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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장 박사의 별장 근처.
“네가 왜 오겠다고 했는지는 이해하고는 있지만...”
차 바로 옆에서, 메이링이 루비를 보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여기는 네가 오기에는 위험한 곳인데, 왜 굳이 오겠다고 한 거야?”
“당연한 거잖아요.”
루비의 입에서는 바로 대답이 나온다.
“그래도 저희 할아버지니까 한번 보고 싶은 거죠.”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메이링의 반응은 담담하다.
“그런데 네가 한 가지 알아 둬야 할 게 있어.”
“제가 알아 둬야 할 거라는 건, 도대체 뭐죠?”
“이제 곧 보게 될 장주원 박사는, 너의 할아버지이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지.”
“......”
“무슨 말인지, 알고 있어?”
루비는 말없이 눈을 꼭 감고 있다. 메이링이 하려는 그 말은 차마 듣기 싫은 듯.
“괜찮아, 괜찮아.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루비의 두 눈은 촉촉하다.
“내가 이해한다고 말해도, 그냥 수박 겉핥기로 말하는 것뿐이겠지...”
메이링은 루비에게서 얼굴을 돌리고, 말을 잇지 못한다. 뭐라고 말을 해 보려고 해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리라.
“각오해라, 개자시이이이이익!”
장 박사를 향해 날아든다.
한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뭔가 날아드는 기세.
장 박사가 돌아보는 그때...
퍽-
“크... 윽...”
뭔가에 강타당한 장 박사가 나가떨어진다. 원래 현애 앞에 서 있던 자리에서 한 10m 정도는 뒤로 날아간 것 같다. 몇 초 전만 해도 장 박사가 서 있던 자리. 웬 남학생 한 명이 씩씩거리며 서서, 현애와 장 박사를 번갈아 보고 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현애는 상황파악을 잘 못 했는지 멀뚱멀뚱거리며 말을 하지 못하다가, 자기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일어난다.
자신 앞에 서서 장 박사를 발로 차내고 위기에서 구한 사람, 조제 아닌가!
“어? 조제!”
현애는 이럴 때 와 준 조제가 반가웠는지, 지금의 급박한 상황도 잠시 잊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는다.
“아니, 말도 안 하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친구가 위험한데, 안 오는 게 이상하지.”
“하긴, 그렇기는 한데...”
“혹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조심해.”
현애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숨을 충분히 들이마시는 게 좋아. 녀석이 또 어딘가의 산소를 없애 버릴지도 모르니까!”
“산소를... 없애?”
그렇게는 말하지만, 조제도 조금 전까지 장 박사의 공격에 당했다. 그 느낌, 아직도 생생하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
장 박사의 끓어오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현애와 조제가 돌아보니, 어느새 장 박사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섰다.
“너희들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 우선 대상은, 바로 너희들이 될 것이다!”
“이 자식, 말 다 했냐!”
“흐흐흐, 네 친구한테 들었겠지?”
장 박사가 바라보는 방향.
조제를 똑바로 보고 있다.
“내 친구한테서 뭘 들어?”
조제의 오른손이, 검은 공간 같은 것에 싸여 있다.
“암만 말해 줘도 못 알아듣는군. 그렇게 반문이나 하고 말이지.”
“이 자식, 최소한 알아듣게 말해 줘야지 알아듣든 말든 할 거 아니냐! 박사씩이나 되어서 그렇게밖에 못 말하냐!”
“호오, 그러면 알아듣게 해 주지.”
장 박사는 갑자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저 살기를 가득 띤 미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가?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공기가 흐른다.
“야, 잠깐, 조제...”
현애의 눈에, 심상치 않은 게 보인다. 뭔가 조그만 공기 방울 같은 게, 조제의 가슴팍 즈음에서 마치 짐승의 눈처럼 노리고 있다!
“결심한 순간, 내 공격은 이미 끝나 있다아아아아아아!”
조제가 막 눈앞에 있는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뻥-
“엇...”
조제가 미처 비명을 지르기도 전, 압축된 공기의 폭발음이 들리며, 조제의 몸이 힘없이 뒤로 밀려 날아간다. 약 15m쯤 날아간 후, 조제가 털썩 하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으... 으윽...”
