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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주인공들 간에 케미가 잘 맞아요!”
지온의 질문을 받자마자 아이란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첫 화인데도 상단에 떡하니 올라가 있는 거 보면 알잖아요? 여기 연령대 추천 비율 봐요!”
“어... 그렇기야 하지.”
옆에서 민이 끼어든다. 민은 아이란이 하는 말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속 들어주기도 좀 뭣한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예상했다는 듯한 질문을 내놓는다.
“그런데, 아이란 누나가 그거 추천하는 거, 다른 이유가 있는 거잖아. 그렇지?”
“어... 부정하지는 않을게.”
아이란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딱히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그런 듯도 하지만.
“그런데, 내가 추천하는 건 꼭 내가 좋아하는 그런 쪽이 아니더라도 골고루 보기 좋은 것 같아서 그런 거야.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보니까 처음 유입되는 팬층이 중요한 법이고. 너도 잘 알잖아?”
“나도 안다니까? 그런데 누나 진짜 이유 따로 있잖아.”
“부정은 안 한다니까는...”
거기서 뭔가 더 말하려는데, 문득 아이란의 눈에 이상한 연기 같은 게 보인다.
“저기, 선배님.”
“왜?”
“연기 같은 거 안 보여요?”
“어? 잠깐만, 뭐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지온도 아이란을 따라 앞을 본다. 아이란의 말대로, 어딘가에서 연기 같은 게 피어오르는 것 같다. 아니, 연기는 아니다. 하얗게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건, 습기가 진하게 풍기는 안개다.
“갑자기 웬 안개야?”
“그러게... 오늘 안개 낀다는 말 없었잖아? 그것도 이렇게 지면에 낮게 뜨는 건 처음 보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 민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사진, 그리고 몇 개의 영상이 떠오른다. 나디아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의문의 안개. 아파트 단지 전체를 마치 구름이나 안개의 바다처럼 보이게 했던, 그 안개다. 그리고, 마치 비슷해 보인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안개도 말이다.
“뭐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지만, 그 안개는 지하철역 출입구 주위에만 피어오른 모양이다. 그것도 마치 지하철역 출입구와 그 주변만 칼로 잘라 놓은 듯이, 아니면 지하철역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안개조차도, 금세 없어진다.
“안개가 금방 없어지잖아?”
“그러니까...”
그리고 서서히 사라져 가는 안개를 뚫고, 누군가가 지하철역 출구로 나온다. 네 사람인데, 다들 뜀박질을 한 건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따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어, 뭐야...”
그 네 사람이 마침 근처를 걷던 지온과 눈이 마주친다. 차례로 보니 서언, 메이링, 나디아, 그리고 안젤로다.
“여기는 무슨 일이죠?”
“이 이상한 안개 능력자가, 조금 전에 여기를 지나갔어!”
메이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앞에 보이는 지온에게 말한다.
“너희들, 혹시 못 봤어?”
“네... 전혀.”
“응? 사실이야?”
지온이 그렇게 말하자, 메이링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한다.
“그 파마머리에, 키는 150cm 정도, 검은 후드티를 입은 사람, 못 봤어?”
메이링이 민과 아이란에게도 물어보지만, 둘 다 봤을 리가 없다. 메이링은 한숨을 쉬고는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래... 이 이상으로는 나도 뒤쫓을 수가 없네. 혹시, 그 인상착의의 사람이 나타나면, 나한테 바로 연락 줘. 알겠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메이링은 알겠다는 듯 손을 흔들고는 그 자리를 뜬다. 메이링은 곧바로 전화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치라유?”
“네, 변호사님.”
“오전 외근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네...”
전화 너머의 치라유는, 다소 실망한 듯한 목소리다.
“그래서, 누구인지 알 것 같다고?”
지온이 아직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나디아와 안젤로에게 묻는다.
“그렇게 빨리 그 능력자가 누구인지, 특정이 된 거야?”
