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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차와 디아나를 거슬린다는 눈으로 보는 그 남학생들은 점점 다가온다. 그 남학생들 역시, 농구공을 들고서 오고 있다. 다들 여기서 농구를 하려고 한다는 걸 잘 말해 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농구장 한가운데 서 있던 니라차를 옆으로 밀쳐내며, 매우 언짢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야, 여기는 내가 먼저 맡았다고! 남이 먼저 맡아둔 데인데 왜 알짱거리고...”
“그래, 맞아! 남이 자리 먼저 맡아놨는데 끼어들면 안 되지.”
다른 일행도 처음 니라차와 디아나를 밀쳐낸 그 남학생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옆에 있던 디아나는 아무 말도 없이 분을 삭일 뿐이다. 그 금발의 남학생, ‘다니엘’에게는 초능력이 있다는 걸, 디아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게 무슨 초능력인지는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초능력이 있다는 것만은 들어서 안다. 그리고 디아나처럼 아무 초능력도 없어서는 다니엘을 차마 어떻게 해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니엘의 일행 중 2명이 니라차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을 하고서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야, 저 애, G반의 니라차잖아! 저 애 능력, 너도 잘 알지?”
“그래. 다니엘도 어느 선에서 끝내야지, 계속 저러면 그 능력에 당해 버리잖아!”
“뭐야... 이미 늦어 버렸잖아.”
그 둘의 말대로다. 이미, 다니엘은 니라차의 눈을 바로 바라봤고, 그러자마자 조종당해 버렸다.
“어... 내가 왜 이래... 나 분명히 여기서 농구 하려고 한 건데, 왜 내 발로 걸어서 농구장을 나가고 있는 거지... 설마 이거...”
다니엘이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빠져나갈 수도 없다. 이미 니라차의 능력에 당해서, 니라차가 풀어주거나 하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니라차에게 조종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얘들아, 여기 옆으로 가자! 빨리 와!”
그렇게 말하고서도, 다니엘은 자기 입을 금세 틀어막아 버리지만, 그것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가 버린다. 다니엘의 다른 친구들이 그 광경을 혼란스러워하며 바라보는 가운데, 다니엘의 친구 중 한 명이 니라차에게 곧장 항의한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다짜고짜 초능력부터 쓰는 게 어디 있냐!”
“그러니까, 왜 공격적으로 나오냐고.”
“아니, 우리가 먼저 온 건 맞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오토’라는 남학생은 한편으로는 니라차가 왜 자신에게 초능력을 쓰지 않은 건가 의아한 듯한 표정이다. 거기서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니라차를 대신해서, 때마침 그 자리에 온 윤진이 입을 연다. 옆에는 지온도 같이 있다.“내가 보니까, 너희들이 먼저 온 건 맞는데, 그렇다고 니라차하고 디아나를 거칠게 밀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아... 그러네요.”
윤진의 그 말에 오토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다니엘에게 다가간다.
“야, 그러니까, 네가 잘못했다고 해. 어쨌든 우리가 먼저 오기는 했는데, 거칠게 밀쳐낸 건 네가 잘못한 거니까...”
하지만 니라차는 다니엘의 입을 열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뭐라고 말은 못 하고 있다. 니라차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은 듯 보이는데, 윤진의 옆에서 보고 있던 지온이 니라차에게 다가가 말한다.
“야, 내가 옆에서 그냥 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는데, 오해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니냐? 그러니까 이제 좀 화난 거 풀고 각자 재미있게 놀면 되지 않냐?”
“어... 그렇기는 한데...”
“이제 저 다니엘이라는 녀석도 충분히 당한 것 같으니 그만 풀어줘도 될 것 같은데.”
“아, 그런가...”
그리고 다음 순간, 다니엘이 크게 안도하며 거칠게 날숨을 내쉬는 게 보인다. 그러더니, 니라차를 똑바로 보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친구들을 불러서 옆으로 간다.
“뭐,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는 해도 마구 남을 밀치거나 해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지온은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끝났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면 이따가 교류 행사 때 보자고.”
“어... 그래.”
점심시간이 지나고, 막 오후 수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12시 55분 미린초등학교 5학년 H반 교실. 상당수가 교실 안으로 들어와 있는 가운데, 민이 막 교실로 들어온다. 교실 밖에 한눈을 팔다가 들어오던 참이기 때문에, 하마터면 부반장 마야와 부딪칠 뻔했다.
