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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고,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현애는 분수대 앞 벤치에 앉아 과자를 뜯고 있다. 옆에는 콜라캔도 놓여 있다. 오늘은 별다른 이상한 징후는 안 느껴진다. 다행이다! 2,000리라의 행복을 오늘은 제대로 맛볼 수 있겠다! 주위를 본다. 아직 주변에는 아무도 돌아다니거나, 앉아 있거나 하지 않다.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는 맛은 안 나겠지만, 이건 이거대로 좋다! 과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맛볼 수 있다는 건!
봉지를 뜯은 다음, 한 개 꺼내 본다. 다행히, 바스러지는 감촉이 있을 뿐, 반반하다든가 표면에서 반사광이 난다든가 하는 건 없다. 조그맣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바로 입으로 가져가 한입 물어 먹는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든다! 그래, 과연 이 맛이다! 어제 외제니 그 녀석 때문에 못 맛봤던 그 맛까지, 오늘 2배로 느낄 수 있다!
어디 한번, 4,000리라의 행복을 오늘 만끽해 볼까...
“여기-”
그때,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온다. 붉은 머리에 키는 세훈 정도의, 둥글둥글해 보이는 남학생이다. 이 사람은 C반의 ‘레너드 퓰리처’.
“나도 과자 좀 주라.”
“뭐야, 고작 과자나 얻어먹으려고 온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레너드는 은근슬쩍 과자 하나를 집어 먹는다.
“이렇게 먹는 과자가 참 맛있단 말이지.”
“너 다음에 과자 먹으면 꼭 나 불러야 한다.”
“아,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든다.
“응? 뭐야?”
어떤 이상한 기운이, 현애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마치 물속에 있는 잠수부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물고기 떼처럼 말이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습격인가? 아니면 반가움의 표현인가?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밀려오는 예감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뭔가 오는 것 같지 않아?”
“응? 나는 잘 모르겠는데?”
레너드는 현애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듯 눈만 멀뚱거릴 뿐이다.
온다.
온다.
오고 있다.
오고 있다!
바로, 바로 가까이!
“음?”
뭔가가, 현애의 얼굴을 살살 쓸고 있다.
그것을, 집는다.
“뭐야.”
손에 잡힌 건, 다름 아닌, 새의 깃털이다. 푸르스름한 바탕에, 갈색빛이 섞인 깃털.
아니, 그런데, 새? 새라니?
다음 순간.
삑- 삑삑- 삑삑삑-
푸른 새들이 일제히 날아든다.
손바닥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크기의 조그만 새들이, 현애를 향해 떼를 지어 날아오고 있다. 이건, 생각도 못 한 습격이다! 이렇게 갑자기 새들이 막 날아들다니! 뭐, 여태껏 겪어 왔던,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던 습격에 비하면 나쁘지는 않다. 일단은, 새들이라니 별로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또 딱히 적대적으로 현애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한 가지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면, 이 새들이 모여드는 곳은 바로...
현애가 들고 있는, 과자봉지다!
새들이 저마다 물고 날아가는 건 다름 아닌, 봉지 안에 있던 과자들이다...
“엑, 너... 너희들 뭐야!”
현애는 생각 같아서는 손을 휘둘러 봉지로 날아드는 새들을 쫓고 싶지만, 어쩌랴. 그랬다가는 저 새들이 과자가 아닌, 현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1분도 안 되는 시간.
조그맣고 재빠른 새들은, 벌써 과자를 하나씩 물고 날아가고 있다. 레너드는 현애의 과자봉지를 보고는 장난스럽게 말한다.
“어, 뭐야? 이야, 너 새들한테도 인기 있네?”
“아, 딱히 그렇게 인기 있는 건 아니거든?”
현애는 레너드를 돌아보고는 정색하고 말한다.
“이건 내가 부른 게 아니고...”
“뭐, 부른 게 아니라도 상관없잖아.”
“으응.... 그게...”
“새들이 이렇게 과자 하나 먹자고 너한테 전부 달려드는 건 처음 보는 일인데. 처음 봤을 때는 동물하고는 별로 안 친하게 보였는데, 다시 봤어.”
현애는 잠시 과자봉지 안을 보며 말이 없다. 과자봉지 안은 약 80% 정도 비어 있다. 그 비어 있는 봉지를 들여보더니, 다시 레너드를 보고 말한다.
“설마 네가 저 새들을 부르거나 한 건 아니지?”
“아, 아니야! 나는 그저 과자 때문에 여기 온 건데.”
레너드의 얼굴을 보니, 의심스러워 보이지는 않다.
“좋아, 알겠어.”
어느덧 오후 3시 30분. 평소와는 달리, 현애는 혼자 걷고 있다. 세훈과 주리는 오늘 사정이 있다고 해서 학교가 끝나자마자 먼저 갔다. 늘 누구하고 같이 걷던 것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걸어보는 것도, 몇 번 해 보니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몇 걸음 옮기다 보니...
