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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열네번째는 동부 및 중부유럽편(상)으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산지, 남색은 해양, 녹색은 국가 및 속령, 보라색은 도시, 검은색은 기타 특기사항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By Courtesy of TheRomangOrc
여기에서는 다루는 범위도 꽤 넓은데다 설명해야 할 항목도 매우 많고 국가명이 오늘날의 것과 같더라도 국가들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였는데다 국토가 본토와 동부의 월경지인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으로 분단되어 있었고,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왕국이면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1922년부터 총리가 되어 있는 상태인 한편 유고슬라비아 또한 군주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해요. 그리고 소련은 이미 건국된 상태였지만 소련 해체 직전의 소련과는 달리 구성국도 적고 제정러시아가 소련으로 이행중인 혼란기여서 국가로서의 기틀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이고 폴란드의 강역도 현대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실 필요가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 항목으로 시선을 옮겨볼께요. A부터 N까지 14개 항목이 있어요.
지도 왼쪽 위부터 읽어 내려오시면 편리하니까 이 점을 염두에 두셔도 좋아요.
A. 앤트워프는 일본-유럽 항로의 종착점
벨기에 인구 최다도시인 앤트워프(Antwerp)는 영어표기로 프랑스어로는 앙베르(Anvers)이고 네덜란드어로는 안트베르펜(Antwerpen). 그리고 이 도시는 서 수도 브뤼셀(Brussels) 다음으로 큰 대도시권을 형성하는 유럽 유수의 항구도시로 명성이 높아요. 또한 1903년에는 세계최초로 육상선수권대회가 개최된 한편 1920년에는 하계올림픽이 개최되어 그 이름이 전세계에 알려지기도 했어요.
이미지 출처
Antwerpen: Belgiens Hafenstadt, ab in den Urlaub 웹사이트, 독일어
앤트워프는 유럽 유수의 항구도시로 물동량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Rotterdam)에 이어 2위. 게다가 일본과 유럽을 잇는 정기항로는 1896년에 일본의 해운회사 닛폰유센(日本郵船)이 벨기에와의 공동사업으로서 개설한 것이 최초로 당시 사용된 화물선은 영국에서 건조된 이슬람(Islam)을 매입하여 창업주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 1835-1885)의 고향을 기념하여 개명된 토사마루(土佐丸)였으나 이것도 취역 2년만에 일본에서 최초로 자체건조한 총톤수 6,172톤의 대형 상선인 히타치마루(常陸丸)로 대체되었어요. 그 히타치마루는 러일전쟁에 징발되어 일본측의 수송임무에 투입되었다가 1904년 6월 15일에 제정러시아군에 격침당해 파괴되어 오늘날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미지 출처
(히타치마루(닛폰유센), 쇼와칸 디지탈아카이브 웹사이트, 일본어)
이 도시는 1872년에 영국에서 위다(Ouida) 명의로 출판된 동화인 플란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의 작중배경 중의 하나라도 알려져 있어요. 그리고 그 위다의 정체는 영국 및 프랑스의 이중국적 소설가인 마리 루이즈 드 라 라메(Marie Louise de la Ramée, 1839-1908). 벨기에라는 국가가 그녀가 태어난 1839년에 영국과 프랑스의 승인하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것을 같이 떠올려 보면 참 기이한 우연의 일치로 보이고 있어요.
B. 전 독일 황제가 아메룽겐에서 망명생활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가 300년 전통의 마지막 군주였던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1941)는 독일제국 해체 이후 네덜란드에 망명해서 네덜란드의 비호를 받으며 1918년에서 1919년까지는 위트레흐트(Utrecht) 소재의 성인 아메룽겐 성(Kasteel Amerongen)에 은거하였고 그 이후는 하우스 도른(Huis Doorn)이라는 다른 저택으로 거처를 옮겨서 1941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거주했어요.
두 시설 모두 건재하고 현재 모두 보존되어 있는데, 아메룽겐 성은 1673년에 프랑스의 침공으로 불타 무너진 자리에 재건된 것이고, 하우스 도른은 영국의 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의 어머니인 엘라 반 헴스트라(Ella van Heemstra, 1900-1984)가 유년기를 보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즉 그 두 거처 모두 독일을 패배시킨 프랑스 및 영국과 인연이 직간접적으로 있는 장소라는 게 기이하게 짝이 없어요.
이랬던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독일과는 군사, 산업 및 문화관련으로 광범위하게 협력하고는 있지만 독일의 국제연합(UN) 상임이사국 진출시도만은 극력 반대하고 있어요. 한때 독일제국의 황제를 다른 나라들의 반대를 물리쳐가며 비호했던 네덜란드가 이렇게 돌아선 데에는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서 독일 어딘가에 싹트고 있었던 반유태주의 및 나치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전조로서 이탈리아에서 후술하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당의 집권이라는 것이 이미 현실화된 상태였어요.