“앞 좀 보고 다니지.”
“어, 그래.”
다행히도 마야는 그냥 넘어간다. 마야가 먼저 들어가고, 민이 문을 넘어 들어간다.
“오늘도 평온하지는 않았나 보네...”
교실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은 민이 폰을 꺼내서 새로 온 메시지를 보다가 말한다.
“니라차 누나는 왜 또 그랬대. 또 다른 사람을 조종한 거야? 잊을 만하면 왜 그래.”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지만, 그나마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그건 수업이 끝나고 다시 보기로 하고, 막 책을 꺼내서 펴려는데.
[방송실에서 알려드립니다. 기분 좋은 월요일, 잘 보내고 계시는가요?]
스피커 너머에서는 아멜리의 목소리가 직접 흘러나오고 있다. 아멜리의 목소리는 평소 목소리를 동시에 들으면 다른 사람인가 의심할 정도로, 매우 밝다. 평소에 방송할 때 나오는 밝은 목소리보다도 톤이 더 올라가 있는 걸, 듣는 사람들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안녕하세요? 전교회장 아멜리입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전교생 대상으로 경품 추첨 이벤트를 진행하니, 관심있는 학우 여러분께서는 응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가하는 전원에게 사은품 증정, 1등, 2등, 3등 경품도 푸짐하게 마련되어 있으니, 이번 기회 놓치지 마세요! 그러면 즐거운 오후 수업 되시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방송실이었습니다.]
당연히, 아멜리의 이 방송은 미린고등학교 1학년 G반 교실에서도 똑같이 들린다.
“뭐야, 아멜리 선배님 목소리가 저렇게 밝았던가... 아멜리 선배님 아니고 다른 방송부원이 미리 대신 녹음해 놓은 건가? 아무리 들어도 저건 아멜리 선배님 목소리가 아니잖아.”
“아니야, 아멜리 선배님 목소리 맞아.”
세훈의 그 말을 들은 디아나는 다 예상한다는 듯, 방송을 들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그 에밀리오를 잡았다고 아주 많이 들떠 있는 모양인데.”
“아... 알지.”
세훈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지난 주말 동안은 그것 때문에 세상이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근심에 싸여서 다녔지.”
“그런데, 아멜리 선배님이 원래 그 정도로 즉석사진 찍고 하는 걸 좋아하나?”
그때, 세훈과 디아나가 서로 이야기하는 광경을 주리가 보더니 불쑥 한마디 던진다.
“아직도 몰랐냐? 중학교 때부터 선배님 유명했잖아.”
“그랬...나?”
디아나는 주리의 그 말에 의아했는지 되묻지만, 이내 아멜리와 몇 번 즉석사진 찍으러 갔을 때를 떠올린다. 그때도 그 즉석사진방 주인이 아멜리를 단번에 알아보던 게 생각난다.
“아무튼, 나도 거기 응모해야겠는데. 아멜리 선배님이 무척 기분이 좋으니 뭐든 경품이 푸짐하긴 하겠네.”
그리고 시간은 지나, 미린초등학교 5학년 H반 교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집에 갈 사람들은 가고, 동아리 활동을 할 사람들은 각자 동아리방으로 갈 시간이다. 물론 민도 예외는 아니다. 친구들을 따라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려는 참이다.
“아, 이제 또 교류 행사가 시작되나 보네. 어디, 한번 가 볼까?”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막 만화부실로 향하려던 민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는다. 누군가 했더니...
“오, 카일? 왜 그래?”
민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카일. 거기에다가 언제 갈아입었는지, 검은색 위주의 꽤 확 튀어 보이는 옷을 입고 모자까지 민의 것보다도 더 튀어 보인다.
“왜기는. 내가 무슨 동아리더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카일은 오늘따라 어디 댄스팀 같은 데서 보는 것 같은 복장을 하고서 왔다. 왜인지 민보다도 더 눈에 띈다 했다.
“그래. 너희 만화부하고 우리 댄스동아리하고 어떤 교류 행사를 할지 벌써부터 기대되네.”
카일은 마치 자신이 이 모임을 주최하기라도 한 것처럼, 민의 앞에 서서 얼른 가자고 재촉한다. 민도 그게 싫지만은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무언가 약점이라도 잡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 뭐 해? 빨리 가자고! 너도 기대하고 있잖아?”
