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to content
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완곡어법은 정말 상대를 배려하는 화법일까?

SiteOwner, 2017-11-29 19:41:48

조회 수
217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완곡어법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과연 완곡어법은 정말 상대를 배려하는 화법일까, 정말 배려한다면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확실히 한계를 명시하는 편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입니다. 특히, 문을 열고 닫는 것과 같이 행동의 중간값이 없는 경우에 완곡어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물론, 완곡어법이 완전히 불필요하니 전면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순기능을 부정할 의도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게 남발되는데다 함의가 불순한 경우가 있으니 이런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성격에 해당하는 것.

예시를 한 가지 보겠습니다.
철도의 경우, 24시간 내내 선로에 열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로보수작업에 정기적으로 할애하는 시간대가 있으니 그 시간대는 선로를 비워두고 작업인원과 장비가 선로를 차지해서 진단 및 공사를 담당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열차가 여객, 화물 등을 취급하거나 신호대기중이라서 선로를 점유하는 중이라면 같은 선로에 다른 열차가 진입해서는 안되기에 당연히 이 경우에도 신호제어를 하여 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선로에 열차가 달린다/달리지 못한다의 선택지만 존재합니다. 영어로 하면 On/Off, 독일어로 하면 Ein/Aus, 한자로 쓰면 入/切이고. 게다가 선택지 내의 두 행동은 상호 모순관계에 있어서 중간 단계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진입불가를 진입이 어렵다고 말하면?
분명히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러면 잘만 궁리하면, 어렵더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완전히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불가능한 것을 빙빙 돌려서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말도 못할 뿐더러, 결과가 이렇다면 처음부터 확실히 말해 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원망도 하게 됩니다. 그 낮은 기대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이 결국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선택지 내의 사항이 상호 모순관계에 있는 상황을 완곡어법으로 말해 봤자 의미가 없고, 하지 않은 것보다 결과적으로 더 안 좋게 됩니다.

요즘 별별 이유로 분쟁이 많다 보니 자기방어적 본능 등이 강해져서 완곡어법이 유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겠지만, 오히려 완곡어법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것도 어느 정도는 제한이 필요합니다. 또한 남발하면 계속 둔감해지기에 완곡어법이 결국은 완곡어법이 아니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사결정이나 유통 등의 단계는 간소화로 혁신을 꾀한다는데, 이런 언어생활에서는 오히려 완곡어법의 남발로 비효율과 부정확이 나날이 늘어가니, 이런 역설에 대처하는 것도 앞으로의 생활에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우같아 보이더라도.

나중에 교육에서 이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곱셈에서는 아무리 큰 수라도 0을 곱하는 순간 결과값이 0이 되고, 나눗셈에서는 0으로 나누게 되면 결과값을 도출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0을 곱하면 0이 나올 수 있다, 0으로 나누면 답이 나오기 어렵다 하는 식으로 가르치는 날이 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마 싶겠지만, 이것 또한 확실히 반박하기는 어렵겠군요.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6 댓글

마키

2017-11-30 01:21:46

때로는 직설직언이나 강경책이 필요할때도 있는 법이죠.


사실 한자 라는게 어제오늘 쓰인 것도 아니고 적어도 동아시아권 대부분이 과거부터 취급해오기에 우리도 순우리말로 풀어쓰기보단 그냥 한문이나 한문 축약어를 쓰는게 취급하기 더 간편한 경우가 부지기수죠. 일전에 언급해주신 늘찬배달-퀵서비스와 같은 의미이자 음절도 두 글자인 속달 이라던가.

SiteOwner

2017-11-30 23:39:15

그렇습니다. 남발하면 확실히 좋지 않고, 분명한 사안은 명확히 말해 두는 편이 더 좋은 경우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완곡어법을 배려하는 화법의 동의어로 여기면 크게 잘못하는 것입니다.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도, 의미의 명확성 및 전달력에서도, 한자축약어가 좋은 경우가 있으니 딱히 그것들을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쓰지도 않을 것이면서 이상한 신조어를 만들어 두는 것보다 기존의 간결한 어휘를 살려 쓰는 게 더 좋다는 데에는 재론의 필요성조차 없지 않을까요.

Lester

2017-12-01 09:28:54

탄생의 의도는 좋았는데 갈수록 안 좋아지는 사례 중에 하나네요. 얼핏 보면 동서양 간의 차이 같다 싶으면서도(서양이라고 모두 면전에 대고 쏘아붙이진 않지만요), 한편으로는 일본처럼 '우리끼리 싸워봤자 남는 건 없으니까 최대한 낮추고 살아야지' 같은 영향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마치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요.

SiteOwner

2017-12-01 20:14:39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 글 한줄 모두 생사여탈의 근거가 되었던 시대에, 어떻게든지 빠져나갈 여지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도 완곡어법이 발달한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것이긴 합니다. 그런데 한자문화권의 경우, 특히 성리학이 주도사상으로 등극한 이후에는 사화, 당쟁, 문체반정 등 과거의 기록을 문제삼아 자행하는 필주가 횡행했다 보니 특히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중간값이 없는 사안에서는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게 도리어 안 좋은데, 완곡어법을 남발하다 보니 이제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씁쓸하지요.

