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쓴 글의 속편을 써 보겠습니다.
독일어 어휘는 많은 부분이 고유의 게르만어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진입장벽이 꽤 높긴 합니다만, 일단 그것들에 익숙해지면 탁월한 조어력 덕분에 이해하기 쉽고 또한 처음 접하더라도 알아보기 쉬운 장점이 있습니다. 이하에 언급하는 어휘 또한 그러한 장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15개의 어휘를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글에는 넘버링을 추가합니다.
Bauhaus (바우하우스)
직역하면 집짓기가 되는 바우하우스.
올해로서 정확히 100년 전인 1919년에 독일 바이마르에서 시작한 바우하우스 예술학교는 그 이전을 전통건축의 시대, 그 이후를 현대건축의 시대로 구분할만큼의 혁신적인 예술관을 제시하여, 직선 및 기능 위주의 현대건축으로 대표되는 미학을 정립했습니다. 이름도 그 활동내용도 간결하고 명료함 그 자체.
Fußballweltmeisterschaft (월드컵)
꽤 긴 단어라서 독일어권에서는 WM으로 많이 줄여쓰거나 영어의 월드컵으로 부르기도 하는 이 단어는 "푸스발-벨트마이스터샤프트" 라고 읽습니다. 축구가 푸스발(Fußball), 세계가 벨트(Welt), 최강자가 마이스터(Meister)니까, 이 긴 단어 속에 축구의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행사라는 의미가 충실히 들어가 있습니다.
마이스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루겠습니다.
Glücksspiel (도박)
도박이란 재물의 이득 또는 손실을 우연의 결과에 따라 귀속시키는 행위. 그래서 도박은 원칙적으로 운에 맡기는 유희입니다. 독일어 어휘를 보면 행운이 글뤽(Glück), 놀이, 연극 등이 슈필(Spiel), 합쳐서 글뤽스슈필.
Halbinsel (반도)
반도(半島)의 영어 어휘인 Peninsula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지만 이 어휘는 게르만어에서 유래합니다.
할프(Halb)는 반, 인젤(Insel)은 섬. 그래서 이 둘을 합친 할프인젤은 글자 그대로 반도. 아주 정직합니다.
독일어에서는 어근에 따라서 철저히 발음단위가 나뉘어지니 이 어휘는 할빈젤이 아니라 "할프-인젤".
Jagdflugzeug (전투기)
사냥을 의미하는 야크트(Jagd)와 비행기를 의미하는 플루크초이크(Flugzeug)를 합친 야크트플루크초이크는 전투기를 의미하는 독일어입니다. 전투는 대공전투는 물론 대지상, 대함전투도 있는 것이다 보니 하늘의 새를 잡거나, 육상이나 수면의 동물, 수면하의 물고기 등을 잡는 사냥에 비유하는 이 어휘, 직관적입니다.
Kampfjet (제트전투기)
제공전투기가 완전히 제트엔진으로 이행된 오늘날에는, 독일어권에서는 제트전투기를 지칭할 때 캄프제트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로는 Jet Fighter 또는 Fighter Jet으로 표기하여 어느 경우에도 2단어가 되지만 독일어로는 1단어면 충분합니다.
Klimaanlage (공조장치)
에어컨을 한자어로 말하자면 공조장치(空調装置)라고 하는데, 이 독일어 어휘를 분철해 보면 기후의 Klima와 창조의 동사 anlegen의 명사형 Anlage를 합쳐 만든 말. 글자 그대로 기후를 인공적으로 창조해 내는 장치라는 의미입니다. 발음은 "클리마-안라게" 로 해 주면 됩니다.
Kunstlied (예술가곡)
클래식 음악에서의 예술가곡을 가리키는 어휘는 독일어 쿤스트리트. 쿤스트(Kunst)가 예술, 리트(Lied)가 노래. 그래서 예술가곡입니다. 영어에서는 이것에서 쿤스트를 빼고 그냥 리트(Lied)로 써서 이 장르의 성악작품을 나타내고, 복수형도 독일어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리더(Lieder)로 쓰고 있습니다.
Kühlschrank (냉장고)
옛날의 냉장고 이야기 제하의 제 글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냉장고의 독일어 어휘 퀼슈랑크는 그대로 시원하게(Kühl) 식히는 보관함(Schrank)입니다. 한자어 冷蔵庫와도 정확히 대응되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Landwirtschaft (농업)
이 단어에는 Land가 들어 있습니다. 땅, 지방, 국가 등의 의미가 있는 란트(Land)와 경제를 의미하는 비르트샤프트(Wirtschaft)가 합쳐져 농업이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도 생각나고, 농림수산업을 1차산업으로 분류하는 것도 생각나는, 상당히 다채로운 함의가 있는 어휘입니다.
