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겪었던 것들을 떠올려 보자면, 남자의 모발에 관한 제 지론은 이것입니다.
"남자의 모발에는 자유가 없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머리숱이 많아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남자아이들이 삭발을 당하는 건 흔히 있었습니다. 그 삭발이 정말 증모에 효과적인지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보니 신빙성 문제는 논할 필요도 없겠습니다만...
그나마 유년기에는 그나마 자유가 가장 많이 주어진 시기겠지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남자의 모발은 세계의 적이라도 된 것같이 박해받습니다. 특히 머리를 기르면 공부를 못한다고, 그러니까 스포츠머리를 하든지 삭발하든지 하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중학생 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바로 의문이 들더군요. 그러면 짧은 머리의 남학생은, 어떤 경우든지 공부를 가장 잘 하는 여학생보다도 반드시 학과성적이 높은 것인지. 교사에게 그렇게 물어봤다가 가위로 입을 찢길 뻔했습니다.
게다가, 저처럼 모발색이 완전히 검은색이 아닌 경우에는 특히 그 박해는 심해집니다.
혼혈 의혹도 받는 등 인종차별도 있고, 염색, 불량 논란 등에도 늘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특히, 어떨 때에는 검게 보이더라도 직사광선에 노출되면 갈색빛이나 붉은빛이 두드러지는 경우라면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
대체 모발의 길이와 색이 뭐가 문제되는 것이며, 인간의 능력이 모발의 길이와 색에 좌우된다고 믿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살아 오면서 그런 근거를 내 놓으면서 두발단속을 하는 건 일절 못 봤습니다. 처음으로 모발 관련의 합리적인 규제근거를 들었던 것이 군생활 때, 적에게 모발을 잡혀서 기습공격에 목숨을 잃는 등의 전술상의 불리한 점 제거 및 위생유지의 이유를 말해주는 미군들의 설명이었으니까 그 이상은 말을 더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간혹 이 나라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단발령에 저항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맞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성향이라는 것도 고정불변은 아닌 것이군요. 이런 풍조는 또 언제 옛 이야기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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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9-07-05 21:25:14
그냥 선생님들이 그러라니까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합니다.
어른되어서 머리 길러도 아무 문제 없었단 말이죠. 굳이 왜 자르라고 한 걸까요?
이유있는 규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 학생들도 납득하고 따라오겠죠. 근데 이유없는 규칙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단 말이죠.
하긴 10년은 넘은 일인데다가, 저는 그냥 생각없이 따르는 쪽이었으니 말하기도 뭣하지만요.
SiteOwner
2019-07-06 13:18:33
"까라면 까" 라는 거친 표현으로 요약되는 권위주의의 폐해인 것이지요.
합리적인 근거 같은 것은 없이 그냥 틀어쥐고 폭력으로 침묵시키려고 하는 것은 당장에는 통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항도 역시 합리적인 근거 없이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기성의 모든 것에 대한 완전부정(Vernichtung)이 일어납니다. 당장 제정러시아를 폭력으로 뒤엎은 공산주의가 어떤 광풍을 몰고 왔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을 합법적으로 장악한 전체주의가 또 어떤 학살극을 벌였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합리에 의한 지배는 이래서 중요합니다. 문명의 건전한 영속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