C. 아인슈타인 천문대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포츠담(Potsdam, Brandenburg)에 있는 아인슈타인 천문대(Einsteinturm)는 이름 그대로 상대성이론(Relativity)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독일의 물리학자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세워진 탑 형태의 천문대예요. 그리고 이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하여 1세기 뒤인 올해 2024년에 개장 100년을 맞이했어요.
이미지 출처
Einsteinturm, 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웹사이트, 독일어
이 천문대에는 에르빈 핀레이-프로이틀리히(Erwin Finlay-Freundlich, 1885-1964)가 설계한 태양망원경이 탑재된 것으로 1917년부터 건설이 구상되었지만 본격적인 건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서 1921년까지 기금모집과 거의 동시에 추진되어 완료되었어요. 설계자는 아르데코(Art Deco) 및 현대적인 유선형(Streamline Moderne) 스타일의 개척가로 유명한 독일의 건축가 에리히 멘델스존(Erich Mendelsohn, 1887-1953). 아인슈타인도 멘델스존도 모두 유태인에, 나치정권 수립이 본격화되자 독일을 탈출한 것도 똑같고 두 인물 모두 이스라엘의 건국에 관여하고 미국에서 생을 마치기도 했어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예의 천문대에서 일한 적이 전혀 없었는데다 미국에 귀화하여 동부에 정착했고, 멘델스존은 영국에 귀화했으나 미국 서부에 정착한 점이 달라요.
이 아인슈타인 천문대는 지금도 여전히 가동중이고 설치된 태양망원경도 엄연히 현역.
주의할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첫째는 에리히 멘델스존이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의 일족과는 성씨만 같을 뿐 혈연은 없다는 것이죠. 펠릭스 멘델스존의 가계 또한 유태인이지만 혼동할 수 있으니 이렇게 밝혀둘께요.
둘째는 지도에 나타난 위치, 해안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소재지인 포츠담이 속한 주인 브란덴부르크 자체가 바다에 닿지 않는 내륙지역이니 이 점도 꼭 염두에 두셔야 해요.
D. 비스마르크
철혈재상(鉄血宰相)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프로이센 왕국의 재상이자 독일제국의 초대 수상이 된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는 역시 19세기 후반의 유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신성로마제국 시대를 끝내고 프로이센 왕국 중심의 통일된 독일을 설립한 공신임은 물론이자 프랑스 주재 외교관 경력을 살려 유럽의 최강국이었던 프랑스를 모략으로 도발하고 군사력으로 항복시킨 희대의 권모술수를 발휘한 무서운 정치가인 동시에 근대적 사회보장제도를 고안하여 실행한 매우 유능한 정치가이기도 했어요. 특히 당시는 물론 지금도 당연히 상당한 장신인 193cm(=6피트 2인치)의 키 덕분에 사진 속의 그는 누구보다도 그 존재감이 돋보였어요.
이미지 출처
In color | Otto von Bismarck, 1871, 2021년 1월 11일 Marina Amaral 기사, 영어
그러나 그의 신중한 외교노선은 영국과의 정면대결도 불사하는 등 팽창노선을 강행하려던 16세 연하의 신임 황제인 빌헬름 2세의 눈밖에 나서 75세가 된 해인 1890년에 강제로 사직당했어요. 그 이후의 비스마르크는 만년을 보내며 저서 생각과 기억들(Gedanken und Erinnerungen)을 출간하며 폭주하는 황제에 대해 간언을 계속했지만 무시되었고, 1894년에 아내를 사별한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이듬해부터는 휠체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1898년 7월 30일에 83세로 영면했고, 그렇게 운명한 직후의 모습이 사진으로도 남아 있어요. 문제는 이 사진이 그의 사망 당일 유족들이 고인에 대한 마지막 경의를 표한 뒤 잠시 퇴실한 사이에 두 젊은 사진사인 막스 프리스터(Max Priester) 및 빌리 비케(Willy Wicke)가 비스마르크의 하인을 매수하여 저렇게 몰래 들어가 찍은 것으로, 역사상 첫 파파라치(Paparazzi) 사진으로도 평가되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20 ‘The Dead Bismarck’ by Daniel McClean, 2014년 1월 13일 VARIOUS SMALL FIRES 기사, 영어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꽤 엉뚱하게도 미국 노스다코타(North Dakota)의 주도이자 최대도시인 비스마르크. 1873년에 북대서양철도(Northern Pacific Railway)라는 미국의 철도회사가 미주리크로싱(Missouri Crossing)이라는 이름의 도시에 철도를 개통하면서 독일계 정착민 및 투자를 유치하려고 독일제국 수상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어요. 그렇게 비스마르크는 미국의 도시 이름으로 남아 있고 미국의 연방주의 주도 중 유일하게 외국의 정치가의 이름이 붙은 도시로 기록되고 있어요. 비슷한 경우로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외국 외교관으로 미국 독립전에 참전하여 영국군에 대한 승리를 달성한 1781년 요크타운 공방전(Siege of Yorktown)의 영웅인 프랑스의 귀족 라파이예트 후작 질베르 드 모르티에(Gilbert du Motier, Marquis de Lafayette, 1757-1834)의 후작 칭호가 여러 도시나 군함의 이름으로 채택된 것이 있지만 비스마르크의 경우처럼 주도에까지 채택된 경우는 없어요.
