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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호 사원 내부.
일행은 미켈의 뒤를 따라 어두운 통로를 걷고 있다.
약 2분 정도 이어지는, 어둑어둑하게 최소한의 조명만 빛나는 통로를 지나니, 좀 넓은 공간이 하나 나온다. 발을 딛고 보니, 조금 널찍한 복도가 나오고, 벽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의 높이는 대략 10m 정도는 되어 보인다. 양옆으로 커다란 문도 보인다.
“오-”
널찍한 복도를 보자마자, 일행의 입에서 마치 꽁꽁 숨긴 것 같은 조그만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물론 현애도 예외는 아니다.
“이야- 이거 무슨 신전 가는 길 같잖아?”
“‘무슨 신전 가는 길’ 같다니. 여기가 신전 비슷한 거 아니야?”
“아 참, 그렇지.”
지금 이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는 조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미켈이 아니다.
“자, 이제 여기로 한번 와 보실까요?”
미켈은 기다렸다는 듯 뒤따라 오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한다.
“여기 제12호 사원이 왜 ‘자기 매력을 꽁꽁 숨겨놓고 있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릴 시간입니다. 자, 들어오시죠.”
미켈의 안내를 따라 일행이 미켈이 들어선 방에 들어서자...
미켈의 바로 뒤에서 들어간 세훈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오, 여긴 도대체 뭐죠?”
그 시간, 제12호 사원의 또다른 출입문.
“에이...”
키릴이 분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쥔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태양석이 안 나오다니...”
“결국 제10호 사원에서 우리가 그렇게 공을 들였던 건 헛수고였던 건가...”
키릴의 옆에 있는 소니아도 불편하고 허탈한 기색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지금껏 우리가 여러 군데에서 일을 해 봤지만, 이 정도로까지 어려운 적은 없었는데...”
“야, 소니아. 자꾸 헛수고라고 할래?”
키릴 역시 매우 강하게 짜증을 낸다. 그의 목소리에는 초조함과 불쾌함이 한데 섞였다.
“이런 거 겪은 적 한두 번이야? 오래된 유적에 유물 탐사 같은 거 하다 보면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것도 못 참아서 어떻게 태양석을 얻으려고 그래?”
“하, 그래.”
소니아가 조금은 기분이 가라앉은 듯,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는 다시 키릴을 본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 거야? 단장이라도 오라고 해야 하나?”
“단장은 왜?”
“지금 인원이 부족하잖아. 가용인원이 지금 너하고 나 둘뿐이야. 우리는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서 태양석을 얻어야 할 텐데, 단장이라도 오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키릴은 딱 잘라 말한다.
“단장은 단장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가 임의로 오라고 하는 건 맞지 않아.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더 험한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 그리고...”
“그리고?”
“녀석들은 아직 내 능력을 몰라. 다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지, 내가 완전히 보여 주거나 한 적은 없거든.”
키릴이 제법 자신있게 말했는지, 소니아의 입도 순간 벌어진다.
“어... 그래? 너 테르미니 퍼스트의 멤버들하고 몇 번 일하지 않았어? 파울리도 그렇고.”
“그 녀석하고 많이 일했지만, 전혀 안 보여 줬어.”
“하긴, 나도 네 능력은 몇 번 본 적 없었지...”
“그럼 소니아, 너는 다른 녀석들 주의를 좀 끌고 있어. 필요하면 테르미니 퍼스트가 담당하는 구역을 매수하는 것도 빼놓지 말고. 나는 일단, 우리가 맡은 구역 쪽에 진행 상황을 좀 신경 쓸 테니.”
“알았어.”
“이야, 이게 다 뭐야!”
세훈의 뒤를 이어 방에 들어선 일행은 다들 감탄사부터 내뱉는다.
매우 커다란 방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그냥 방이 아니라, 매우 넓은데, 몇 걸음 앞에 계단처럼 만들어진 곳이 있고, 그 아래에 큰 공간이 있다. 조금 멀리 방 끝이 보이는데, 연단이나 무대처럼 보이는 시설도 보이고, 양옆에는 조그만 방도 몇 개 마련되어 있다. 거기에다가, 방이 비어 있는 것도 아니다.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유리관에 보관된 전시물들. 멀리서 보여서 안에 담긴 유물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두가 가치있는 유물들임은 분명하다.