“조제! 조제! 괜찮아?”
조제는 대답하지 못하고 신음만 흘릴 뿐이다.
“야! 조제! 일어나! 일어...”
“어떤가, 또다시 혼자가 된 기분은?”
뒤에서 또다시 들려온다. 장 박사의 목소리! 그 독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가 말이다!
날아온다. 또다시, 뒤쪽에서 무언가가!
피한다. 이번에는 옆쪽으로 몸을 날린다.
그리고 보인다. 조제의 앞에 보였던 것과 같은, 매우 작게 압축된 공기 방울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모습이.
“후... 제법이로군.”
어느새 장 박사가 또다시 현애의 앞에 서 있다.
“왜 내가 너를 S급으로 골랐는지, 몇 번이고 생각해도 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
“말해봐.”
현애는 장 박사를 똑바로 노려본다.
“네 녀석이 말하는 그 S급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궁금하거든.”
“이 자리는 설교하는 시간이 아닐 텐데.”
장 박사는 대답을 피한다.
“그리고 내가 말할 때를 노릴 거라는 것도 알고 있고!”
“그래? 말 안 해 줄 거란 말이지?”
또다시, 현애의 몸 주위를 차가운 기운이 감싼다.
“그럼 내가 입을 열어 줘야겠는데!”
“흐흐흐, 열 수 있으면 열어 보시든지.”
장 박사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그때...
또다시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아무 조짐도 없었는데! 돌아보니,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조제의 숨도 조금씩 가빠지고 있다!
“안돼... 이대로라면 다 숨이 막혀 버려!”
현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재빠르게 뛰어서 장 박사의 앞을 벗어난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조제를 들쳐멘다. 처음에는, 조제는 좀 체중이 나가니까 질질 끌고 가야 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들린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제를 들쳐메고 달리기 시작한다.
“호오, 도망가는 건가?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건가?”
“착각하지 마...”
현애는 곧장 달려간다. 어떻게든, 지금은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시간, 발레리오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거기 상황은 좀 어때, 피오?”
“네... 저하고 비토리오 형이 보고 있기는 한데...”
“특이사항은 없지?”
“특이사항이요? 사람들은 다 무사한데...”
“무사한데, 라니?”
“두 사람이 어디 간다고 해서 또 나가더라고요.”
“뭐, 뭐? 사람들은 거기서 당분간 쉬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잖아!”
“그, 그렇기는 한데, 그분이 자기는 오늘 꼭 글을 써야 한다고 사정을 하니까...”
“하...”
발레리오도 누군지 알 것 같다. ‘글을 써야 한다’고 해서 나갔다고 한다면.
“아무튼 알겠어. 남은 사람들 좀 봐 주고 있어.”
전화를 끊은 발레리오는 바로 무전기를 집어 든다.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라.”
“여기는 알파, 알파.”
곧바로 요원 한 명의 교신이 들려온다.
“현재까지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특이사항은 없다고?”
“예.”
“혹시 그 장주원 박사의 부하라는 사람의 행적은 확인된 게 없나?”
“예. 전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래? 혹시 장 박사를 배신했다든가 해서 우리에게 왔다든가 그런 건 아니고?”
“그랬다면 즉시 이사장님께 보고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예.”
“일단은 알겠다. 계속 동향을 예의주시하기 바란다.”
무전을 끊고, 발레리오는 잠시 숨을 돌린다.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레리오가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몇 시간 정도의 시간이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그 몇 시간이 수백 년으로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정말 더디게 가는 것 같다. 침을 몇 번이고 삼켜 본다. 금세 입이 마른다.
♩♪♬♩♪♬♩♪♬
또다시, 발레리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아, 이사장님? 접니다. 엘더 경위입니다.”
“무슨 일인가? 지금 전화를 다 하고.”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줄 사람 한 명을 데리고 가고 있으니까, 기대해 주십시오.”
“그게 혹시 누군가?”
발레리오는 엘더 경위의 말에 궁금증이 들었는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지금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이따가 저희가 도착하면 그때 보시죠.”
