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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 대한 몇몇 이야기 (上)

마드리갈, 2013-06-25 15:55:57

조회 수
290

오늘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지 63년이 되는 해이고, 그때 청년이었던 참전용사가 80대, 90대가 되어 있는 시점이기도 해요.

이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몇몇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1. 한국전쟁이라는 용어

역사를 사실 그 자체보다 역사가의 해석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역사에 관점이 강조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라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편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저격당했다" 라는 표현은 용납하지 못해요. 왜냐면 한국의 관점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정치를 통해 한국의 외교적 능력 상실을 이루어낸 인물이니까 좋게 볼 수 없지요. 그래서 후자의 표현같이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피해자임을 드러내는 이 관점에는 동의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관점이 강조되는 역사 속에서 유독 이상하게 6.25 전쟁만큼은 그 관점이 배제되는 듯해요. 그냥 영어의 Korean War, 일본어의 朝鮮戦争의 역어인 한국전쟁이라고 해야 지성인으로 여겨지는 듯한 풍토가 암묵적으로 정착한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이것을 그냥 내전인 것으로 축소시키거나 하는 관점도 팽배해요.


우리가 침략을 당했고, 실질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전쟁을 마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듯한 식으로 부르는 "한국전쟁" 용어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인이 아닌 다른 외국인들은 제3자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요.



2. 진보적(?) 견해에 몇마디

흔히 6.25 전쟁에 대한 논의가 있으면,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펼치는 논리에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 조국해방전쟁
  • 남침은 맞지만 사실은 북한에 대한 도발 결과로 발생한, 내부모순의 결과
  • 냉전의 대리전

조국해방전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종북주의자들의 헛소리인데다 오래전에 논파되어서 사실 논할 가치도 없어요.

진보를 자처하는 어떤 자는, 국제연합의 개입이 없었다면 1개월 이내로 조국해방전쟁이 마무리되었고 전사자도 1만명 내외로 끝났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복사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전쟁이라는 상황을 너무나도 쉽게 보는 데에서 그들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어야겠어요.


브루스 커밍스의 남침유도설은 한때 운동권들 사이에서는 진리처럼 추앙되었지만 이것은 생명력을 잃었어요.

그 주요원인은 소련의 붕괴. 이 과정에서 수많은 비밀문서들이 해금되었고, 6.25 전쟁의 원인은 모순도 남침유도도 무엇도 아닌 처음부터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김일성의 침략야욕임이 드러났으니까요. 그리고 스탈린과 모택동은 그 김일성의 야욕을 지원해 주었구요.

사실 웃기는 게, 이 남침유도설대로 해석하자면 북한은 미국의 도발에 놀아난 비주체적인 행위자가 되거든요. 그럼 능동적으로 조국해방전쟁을 했다는 주장도 깨지고, 한국의 북침을 방어하기 위해 개전했다는 주장도 논파되거든요. 결과적으로 북한은 침략자가 되어요. 전간기 정세가 어떻게 되었던 나치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듯이. 그래서 그 남침유도설 자체는 북한을 침략자로 확정해 주는 효과가 생겨요. 역시 공부 안하고 데모나 하는 운동권이니 스스로 그 논리가 자승자박이라는 것도 모르나봐요.


냉전의 대리전이라는 게 그나마 학술적으로 상당히 논할 만하게 보이긴 하지만, 이것도 사실 굉장한 모순이 있어요.

보통 한국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고, 북한의 배후에는 소련과 중공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한국에는 박정희 정권, 북한에는 김일성 정권이라는 독재정권이 설립되어 미소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등의 논지가 전개되어요. 그럴듯해 보이죠? 하지만 사실관계가 많이 틀려 있었어요.