“우와... 여기 정말 크잖아!”
“그러게. 뭘 하던 곳이길래 저렇게 큰 거지?”
일행이 하나둘씩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을 즈음.
기다렸다는 듯, 미켈이 입을 연다.
“기다리셨습니까, 여러분!”
“어어... 파울리 씨!”
일행이 다들 미켈을 돌아보자, 미켈은 막혔던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설명을 시작한다.
“자, 보이시죠? 큰 방입니다. 여기 제12호 사원에는 이런 큰 방이 여기 말고도 모두 7개가 있습니다. 큰 방 하나하나마다,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요. 주로 기록 관련 유물이 많이 나오지만, 그 외의 종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어어?”
“우와, 정말요?”
“그렇습니다. 학자들의 연구로는, 여기 제12호 사원은 도서관과 기록관, 사료 보존소의 역할을 동시에 했을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일단 방 하나하나가 매우 크고, 무게가 꽤 나가는 기록물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지금도 발굴되는 유물들의 종류를 보면, 대부분 이 사원이 지어진 시기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유물이거나, 당시에 살았던 이레시아인들이 남긴 기록들, 그리고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유물들입니다.”
일행은 다들 말없이 눈으로 미켈의 입과 미켈의 손짓, 몸짓 등을 따라가고 있다.
“이제 제12호 사원의 발굴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만큼, 제가 지금 말씀드린 유물들의 종류와 제12호 사원의 용도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자, 그러면 눈으로만 보시는 건 꽤 섭섭하시겠죠?”
어느새 일행이 보니, 미켈은 어느새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 저렇게 사람들을 끌어모으니, 안 내려갈 수가 없다. 일행은 자연스럽게,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한편 그 시간, 제12호 사원 아래층의 발굴 현장.
슈뢰딩거 그룹이 담당하는 구역은 상층부와 비슷한 넓은 방인데, 어림잡아도 100명은 족히 넘는 작업자들이 유물 운반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장 소장으로 보이는 수염을 기른 남자 한 명이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옆에서 말을 건다.
“좀 어떻게 되어 갑니까?”
“어... 싱클레어 씨 아닙니까. 여기는 비교적, 순조롭게 되어 갑니다.”
소장에게 말을 건 사람은 키릴.
“듣던 중 다행이군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키릴은 소장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말한다.
“혹시 매코이 씨가 여기 말고 다른 구역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던가요?”
“아... 하긴 했었죠.”
“오, 정말요? 뭐 좋은 소식이 있답니까?”
“아시잖습니까, 매코이 씨와 여기 소장들은 모두 알고 지내는 선후배 관계죠. 저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그렇습니까... 듣던 중 희소식이군요.”
키릴과 소장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콜록... 콜록...”
누군가가 자꾸 기침을 하며 이쪽으로 온다. 키릴은 단번에 그 기침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본다.
“야, 조나!”
키릴은 잔뜩 화난 듯 얼굴에 열을 낸다. 딱 봐도, 조나의 얼굴은 온통 빨갛고, 풍성하게 기른 머리와 수염도 잘 붙어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힘이 없다.
“단장이 오지 말라고 했잖아! 왜 왔어!”
“내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잖아... 콜록...”
키릴은 계속 콜록거리면서 서 있는 조나를 잠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도, 머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푹 쉰다. 1분 정도를 그러다가, 키릴은 조나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일단 가서 쉬기나 해! 네 건강이 최우선이야! 네 몸 버리면 평생 골골댄다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음이 아프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
“알았어... 콜록...”
조나는 몇 번 콜록거리더니 키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조나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키릴은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소니아?”
“응, 키릴.”
“그쪽은 지금 어떻게 되어 가? 테르미니 퍼스트 녀석들은 오고 있어?”
“아직은...”
“너 지금 어디 있어?”
“상층부.”
“상층부라니, 왜 거기 있는데?”
“일단은 어떻게든 그 녀석들의 주의를 끌어야 할 거 아니야. 녀석들의 작업 구역은 상층부를 거쳐서 와야 한다고.”