“저, 선배님.”
뒤에서 들리는 한 남학생의 목소리. 현애를 부르고 있다. 뒤돌아보니... 미린중 교복을 입은 검은 머리의 남학생이 뒤에 서 있다.
“하야토잖아.”
“선배님, 잘 지내죠?”
“아, 그럼. 이상한 녀석들하고 좀 만나기는 했지만.”
“이상한 녀석들이요?”
하야토는 반문하기는 하지만, 그 질문에 의문은 들어가 있지 않다.
“레아가 많이 이야기하더군요. 선배님이 요새 이상한 일 많이 겪는다고 말이죠.”
“레아가 그래?”
“네. 그 ‘후드 쓴 남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그래...”
현애는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 같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꽤나 심란하다. 현애 자신은 어차피 그 후드 쓴 남자가 직접 노리는 대상이니, 차라리 받아들이면 편하다. 하지만, 여기 하야토 같은 불특정 다수의 후배들이 자칫하다가 말려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선배님, 꽤 마음이 편치 않으신가 보네요.”
“아, 그런 거 아니야.”
현애와 하야토가 어느새 걷다 보니, 시간은 3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응? 그런데 여긴 어디지?”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는, 자주 안 오는 길인데? 집들도 더 화려해지고, 정원도 더 넓어졌다. 분명 그 주택가는 맞는데...
“하야토, 여기 어딘지 알아?”
“네, 저는 아는 곳이긴 한데...”
“뭐야.”
하야토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너, 나를 일부러 여기로 데려온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여기가 제가 아는 곳이기는 하지만, 저도 걷다 보니까 여기로 온 거라고요! 절대, 절대, 일부러 이리로 온 게 아니에요, 선배님!”
“정말이야?”
“네... 저는 초능력 같은 것도 없는데 뭐 하러 선배님한테 음침한 짓을 하겠어요? 게다가 저희 집은 보는 눈도 많아요. 제가 그럴 이유가 더 없죠!”
하야토는 강한 어조로 말한다. 현애는 긴장을 풀지 않고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럼, 어떤 녀석이야? 도대체 어떤 녀석이 우리를 이리로 데려온 거지?”
그때.
야옹-
웬 고양이가 우는 소리.
현애와 하야토는 두리번거리며 돌아본다. 어디에, 어디에서 고양이가 울고 있단 말인가?
야옹-
또다. 거기에다가 조금 더 커진 울음소리! 어느 집 쪽에서 들렸다. 현애와 하야토는 그 울음소리가 들린 쪽으로 다가가 본다. 정원 딸린 저택들 중, 흰 벽돌과 갈색의 지붕으로 장식된 곳이다.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야옹-
울음소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바로 보인다. 현애와 하야토의 눈에. 담장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가 말이다. 현애의 눈에 얼핏 보기에, 주리네 집에 있는 고양이 에이미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털, 그 무늬,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다르다. 무엇보다도 눈동자 색깔이 확실히 다르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고양이는?
“아, 여기 있었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하는 걸 들으니 현애의 동급생 아니면 선배다.
뒤돌아본다.
보라색의 미린고 교복을 입은, 짙은 고동색의 양갈래 머리를 한 통통한 체격의 여학생이 서 있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아, 네가 G반에 전학 온 현애구나.”
그 여학생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 나는 ‘카데노코지 리나’야.”
“아, 그래. 반가워.”
현애와 리나가 서로 인사를 하고 나서, 리나가 바로 앞장선다.
“그런데, 하야토하고는 아는 사이인가 보네.”
“아, 많이 본 사이거든.”
“많이 보는 사이라고?”
“우리 집 옆집에 자주 놀러 오거든.”
“그래? 너희 집은 어딘데?”
리나는 말없이 집 한 채를 가리킨다. 갈색 지붕과 흰 벽돌의 집. 바로, 아까 그 고양이가 서 있던, 그 집이다!
“뭐야, 여기였어?”
현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럼 설마, 여기 있는 고양이는...”
“맞아.”
그 고양이가, 풀쩍 뛰어올라, 리나의 품에 안긴다.
“루디아, 뭐해? 인사해야지.”
리나가 루디아의 앞발을 잡고 인사하는 시늉을 한다. 현애와 하야토가 루디아를 보고 웃어 보인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한번 들어올래?”
현애는 고개를 끄덕인다.
리나의 집. 리나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고, 뒤이어 현애와 하야토가 따라온다.
“응? 아무도 없네?”
“아, 부모님은 다 사업차 다른 데 가셨거든.”
“그래?”
현애와 하야토는 거실의 소파에 앉는다. 현애는 주위를 돌아본다. 정말이지, 이 정도로 넓은 거실은 처음이다. 거기에다가, 벽과 바닥이 모두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니!
하지만 그것보다도...
어느새.
다리 위에 뭔가가 앉아 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털에 덮인 무언가가, 마치 현애의 다리 위가 포근한 방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앉아 있다. 시선을 밑을 향하고 보니, 얼룩빼기 강아지다.