그 이외에도 비스마르크라는 지명은 미국, 호주, 멕시코, 남아프리카 등의 도시나 촌락의 지명으로 존속해 있다든지 있다든지, 덴마크의 역외영토인 그린란드나 영연방의 일원인 파푸아뉴기니의 산맥이나 도서지역이나 해역에 붙어 있긴 하지만, 독일에 있는 것으로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선조가 살았던 작센-안할트(Sachsen-Anhalt) 주 슈텐달(Stendal) 시 관내에 있는 인구 8천명 이내의 작은 마을이 유일해요. 그것도 비스마르크의 만년인 1895년에 붙어진 것으로, 비스마르크 본인이 그 마을의 명예시민 자격을 수여받은 게 알려져 있고 철자 또한 그의 성씨와는 미세하게 다른 Bismark로 되어 있어요.
E. 라인란트 독립선언 및 루르 점령
푸른 군복으로 상징되는 프랑스군이 국경 너머의 독일 서부지역인 라인란트(Rheinland)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강화조약이 체결된 다음달인 1918년 12월 1일부터. 그리고 그 상태에서 해가 지난 1919년 6월 28일에 독일을 위시한 각 패전국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을 묻고 전후처리를 규정한 베르사이유조약(Treaty of Versailles)이 체결된 것은 물론 라인란트협정도 조인되었어요. 그러나 독일이 전쟁배상금을 체납하자 프랑스는 1923년부터 탄광지대이자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인 루르(Ruhr)까지 점령했어요. 원래는 점령이 1935년까지 지속될 전망이었지만 독일측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어요. 1920년 3월에는 베를린(Berlin)에서 구 독일제국 해군 출신자들이 주동한 카프-뤼트비츠 폭동(Kapp–Lüttwitz Putsch)이 발생하는가 하면 루르에서는 그 해 3월에서 4월에 걸쳐 극좌세력의 루르폭동(Ruhraufstand)이 발생했고, 투입된 프랑스군의 다수가 세네갈이나 마다가스카르 등의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의 흑인으로 독일인 여성들에 대한 집단강간을 일삼아서 악명이 높았어요. 이것을 당시 독일에서는 "검은 불명예(Die schwarze Schmach)" 라고 부르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그런 프랑스군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더욱 드높였어요. 이것을 당시의 영국인 역사학자 에드먼드 딘 모렐(Edmund Dene Morel, 1873-1924)이 "라인강의 검은 공포(Black Horror on the Rhine)" 로 묘사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프랑스군의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라인란트의 사생아(Rheinlandbastard)" 로 불렸고 이후 독일에서 인종주의가 대두되면서 그렇게 태어난 혼혈아들도 박해의 대상이 되고 말았어요.
이미지 출처
„Schwarze Schmach“ – Schwarze Soldaten und Kinder am Rhein, 2023년 3월 23일 BELL TOWER NEWS 기사, 독일어
이 사진 속의 흑인들이 루르 점령 당시의 프랑스군의 장병이었어요.
이 점령에 참가한 나라는 프랑스 이외에도 여럿 있었어요. 의외로 태국군이 독일에 주둔했다는 것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대중적으로는 생경할 게 분명해요. 가장 먼저 1919년에 철수했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미군이 1923년에, 영국군이 1926년에, 벨기에군이 1929년에 철군했고 프랑스군이 1930년에 최종적으로 철군하면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의도한 1935년까지의 점령은 5년 일찍 종료되었어요.
F. 프라하 대학교
유럽의 유서깊은 대학 중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 프라하 대학교.
1347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4세(Karl IV, 1316-1378)의 칙령으로 세워진 이 대학교는, 과거 소르본(Sorbonne)이라고도 불렸고 건학연도가 1045년으로까지도 거슬러올라가는 파리대학(Université de Paris)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설립이후 단절 없이 계속 운영중인 역사가 가장 긴 대학으로서는 10번째를 기록하고 있어요. 참고로, 칼의 라틴어 표기가 카롤루스(Carolus), 체코어 표기가 카렐(Karel), 영어표기가 찰스(Charles)이다 보니 각 언어로 된 대학의 이름도 독일어로는 칼스우니베르지테트(Karls-Universität), 라틴어로는 우니베르시타스 카롤리나(Universitas Carolina), 체코어로는 우니베르지타 카를로바(Univerzita Karlova), 영어로는 찰스 유니버시티(Charles University)로 불리고 있어요.
오랜 역사만큼이나 아름다운 건물로 유명한 이 대학의 상징 하면 철학과 건물을 꼽을 수 있어요.