일단 광복 직후 한국은 최소한의 국방도 달성하지 못할만큼 허약한데다 각종 반란, 폭동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러한 소요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것이었어요. 그리고 미군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상륙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주둔해 있다가 1949년에는 철수했어요. 그리고 1년 뒤에 6.25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 유명한 애치슨 라인도 아주 무심하게 쉽게 그어진 것이었구요. 반면에 북한의 경우는 처음부터 침략전쟁을 위하여 면밀한 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일본에 주둔중이던 미군 중 선발대인 스미스부대가 한국에 파견되지만 전멸당하고,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참전하지만 지리멸렬한 채 1950년 8월에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게 되어 거기서 포격과 폭격으로 산을 깎고 시체로 다시 산을 쌓는 전투를 거듭해요.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침략군을 몰아낼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무슨 냉전의 대리전을 할 것 같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한국이 일방적으로 밀리게 해 두었을까요? 그래서 이건 냉전의 대리전도 아니고, 북한이 주도하고 소련과 중공이 후원한 침략전쟁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침략전쟁을 겪은 후의 한미동맹의 체결 및 국방력의 강화는 대리전도 무엇도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의 선택이었어요. 이걸 그냥 도식적으로 냉전의 대리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학술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올바른 역사인식 관점도 아닌 거예요.



(하편에 계속)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HNRY

2013-06-25 16:54:33

1.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곱씹어 보면 꽤 깊은 단어로군요. 주변에선 그냥 6.25랑 혼용되고 있었는데……다만 한국전쟁이라고 불러야 지성인인 듯한 풍토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었습니다. 신문이나 TV는 어떨 지 모르지만.


2. 그거……아무리 생각해 봐도 종북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발언이거늘;; 이것 참 문제로군요.

마드리갈

2013-06-25 17:48:54

보통 해외유학파 학자들은, 영어나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된 문헌을 접하면서 그 역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특히 지명 관련으로 그런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그들이 학계의 주류가 되었으니까요.

한편 운동권들은 북한에 면죄부를 주고 싶기도 하고, 기존의 6.25 전쟁이라는 용어는 그들의 빈곤한 어휘에 따르면 "파쇼적" 인 것이니 쓸 수 없고, 대놓고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면 국가보안법이 있으니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선택하면서 과학적, 지성적인 포지션을 취하기도 했어요. 학술 분야에서는 그 경향이 상당히 강해요.


실질은 종북주의면서 사상과 학문의 자유 뒤에 숨는 경우는 상당히 많이 있어요.

전 그들에게 이렇게 반문하곤 했어요.

"왜 하필이면 사상의 자유는 꼭 북한의 폭압체제를 찬양하는 자유, 학문의 자유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주체사상으로 귀결되는가?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의 다름을 중시하면서, 당신들에 반대하면 늘 파쇼 운운하지 않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니 보통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반동분자 운운하는 욕설만 돌아와요.

대왕고래

2013-06-25 20:24:33

-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은 그냥 들려오길래 그냥 그런 이름이라고 받아들였었는데... 흐음, 외국의 관점대로 우리가 보는 건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요. '우리나라' 역사니까.


- 조국해방전쟁이라니, 대체 그 조국이 어느 조국을 말하는 건가요?;;; 우리나라가 1950년도에 지배당했었나요?;;;

일제강점기는 1945년에 끝났을텐데... 영 이상해요, 이래저래.

남침유도설은 처음 들어보고... 그리고 뭔지도 몰라서, 그냥 마드리갈님 말씀을 '그거 그렇네'하고 듣기만 하네요. 타당하게 말씀하셨다고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냉전의 대리설은 들어본 거 같아요. 중학생때였나, 고등학생때였나... 그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생각했었는데, 또 듣고 보니까 이상해요. 애초에 그게 뭐 대리적으로 싸움붙힌 거였다 치기엔 여러가지로 사실적인 게 맞지가 않는군요...

마드리갈

2013-06-25 21:14:34

꼭 이런 데서만큼은 자주적인 시각이 어딘가로 사라져 있지요.


군국주의 일본이 연합군에 패망해서 인민공화국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며 한탄하는 운동권도 있는 걸요. 그러니 북쪽의 공산왕조를 흠모하면서, 그들이 적화통일을 위해 일으킨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들이 그나마 조금 더 정상적으로 보여요.

남침유도설은 이론적으로 그럴싸하긴 한데, 사실은 학자가 쓴 음모론 소설인데다 각종 기밀문서가 해제되면서 완전히 논파되어서 그냥 버려야 하는 이론이 되어 버렸어요. 재미있는 건, 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이 그 미국인 학자의 학설만큼은 금과옥조로 모시는 거예요.

대리전 가설은 그럴듯한데 실상을 파헤쳐보면 관점은 둘째치고 일단 사실 자체가 맞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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