“아. 알겠네. 조심히 오게.”
그 시간.
“하... 하...”
어느 저택. 거실에서, 현애는 조제를 내려놓고는 한숨 돌린다. 이상하게 들쳐메고 달려가고 저택에 들어가기까지는 그리 무겁게는 느끼지 않았는데, 내려놓고 보니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하다.
잠깐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지은 지는 20년도 안 되어 보이는, 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관의 저택이다. 하지만 대문은 열려 있고, 안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심지어 안에 있는 달력은 2년 전의 달력이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버려진 저택인 것은 분명한데, 지금 그런 걸 알아내고 싶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지금은 장 박사의 위협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위협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조심하세요, 현애 님.”
*프로도의 음성이 시계에서 들려온다.
“*프로도, 왜?”
“지금 이 저택 안의 산소 농도가 조금 낮아요.”
“산소 농도가 낮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지금 이 안에서 숨을 쉬기가 조금 힘들죠?”
그렇다. *프로도의 말을 듣고 보니 알겠다. 이 안에서도 숨을 쉬기가 조금 텁텁하다.
“이 자식... 반드시 내 선에서 끝내야겠어...”
막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 주위에 냉기를 두르려는데...
“어... 엇?”
한순간이다. 공기 방울 하나가, 현애와 조제 쪽으로 빠르게 날아온다!
“이... 이게 무슨...”
막 뭐라고 말해 보려는 그때.
쾅-
공기 방울이, 폭발한다!
“으... 으앗!”
한편 그 시간.
장 박사는 주택가 한쪽의 담벼락에 바짝 붙어서 상황을 살피고 있다.
“내 예상대로야. 녀석, 내가 봐 둔 저택 중 하나로 들어갔군. 거기에 함정을 몇 개 설치해 놨지. 한 녀석은 전투 불능, 또 한 녀석도 체력이 떨어졌고. 어느 것이든 걸리기만 하면 그만이야. 그야말로 일망타진이지.”
하지만 장 박사의 목소리는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라자는 왜 연락이 없는 거지? 연락해 준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장 박사의 목소리에는 실망스러움이 가득 묻어난다.
“왜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움이 안 되는 건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장 박사의 머릿속에 잠시 스치고 지나가지만, 장 박사의 머릿속은 이내 깔끔하게 정리된다. 왜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도 도움이 안 되는 건가...
바로 그때.
♩♪♬♩♪♬♩♪♬
전화다. 부하로부터의 전화다.
“라자인가?”
장 박사는 기대감에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보... 보스!”
라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분명 장 박사의 고용인은 맞다!
“자네... 누구인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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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2-15 00:28:54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사정이 모두 양립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것을 머리 속에서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당사자가 아니면 실감할 수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고...
루비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닌데...
역시 위기상황에서 인간에게는 믿을 수 없을만큼의 놀라운 힘이 생긴다는데, 그것을 현애가 보여주네요. 조제를 들쳐메고 달리다니 사실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에는 현애와 조제에게는 산소부족, 장주원에게는 고립무원...대체 어떻게 될지 예측이 되지 않고 있어요.시어하트어택
2021-02-21 23:07:19
사실 저런 게 아주 불가능한 상황은 아닌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자기 체력도 떨어져 가는 상황 속에서 저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죠.?
SiteOwner
2021-03-18 19:01:53
스페인 투우경기에서 투우사가 마지막 순간에 검으로 소를 찔러 죽이는 순간을 진실의 순간이라고도 합니다. 이번 회차를 읽으면서 느껴진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분명 그 진실의 순간은 괴롭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고, 어떻게든지 결단을 내려야겠지요. 자신의 선조에 대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장루비에게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도.
위기상황에서는 정말 초능력같은 힘이 솟아나옵니다.
그리고, 그 힘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지는 정말 예측할 수 없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3-21 23:07:10
아무래도 이 싸움이 '결전'에 해당되니 다들 목숨을 걸고 힘을 낼 수밖에 없겠죠. 장 박사도 그렇고, 현애도 그렇고요. 진짜 결전은 좀 나중에 나오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