이미지 출처
Univerzita Karlova chce zlepšit přípravu středoškolských učitelů, 2019년 6월 21일 Novinsky,cz 기사, 체코어
이 대학 출신의 유명인으로서는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 1372-1415), 혈액형의 발견자 얀 얀스키(Jan Janský, 1873-1921), 신비주의 경향이 강하고 독문학에서 큰 지위를 차지하는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법학자이자 법철학자로 헌법과 국제법 분야에서 모두 중요하게 언급되는 현대의 법학자의 원로 한스 켈젠(Hans Kelsen, 1881-1973),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시각으로 유명하고 "변신(Metamorphosis)" 등의 대표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지녔고 체코 민주주의의 대변자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에서는 홍차 브랜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 카렐 차펙(Karel Čapek, 1890-193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칼 1세(Karl I, 1887-1922), 오늘날의 국제연합(UN) 설립의 기초를 다진 국제관계학자 칼 도이치(Karl Deutsch, 1912-199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유명한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년생),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첫 부인이었던 사업가 이바나 트럼프(Ivana Trump, 1949-2022) 등이 있어요.
G. 베르당 요새
프랑스 동부의 두아몽(Douaumont)에 설립된 이 요새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요. 일단 가장 표준적인 이름은 두아몽 요새(Fort de Douaumont)이고 간혹 제라르 요새(Fort Gérard)로 불리기도 해요. 베르당 요새라는 통칭은 예의 요새가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패배하여 프로이센에 동부의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프랑스어, Elsaß-Lothringen/독일어)을 뺏기고 난 이후 동부의 거점도시 베르당(Verdun)을 방어하기 위해서 1885년에서 1913년에 걸쳐 지어진 데에서 유래해요. 그런데 30,000평방m(=7.41에이커) 규모의 이 거대한 요새는 이미 1915년에 프랑스군 참모총장이 감마게레트(Gamma-Gerät)로 통칭되던 독일군의 420mm 공성포를 견디지 못한다는 결론을 낼 정도로 문제점이 있었는데다 베르당 전투가 일어난지 1주일도 못된 1916년 2월 25일에는 91명 규모의 독일군 특수부대의 습격을 받아서 점령당해버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어요. 그것도 독일군이 굴을 파서 요새 내부까지 침투한 뒤 열린 창문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점령해 버린 것이었어요. 결국 이 요새는 1916년 10월 24일에 프랑스군이 수복하기는 했지만, 수만명의 전사자를 낸 뒤였어요.
이미지 출처
DOUAUMONT VAUX FORT OF VAUX, Tourisme Grand Verdun 웹사이트, 영어
프랑스의 이런 요새에의 집착은 전쟁장관 앙드레 마지노(André Maginot, 1877-1932)의 주장에 따라 동부국경선 전체를 방어하는 마지노선(Ligne Maginot)이라는 거대요새로 이어졌어요. 그러나 1929년에서 1938년까지 지어진 이 거대한 요새도 항공전력의 발전, 벨기에로의 우회 및 삼림지대인 아르덴느(Ardennes)를 통한 기갑부대의 진격이라는 독일군의 창의적인 전술로 인해 결국 쓸모없게 되고 말았어요.
H. 곤돌라
물의 도시 베네치아 시내 곳곳을 이동하는 데에는 역시 곤돌라(Gondola)라고 불리는 배가 적당하죠.
이미지 출처
(베네치아의 곤돌라 세레나데, Tripadvisor 웹사이트, 일본어)
곤돌라는 기본적으로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어요. 과거 형형색색으로 도색하는 등 사치가 횡행해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요.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그게 무슨 말같은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염료(染料) 및 도료(塗料)는 전근대사회의 기술력으로는 매우 확보하기 힘들었는데다 설령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깨끗한 발색이나 세정 등이 어려웠다는 사정을 이해하면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예요.
조금 더 나가자면, 표백제(漂白剤, Bleach)가 대량생산가능해지면서 화학공업은 본격적인 산업이 되었어요. 클로락스(Clorox)로 대표되는 염소계 표백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황산(硫酸, Sulfuric Acid)을 대량생산할 수 있어야 했고 이것을 위한 설비로서 유황을 태워 그 발생하는 기체를 물에 녹이는 설비의 소재로서 산과의 반응성이 없으면서도 값싼 납을 사용하는 연실법(鉛室法)이 실용화되어 황산의 상업생산이 시작된 게 1859년의 일이었어요. 원리 자체는 1746년에 영국의 화학자 존 로벅(John Roebuck, 1718-1794)이 발명했지만.
