺽 삼키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히로히코를 쳐다보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별다른 거부의 징조나 놀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의문은 바로 나온 말을 듣고 풀렸다.

? ? ? "아, 방금 죠셉 죠스타라는 분이 스피드왜건 재단의 국제 청소년 캠프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연락을 주셨던데, 그것 때문이었구나."

? ? ? "아, 네……."

? ? ? 마을에 남은 머더 돌즈의 인형을 모조리 쓸어모아서 박살내느라 시간을 소모한 덕도 있긴 하지만, 모토코가 속으로 놀랄 정도로 죠셉의 행동은 굉장히 신속했다. 연륜을 허투루 쌓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죠셉은 모토코가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를 노리고 현명하게도 스피드왜건 재단의 이름을 앞세워 국제 청소년 캠프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로 이집트로 향하는 여행을 위장시킨 모양이었다.

? ? ? 무엇보다도 대외적으로 스피드왜건 재단은 인류의 복리후생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빈곤층 구제를 포함한 구호 활동, 전쟁을 비롯한 인재(人災) 근절, 의학과 약학과 고고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발전에 기여하며 활동하는 무척 긍정적인 이미지의 비영리 재단이다. 그런 곳에서 주최하는 캠프라고 하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납득하고 넘어갈 확률이 높은 데다가…….

? ? ? "거기다 장인어른도 재단에서 일하고 계시니, 너도 이번에 캠프를 기회 삼아 그곳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 나중에 거기서 일하는 것도 좋을 테고."

? ? ? 모토코의 외할아버지가 스피드왜건 재단 소속 의사였기 때문에 모리히사 가의 사람들이 가진 재단의 이미지는 다른 이들보다 더욱 긍정적이었다.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무보수로 봉사하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자신이 무척 '자랑스런' 사람의 혈통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 ? ? "센터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 여행으로 다양한 경험을 겪어보는 것도 좋고. 다만 같이 갈 친구들이나 보호자 분께 폐 끼치지 말거라."

? ? ? "……네."

? ? ? 모토코는 이 순간 속으로 아버지의 털털함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의 반응을 보니 죠셉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전부 우락부락한 남자들 뿐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모양이었는데, 만약 히로히코가 작은 딸과 같이 여행을 가는 이들이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허나 거절한다!'며 딱 잘라 안 된다는 엄포를 놓았을지도 모른다.

? ? ? 그는 마시려는 차나 커피에 지우개 가루가 떨어진 걸 발견해도 신경쓰지 않고 그냥 마셔버리는 대범한 성격이긴 하지만, 또래보다 어려 보이는 딸이 외모 때문에 얕보이거나 타인이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걸 무척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여행 기간 내내 딸이 자존심 상해 있을 걸 우려해서 즐거운 추억만 남겨도 모자랄 방학인데, 줄곧 폭발한 상태로 보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거절할 가능성도 있었다.

? ? ? "뭐, 너라면 폐 안 끼치고 잘 다녀오겠지만은……. 아, 맞다. 돈도 좀 필요하겠지? 자, 얼마 안 되겠지만 가져가거라."

? ? ? 히로히코는 뒷주머니에 대충 넣어두었던 지갑에서 100달러를 꺼냈다. 얼마 안 되겠다는 표현과 정반대로 예상 외의 거금에 깜짝 놀란 모토코가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딸이 해외로 봉사 활동을 간다는데 이 정도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며 한사코 거부하는 그녀의 손에 기어코 돈을 쥐어주었다. 세 번 거절한 모토코는 그녀의 거절을 네 번 거절한 아버지에게 밀려 결국 돈을 받아들고 작은 한숨과 함께 집에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와 언니의 행방을 물었다.

? ? ? "엄마랑 언니는 어디 갔나요?"

? ? ? "아까 전화 끝나자마자 여행에 필요할 물건 사러 간다고 같이 나가더구나. 편의점으로 간다고 했으니까 네가 짐 싸는 사이에 금방 오겠지."