“네...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 하나밖에 없어요.”
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면서도, 한편으로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는 편히 마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제발 그 이름이 입에 오르는 일은,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능력자가 누구야?”
“그건...”
안젤로가 막 그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능력자의 이름을 막 말하려는데...
“쉿!”
아이란이 안젤로의 팔을 꽉 잡으며 입에 손을 댄다.
“선배님! 듣는다고요!”
“어... 정말?”
아이란이 뒤쪽을 가리킨다. 그리고 안젤로가 아이란의 뒤쪽을 돌아보자...
“어...?”
토마가, 뒤쪽에서 걸어오고 있다. 분홍색 파마한 머리, 등에 멘 검은색 가방까지는 같지만, 복장이 다르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검은색 후드티를 입었어야 할 토마는, 다시 그 알록달록한 무늬의 셔츠를 입고 있다. 거기에다가, 분명 조금 전까지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걷거나 뛰고 있었지만, 지금은 허리를 쭉 펴고, 고개도 들었다.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는 여전하기는 하지만.
“어,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토마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지온과 다른 일행은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린 다음, 지온은 메신저로 나디아와 안젤로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지온 : 뭐야, 저 출구로 나오는 거 아니었어? 왜 방향이 달라?]
[그러게요. 분명 저기로 나왔을 텐데]
[그런데 지금 걸어오는 방향이 카페거리 쪽이잖아]
그런데 마침, 토마가 서언의 바로 옆을 지나가려는 참이다. 그리고 멈춰선다. 다들 숨을 죽인다. 지금 유력하게 의심을 받고 있는 토마가, 도대체 서언에게 뭘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보니까 꽤 많이 닮았네?”
토마는 지금 민을 보고 말하고 있다. 마치, 아까 있었던 일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여전히 말을 쉽게 붙이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은 덤이다.
‘에이, 왜 다들 이렇게 모인 거야?’
한편 속으로는 토마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하필 왜 이 자리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 있는 건지, 토마는 더욱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금방 의심을 받아 버릴 게 뻔하다. 그래서 두 다리도 떨고, 숨소리도 거칠어지기는 하지만, 원래도 보여 왔던 모습이라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좀처럼 눈치채지 못한다.
‘진정... 진정해야 해... 무의식적으로 또 수증기를 만들라.’
토마는 그렇게 속으로 끊임없이 되뇐다. 이 능력을 토마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도 모르게 주위에 수증기라든가 습기가 생겨 버린다. 거기에다가 여기 있는 만화부원들은, 모두 그 습기 때문에 크고 작은 고생을 좀 했었다. 그러니까 토마에게는 더욱 어렵다.
그리고 잠시 후, 민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 너도 이렇게 보니까 조금은 알겠지?”
토마의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정확히 말하면, 토마도 서언을 몇 번 본 적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같이 놓고 보는 건 또 처음이다. 거기에다가, 토마는 조금 전에도 서언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토마는 서언을 돌아보면서도 은근히 시선을 피하고 있다.
어색한 건 서언도 마찬가지다. 아까 전에 후드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데다가 지금은 다른 복장이라서 서언은 잘 알아보지 못하는 듯하지만, 서언도 기시감은 느끼고 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토마가 그 사람이라고, 단언도 할 수 없다.
‘뭐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런데 복장은 아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서언은 잠시 토마를 보고 눈이 흔들린다. 그렇게 잠시, 서언과 토마 사이에 침묵과 어색한 시선이 오간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래, 그렇게 사람들한테 다가가라니까? 잘 하고 있어.”
“고... 고마워...”
토마는 그렇게 어색하게 말하더니, 곧장 서언을 다시 돌아보며, 입을 연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다시 민을 돌아보며 말한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어... 너는 형이라고 불러야 되겠지? 나한테는 조카지만.”
“뭐야, 그 반대가 아니고?”