I. 다눈치오의 피우메 원정
이탈리아의 귀족으로 육군장교이자 문인이기도 했던 가브리엘레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 1863-1938)는 1889년에서 1910년까지는 이탈리아의 문학계를 중진으로서 그리고 1914년에서 1924년까지는 정계의 거물로서 활약했던 인물로, 1918년 8월 9일에는 그가 이끄는 복엽기 11대 규모의 항공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상공을 비행하면서 각종 전단을 살포하는 등 항공전의 역사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겼어요. 비엔나 상공에서 투하된 5만장 이상의 전단에 쓰여진 문장 또한 명문장가였던 그가 직접 쓴 것이었지만 이탈리아어로만 쓰여졌고 독일어로는 번역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음악의 도시인 비엔나 시민들이 이탈리아 왕국의 국기가 인쇄된 그 위에 쓰여진 이탈리아어 메시지를 읽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었고, 비엔나 시민들은 바로 동요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같은 내용을 담은 독일어 번역 전단이 더 많이 뿌려지면서 그의 심리전은 성공했어요.
이미지 출처
9 agosto 1918: il Volo su Vienna, 2016년 8월 9일 LA STAMPA 기사, 이탈리아어
다눈치오는 이탈리아 내셔널리즘의 지지자로서, 1919년 9월 12일에는 현재의 크로아티아의 리예카(Rijeka)인 피우메(Fiume)에 카르나로 이탈리아집정령(Reggenza Italiana del Carnaro)라는 미승인국을 설립하여 본인이 지도자를 의미하는 두체(Duce)를 참칭하기도 했어요. 이것은 1919년 1월 18일부터 개최된 32개국 외무장관의 회의인 파리강화회의(Paris Peace Conference)에 반발하여 일으킨 쿠데타의 소산이기도 했어요. 결국 1920년 12월 24일에 피의 크리스마스(Natale di sangue) 사건이라는 이탈리아 정부군과 다눈치오의 사병이 전투를 벌였고, 결국 이탈리아 정부군이 이기면서 다눈치오가 실각해 버리고 예의 집정령도 해체되었어요.
그런데 그가 일시적으로 몰락했지만 결코 완전히 몰락한 건 아니었어요. 사실 그의 이탈리아 내셔널리즘은 후술하는 베니토 무솔리니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보니 역설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1922년에는 누군가의 공격으로 창문 밖으로 내던져지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건지고, 1924년에는 당시의 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Vittorio Emanuele III, 1869-1947)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아서 몬테네보소 대공(Principe di Montenevoso)에 봉해졌을뿐만 아니라 1937년에는 이탈리아 왕립한림원(Reale Accademia d'Italia)의 총재로 임명되기도 했어요.
J. 빨간망토 여기에 상륙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
이 항목의 설명에 앞서 빨간망토(赤毛布)라는 관용구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야겠어요.
사실 일본에서는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영국산 빨간 담요가 전국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었어요. 사실 이 유행은 인도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었지만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영국에서는 인도에서 이미 그 영국산의 빨간 담요가 유행했으니 같은 아시아인 일본 또한 같은 색의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일본에 수출한 것이었는데 일본에서 그 도박이 성공하여 일본의 집집마다 그런 담요가 구비된 것이었죠. 그리고, 당시 일본의 농어촌 사람들이 그 담요에 끈을 달아서 망토로 개조하여 도쿄 여행 때 겉옷으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보니 빨간망토란 즉 "지방출신" 이라는 뜻으로도 통했고, 아예 "촌뜨기" 내지는 "촌놈" 이라는 함의까지 담기도 했어요. 발음 또한 아카모후가 아니라 아카겟토(あかげっと). 담요의 영단어인 블랭킷(Blanket)이 어원으로 보이기도 해요.
문제의 그 만화는 바로 1900년에 출간된 쿠마다 소지로(熊田宗次郎)의 양행기담 빨간망토. 표지 또한 예의 그 영국산 빨간 담요의 패턴 그대로예요. 여기에는 당대 일본의 정치가, 학자, 군인 등을 망라한 57명의 명사가 미주 및 유럽을 다니면서 겪은 실패담이 165페이지 규모로 수록되어 있고, 5편에 언급된 후쿠시마 야스마사(福島安正, 1852-1919)가 독일 베를린에서 버터를 아이스크림인 줄 알고 먹었던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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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행기담 빨간망토, 일반사단법인 J밀크 낙농유업사 디지탈아카이브 웹사이트, 일본어)
K. 도박을 전업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왕국
모나코는 1215년에 후술하는 제노바(Genova)의 식민지로서 설립되어 1297년부터 그리말디(Grimaldi) 가문이 지배하고 있는 공국(公国)으로 공식적인 국명도 모나코공국(Principauté de Monaco/프랑스어). 현재의 도시국가의 형태로 된 것은 1860년의 토리노조약(Traité de Turin/프랑스어, Trattato di Torino/이탈리아어)의 결과 모나코를 둘러싼 니스지방(Comté de Nice/프랑스어, Contea di Nizza/이탈리아어)이 프랑스로 귀속되면서부터였어요. 이전에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된 역사가 있었던 모나코는 이 토리노조약으로 다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어 공용어도 이탈리아어에서 프랑스어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프랑스군이 모나코의 대외안보를 담당하고 있어요.