? ? ? 아버지를 뒤로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온 모토코는 1학년 때 갔던 수학여행 이후 사용할 일이 없어서 내내 옷장 속에 처박아두었던 슈트 케이스를 꺼내고 머릿속에 챙겨야 할 물건 목록을 떠올리며 짐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다.

? ? ? 먼저 입출국에 필수지만 한 번도 해외로 나간 적이 없어서 새 것이나 다름없는 여권, 돌발상황에 대비해 반 년어치 용돈을 꾹꾹 눌러 담은 지갑, 얼떨결에 죠타로를 따라가느라 학교에다가 두고 왔는데 누가 가져다 뒀는지 책상에 얌전히 놓여있는 책가방 안에 하루가 넘게 고이 모셔져 있던 상처약과 손수건이랑 냉기가 다 사라진 FF 포카리, 그리고 스페셜즈의 능력이 기록되어 있어 타인이 보면 매우 곤란한 수첩, 필기도구, 폐허가 된 저택에서 주운 이상한 노트가 책갈피를 대신해서 끼여 있고 스탠드 구현의 화살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어 모토코나 죠타로 일행을 제외한 스탠드사가 보면 큰일 날 스틸의 일기장과 공항에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을 책까지 챙긴 후, 치마 주머니 안의 라디오도 슈트 케이스 옆쪽에 달린 주머니에 넣으며 마저 챙길 물건을 찾아 방 안을 돌아다니다 책장 맨 아래 칸에 넣은 패미컴 위에 올려둔 게임보이를 발견했다.

? ? ? "아, 이것도 가져갈까."

? ? ? 지난 달에 안 쓰고 구석에다 박아두기만 했던 책이나 물건 중 상태가 괜찮은 것들을 바리바리 긁어모아 재활용품 가게에 한 치의 미련 없이 전부 팔아넘긴 후,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우다 신품과 비교하면 무척 싼 가격에 나온 중고 게임보이를 보고 '이거다!' 싶은 느낌이 퍼뜩 들어서 물건 팔고 받은 돈에 더해 일 년 동안 모은 용돈 대부분을 탈탈 털어 장만했지만, 마침 운이 좋게도 통신 케이블을 비롯한 주변 기기는 물론이요 전용 소프트웨어도 내장되어 있었기에 추가로 용돈을 소비할 필요 없이 한 세트를 산 것이나 다름없게 된 셈이어서 용돈 절반 이상을 탕감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큰 수확이었다.

? ? ? 당시 학생 치고는 꽤 큰 거금을 냈기에 계산을 담당했던 직원이 가게 바깥으로 나가는 모토코를 보고 평소보다 열기가 더욱 담긴 태도로 '안녕히 가십쇼!'라고 우렁차게 외쳤을 정도였고, 거저 얻은 게임보이 세트 덕분에 용돈의 반 이상을 소비했음에도 새해 아침에 새 팬티로 갈아입은 것보다 더욱 상쾌하고 하늘로 날아가면서 팡파레라도 불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게임보이와 주변 기기, 교체용 배터리, 발매되자마자 잽싸게 구입한 테트리스 게임팩과 슈퍼 마리오 랜드 게임팩도 라디오가 담긴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은 모토코는 옷장 안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 ? ? "더운 나라니까 옷은 넉넉히 가져가야겠지……."

