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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마치 괴수 영화에 나오는 괴수같이, 그림자 바로 위를 밟고 있는 발. 그것을 보자 파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다. 2년 전의 그 지워 버리고 싶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지, 눈을 꽉 감으려고도 한다.
“아까 나보고 쫄보라고 해 놓고서, 자신은 이렇게 도망을 가다니. 딱 어울리는군. 역시...”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그리고 다음 순간, 뭔가가 현애와 세훈, 파라, 미켈의 주위를 한번 슥 훑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채 5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다.?
“뭐야...”
“방금 무슨 일이야? 뭔가 지나간 건가? 아니면...”
아마도, 남자는 자신이 확실히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인 듯하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그림자 안의 적들을 일망타진하게 된다면, 확실히 자신의 힘을 보여 줄 수도 있고 방해물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그것뿐만은 아니라도, 심리적인 위압감을 주는 것은 덤이다.
다음 순간.
“이쪽이구나!”
큰 무게를 지닌 것이, 여기로 바로 내리꽂을 것만 같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바로 이쪽, 그림자 아래를 향하고 있다. 현애는 거기서 피하는 대신,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마치 총을 장전하듯 아래쪽으로 팔을 끌어당긴다.
“얕은 수작은, 여기까지다. 똑똑히 깨달아라!”
바로 내리꽂는다. 그림자 아래쪽으로, 남자의 강력한 힘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쪽이나 깨달으시지.”
동시에, 현애의 오른손도 펀치를 날린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그 방향에, 정확히 꽂힌다. 꽂혔다라고 하기보다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 정확히 공격이 들어갔다고 해야겠지만.
퍽-
“돼... 됐나?”
타격음은 정확한데, 문득 궁금증이 든다. 현애의 예상이 맞다면, 남자는 팔과 다리가 지금쯤 많이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얼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확실히 해야 한다.
“무슨 확신을 하길래 그러는 거야?”
“파라 씨, 여기 보이죠?”
파라가 현애가 가리킨 곳을 보니, 바닥에 온통 얼음이 뿌려져 있다. 거기에다가 발자국까지. 발자국의 크기는 거의 모두 같다. 그렇다면, 그의 것이 확실하다. 바닥에 뿌린 얼음을 밟았다면, 확실히 냉기의 영향력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끝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현애는 그림자 밖으로 나가려 한다.
“야! 또 어딜 나가려고!”
세훈이 현애를 급히 불러세우려고 하지만, 현애는 이미 나가 버린 뒤다.
그리고 그 시간.
“그래, 내가 가져가 주지.”
조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별안간 비앙카와 도레이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일부러 굵게 깔고서 한마디 한다.
“막을 테면 막아 봐. 도망가지도 않을 것이고, 보란 듯이 가져가 줄 테니.”
그렇게 말하고서, 조나는 비앙카와 도레이가 보라는 듯 과장된 동작을 하며 안에 박힌 태양석이 든 상자를 꺼내려 한다. 물론 이렇게 과장되게 팔을 휘두르거나 다리를 버둥거리지 않아도 겨우겨우 철제 상자의 감촉이, 손끝에 닿는다. 하지만, 닿을 듯 안 닿을 듯, 태양석이 든 상자는 좀처럼 조나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분수대 쪽에서 날아간 게 이쪽까지 날아가 박혀 버렸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조나의 속은 타들어 간다.
“그렇게 놔둘 것 같아?”
비앙카가 열이 받았는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 순간, 조나의 온몸에 뭔가가 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조나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말이다.
하지만 조나의 말은 태연하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다음 순간, 비앙카의 온몸이 마비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온몸을 엄습한다. 분명히 그녀의 능력이다. 하지만 비앙카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다. 분명히 조나에게 능력을 사용했을 텐데!
“뭐... 뭐야, 이 자식, 이것까지 피드백이 가능한 건가!”
“몰랐나? 그래서 늘 신중해야 한다는 건데.”
조나는 그렇게 말하며, 유유히 태양석이 든 상자를 꺼내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상자는 여전히 그의 손에서 멀다.
