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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부가 수상하다!] 19화 - 정리정돈 깨끗이

시어하트어택, 2022-10-08 09:24:03

조회 수
136

지온이 어질러져 있는 부실 안을 보고 한숨을 막 내쉴 때, 민이 입을 연다.
“그런 걱정을 왜 해?”
민은 여전히 통증이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제법 여유롭게 말한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이다.
“응... 무슨?”
지온이 돌아보니, 이미 책장과 책들은 원래 자리로 막 돌아가는 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지럽혀져 있었을 부실 바닥. 지온이 한번 고개를 돌린 순간 일어난 일이다.?
“이런 건 어렵지는 않거든.”
“어? 어...”
지온의 답은 나오다 말고 막힌다. 확실히 그 능력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건 놀랍다. 하지만 인지할 새도 없이 능력을 전개해서 일을 쉽게 해치운다는 것까지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 그런 걸수도 있다. 지온의 눈에 또 들어온 건, 아직도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론. 정신을 못 차린 건지, 아니면 정신을 차리기는 했는데 힘이 못 미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걱정스럽다. 아론 역시 빨리 일어나야 할 것 아닌가...
“야, 여기 이 애는 어떻게 하고?”
“아, 아론 형?”
민은 역시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듯 말한다.
“어렵지 않은데. 어디 적당한 데 앉혀 놓으면 그만이야.”
“어? 그... 래?”
지온이 다시 보니, 이미 아론은 ‘움직이고 있다’. 아론 역시 잠깐 공중에 둥둥 뜨더니 곧바로 뒤쪽에 있는 한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윤진이 형 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를걸.”
“아니, 저렇게 자는 것처럼 보이면 윤진이 형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아, 아론 말이죠?”
지켜보고 있던 나디아가 마치 말하기를 오래 참아 오기라도 한 것처럼 끼어든다.
“자주 저렇게 자고 있던데요. 윤진 선배가 봐도 그냥 그러려니 하겠죠.”
“어어... 그런가?”
“저 애, 잠꾸러기로 이미 다 소문이 났어요. 저래 놓고 학교 끝나면 또 열심히 놀러 다니고 그러던데요.”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때, 마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듯, 윤진이 들어온다.
“얘들아, 기다리고 있었지?”
윤진의 양손에는 이것저것 가지고 온 소품들이 들려 있다. 부원들 앞에 서서 영상을 틀려던 윤진이, 잠시 부실 안을 훑어본다.
“음, 아론은 오늘도 자나? 저렇게 자는 것만 좋아해서야.”
윤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오늘의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민은 윤진이 부실 안을 돌아본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 윤진의 눈길이 향한 곳은, 아까 민과 아론의 소란이 있었던, 바로 그 지점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지,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며 머리를 잠시 긁적거리다가, 마침 눈이 마주친 민에게 묻는다.
“여기, 혹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전혀.”
민은 시치미를 뗀다.
“어... 그래?”
다른 부원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현장 정리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으니, 웬만한 눈썰미가 있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잘 정리된 곳에서 무슨 격렬한 사건이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윤진의 눈길이 심상치 않은 곳을 향하는 건 걸리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눈의 움직임도 얼마 가지 않아 멈추고, 윤진의 시선은 어느새 부원들을 다시 향한다.
“좋아, 이제 시작하자!”