? ? ? DIO를 찾아 그와 싸워 쓰러트리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지만, 최대 기간이 49일 전후임을 감안해서 여벌의 교복과 속옷을 포함한 갈아입을 옷가지, 여분의 편한 신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생리 주기 조절 약을 포함한 각종 비상의약품, 수건이 포함된 세면도구, 빗과 로션, 선크림, 립글로즈에 더해 기초화장품을 포함한 미용도구와 각종 위생용품을 넣고 또 챙길 것이 없나 하며 고심하던 모토코의 눈에 문득 어떤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 ? ? 「네 상처의 시간을 가속시켰다! 시간이라도 가속시킨 것 같은 브라보한 효과! 가까운 약국과 편의점에서 구입하세요!」

? ? ? 모토코가 머더 돌즈의 인형들이랑 레인보우와 싸우고 난 후 그 효과를 톡톡히 본 푸치딘의 캐치프레이즈였다. 학교에서 불량배에게 괴롭힘당하던 남학생이 도와준 보답으로 줬던 개수를 생각해보면 혼자서 쓰기에는 제법 많은 양이었는데, 불량배한테 얻어맞고 난 후 혼자 끙끙대며 상처 입은 곳에다 약을 조심조심 발랐을 장면이 상상되어 모토코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 ? ? "모토코, 너 지금 안에 있지?"

? ? ? 모토코가 대답하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토우코가 행군하는 군인처럼 당당하게 들어왔다. 잔뜩 벼르고 있다가 딱 걸렸다는 표정을 지은 언니의 기세에 눌린 모토코는 흠칫하며 토우코의 시선을 피했고, 토우코는 단 몇 걸음만에 모토코의 바로 옆으로 와 엄지와 검지로 동생의 볼을 붙잡았다.

? ? ? "모토코! 너 어제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배짱 좋게 학교를 땡땡이쳤던 거야? 방학식이었다고 하지만, 학생 주임의 그 성질 생각해 보면 그냥 안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데, 후환이 두렵지 않아?"

? ? ? "아…… 언니, 저, 그게…… 사정이 있어서……."

? ? ? 토우코의 박력에 밀린 모토코가 쩔쩔매며 변명했다. 할 말은 제때제때 바로 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토우코는 버벅대는 동생이 답답했는지 볼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꼬집었다.

? ? ? "사저엉~? 무슨 사정? 아무튼! 어제 엄마한테 얘기 듣기 전까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이 지지배야, 너네 반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양호실 간다고 했던 애가 학교에 그 난리가 터졌는데도 코빼기도 안 보이지, 거기다 다른 애들 말 들으니 죠죠도 양호실 가서 아예 안 돌아왔다고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었다며? 너…… 혹시……."

? ? ? 모토코는 거짓말이 들켰나 싶어서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마 쪽이 축축해지는 게 금방이라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다. 오죽하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는지 모토코 몰래 나온 SP6가 그녀의 등 뒤에서 기웃거렸다.

? ? ? 모토코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화난 토우코는 세뇌된 카쿄인도 찍 소리 못하게 만들 정도로 무서웠다. 한 번은 지나가다가 찝쩍거리던 불량배 패거리를 참다 못해 폭발한 나머지 들고 있던 대걸레로 거침없이 후려 패고 가랑이 사이까지 내리찍어준 후 벌레 퇴치하듯 쫓아내서, 그날 이후 불량배들이 토우코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낌새까지 보일 정도였다.

? ? ? "요 깜찍한 기집애, 배짱도 좋게 죠죠랑 같이 땡땡이 쳤구나?"

? ? ? "으어우……."

? ? ? "순순히 말 해. 같이 여행 간다는 친구가 죠죠야?"

? ? ? 토우코는 모토코의 볼을 붙잡고 고무줄 늘이듯이 잡아당겼다. 결국 토우코의 심문에 넘어간 모토코는 여행의 동행자가 누구인지 실토했다.

? ? ? "어, 맞아. 여행 같이 가는 사람, 죠타로 맞아……."

? ? ? 예상은 했어도 동생의 입으로 여행의 동행자가 누구인지 확인사살되자 토우코의 입이 쩍 벌어졌다.

? ? ? "맙소사! 같이 가는 친구가 죠죠라니……. 역시 사람 일이라는 건 앞 날을 알 수 없구나."