“야, 도레이, 좀 어떻게 해 봐. 저 녀석을 좀 어떻게 막아 보라고!”
“알았어...”
비앙카가 다급하게 말하자, 도레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뜸 조나의 발을 꽉 밟는다. 그리고...
“내 몸의 습도를 올리면, 이게 어떤 방향으로 향하려나...”
아뿔싸. 또 전과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에도 당했던, 조나의 피드백 능력이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리는 상황 말이다. 조나의 머릿속이 순간 줄을 이리저리 꼬아 버린 것처럼 복잡해진다. 피드백 능력을 켜 놓는다는 게 또 이렇게 되어 버렸다. 분명히, 그리고 확실히, 조나의 온몸의 습도는 높아질 것이다. 태양석을 잡으려는 손에 땀이 흐를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하지만! 방법은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도레이의 능력을, 역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막 그림자를 나선 현애의 눈에, 바로 들어온다.
그 남자가,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서 있다. 그런데 손과 발에 어느 정도 잠식되어 있어야 할 얼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던 발레리오와 비토리오가, 쓰러져 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봐야 알겠지만...
“오, 왔나.”
“무슨 짓을 한 거냐...”
“아, 이 녀석들?”
남자는 태연히 말한다.
“아무리 이 녀석들이 오래 살아와서 강하다고는 해도, 한주먹거리도 안 되더군. 오랜 세월을 나하고 싸워 온 녀석들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쓰러져서 조금 놀랐지만.”
“......”
현애가 재빨리 돌아보니 쓰러져 있는 발레리오와 비토리오는 다행히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아직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한 듯하다. 아주 조금씩 몸을 비틀거리기는 하지만.
“혼자 남았군. 아, 있기는 한데, 다들 자기 일 하느라고 바쁜 건가?”
“......”
“왜 그리 말이 없나? 나보고 쫄보라면서. 보다시피, 나는 이렇게 너희들 따위는 간단히 가지고 놀 수 있다. 지금 그 말을 다시 입속으로 집어넣고 싶지?”
“......”
현애는 여전히 말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는 밑으로 숙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남자는 태연히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했지. 말을 내뱉었으면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 마치 물을 쏟은 것처럼. 땅바닥에 쏟아진 물을 주워 담으려고 해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지금의 너도 그렇다. 그리고 말의 무게의 무거움을 알 시간이다.”
남자의 말이 끝난 다음 순간.
별안간 무언가가, 현애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분명, 발레리오와 비토리오 역시 불의의 일격에 당했다. 설마 그 불의의 일격이란 게, 이런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바로 그 순간, 눈앞이 휘청거리는 듯하더니, 한쪽 무릎이 순간적으로 땅바닥에 푹 찍히고 만다. 그것도 그냥 찍힌 게 아니다. 그 과정이 마치 지우개로 지워진 듯 지나가 버려서 알 수는 없지만, 일부러 무릎 쪽을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박은 모양이다. 무릎을 펴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밀려온다.
“어떤가? 말의 무거움, 똑똑히 깨달았나? 그러기를 바라네.”
어느새, 인지도 하지 못한 순간, 남자는 현애의 눈앞에 서 있다. 어느새, 그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현애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피조물을 직접 굽어보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내 앞에 가까이 온 거지...”
무릎의 통증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 상태임에도, 현애는 다시 온몸에서 냉기를 발산한다. 어느새 냉찜질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호오, 제법이군? 그렇게는 안 되지. 신성모독을 저지른 녀석에게는 제대로 된 징벌을 내려 주어야 하는데...”
남자의 눈이, 무릎을 감싼 현애의 손 쪽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는 거기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애가 냉찜질을 다 하고 일어나기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내가 왜 이렇게 친절하게 기다리고 있는지, 혹시 알 것 같나?”
“내가 왜 그것까지 일일이 말해 줘야 하지?”
냉찜질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현애는 다시 입을 연다.
“어차피 내게는 다 읽혔는데.”
“꽤 자신있게 말하는군. 뭐가 읽혔다는 거지? 너도 지금 경험했다시피, 시간과 공간은 내 손 안에 있다. 네 녀석이 그 위의 위치에서 뭘 읽을 수 있다는 거냐.”