“뭐야, 웬 강아지가 내 다리 위에 앉아 있어?”
“아...”
리나는 현애의 다리에 올라앉은 강아지를 보고도 태연하다.
“인사해. 우리집 귀염둥이 ‘포코’야.”
“아... 그, 그래. 안녕...”
현애는 어색하게 포코의 눈을 마주보고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나마 포코가 순둥이라서 망정이지, 만약에 포코가 현애를 험악하게 보고 으르렁댄다든가 했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현애의 눈에는 음료수를 가져오고 있는 리나가 들어온다. 옆에 루디아가 함께 걸어오더니, 어느새 폴짝 뛰어올라, 포코의 옆에 앉는다.
“시원한 음료수 하나씩 마실래?”
“음료수 좋지.”
“감사합니다!”
현애와 하야토는 음료수를 하나씩 골라 마신다. 음료수는 맛있지만, 현애의 눈을 자꾸만 끄는 게 있다. 저 고양이는, 왜 강아지와 그렇게도 잘 지낸단 말인가?
“쟤네 참 신기하지 않아?”
“응? 뭐가?”
“개하고 고양이가 어쩜 저렇게 잘 지내지?”
“그러게. 한 일주일 전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뭐야? 네가 키우는 건데 네가 얘들을 모르면 어떡해!”
“아, 그게 말이지...”
뭔가 좀 이상하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답지가 않다. 조금 전에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도 매치가 되지가 않는다...
문득 발코니 쪽을 내다본다. 과연, 저택답다고나 할까, 이름도 모를 수많은 꽃들이 화분에 심겨 있고, 거실 바깥의 정원의 풍경과 어우러져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뭔가 앉아 있다.
나무 위에, 화단 위에, 그리고 거실 앞마당에. 그 수를 대략 세어 보니, 서른 마리는 된다.
“뭐... 뭐야? 저 새들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7-03 14:20:17
이번에 또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했네요. 남학생 레너드 퓰리처와 여학생 카데노코지 리나.
게다가, 현애가 두 인물을 각각 만나면서 다른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기묘하네요.
새 관련으로는 이런 게 생각나고 있어요.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앞 광장은 비둘기가 많아서, 때로는 무리지은 게 꽤나 무섭게 여겨지고는 했어요.
하루는 오빠가 "거위가 다가와서 강아지처럼 몸을 기대고 애교를 부렸다" 라고 하길래 무슨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는데, 오빠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아 꽤나 놀라기도 했어요.
고양이와는 대체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고양이가 저에게 냐앙냐앙하면서 다가와서 안긴다든지 기대서 애교를 부린다든지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어요.
개와는 사이가 워낙 좋다 보니 처음 본 개도 저에게 잘 안기거나 배를 보이고 누워서 애교를 부리는 경우가 흔히 있어요. 그래서 개 조련사냐는 말을 듣기도 해요. 현애가 겪은 일은 저도 잘 겪다 보니...
80&라고 쓰신 부분이 있는데, 혹시 80%를 쓰려 하셨던 건가요? 확인을 부탁드릴께요.
시어하트어택
2020-07-03 18:43:28
동물 관련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으시네요. 보고 피식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전반부의 레너드는 그냥 개그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건 후반부의 리나죠.
해당 부분은 수정했습니다.
SiteOwner
2020-07-05 14:12:50
새가 날아드는 것, 단 한 마리라도 무섭기 마련입니다. 새는 작아도 하늘을 날 수 있고, 사람은 그럴 수가 없는데다 작은 새가 사람을 노리는 것이 그 역의 경우보다 정확도가 높습니다. 이런 원리로, 항공기가 전장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고, 거함거포주의, 폭격기무적론 등은 퇴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저택 그 자체도 위압적인데, 그 대저택에 사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다면...
정말 압도적이겠습니다. 그래서 카데노코지 리나가 더욱 엄청나 보일 것입니다.
위에서 동생이 말한 동물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후일담을 추가하겠습니다.
9년 전에 서울의 한 대학에 용무가 있어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학의 구내에는 큰 호수도 있고 오리, 거위 등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호수 밖으로 나온 거위 1마리를 어떤 여자아이가 쫓아가고 있었는데, 그 거위가 저에게 다가와서는 발을 제 발 위에 올린 자세로 기대면서 저의 다리에 목을 감고 끼잉끼잉 소리를 내며 개처럼 애교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도 신기하다는 듯이 저를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 둔 사진을 동생에게 보여주니 믿지 않았던 동생이 진상을 알고는 크게 놀랐습니다. 별별 일이 다 있다고...
그런데 그 사진을 보존해 두기 전에 핸드폰이 고장나 버려서 결국 데이터는 회수하지 못해 버렸습니다. 정말 아깝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07-05 23:04:41
오너님의 새에 대한 글을 읽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무래도 날개가 있고 없고의 유무는 크기 마련이죠...
그 거위 사진, 실제로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