? ? ? 쿠죠 죠타로는 학년에 더해 학교를 가리지 않고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기로 유명하지만, 철의 장벽이라도 세운 것마냥 접근하기 어려운 걸로도 유명한데 어떻게 금세 이름으로 부를 정도까지 친해졌으며, 거기다 무슨 방법을 썼길래 방학 동안 여행까지 같이 갈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진 걸까? 그녀의 두 눈동자가 여과 없이 경악을 통채로 드러냈다.

? ? ? "네 성격에 여행을 같이 갈 정도로 친해지기까지 하다니, 참 신기하네…… "

? ? ? 토우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책상 위에 올려진 책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 ? ? "정말, 너네 반 애들은 진짜 무심하기도 하지. 가방 하나 가져다 주는 게 그렇게 힘드나? 아무도 안 갖다주는 바람에 내가 도로 학교로 가서 가져와야 했다고. 내가 안 갔다면, 네 가방은 네가 가지러 갈 때까지 학교에 홀로 쓸쓸하게 남겨져 있었을지도 몰라. 감사히 생각해!"

? ? ? "아, 응……."

? ? ? 모토코는 또 다시 협소한 인간 관계를 실감했다. 모모라는 애칭을 지어 부르고 친근하게 구는 친구들이 주변에 제법 많았으나, 막상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을 때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기분이 착잡해졌다.

? ? ? "방학 동안 이집트로 여행 간다니, 부럽네. 난 수험생이라 어디 마음대로 못 가고……. 거기다 아빠가 허락하실 리가 없으니."

? ? ? "……."

? ? ? 토우코는 공부를 잘 하고 성적도 좋지만 히로히코는 놀고 싶으면 먼저 할 일을 다 끝내고 난 다음에 실컷 놀라는 주의를 고수했기에, 올해는 센터 시험이 마무리되는 그 날까지 꼼짝 없이 공부만 해야 할 판이었다.

? ? ? "좋아! 그럼 모토코, 이거 줄 테니까 기념품 사와! 알았지?"

? ? ? "어? 아, 응……."

? ? ? 토우코가 내민 건 달달한 맛이 중독성 있다며 평소에 잔뜩 쟁여두고 자주 먹어대는 과자였는데, 커피를 예로 들자면 블랙 커피를 좋아하는 입맛의 모토코한테도 나쁘지 않은 맛이었기에 가끔 토우코가 먹을 때 옆에서 한두 개씩 얻어먹고는 했다.

? ? ? "좋겠다, 여행도 다니고……."

? ? ? "……."

? ? ? 모토코는 짐으로 가득 찬 슈트 케이스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토우코에게, 그 여행이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즐겁고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차마 한 글자도 꺼낼 수가 없었다.

? ? ? "에헴! 이 언니가 친히 도와주는 거니까 불평은 거절한다!"

? ? ? 모토코가 가만히 있는 모습을 뭘 가져갈지 고민하는 모습으로 본 모양인지, 토우코가 '여행에 꼭 가져가라 두 번 가져가라.'라면서 꺼낸 건 다용도 손톱깎이였다. 전달할 물건을 다 넘긴 토우코는 기념품 안 사오면 혼쭐날 줄 알라며 협박(?)을 날린 다음 쿨하게 퇴장했고,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오자 모토코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모토코? 준비 다 끝났니? 잠깐 할 얘기가 있어."

? ? ? 토우코가 준 과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피식 웃음이 나온 순간, 문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토코는 ─ 사실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부터가 거짓말이기는 하지만 ─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긴장했다. 세대불문 이 세상 대부분의 아이들이 괜히 겁 먹게 되는 마법의 말, '엄마랑 잠깐 얘기 좀 하자.' 어쩌면 이 세상 그 어떤 스탠드보다 광범위하고 강력할지도 모른다.

? ? ? "아…… 네. 다 끝났어요."

? ? ? 설마 거짓말이 들킨 건가? 거짓말이라는 티를 너무 냈나? 혹시 지금 와서 가면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쩌지? 죠스타 씨랑 죠타로한테 가겠다고 했었는데! 이제 와서 못 간다고 하시면…….