Papillon

2017-12-01 15:28:47

전 완곡어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내 교육 커리큘럼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사학(Rhetoric) 교육의 철저한 부재가 원인이라고 봐야겠죠.?

본디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면서도 지나친 무례는 삼가는 것은 전세계 공통의 예절입니다. 완곡어법은 그 방법 중 하나죠. 그러나 모든 방법이 그렇듯 사용할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완곡어법의 경우, 보통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없으면서도 직설적으로 말했다간 상대방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경우 사용하죠. 대표적인 "죽었다(die)"라고 말하는 것을 "돌아가셨다(pass away)"로 표현하는 것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아닐 때 사용하면 문자의 의미가 이상해질 뿐이죠. SiteOwner 님이 언급하신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그런 적절치 못한 상황을 피하면서 적절한 표현법을 찾는 법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수사학이죠.?

국내 교육은 이런 수사학 교육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정서상 수사학을 그리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도 있지만(소위 말장난으로 취급하죠), 그 이상으로 스스로의 의견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원인이죠. 당장 일부 학생들의 경우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는 글이 대학 과제일 정도로 쓰기 및 표현법 교육이 부족합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보니 결국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쓰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쓰고 있는 것이죠. 마치 포크 말고는 식기 사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포크로 국물을 떠먹기 위해 노력하는 꼴입니다.

SiteOwner

2017-12-01 20:22:51

완곡어법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화법을 구사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군요. 저도 그 관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이미 완곡어법의 전면부정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에 순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수사학은 필요합니다. 상황에 맞는 화법의 구사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떼놓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고대 그리스 문명 등에서도 수사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체계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 교육의 경우 그에 대한 고려가 없다 보니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없고, 대화 대신 일방적인 상대방 때리기가 좋은 화법인 양 하는 풍조가 횡행해도 이에 대해 실질적인 대책은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완곡어법이 배려하는 말이니까 어느 상황에서 써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고착되기 쉬운 것이고, 결국 그것을 써서는 안되는 상황에서도 남발하는 행태가 횡행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Board Menu

목록

Page 142 / 29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단시간의 게시물 연속등록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SiteOwner 2024-09-06 167
공지

[사정변경] 보안서버 도입은 일단 보류합니다

SiteOwner 2024-03-28 172
공지

타 커뮤니티 언급에 대한 규제안내

SiteOwner 2024-03-05 189
공지

2023년 국내외 주요 사건을 돌아볼까요? 작성중

10
마드리갈 2023-12-30 360
공지

코로나19 관련사항 요약안내

612
마드리갈 2020-02-20 3863
공지

설문조사를 추가하는 방법 해설

2
  • file
마드리갈 2018-07-02 1001
공지

각종 공지 및 가입안내사항 (2016년 10월 갱신)

2
SiteOwner 2013-08-14 5972
공지

문체, 어휘 등에 관한 권장사항

하네카와츠바사 2013-07-08 6594
공지

오류보고 접수창구

107
마드리갈 2013-02-25 12086
3074

오랜만입니다!

6
앨매리 2017-12-04 203
3073

도쿄타워: 피규어와 나, 때때로 아부지

4
  • file
마키 2017-12-04 176
3072

다시금 꿈자리가 사납습니다

2
SiteOwner 2017-12-03 132
3071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 사고 및 아시아나 항공 991편 사고의 관계

2
  • file
B777-300ER 2017-12-02 188
3070

최근 해외여행 관련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착각?

6
마드리갈 2017-12-01 197
3069

2017년의 여러가지를 제보받습니다 (11.30-12.27)

8
마드리갈 2017-11-30 231
3068

KLM 네덜란드 항공의 1988년 광고

2
B777-300ER 2017-11-29 167
3067

완곡어법은 정말 상대를 배려하는 화법일까?

6
SiteOwner 2017-11-29 217
3066

범죄물에 대의명분이 있다고 하면 더 어색할까요?

5
Lester 2017-11-28 191
3065

택배는 낭만을 싣고

4
  • file
마키 2017-11-28 149
3064

김영란법, 이럴 거면 왜 만들었나...

2
SiteOwner 2017-11-27 158
3063

JR서일본의 기묘한 열차운행방식

2
  • file
마드리갈 2017-11-26 153
3062

약속 지키기가 싫은 사람들

4
SiteOwner 2017-11-25 197
3061

정신없었던 1주일, 11월 마지막 주말 그리고...

4
SiteOwner 2017-11-24 148
3060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칠때

4
마키 2017-11-23 156
3059

귀순 북한군 병사를 살려낸 의사를 욕하는 국회의원을 보며

8
마드리갈 2017-11-22 294
3058

자고 일어나니 적폐세력이 되어 있었다.

6
SiteOwner 2017-11-21 281
3057

"강제배틀을 강요하잖아! 나 챔피언 그만둘래!"

4
마키 2017-11-20 145
3056

벌써 겨울인 건가...+기타

3
시어하트어택 2017-11-19 144
3055

THAAD (사드) 논란의 사고구조 4 - 쌍중단이라는 명백한 오답

2
SiteOwner 2017-11-18 188

Polyphonic World Forum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