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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핵" 등의 수식어에의 경계

SiteOwner, 2019-07-03 19:27:02

조회 수
189

이전에도 언어의 과잉을 지적했습니다만 이번에는 구체적인 어휘 두 가지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해 볼까 싶군요.

식품이나 침구의 이름에 "마약" 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굉장히 불쾌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런 이름이 붙은 상품은 소비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사라집니다. 뭐 이런 것 갖고 민감하게 그러는가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만, 마약이라는 물질의 속성이 그것을 복용한 사람의 신체와 정신과 경제상태를 끔찍하게 파괴하는데다 범죄조직의 주수입원이기까지 한 점에서 적절한 수식어도 아닐 뿐더러 마약 그 자체와 관련 행위자의 속성을 무시하거나 희화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문구를 만든 사람은 "중독되다시피 자꾸 찾게 된다" 라는 의도로 이 수식어를 썼겠습니다만, 경솔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피할 수 없겠습니다.

또한, 요즘의 속어 중 "핵" 이라는 접두어는 피로감을 가중시킵니다.
물론 이것을 영어의 Core로 볼 수도 있고 Nuclear Warfare로 볼 수도 있고 전자의 의미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후자같군요. 핵무기의 엄청난 위력에 빗대어 말하는.
그런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적절한 수식어일 수는 없습니다. 핵분열은 철보다 원자량이 큰 원소의 원자핵이 불안정하여 붕괴하는 과정인데, 그렇다면 현재에는 절대적으로 여기더라도 언제든지 그 지위가 깨어지거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가 반응하여 헬륨을 생성하면서 소실된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핵융합 또한 불안정한 상태가 전제되는 점에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이 접두어 문제는 굉장히 간단히 해결됩니다. 정 "핵" 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면 기존의 어휘 "핵심" 을 쓰면 되고 이 밖에도 주류(Mainstream), 중심 등의 다른 기존어휘로도 얼마든지 대체가능해서입니다. 나름대로 참신한 강조 의미로서 그런 말을 썼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어휘력, 사고력 및 배경지식의 빈곤은 감출 수는 없다 보니 이것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언론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약 어쩌고 하고,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핵인싸" 어쩌고 하는 것은 언제쯤 사라질까요.
혹시 마약보다 더 위험한 물질이 등장하거나 핵무기 따위는 우습게 보일 정도의 행성파괴무기 정도가 나와야 강조하는 수식어의 지위를 잃어 사어가 되는 것일지.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Lester

2019-07-04 09:19:56

제가 사는 전주의 한옥마을에서였나, 무슨 마약만두인지 마약빵인지 하고 버젓이 간판을 걸어놓고 팔더군요. 처음엔 '중국도 아니고 설마 진짜 마약을 넣을리는 없겠지'라거나, 한자가 다른 마약이겠거니 해서 그냥 피식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진짜 본문과 같은 의미로 썼더군요. 그런데 정말 걱정스럽긴 합니다. 아무리 '너무 맛있어서 계속 찾게 된다'는 의미라지만 그렇다고 마약XX라니.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뭐든 상관없다는 의식이 암암리에 주입되는 것 같아 문제입니다.


핵XX의 경우는 보통 후자의 의미로 많이 쓰죠. 핵공감이니 뭐니 하고. '개-'를 사용해서 긍정적인(?) 의미로 강조하기도 하고요. 사실 참신하다기보단 그냥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면서 강조가 되고 동시에 짧은' 경제성을 추구하다 보니 저런 결과물이 나오는 거죠. 뭐 그렇게까지 줄여서 말해봤자 얼마나 편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지만요. 오히려 나날이 늘어나는 신조어를 알아둬야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비경제적이죠.


그런데 핵심이나 주류 등의 단어로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지금 후자(핵무기의 엄청난 위력에 빗댐)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 맞죠?

SiteOwner

2019-07-04 17:54:13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에 미루어 볼 때, 생각없이 쓰는 말이 생활에 넘친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공허하고 그래서 삶도 엉망이 된다는 것을 추론해 낼 수 있습니다. 마약 어쩌고 어쩌고 하는 현상 또한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에는 전조가 있었습니다. 미소짓는 모습이 매력적인 연예인의 얼굴을 "살인미소" 라고 쓰는 것. 이 표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으니 마약이라는 말이 수식어로 쓰이는 등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이렇게 살인이니 마약이니 하는 것들을 수식어로 남용하는데 그 다음에는 무슨 끔찍한 수식어가 나와도 안 이상할 것입니다. 이게 정녕 바람직한 언어생활인 것인지, 적어도 저는 반대하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무분별한 신조어, 축약어 등이 개인 단위로는 경제성을 추구한다는 것이겠지만, 개인 차원의 합리성이 전체의 합리성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불합리를 늘리는 역효과도 냅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인데, 소통의 수단을 올바로 쓰지 않으면서 소통을 바란다는 것이 언어도단이지요. 그런데도 이 모순을 모릅니다. 위의 끔찍한 수식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세태에 이것에 얼마나 신경쓰겠습니까. 요즘 인터넷에서 성기의 속된 표현을 쓰는 접두어도 유행하는데, 이게 이미 부분적으로는 방송용어로 채택되어 있기까지 하니 이미 우려할 수준은 넘어선 것이지요.


질문에 답해 드립니다.

전자의 Core를 의미한다면 핵심, 주류 등의 어휘를 쓰면 됩니다.

후자의 Nuclear Warfare를 의미한다면 100%, 전적, 완전, 십분, 압도적 등에서 적절한 것을 고르면 됩니다.

대왕고래

2019-07-05 21:08:19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용어를 쓰는 걸 딱히 관여하고 있지 않아요. 그 사람들 자유니까요.

근데 저는 쓰기가 싫더군요. 그냥 좀 꺼림찍하잖아요. 괜히 남들 앞에서 쓰고 싶지 않아요.

이와는 별개로 그런 용어는 사라지지 않을 거 같네요. 유행이라 뒤쳐진다면 사라지겠지만, 다른 식의 어휘가 또 등장하고, 또 등장하고, 또 등장하겠죠. 유행어라는 게 매번 그러했듯이.

SiteOwner

2019-07-06 13:30:52

그런 속어를 아무렇게나 내뱉는 사람은 확실히 꺼려집니다. 교양없다고 여겨지기 쉬우니까요.

말 한 마디로 너무 가볍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반론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반론도 가능합니다. 그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판단없이 남용하는 것에서 좋게 봐 줄 여지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그러니 조심해야 하겠지요.


우려하신 것처럼, 그런 어휘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게다가 앞으로도 증식할 것 같습니다.

아주 보기 싫은 꼴을 지칭하는 말로 사전에 수록되기도 한 어휘인 "좆같다" 를 보면 확연히 그렇습니다. 이 말에 별별 접두어가 붙습니다. 개 등의 동물 명칭, 다른 욕설이 첨가되어서 계속 증식합니다. 게다가 기성의 한자어인 "혐오" 가 줄어들어 "혐" 이 되고 여기에 또 강조의 의미가 붙어 "극혐" 이 되는데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성기의 속칭 등이 붙어 "좆극혐" 이 되어 버립니다. 마약을 복용할수록 최소요구치가 커져버려 더욱 강하고 거친 표현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언어의 과잉이 일어납니다. 인터넷이 생활에 정착한 21세기 들어 벌써 이렇게 되었는데 앞으로는 또 뭐가 어떻게 될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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