모나코의 주력산업인 도박은 1865년에 개장된 몬테카를로 카지노(Casino de Monte-Carlo)가 그 기원이고, 이외에도 금융업이 매우 발달해 있어요. 특히 유럽 역내의 몇 안되는 조세피난처(Tax Haven)이자 바다에 닿아 있는 점도 특히 유리하다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유럽의 소국인 룩셈부르크(Luxembourg),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및 안도라(Andorra)도 조세피난처로 각광받고는 있지만 그 국가들은 모두 내륙국이라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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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ied History and Allure of the Monte-Carlo Casino, 2023년 3월 29일 GRACE de MONACO 기사, 영어
카지노산업 이외에도 모나코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요트운용에 특화된 항만시설인 마리나(Marina), 1950년부터 공도에 임시로 설치되는 3,337m 길이의 F1 레이싱트랙으로 흔히 몬테카를로서킷으로도 잘 알려진 모나코서킷(Circuit de Monaco), 그리고 프랑스의 가수 쟝-프랑수아 모리스(Jean-François Maurice, 1947-1996)의 1978년 발표곡인 모나코가 있어요. 영상도 소개해 볼께요.
L. 무솔리니를 친왕으로 삼아 대활약중
이미 이 지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언급되어 있는 게 여러모로 눈에 띄여요.
무솔리니는 1922년에 이탈리아 왕국의 총리가 되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사실상의 친왕(親王)같은 지위를 얻었어요. 친왕이란 군주의 일가 중 차기 군주가 될 태자 다음가는 지위의 남성에게 부여되는 직위. 즉 그야말로 이탈리아 내에서는 왕과 태자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지위의 인물이라는 뜻이죠.
또한 그는 1919년에 창당된 국가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의 당수(党首)로서 이탈리아의 폭주를 가속한 독재자로서의 면모를 이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지도의 발행시점에서 5년 뒤에는 교황청과 라테라노조약(Patti Lateranensi/이탈리아어, Pacta Lateranensia/라틴어)을 체결하여 이탈리아 반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교황령을 이탈리아로 귀속시키는 동시에 이탈리아가 로마 시내의 바티칸교황청의 자체사무 이외의 사무를 통괄하는 방식으로 종교국가로서의 이탈리아의 역사를 종식시키기도 했어요. 파시즘(Fascism)의 싹은 이미 이때부터 태동했는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고 왕정까지 모두 폐지되었지만 바티칸 및 이탈리아 각지의 몇몇 문화유산을 제외한 교황청의 지배력이 사라진 것은 좋든 싫든 무솔리니 시대의 잔영으로서 현대에도 영향을 변함없이 미치고 있어요.
양산을 든 대머리 아저씨가 바로 그 무솔리니를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그 양산 안쪽에 쓰여져 있는 3어절의 한자어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어요. 국수주의(Chavinism)의 그 국수(国粋)는 파악되는데.
M. 해파리는 지중해 최고의 명물
이것에 대해서는 역시 이미지를 보여 드리는 게 이해가 가장 빠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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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Méduse-Cotylorhiza-tuberculata©F.Limena-TaraExpeditions-, 2017년 9월 12일 Ocean & Climate Initiatives Alliance 기사, 영어
지중해의 대표적인 해파리 하면 코틸로리자 투베르쿨라타(Cotylorhiza tuberculata)라는 학명으로 잘 알려진 지름 40cm(=16인치) 가량의 지중해해파리가 있어요. 특히 여름에 많이 번식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지중해의 사계절을 다채롭게 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보통의 다른 해파리와 달리 일부의 극히 민감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무해하여 대량증식하는 때를 제외하면 지중해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때에도 위협적이지 않아요.
이 항목을 작성하면서 혼동한 게 있어서 추가로 언급할께요.
사실 2024년 2분기에 재미있게 시청했던 애니 중 밤의 해파리는 헤엄칠 수 없어(夜のクラゲは泳げない, 공식사이트/일본어)가 있어요. 이 애니의 주인공인 여고생 코우즈키 마히루(光月まひる)는 우미츠키 요루(海月ヨル)라는 이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것의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었는지 해파리의 일본어 어휘인 쿠라게(クラゲ, 海月)의 한자표기를 생각없이 우미츠키로 읽고 처음에 번역을 "바다에 뜬 달" 이라고 오역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정정하기도 했어요.
N.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Marathon)이라는 스포츠는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역사학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이 추진한 프로젝트로서 1896년에 시작된 근대올림픽 1회부터 채택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거리 육상스포츠로, 오늘날의 거리인 42.195km는 1921년 5월에 당시의 국제아마추어육상연맹(International Amateur Athletic Federation)이 1908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사용되었던 코스의 길이를 채택하면서 확정된 이래 1세기가 넘은 표준으로 정착해 있어요.