Meister (마이스터)
많음을 의미하는 독일어 형용사는 필(viel)은 비교급과 최상급이 불규칙변화합니다. 영어는 many-more-most로 그나마 예측할 수 있지만 독일어는 viel-mehr-meist로 꽤 정신없이 변하지요.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마이스터. 즉 해당분야에 대해서 가장 많이 지식, 경험, 기술 등을 보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는 마이스터를 기업명에 쓴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례 하나가 독일의 금관악기의 명문 마이스터 한스 호이어(Meister Hans Hoyer).
Regenschirm (우산)
비가 레겐(Regen), 방패가 쉬름(Schirm). 그래서 비를 막는 방패라는 아주 직관적이고 재미있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영어의 엄브렐러(Umbrella)와는 다르게, 레겐쉬름에서는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Singspiel (가극)
노래하다가 singen, 그리고 연극하다가 spielen. 그래서 노래로 진행되는 연극이니까 이렇게 두 단어를 합치면 징슈필이 됩니다. 그런데 이 징슈필은 이탈리아 발상의 음악극인 오페라와는 약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오페라의 대사가 실제의 언어가 아니지만 운율이 있어 전달력이 좋게 고안된 레치타티보(Recitativo)인데 반해, 징슈필의 대사는 뮤지컬에서와 동일하게 일상언어입니다.
유명한 징슈필 작품의 대표작에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Die Zauberflöte)가 있습니다.
Schloss (주거용의 성)
과거에는 Schloß로 표기하기도 했던 이 단어의 발음은 슐로스.
닫음, 폐쇄 등의 의미를 지닌 동사 schliessen/schließen에서 유래한 슐로스는, 왕족, 귀족 등의 주거용 성을 의미합니다. 글자 그대로 닫혀 있는 내밀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도시를 구성하거나 방어거점이 되는 성을 가리키는 어휘는 부르크(Burg).
Völkerrecht (국제법)
영어에서는 국내법을 Municipal Law, 국제법을 International Law의 2단어로 구성된 어휘를 쓰지만, 독일어로는 모두 1단어로 씁니다. 국내법은 게마인더레히트(Gemeinderecht), 국제법은 푈커레히트(Völkerrecht). 폴크(Volk)에는 민족, 인민의 의미가 다 있어서, 민족 단위로 구성된 근대 국민국가간의 법으로도 읽히는 한편, 세계 인민의 법으로도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독일어 어휘 관련으로 두번째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번 글도 유익하게 읽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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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대왕고래
2019-11-29 23:58:39
대부분의 단어를 보면 어찌보면 독일어는 영어권의 한자어로군요. 의미를 가진 단어의 조합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니까.
마이스터가 독일어라는 사실은 몰랐어요. 외우기 힘들겠네요, 저렇게 변화무쌍하게 변해서는... 하긴 어차피 결국에는 문장으로 읽게 되니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싶기도 하고...
SiteOwner
2019-11-30 17:07:11
영어권의 한자어...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단지 옆으로 늘어써서 길게 보이는 차이만 있을 뿐, 한자어처럼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기도 상당히 용이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독일어의 매력입니다.
의외로 독일어에서 유래한 어휘가 꽤 있습니다. 예의 마이스터도 그렇고, 흔히 "놈팽이" 라고 하는 무위도식하는 자를 일컫는 말 또한 독일어에서 왔습니다. 20세기 전반의 문학작품에 잘 등장하는 "룸펜" 이 바로 그것으로, 원래는 Lumpenproletariat입니다. 뜻인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최하층 노동자이지만 반동적인 음모에 가담하는 계급이라는 명칭의 것으로, 이것에서 부랑자를 의미하는 룸펜(Lumpen)만 주로 쓰이다가, 변형을 거쳐 놈팽이가 되었습니다.
마키
2019-11-30 03:17:33
어떻게보면 한자어 처럼 유래가 되는 단어 각각의 뜻을 안다는 전제하에 굉장히 직관적이고 단순하네요.
SiteOwner
2019-11-30 17:14:53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일단 각 단어의 뜻을 알기가 쉽지 않지만, 알게 된 이후로는 비약적으로 편리해지고, 또한 그 결과물도 아주 직관적으로 되는 것이 독일어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게다가, 개별 어휘는 아닙니다만, 동사어구의 원형을 표현하는 어순 또한 직관적입니다.
"창문을 닫는다" 라는 어휘를 영어로 표현하면 open the window로 동사가 먼저 나옵니다만, 독일어에서는 das Fenster schliessen으로 목적어가 먼저 나오는 방식. 그래서 이런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