? ? ? 여러 가지 생각이 모토코의 머릿속을 레이싱 카처럼 쌩쌩 지나갔지만 이미 나온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법. 문이 열리면서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고, 마리아는 매우 낡아 보이는 가죽 책과 구급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 ? ? "모토코. 이 여행…… 엄마가 잘못 들은 거였으면 좋겠지만, 혹시 죠스타 씨라는 사람하고 같이 가는 거니?"

? ? ? "아, 네……."

? ? ? 죠셉을 언급하는 마리아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아서 모토코는 조마조마함을 느꼈다.

? ? ? "그 사람이 너한테…… '시생인'이나 '흡혈귀', 또는 '기둥의 남자' 같은 이야기도 했었니?"

? ? ? "네…… 에에?"

? ? ? 걱정 어린 어머니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니 양심이 매우 찔려서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던 모토코는 낯선 단어 속에 섞여있는 익숙한 단어가 들리자 자기도 모르게 대답해버리고 한 발짝 늦게 아차 하며 흠칫 놀랐다.

? ? ? 마리아는 그런 모토코의 반응을 보고 한숨을 푹 쉬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지 헤매며 쩔쩔매는 모토코의 머리를 붙잡고 끌어안았다.

? ? ? "엄마……?"

? ? ? 모토코는 마리아가 의외의 행동을 하자 허둥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 ? ? "아까 전화가 왔을 때, 죠스타라는 성을 듣고 뭔가 짐작가는 게 있긴 했어. 아버지한테서 스피드왜건 재단이 이번 여름에 청소년 캠프를 주최한다는 이야기는 일절 들은 게 없으니까. 주최한다고 결정됐다면 바로 나한테 알려주셨겠지. 외할아버지는 너랑 토우코를 많이 예뻐하시니까. 좋은 건 다 너희 주시려고 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네 생일 때마다 꼬박꼬박 오시고……."

? ? ? 외할아버지 이야기까지 나오니 거짓말했다는 죄책감이 가중되어서, 모토코는 그냥 겨울 메기처럼 얌전히 있자고 생각했다.

? ? ? "어제 저녁에 몰래 거실로 나와서 반창고 가져갔던 거, 혹시 그 여행과 관련된 일 때문에 다쳐서 그랬니?"

? ? ? 모토코는 흠칫했다.

? ? ? "몰래 가져간답시고 최대한 소리 안 내고 움직이려 했겠지만, 엄마가 그때 기도 끝내고 방에서 나오는 걸 못 봤던 모양이구나. 다친 거, 왜 말하지 않았니?"

? ? ? "그, 그게…… 어차피 금방 나을 상처고……."

? ? ? 흡혈귀랑 싸우러 간다는 사실이 벌써 들통나긴 했어도, 어머니한테 그저께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스탠드라는 초능력이 생기고 100년간 죽지도 않고 친구 할아버지의 몸 뺏어서 부활한 흡혈귀가 보낸 자객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겠는가. 기절초풍하면서 이 여행을 아예 못 가게 막을지도 모른다.

? ? ? "금방 나을 상처라 해도, 다치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야. 이 여행, 네가 꼭 가야만 할 정도로 '납득'이 가는 이야기가 있었던 거니?"

? ? ? "……네.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일이에요."

? ? ? 모토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눈빛 속에 담긴 '긍지'를 본 마리아는 만일 모토코를 못 가게 붙잡고 막아선다 해도, 그녀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빠져나가 이집트로 향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옛날에, 마리아도 현재의 모토코와 똑같은 눈빛을 하고 행동한 적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 ? ? "'긍지'……. 그래, 너도 결국 내 핏줄이니까 그런 거구나……."

? ? ? "엄마?"