사실 이 스포츠의 이름은 기원전 490년 9월 10일에 있었던 마라톤 전투에서 유래하고 있어요. 그리스의 마라소나스(Μαραθώνας)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Ἀθῆναι) 및 플라타이아(Πλάταια)의 1만여명을 근소히 넘는 연합군이 대략 25,000명 규모의 페르시아제국의 군대를 패퇴시키면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 전환점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피디피페스(Φειδιππίδης, 530BC-490BC)라는 인물이 아테네까지 달려 승전보를 전한 직후에 아테네에서 쓰러져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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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Running in the footsteps of Pheidippides, 2023년 10월 14일 Financial Times 기사, 영어
이렇게 장소를 따서 명명된 것은 마라톤 이외에도 대표적인 것으로 구리의 라틴어인 쿠프룸(Cuprum)이라든지, 백금의 라틴어인 플라티눔(Platinum) 등의 것도 있어요. 구리의 주산지로 잘 알려진 그리스 남부의 섬나라 사이프러스(Cyprus)가 어원이 되고, 또한 대항해시대 당시 지금의 아르헨티나의 라플라타강(La Plata)에서 발견된 금속 또한 그 강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어요.
그 다음은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항목. 1부터 23까지 23개 항목이 있어요.
지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는 감각으로 보시면 23번 항목의 비엔나가 지도 중앙에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어요. 그 순서를 따르시면 읽기 편리하니까 추천드릴께요.
여기서부터는 15편인 동부 및 중부유럽편(하)에 이어서 진행될 예정이니까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려요.
그럼, 15편에서 뵈어요!!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3 댓글
Lester
2024-10-25 01:36:49
일도 일이지만 스트레스 탓인지 수면 패턴이 박살나서 한국어도 영어도 도저히 눈에 안 들어오네요. 게다가 유럽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도에서 강조된 요소들이 처음 듣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당황했던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감상은 별로 영양가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A. 앤트워프는 어렴풋하지만 다이아몬드 관련해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찾아보니 다이아몬드 거래소가 4개나 있고 '다이아몬드 구역'이 따로 있을 정도로 다이아몬드 관련 사업이 발달했으며 그 때문인지 안트베르펀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도 있었다고 하네요. 일본-유럽 항로의 종착점이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만, 당시 일본에 난학(네덜란드 학문)이 퍼져 있었단 것 정도는 알기에, 그만큼 양국 간의 교류가 적극적이었겠구나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B. 빌헬름 2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네덜란드가 어째서 독일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는지는 이해가 되네요. 개인간의 갈등도 오래 가기 마련인데, 하물며 국가 간의 갈등은 얼마나 오래 갈지... 당장 한일관계도 그런 상황이고 말이죠. 한편으론 똑같이 나치 독일에게 시달렸던 폴란드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C. 아르데코 양식은 마이애미가 취향이라 이것저것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마이애미에서 자주 보였던 양식이라 은근히 친근하고 낯이 익네요. 한편으론 텔레토비에 나오는 동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인슈타인은 1차대전 종전까지는 독일에 있었지만, 말씀하신 대로 히틀러의 수상 등극과 함께 나치당의 횡포가 가시화되자 미국으로 망명했으니 이 천문대하고는 인연이 없었겠다 싶네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인슈타인의 서적을 불태웠던 것을 감안하면 아마 설립 당시엔 다른 이름이 있었고 나중에서야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위인의 이름 붙이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로켓 개발의 대명사격인 베르너 폰 브라운도 '이유야 어쨌든' 나치 독일에 협력한 사실 때문에 몇몇 건물에서는 그 이름이 삭제되기도 했다네요.
D.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하고 알려진 사실도 많죠. 일단 이름부터가 무지 세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고등학교 매점에서 기다란 빵을 팔았는데 어째서인지 그 빵 이름이 '비스마르크'여서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만화 "심야식당"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는 '비스마르크풍'이라고 해서 달걀 프라이를 곁들이는 요리 방식이 있다더군요(참고). 만화가 만화라 해당 에피소드는 우스꽝스럽게 끝났습니다만... 그런 철혈재상조차 임종 당시의 사진을 보니 역시 인간이었다 싶기도 하고... 뭔가 인생무상이 느껴지네요.
E. 라인란트는 몇 번 들어봤지만 자세히는 몰랐는데, 루르란 이름은 2차대전의 불씨가 된 광산지대라고 많이 들어봤죠. 그리고 그 둘이 엮여 있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았네요. 그리고 프랑스군의 다수를 차지한 식민지 출신 흑인들이 독일인 여성들에게 집단강간을 일삼았다는 건... 음... 뭐라고 평가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프랑스 본토인들이라면 그래도 1차대전의 원한 때문이라고 (옹호가 아니라)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식민지 흑인들이 그랬다는 건... 대체 무슨 배경이 있는 걸까요?
F. 먼나라 이웃나라를 비롯해 카롤루스 대제를 샤를마뉴 대제라고 표기한 책이나 기록도 많았죠. '샤를마뉴 대제'는 '샤를 대제 대제' 혹은 '샤를 마뉴 마뉴' 정도의 겹말이라는 건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래도 재미있네요. 프라하 대학교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프란츠 카프카는 아는 게임회사 대표님의 최신작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반갑네요. 올해(2024년)가 카프카 100주년(1924년 사망)이라 최신작의 주제를 카프카로 삼으신 것 같아요. 언급하신 카프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변신"과 카프카의 일생을 섞은 게임이라고 합니다. 의리의 힘으로 사전예약을 해서 다운받긴 했는데, 일 때문에 플레이할 틈이 없네요.