윤진은 미리 설치해 놓은 홀로그램을 켠다. 스크린이 표시되자마자 나오는 것은, 만화부원들에게는 익숙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5월은 거짓말>의 오프닝.?
“뭐야, 저거, 얼마 전에 개봉했던 거 아니야?”
“그러게. 저걸 왜 굳이 여기서 다시 보여 주는 거지?”
부원들이 한 마디씩 하고, 윤진은 잠시 부원들의 반응을 살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영상만 보여 준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번 코믹 페스타 때 <5월은 거짓말> 부스도 따로 있다고 하지 않았나?”
가만히 보던 토니가 옆에 앉아 있는 줄리안에게 말한다.
“그때 우리 짐 옮기면서 봤잖아.”
“네, 그랬죠... ‘요시노’ 감독님 사인회도 한다고 그랬고, 그거 말고 또 여러 가지 퀴즈 같은 이벤트도 한다고 그랬고...”
줄리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난 토요일이 생각난 건지 몸서리를 친다.
“그런데 왜 지금 굳이 저걸 보여 주는 걸까요?”
“그래, 좋은 질문이야, 줄리안!”
가만히 있던 윤진이 줄리안의 말을 듣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걸 여기서 다시 보여 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 건 좀 특별하지.”
“어?”
다들, 윤진의 입에 주목한다.
“뭐가 특별한 거죠?”
“이거, 감독판이야.”
“에, 에에?”
“가... 감독판이요?”
“그래. <5월은 거짓말>의 다른 결말이 담겨 있는 감독판 말이지. 여기 있는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요시노 감독님은 보통 2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결말을 만들어서 그 중 하나만 우선 상영하고 다른 하나는 감독판을 만들어서 나중에 따로 공개하고, 그런 방식을 선호하시지.”
“응?”
부원들 중 토니가 입을 연다.
“그런데 그 감독판 공개일, 다음 주라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 맞기는 한데...”
윤진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잠깐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연다.
“감독판 있잖아, 우리한테 선행 공개하는 거야!”
“우... 우와!”
윤진의 그 말이 나오자마자,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일개 학교의 만화부에 그런 것을 선행 공개해 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오오, 선배님, 그거, 혹시 그냥 지어내거나 한 건 아니죠?”
“맞아, 맞아! 그냥 몇 장면 짜깁기만 하고 그걸 감독판이라고 우기는 건... 설마 아니겠죠?”
부원들이 다들 의심을 내비치는 말을 몇 마디 하자, 윤진은 그 말도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을 연다.
“자, 요시노 감독님은 감독판에 특유의 로고를 하나씩 넣지. 너희들도 그걸 잘 찾을 수 있겠지?”
윤진은 손가락으로 화면의 오른쪽 위를 가리킨다. 과연, ‘YSN’이라는 이니셜이 영화 타이틀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보통이라면 다들 몰라볼 수도 있겠지만, 몇몇 눈썰미 좋은 부원들은 금세 알아본다.
“어, 진짜잖아!”
“그러게?”
특히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가운데 창가쯤에 앉아 있는 아이란. 아이란이 감독판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이전에 개봉한 극장판은 핵심 등장인물인 ‘갈라투아’와 ‘모블린’의 관계가 명확히 해소되지 못한 채 끝을 맺었다. 따라서 팬들은 여기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 것도 있기도 하고, 요시노 감독 역시 극장판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란이 자주 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 ‘플라워링’에서는 벌써부터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던 참이었다. 이제 아이린이 문제의 감독판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으니, 그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얼리어답터로 떠받들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저, 선배님!”
아이란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연다.
“그거, 좀 빨리 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일제히, 거의 모든 부원들의 시선이 아이란에게 집중된다. 대부분은 그저 아이란의 목소리가 다른 부원들에 비해서 좀 크기에 돌아본 것뿐이지만, 그중에는 당연히, 나디아의 이런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부원들도 있다. 나디아 역시 그중 하나로, 가만히 시선을 돌리고 아이란을 노려본다.
“아이란, 또 그러니?”
“......”
윤진이 뭐라고 한마디 하자, 아이란이 순간 상황을 깨달은 건지 헛기침을 하고서 벌려지려던 입을 다문다. 그래도 그 흥분을 감출 수는 없었던 건지 거친 숨을 몇 번이고 내쉰다. 얼른 자신이 원하는 그 바뀐 무언가를 봐야겠다는 열망이, 자꾸 아이란의 바깥으로 분출되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넌, 그 자제라는 걸 좀 하는 게 좋을 텐데...”
“......”
아이란은 별 말 없이 심호흡만 하고 있다. 윤진이 한 말에 대해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자신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몇몇 부원들은 무섭게 노려보고, 마치 똥을 씹기라도 한 듯이 입을 삐죽 내민다.
“뭐, 좋아. 이제 보자고. 기대한 것만큼의 재미는 보장하니까.”
윤진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가운데쯤에 앉은 민 역시, 재생이 시작되자 거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보기 시작한다.
“어... 도입부는 똑같네.”
처음에 폐허가 되어 버린 세계에서 갈라투아와 모블린이 만나서 같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장면은, 극장판과 다를 게 없다. 화질이 극장판보다 조금 더 나아지고, 몇몇 디테일한 부분이 추가된 건 있지만, 이야기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쪽에 민감한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나는 그다지 달라진 걸 못 느끼겠는데.”
옆에서 리카가 조그맣게 말한다.
“여기는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
“좀 기다리고 봐봐. 결말이 좀 많이 달라졌다고 하잖아.”
유의 목소리도 들린다. 민은 별말을 하지 않고 좀 기다리기로 한다. 어차피 바뀐 부분은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다.
좀 보다가 잠깐 옆을 보니, 아이란이 몸을 부르르 떨며, 손을 허공을 향해 내저으려는 자세를 보인다.
“뭐야, 너무 감격해서 그런 건가.”
한눈에 봐도 아이란의 행동은 다른 부원들에 비해 돋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흥분했다든가 감격했다든가 해서 손을 허공으로 내젓는 게 아니다.
“응? 잠깐...”
아이란이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다. 민이 들어 보니, 몇 마디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왓... 왜 저게 내 눈에!”
바로 며칠 전에 만화카페에서의 반응과 너무도 유사하다. 그러면 설마, 또 나디아가 한 거란 말인가? 바로, 민이 아이란에게 가서 뭔가 물어보려는데...