? ? ? 마리아는 옛날에 아버지에게서 들은 그녀의 '혈통에 얽힌 숙명'을 떠올리며, 마침내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네 아빠랑 결혼해서 일본으로 오고, 토우코랑 너를 낳고…… 정말 평화로운 생활이었지.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언젠가 이런 날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며 '납득'하고 있었어. 너도, 내 '혈통'을 이어받았으니까……."

? ? ? "엄마……."

? ? ?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 '체펠리'와 '죠스타'는 기묘한 인연이 있다고. 옛날에 '아버지의 형'과 '죠스타 가문의 사람'이, 함께 '파문'이라는 신비한 힘을 수련해서? '무서운 존재'와 싸웠다고……"

? ? ? 모토코에게 이야기하기보다 마치 스스로에게 뇌며 다짐하는 것처럼 말하는 마리아가 서글퍼 보여서, 모토코는 어머니의 품 안으로 더 파고들었다. 마리아도 모토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들고 온 책을 내려놓고 어깨를 감싸주었다.

? ? ? "가서 너무 무리하지 마. 네가 비록 표현은 잘 못해도, 우리를 늘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네 언니도, 네가 우리를 생각해주는 만큼 너를 늘 생각하고 있으니까."

? ? ? 모토코는 속마음을 전부 꿰뚫어보는 마리아의 말에 쑥쓰러워하며 꼼지락거렸다.

? ? ? "이걸 가지고 가렴."

? ? ? 마리아가 내민 책은 척 봐도 오랜 세월을 견뎌냈는지 표지 귀퉁이가 해어지고 세월을 타 광택이 다소 죽은 낡은 가죽으로 된 책이었다. 표지와 책등에는 모토코가 모르는 언어와 이탈리아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 ? ? "이게 뭔가요?"

? ? ? "엄마가 옛날에 썼던 비법서야. 부적으로 삼으렴."

? ? ? "비법서요?"

? ? ? 그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건 무협지에 나오는 은둔고수였다.

? ? ? "어렸을 때 엄마는 이걸 보면서 파문을 억지로 배워야 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도 참 철이 없었지……. 본 적도 없는 조상들의 숙명 따위 알게 뭐냐고 참 많이 생각했었어. 수련이랍시고 이상하게 생기고 엄청 불편한 마스크도 쓰고 다녀야 해서 아버지가 날 웃음거리로 만드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반항도 참 많이 했었지."

? ? ? 한창 혈기 넘치던 시절,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말다툼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마리아의 표정에 부끄러움이 깃들었다. 철없던 시절의 과오는 언제 생각해도 이불을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게 만들었다.

? ? ? "그렇지만…… 세상 일은 역시 한 치 앞도 모르는 거구나. 지금 아버지가 왜 그토록 파문을 배워두라고 하신 건지……. 알 것 같아……."

? ? ? 마리아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슈트 케이스를 흘낏 쳐다본 마리아는 푸치딘이 한 가득 들어 있는 걸 보고 손가락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며 피식 웃었다.

? ? ? "상처가 나면 역시 푸치딘이 최고지. 약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최대한 챙겨가렴."

? ? ? 마리아는 모토코가 한가득 챙긴 푸치딘에 더해 마찬가지로 효과가 좋기로 입소문이 자자한 진통제인 타이네놈, 멀미약, 위장약, 감기약이 한 가득 담긴 약 꾸러미를 모토코에게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엄마의 마음으로 보기에는 그것도 부족하다 여겼는지, 구급 상자를 탈탈 털 기세로 뚜껑을 열며 모토코에게 물었다.

? ? ? "모토코, 혹시 모르니 다른 약도 좀 더 줄까?"

? ? ? "아뇨, 필요 없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는데요."

? ? ? 모토코는 미어터질 기세인 약 꾸러미를 보고 과유불급을 떠올리며 살짝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그러니? 하긴, 모토코 넌 옛날부터 몸이 튼튼했으니까…….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거라. 피곤하다 싶으면 바로 자고, 어딜 가든 물은 신경써서 마셔. 엄마가 짐 마저 챙기는 거 도와줄까?"