“뭐냐고?”
현애가 그렇게 말하고 남자를 올려다보려던 바로 그때.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정확히 복부 정도 되는 위치에서, 남자의 손이 멈추어져 있다. 복부를 꿰뚫으려고 했던 건지, 오른손은 주먹을 강하게 내지르는 그 자세 그대로 얼어 있고, 거기서부터 냉기가 팔을 타고 올라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도 남자는 또다른 숨겨둔 무언가가 있다는 듯 태연한 태도를 보인다.
“수를 읽은 건 나만이 아니지. 알고 있나?”
그리고 그때.
아까 무릎을 찍었던 쪽에서 뭔가 들어올려지려는 듯, 흔들린다.
그리고...
“으... 으앗!”
바로 그 부위에 뭔가가 직격한다. 아까 전에 냉찜질을 한 보람도 없이, 다시 그쪽에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것도, 이번에는 몇 배나 더한 통증이다. 땅바닥에서 뭔가가 솟구쳐 오른 듯하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이게 왔단 말인가...?
“이것도 다 예상한 일이지. 그래서 바로 이 시간쯤에 타격을 줄 수 있도록, 설정을 해 놓은 거지. 어떤가? 너같이 주제도 모르고 덤벼드는 녀석에게는 딱 맞는 것 아닌가?”
“으윽...”
또다시, 아까와 같이 한쪽 무릎을 남자를 향해 꿇은 꼴이 되었다. 일어서기 위해 어떻게든 다시 냉찜질을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니, 통증은 계속해서, 더욱 밀려오고 있다!
“왜? 다시 한번 일어나서 여기 있는 내게 아까와 같은 그 망발을 한번 다시 해 보지 그런가? 잘도 해 보시지.”
“......”
현애는 말없이 남자를 올려다볼 뿐이다.
“왜? 그렇게 해서 뭐가 바뀌는 게 있기는 한가? 있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네게는 그런 건 없는 것 같군. 아까 내게 뭐라고 했더라, 그 더러운 입으로?”
남자는 나지막하게 말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독기가 더하다.
“......”
“쫄보...라고 했지. 물론 주어는 없었지만, 순간 나도 이성을 놔 버릴 뻔했을 정도였어. 그런데 이제 누구를 그렇게 불러야 하지? 응? 한번 네 녀석의 입으로 말해 볼 수 있나?”
“너... 정말 너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남자는 현애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의외인 건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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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02-24 13:57:09
상당히 기묘한 상황이네요...
파디샤와 현애의 싸움, 그리고 조나와 비앙카와 도레이의 싸움은 능력을 어떻게 제어하고 또 그 제어된 능력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가 예측이 잘 안되다 보니 엄청 난해하네요. 분명 위험하다는 건 알겠지만...
그나마 발레리오와 비토리오는 상태가 안 좋지만 살아 있네요. 천만다행이예요. 안그러면 형제가 다 파디샤에게 몰살당했을 건데...
현애의 상황이 매우 안 좋은데, 저렇게 파디샤에게 말하네요. 정말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진짜 의외의 질문이네요. 당장 1초 뒤를 보장할 수 없지만 그러기에 저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걸까요?
시어하트어택
2022-02-27 23:19:11
양쪽 다 전황은 좋지 못하죠.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도 지금은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았고요...
저 질문은 의외의 자신감에서 나온 걸지도 모릅니다.
SiteOwner
2022-04-08 21:24:42
이상하다는 감이 들면, 게다가 상대의 패턴이 이상할 정도로 달라졌다면 의심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신을 자처하는 파디샤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군요. 그러면 결론은 명백합니다. 그 대가를 치룰 것이 남은 것.
현애의 발언은 들으면 확실히 멈칫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현실세계의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있었던 뱀섬 전투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항복을 권고하는 러시아 군함에 대해서 욕설로 응대한 것 같이...시어하트어택
2022-04-10 23:31:56
허세도 때로는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죠. 실제로 강릉 무장공비 침투작전 때 이것을 이용해 승리를 거둔 사례가 있기도 하고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