“아, 참... 그랬지.”
“키릴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작업 상황이나 보고 있어. 태양석은 반드시, 우리에게 들어올 테니.”
“고마워.”
“자, 이제 두 번째 방으로 가 보실까요?”
미켈의 말에 따라 일행은 첫 번째 방에서 나와 다음 방으로 향한다. 미켈이 첫 번째 방을 먼저 나와서 보니, 돌아다니는 다른 관광객들이 좀 더 많아졌다. 그러던 중 미켈은, 수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거기에는...
“뭐야... 저 녀석이 도대체 왜?”
관광객들 사이에 익숙한 누군가가 있다. 미켈이 몇 번 봤던 얼굴. 아무리 관광객 사이에 숨어 있다고 해도 보인다. 금발에 선글라스를 쓰고 어깨에 가방을 멘 여자라면...
“소니아가 왜 저기 있는 거야?”
바로 10m 정도 앞에 있다. 뭘 찾길래 저렇게 서성대는 건지, 보는 미켈도 불안해진다. 거기에다가, 은근히 이쪽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여기를 보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가, 문득 미켈의 머릿속에 뭔가 스치고 지나간다.
“잠깐... 우리 작업 구역으로 가려면... 저기가 가장 빠른 길 아니야?”
떠오른다. 여러 번 이 사원을 오가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치하는 상황이 되니 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소니아가 지키고 있는 저곳을 거쳐서 가면 바로 테르미니 퍼스트의 작업 구역이 나온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미켈은 전화를 꺼내 든다.
한편 그 시간, 제12호 사원 입구.
“우리가 가는 길에 슈뢰딩거 그룹의 소니아가 버티고 서 있다고 했지...”
“맞아.”
자라와 비앙카가 미켈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있다.
“어떻게 할 거야, 자라?”
“일단 바로 결정하기보다는, 우리의 상황을 좀 점검해 봐야지.”
“그래... 일단 미켈은 관광객들 가이드를 하고 있고, 바리오는 납치당했어. 가브리엘은 아직 사원 밖에 있고, 도레이도 아까 전까지는 제12호 사원에 있었지만 지금은 밖에 있어. 따라서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현장에서 작업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
“뭐... 정말?”
“그럼. 아까 제10호 사원 쪽에 좀 스포트라이트가 많이 가 있다 보니까 제12호 사원 쪽은 신경을 못 쓴 거지. 어쩔 수 없이, 저 녀석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장애물을 넘어서 가는 수밖에.”
“그러면 어떻게 하지?”
“일단은...”
비앙카가 잠시 망설이더니, 잠시 후 입을 연다.
“미켈하고 상의를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전략을 좀 짜야겠어. 소니아가 만만한 녀석이 아닌 건 잘 알고 있지?”
“그럼...”
자라의 대답은 가볍지 않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8-28 21:19:57
제12호 사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미국의 속어인 "You are history" 가 동시에 생각나서 묘하게 쓴웃음이 지어지네요.
여행자 일행이 찾아간 곳은 이레시아인들의 유구한 역사가 존재해 온 장소. 그리고 그 한편으로 태양석 발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은 경쟁자 세력들에게 "You are history", 즉 이제 이 순간부터는 역사에나 존재하는 죽은 목숨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하고...
소니아의 존재가 역시 신경이 안 쓰일 수 없겠죠.
그리고 사건이 벌어졌다 하면 그냥은 곱게 안 끝날 게 분명하고...
시어하트어택
2021-09-18 23:58:05
과연, 그 말은 해석에 따라 전혀 더른 뉘앙스가 된다는 게 신기합니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역사로 남을 것이다, 즉...
서로 멱살을 잡고 벌이는 싸움이다 보니 곱게 끝날 리는 없지요.
SiteOwner
2021-09-17 21:28:34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제12호 사원의 경내, 대체 어느 정도일까요.
이집트의 왕가의 계곡이나 중국의 진시황릉 발굴현장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이레시아인들의 유적이 이미지로 재현되면 정말 대단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그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유적 내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압도하려는 뜻을 관철하려 드니 이건 또 무슨 역설인지 알 수 없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9-18 23:58:13
오너님 댓글을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겠군요.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이미지화도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