? ? ? "아니에요, 괜찮아요. 거의 다 챙겼는 걸요."

? ? ? 마리아는 몇 번이나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안심이 됐는지 방을 나섰다. 슈트 케이스의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리려던 모토코는 슈트 케이스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땅에 고정된 것처럼 꿈쩍도 안 하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SP4가 손잡이를 잡으며 친절히 설명했다.

? ? ? "주인이여, 내가 바로 뒤에 서서 짐을 들 테니 손잡이만 붙잡고 있으면 될 거다. 주인의 가족 분들은 스탠드사가 아니니, 내가 들고 간다면 가방이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라겠지."

? ? ? "고마워, SP4."

? ? ? 파워는 일반인 수준인 스페셜즈라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완력을 무기로 삼는 SP4라 그런지 SP4가 슈트 케이스를 들자 놀랍게도 솜인형처럼 가볍게 들렸다. 짐을 SP4에게 맡긴 덕에 모토코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쩌면 다시 못 들어올지도 모르는 자기 방을 뒤에 남겨 두고 거실로 나왔다.

? ?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 ? "잘 다녀오거라."

? ? ? "조심해서 다녀오렴."

? ? ? "네."

? ? ? "잘 갔다와! 올 때 선물 잊지 말고!"

? ? ? "알았어."

? ? ? 현관 바깥까지 따라와서 한 번씩 포옹해주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고, 모토코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주사위는 던져졌다.




? ? ? ==========
? ? ? 집안 내력이 내력이다보니, 마리아는 죠스타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모토코가 어떤 목적으로 이집트에 가는지 벌써 눈치채버렸습니다.

? ? ? 참고로 키라와 대화할 때 모토코가 머릿속에서 재생한 음악은 그 유명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메인 테마곡입니다.?공포를 억누르는 데에 효과가 있…… 었을 까요?
앨매리

원환과 법희와 기적의 이름으로, 마멘!

4 댓글

마드리갈

2019-05-17 18:54:48

폭풍전야에 있을법한, 아주 기분나쁠 정도의 적막감일까요? 그게 느껴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험악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미 험난한 대장정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이 시작되었어요.

가족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네요. 모토코에게는 언니 토우코가 있고...

역시 어머니는 그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고, 그 운명의 여행에 나서야 할 모토코에게 힘이 되고 있어요. 역시 어머니는 위대해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겨우 참고 있는 중...


세 남학생이 등장하는군요. 4부의 히가시카타 죠스케, 니지무라 오쿠야스, 그리고 히로세 코이치.

원작의 시점에서보다 훨씬 일찍 등장하는 게 눈에 띄고 있어요.

앨매리

2019-05-18 11:43:39

불길한 전조는 죠타로와 만나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죠스타 일행과 한 배를 타면서 본격적으로 들어닥치기 시작한 셈이죠. 실제로 DIO의 자객들은 죠스타 일행이 일본을 떠나자마자 더욱 교활한 수법으로 습격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버지 히로히코, 어머니 마리아, 언니 토우코, 마지막으로 막내 모토코. 4인 가정입니다만, 마리아의 아버지나 다른 친척들도 언급할 예정이니 모토코의 가족관계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할 예정입니다.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식이 사지로 걸어들어가겠다는데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요.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딸을 보내는 마리아의 각오는 보통이 아니겠죠. 자신의 혈통에 얽힌 숙명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던 만큼, 더더욱 불안했을 테고요. 부적으로 파문의 비법서를 준 것은 그런 마음에서였죠.

게임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름을 표기하지 않지만, 실제로 필드 상에서 NPC로 등장하는 키라와 세 남학생을 보고 말도 걸 수 있습니다. 이들이 3부 시점인데 4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플레이어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SiteOwner

2019-06-05 20:55:35

운명이라는 게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는 순간이 오는 것인가 봅니다.