그렇게 민과 카일이 교실에서 나와서 만화부실로 향하는 길.
“너, 혹시 우리 매니저 형이 너하고 댄스 배틀 같은 거 하자고 하면 할 의향 있냐?”
“글쎄... 나는 너만큼 춤을 잘 추지는 못해서... 할지는 모르겠는데.”
민이 그렇게 말하자, 카일은 마치 ‘안됐다’라는 듯 말한다.
“하! 우리 매니저 형은 그런 거 보면 못 참을 텐데. 아무나 춤 잘 춰 보이는 사람 불러서 댄스 배틀 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어... 정말?”
민은 카일의 그 말이 의외였는지, 카일에게 되묻는다.
“내가... 춤을 잘 추게 생겼다고?”
“아니, 그냥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지.”
아무리 들어도 방금 카일이 한 말은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민은 춤을 잘 추기는커녕 뭔가를 해도 앉아서 하는 것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글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한편 그 시간, 히어로 동아리의 동아리방.
“이야, 여기는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좁은 건가?”
오늘의 교류 모임 대상인, 밴드부의 매니저 ‘네이트’가 잠시 동아리방 안을 훑어보더니 불쑥 치히로에게 말을 던진다. 치히로는 그 ‘좁다’는 말은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새로 생긴 동아리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까 하다가도, 네이트가 어딘가 수상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치히로의 심증일 뿐, 딱히 네이트가 무슨 나쁜 짓을 벌인다든가 하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 치히로의 심증은 꽤 높은 확률로 앞에 있는 사람이 악인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으니, 치히로도 답답한 노릇이다.
“네, 그래도 이제 새로 시작했으니, 이 동아리실도 점점 더 커지겠죠.”
“아, 그래,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도록 하지.”
네이트는 어딘가 뒤끝이 있는 듯한 대답을 한다. 마치 치히로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지만, 일단 지금은 교류 행사를 하는 것이니 치히로는 애써 웃어 보인다. 그리고 치히로는 네이트에 대해 경계를 풀지 않기로 한다.
‘아무래도 저 선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오, 다들 와 있었네?”
한편 만화부실. 민과 카일이 만화부실에 들어오자마자, 만화부원들과 댄스 동아리 ‘디크루’의 부원들이 자리를 하나씩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이 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5-13 23:37:31
그 시비걸던 다니엘은 아주 보기좋게 제 발로 나가 버렸네요. 이미 니라차의 능력을 아는 자들은 그나마 몸을 사리는데 다니엘은 이미 늦었고 결국 그렇게...게다가 입도 닫혀 버렸다가 겨우 다시 열렸고,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죠. 아무튼 원만하게 수습되어서 그게 천만다행이예요.
아멜리의 목소리가 완전히 다르게 들릴 정도라니...역시 굉장하네요. 에밀리오를 붙잡은 게 역시 크네요.
그런데 카일도 네이트도 영 이상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5-15 22:21:08
자리를 먼저 잡은 건 맞습니다만, 그걸 제 손으로 저렇게 어그러뜨려 버렸으니, 다니엘로서는 참 굴욕도 저런 굴욕이 없겠습니다.
아멜리가 정말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죠. 보통의 사람이라면 저렇게 즉흥적으로 경품을 걸고 뭔가를 하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 텐데, 아멜리 정도의 지위에 있으니까 가능할 수도 있죠.
SiteOwner
2023-05-31 21:13:28
일촉즉발의 위기는 모면했습니다만 다니엘에게는 큰 충격이 왔을 게 분명하겠습니다. 행동이 의도와 반대로 나타나다니 정말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니라차가 저렇게 능력을 쓴 건 처음이 아닌데다 이미 몇몇 사람들에게는 주지의 사실이라는 것도 걱정이 안 될 수는 없겠습니다만...
아멜리가 즐거움을 감출 수 없는 목소리로 방송하는 그 이면에 뭔가 또 불길한 징조가 느껴집니다.
카일처럼 넘겨짚기를 일삼거나 네이트처럼 신경을 긁는 저런 자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6-04 23:09:13
다니엘은 몰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 시점 기준으로도 니라차는 초능력을 얻은 지 1달 정도 되었으니까, 아직은 모르는 사람들이 좀 있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게 소문이 더 날수록 피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