G. 어감이 익숙하다 싶어서 찾아봤더니 역시 '베르됭 조약'의 그 베르됭이 맞군요. 당시엔 베르당 요새가 있지도 않았겠지만... 한편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가 알자스-로렌을 뺏겼다는 점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기도 해서 기억나네요. 이것도 교과서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어 말살과 엮어서 프랑스어의 소중함을 내비치는 쪽으로 해석하긴 하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프랑스가 독일어를 말살하려고 드는 정반대라고도 하고... 반면에 마지노선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많이 쓰여서 너무 잘 알고 있죠. 정작 제대로 써먹은 적이 없어서 이것도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에 해당하지만요.
H. 곤돌라의 매력은 베네치아의 SF(?) 버전인 네오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삼은 만화 "ARIA"에서 잘 드러나죠. 해당 작품은 카니발이라든가 하는 이탈리아 문화도 가끔 언급되는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치유물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ARIA"에서도 수상 택시 회사는 저마다 문양과 색깔이 두드러지지만 곤돌라만큼은 수수한 검은색이죠. 소라였나 하는 걸 엄청나게 긁어모아서 만든 보라색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염료와 도료의 생산이 버거웠다는 것도 어딘가에서 읽어서 잘 알고요. 그래서 purple에 고귀하다는 의미가 있다고도 하고.
I. 다눈치오에 대해서는 이번에서야 처음 듣지만, '두체를 참칭했다'는 점은 무솔리니와 흡사해서 어쩐지 친숙하네요. 정확히는 몸소 전단을 뿌릴 만큼 무솔리니보다는 유능한 편이었고, 그렇기에 무솔리니가 다눈치오를 따라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문제의 전단은 이탈리아어가 영어와 뿌리가 같아 유사점이 있기에 대충 읽을 수는 있겠네요. 자유 만세, 이탈리아 만세... 마지막의 intesa는 뭔지 모르겠지만요.
J. 빨간 망토 차차와 무슨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관용어구가 있군요. 일본어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표현 중 '생판 남'에 해당하는 '새빨간 타인(赤の他人)'이 있는데, 이것도 빨간 망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찾아보니 아니라네요)
K. 모나코 하면역시 도박과 레이스죠. 올리신 사진에 나오는 카지노가 어쩐지 꽤나 익숙하다 싶었는데, 게임 "오버워치 2"에서 새로 추가된 맵인 "서킷 로얄(Circuit Royal)"의 공격팀 시작 지점과 완전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그나저나 같은 조세피난처여도 바다와 인접하면 어떤 점에서 더 유리할까요? 교역 루트가 다각화돼서 그런 걸까요?
L. B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특정 국가의 패악질에 대한 인식은 꽤나 오래 가는 법이군요.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무솔리니가 들고 있는 양산의 글자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집단'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보다 데포르메 처리된 무솔리니의 자세가 묘하게 우산을 들고 곡예를 부리는 일본 전통 예능인 같아서 더 마음에 걸리네요. 무슨 의도로 그렇게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요. 1924년에 발행된 지도니까 1945년에 총살되어 시체가 전시된 무솔리니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어쩐지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M. 뭔가 해파리치고는 말미잘이나 버섯에 더 가까워 보이네요. 그리고 해파리의 일본어 한자인 海月은 '바다에 뜬 달'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군요. 뭔가 적절해 보입니다. 영어로는 jellyfish인데 이것 또한 말랑말랑한 해파리에 어울리기도 하고요. 게다가 일본어도 영어도 둘 다 '의지가 약한 사람, 줏대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도 재미있네요.
N. 마라톤 하면 역시 와글와글하면서 달리는 사람들이 떠오르죠. 순위보다는 완주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유래가 된 전설을 감안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마라톤 하니 생각났는데, 일본의 '카나쿠리 시조(金栗四三)'는 경기 중에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인근 농가에서 치료받느라 '실종' 처리됐다가, 1967년(스톡홀름 올림픽 개최 55주년)에 75세의 나이로 54년 8개월 6일 8시간 32분 20.3초만에 완주한 것으로 유명하죠. 여기까지는 일요일 아침의 서프라이즈를 통해 알고는 있었는데, 오사카 도톤보리 강의 글리코맨이 그 카나쿠리 시조를 모델로 했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 완료(공식적으로는 DNF, 완주 실패) 처리했지만 일본 마라톤계의 대부라고 불린다고 하니 여러모로 인간승리 같네요.
지역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에서 코멘트해 보겠습니다.
마드리갈
2024-10-25 23:40:17
[내용추가중]
마드리갈
2024-10-25 23:59:37
[내용추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