그것이 바로 모리히사 모토코의 이집트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고, 어머니 마리아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오랜 세월을 달려오며 살았고 그렇게 함께해 온 비법서를 건네준 것이었나 봅니다.

숭고한 목적을 위한 위대한 여정은 이렇게 운명에 맞서는 사람과 그 의지를 믿는 가족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여정이 실패하는 게 더욱 이상하겠지요.


등장하는 약품은 실재하는 것들을 적절히 변형한 것이군요. 이런 점 또한 재미있어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앨매리

2019-06-06 13:05:50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고, 독선적인 악역이었긴 하지만 푸치 신부도 이와 비슷한 느낌의 대사를 한 적이 있죠. (운명을) 각오한 자는 행복하다고.

비록 많은 희생이 나왔고, 또 이후에도 DIO가 남긴 사악한 잔재와 끊임없이 맞서 싸웠지만 죠스타 가문이 가장 큰 악인 DIO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건 역시 싸우러 간 자들과 뒤에 남겨진 자들 모두 각자 운명을 받아들여 각오한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게임 원어판에서는 그냥 상처약이라고 작명되었는데, 게임 번역자가 적절한 죠죠러 센스를 발휘해서 상처약 → 후시딘 → 푸치딘으로 변형시켰더군요. 그 외에도 번역자가 몇몇 아이템을 적절히 변형시키거나 현지화시켜서 게임을 하다가 가끔 피식거렸습니다.

목록

Page 54 / 12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채색이야기] 면채색을 배워보자

| 공지사항 6
  • file
연못도마뱀 2014-11-11 7096
공지

오리지널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 안내

| 공지사항
SiteOwner 2013-09-02 2218
공지

아트홀 최소준수사항

| 공지사항
  • file
마드리갈 2013-02-25 4436
1461

[Tycoon City] 5화 - 철창 안에서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5-18 123
1460

오사카, 교토 여행 - 2일차(5.12) - 2

| 스틸이미지 2
  • file
시어하트어택 2019-05-17 134
1459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8)

| 소설 4
앨매리 2019-05-17 156
1458

[Tycoon City] 4화 - 뜻밖의 사건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5-16 122
1457

오사카, 교토 여행 - 2일차(5.12) - 1

| 스틸이미지 2
  • file
시어하트어택 2019-05-15 122
1456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7)

| 소설 4
앨매리 2019-05-15 160
1455

오사카, 교토 여행 - 1일차(5.11)

| 스틸이미지 3
  • file
시어하트어택 2019-05-14 160
1454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6)

| 소설 4
앨매리 2019-05-14 163
1453

[Tycoon City] 3화 - 알지 말았어야 했을 것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5-10 118
1452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5)

| 소설 4
앨매리 2019-05-10 161
1451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4)

| 소설 4
앨매리 2019-05-09 164
1450

[Tycoon City] 2화 - 빛과 어둠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5-09 125
1449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3)

| 소설 4
앨매리 2019-05-07 162
1448

[Tycoon City] 1화 - 흐린 하늘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5-05 130
1447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2)

| 소설 4
앨매리 2019-05-05 161
1446

[팬픽/죠죠] 7번째 스탠드사 : Break Down The Door (1)

| 소설 4
앨매리 2019-05-04 173
1445

리멘트 구데타마 & 스밋코구라시 Feat. 리락쿠마

| 스틸이미지 6
  • file
마키 2019-04-30 226
1444

[괴담수사대] IX-6. 생각만 해도

| 소설 2
국내산라이츄 2019-04-29 125
1443

[COSMOPOLITAN] #2 - Love Thy Neighbor (2) (211112 수정)

| 소설 8
Lester 2019-04-21 222
1442

[초능력에, 눈뜨다] 에필로그 - 다시 일상, 그리고...

| 소설 2
시어하트어택 2019-04-19 146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