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갑자기 불안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기원이 언제인가를 짚어 보니 대략 고등학생 때였나 그랬습니다.
그때 일어나는 각종 사고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일어나는 각종 대형 교통사고에, 교량, 백화점 등이 붕괴되는 사고 등 여러가지. 그리고 그때 나이의 2배를 넘은 지금도 최근에는 각종 대형사고로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때에 비해서 지금은 인터넷도 발달했고 세계가 하나의 정보망으로 좁혀져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요.
변한 것들은 몇 가지의 화려한 외연 뿐이고, 매일매일의 생활의 안전을 담보하는 부문에서는 본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는 건가, 그렇다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문제인 것인가, 그리고 그 문제가 하드웨어의 문제인 건지 소프트웨어의 문제인 건지 끝없는 회의에 빠집니다. 게다가 더욱 무서워지는 것은 다음의 재해의 피해자는 저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과거 큰 사고가 났던 곳도 간혹 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잠시 서서, 그 사고가 났던 때의 참혹한 순간, 그리고 그 사고 이후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현재의 순간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 이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고 있습니다. 세상이야 무상하니 설령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것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큰 사고가 난 이후로는 특히 그 전후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 기억하는 이 순간이 먼 훗날에는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이렇게 느껴지는 불안이 푸쉬킨의 그 유명한 시에서처럼 당연한 것일까요.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인 게 이게 숙명인 것인지.
지금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먼 훗날 그리워진다면 천만다행이겠지만, 갑작스런 사고 등으로 일거에 여기까지가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떨리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평온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오늘이 내일, 모레,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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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고래
2015-05-04 23:00:34
하도 안 좋은 일이 툭하면 터지니까, 이젠 "언젠간 무슨 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나"같은 생각까지도 하죠. 아니, 심지어는 "그냥 어떤 마인드로 그냥 이걸 '당하고' 있어야하나"같은 생각도 들어서...
확실히 불안하다 못해 그냥 생각을 그만두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는 세상이 된 거 같기도 해요.
그냥 오늘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게 다행이죠.
SiteOwner
2015-05-04 23:31:37
불안한 일상이 끊이지를 않으니, 평온하게 시작하여 마치는 오늘 하루가 정말 소중하기 그지없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너무 피로해지는 상황도 막으려고 합니다. 갑자기 곯아떨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경계되다 보니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절제하기도 합니다. 내일 또다시 밝은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서.
한번의 진수성찬을 먹고 나머지 날을 굶느니, 매일 소박한 식사를 하겠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조커
2015-05-05 14:58:50
가끔은 오늘만 살아간다 라는 표현이 도움이 되는때도 있겠지요.(대부분 좋지 않을때 쓰이는 표현이지만요.)
사실 한치앞도 못보는 게 1분..심지어는 1초후의 미래잖습니까. 지나친 걱정은 건강에 좋지 않지요.
저의 경우엔 어....그....제 친구 4녀석이 한달의 한명꼴로 저승으로 호적을 옮긴 당시에도 불안으로 가득찬 마인드땜에 하루하루 사는게 무지 피곤하고 불편했지만 말이죠.
지금이야 "내 수명대로 주어진 삶 충실이 못살고 이게 무슨 짓이야"싶어서 억지로라도 나는 오래살거야 잘될거야 식으로 낙천가의 마인드로 살다보니 참...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SiteOwner
2015-05-06 22:58:48
걱정만 할 수도 없고, 그냥 방심할 수만도 없고...그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게 참 어렵긴 합니다.
조커님의 말씀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친구분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점에 대해 애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10대 때의 친한 친구 중 생존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1994년부터 2008년에 걸쳐서...지금도 생각나고 있다 보니 어떻게든 그 친구들이 살지 못한 몫까지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프레지스티
2015-05-05 15:21:55
이미 읽어보셨을지도 모르고 아직 살아온 나날이 그다지 길지 않은 저로썬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저도 사실은 어릴 적에는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요.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그건 그저 기우에 불과하다며 별 신경쓸 것 없다는 이야기만 듣곤 했지만요.
그런데 키토 모히로란 작가분의 만화 우리들의를 보면서 나름대로 저런 생각이 정리가 되었어요.
우리들의 이 만화는 정말 끔찍한 만화에요. 중학생 소년소녀들이 한 남자의 말에 이끌려 로봇 게임을 시켜준다는 말에 계약을 하게 되는데, 사실 그건 게임이 아니라 진짜로 일어나는 현실의 로봇 전투이고, 만약 이 전투에서 질 경우에는 우주가 멸망하고 이긴다 하더라도 조종한 파일럿은 사망하게 되어있는 극단적인 원칙을 설정해뒀지요. 그리고 로봇은 소리소문 없이 정해지지 않은 곳에 나와서 갑자기 전투가 시작되는거라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대피도 하지 못한채로 숨을 거둔다고 확실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싸우는 과정에서 도시와 도로 건물이 파괴되어가는 과정도 냉정하게 표현했구요.
그런데 그 사이에서 나오는 여러 사람들(주역인물이건 조연이건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이)이 이러한 참사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가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등등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뭔가 위안이 되었어요. 이 작품에서 나오는 사회상은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는데, 내가 사는 사회는 그 정도는 아니니 그나마 이 정도면 낫다. 이런게 아니라, 정말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의 비극과 죽음에 대해서 계속 무심해지는 현실에 대해서 계속해서 호소하는 느낌이 들어요. 꼭 읽어보라고 강권할 작품까지는 아니고, 강권할 권리가 저에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참조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SiteOwner
2015-05-06 23:03:30
사실 사회의 많은 변수들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어떤 개인은 갑작스럽게 죽더라도 거의 주목받지 못합니다. 당장 저조차도 대단한 인물은 못 되는 터라 저의 존재를 아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현 시점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어느 한 사람에 불과한 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낙담만 해서는 안되겠지요.
좋은 만화작품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Lester
2015-05-07 02:57:28
흠. 저는 어렸을 적에 너무 많은 긴장과 불안을 겪었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주 많이 전달받은 탓인지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습니다. 케 세라 세라가 아니라, 그냥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사는 거죠. 달관? 득도? 초월? 하지만 주인장님이 제안하신 상황에 나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따져보니, '그렇게 휘말려 죽은들 어떠하리, 내 인생이 그런 거라면 어떠하리' 같은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물론 '그렇게 죽기는 아깝잖아'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단순히 '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하고 죽기보단 살아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인거죠.
뭔가 위의 말과 모순되는 것 같긴 한데, 어느 쪽이 본심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SiteOwner
2015-05-07 23:02:15
긍정도 부정도 하지도 않는다...이런 답도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그냥 죽기에는 아까운 게 인생입니다. 아직 계획한 것의 절반은 커녕 1할도 달성하지 못한 것인만큼, 잘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모순되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인생의 마지막의 유경험자가 없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주인장이라 불리니 갑자기 나이를 많이 먹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 중년으로 불릴 나이는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