“어?”
갑자기 민의 전화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온다.
“뭐야, 누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아이란 말이야]

나디아로부터의 메시지는 아니다. 나디아는 지금 바로 민의 옆에 앉아 있는데, 저런 호전적인 태도는커녕 메시지창에 손을 건드리는 동작조차 하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낸다고 하면 바로 귓속말로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이런 메시지를 보낼 만한 사람은?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디아 말고도 저렇게 누군가의 시야를 혼란에 빠뜨릴 만한 한 사람이. 민도 어렴풋이 아는 것이지만, 딱 맞는 능력자가 하나 생각난 것이다. 민이 문득 돌아본 사람은, 민의 오른쪽, 복도 옆쪽에 앉아 있는, 키가 좀 크고 파마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 중학생. 그리고 유독, 영상을 보다가도 아이란 쪽으로 자꾸만 돌리는 시선.
“저거, ‘안젤로’ 형 아닌가? 왜 하필?”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2-10-08 18:12:58

혼란이 일단 수습되긴 했는데, 그래도 완전히 불안까지 해소된 건 아니네요.

아이란은 앞뒤를 저렇게 못 재는지...사심을 채우는 것도 좀 정도껏 해야 할텐데 말이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도 부정할 수는 없겠어요. 게다가 이상한 행동도...


문제의 안젤로라는 인물의 소행일까요, 그 메시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아닌데 섬뜩해지고 있어요.

시어하트어택

2022-10-10 22:29:51

말 그대로 일단 수습된 것일 뿐, 근본적인 원인이 없어진 건 아니니까요.?


아이란이 한 행동은 단순히 아이란의 성향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닌 걸 수도 있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개입했을 수도...

SiteOwner

2022-10-22 16:35:28

직전 회차에서 부실내가 어질러진 상황이 결과적으로 가역반응인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나마 이게 상황의 깔끔한 해결은 아니겠지요. 부장이 이상하게 여길만도 합니다.

아이란은 정말 상황판단을 못하는군요. 그나마 예전에 알고 지냈던 여학생처럼 남학생들이 많은 팀에 배정되지 못하면 분란을 일으켜서 기어이 팀을 엎어버리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눈총받기 좋아 보입니다(시원하다 못해 추운 날씨 속의 회상 참조). 그런데 그게 본인의 의지라도 문제지만 타인의 개입이라면 이건 더욱 무섭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 급부상하는 마약문제가 같이 생각나서 더욱 섬뜩해집니다.

시어하트어택

2022-10-30 19:32:38

만약 저걸 빠르게 수습하지 못했으면 윤진이 더욱 이상하게 여겼겠죠. 아이란이 과연 자의로 저러는 건지도 좀 더 지나 봐야 알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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