토마가 민에게 되묻자, 민은 많이 들었던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뭐, 많이 들었던 질문이지.”
“그래...”
민은 그냥 웃어 보이며 대답하지만, 한편으로는 토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정황은 이미 한 명을 특정해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쉽사리 나오지 못한다. 민의 숨이 거칠어진다. 이 묘하고도 고통스러운 상황, 어떻게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때.
“어, 다들 여기 모여 있었네? 여기서 뭐 해?”
다들 돌아보니, 윤진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윤진은 여느 날처럼 양손에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다. 마치 친구의 생일날 선물을 꼭 숨긴 채 미소를 짓는 것과도 유사한 웃음이다.?
“오, 선배님도 여기 있었네요?”
그 가운데 서언이 있는 걸 확인한 윤진은 곧바로 서언에게 인사한다.
“물론이지. 만화부에는 별일 없지?”
“그럼요.”
서언은 윤진의 그 대답을 듣더니, 한층 마음이 놓인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그럼, 나는 길이 달라서 이만 가 볼게. 또 보자!”
서언이 가는 걸 보고는, 윤진은 바로 토마에게 다가간다. 토마는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수증기를 만들어내는 건 덤이다.
‘어떡하지...? 지금 도망가야 하나? 아니야, 도망가면 안 돼. 도망가면...’
그렇게 토마가 불안에 떨자, 설상가상으로 기침도 나오려고 한다. 숨도 점점 쌕쌕거리는 것 같고 거칠어진다. 이윽고, 윤진이 입을 연다.
“오, 토마! 역시 만화부에 들어오고 나니 좋아졌어. 이렇게 어울리라고. 알겠지?”
“네...”
말은 그렇게 힘없이 하지만, 토마는 한결 안도한다. 그러다 보니 숨도 점점 원래대로 돌아가고, 기침이 나오려던 것도 서서히 없어진다.
“자! 이제 가자. 그리고 이따가 다들 만화부실로 오는 거, 잊지 말고! 내가 이따가 좋은 소식을 몇 가지 전해 줄 테니!”
“네-”
그렇게, 아까 안개가 언제 그렇게 일어나서 소동이 일어났냐는 듯, 모두 학교로 향한다. 하지만 그런 활기찬 분위기는 겉으로만 그럴 뿐, 언제 또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이 흐르고 있다. 민도 그렇다. 윤진의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걷는 토마를 다시 본다. 하지만 그건 친근함을 담은 게 아니다. 민 자신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시간은 흘러, 만화부실. 토마가 슬그머니 부실로 들어와 보니, 다들 평소와 다름없이 만화책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하고 있다. 아직 윤진은 보이지 않는다.
“뭐야...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왜 다들 안 와?”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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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12-19 23:24:37
뭔가 이야기가 좀 깊게 진행되려는 듯하는데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지네요.
문제는 역시 토마. 자신의 능력이 대기환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자신도 그 대기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다 그 능력이 계속 악순환을 만드네요. 진짜 문제가 뭔지 이해하는 게 저렇게도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결과를 만들 수는 있더라도 결코 숨기지 못하는 게 있는 이상 그건 오래 못 갈 것도 자명하고 말이죠.
사실 아이란이 말하는 것도 꽤 일리가 있어요.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이지만 한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왜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이질적이라든지 그러면 감상할 이유가 확 떨어져 버리거든요.
시어하트어택
2022-12-25 20:48:49
자꾸 토마는 자기 능력 때문에 저렇게 자가당착의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상황 타개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 정도야 좋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입니다. 결국 어딘가에서 걸리게 될 겁니다.
SiteOwner
2023-02-09 21:13:28
범죄자는 다시 현장에 나타난다는 격언이 그대로 적중되는군요.
그나저나 토마는 자기에게도 해가 되는데도 왜 저렇게 안개나 구름의 생성에 집착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렇지만 죽어야 그만둘지...인간이 마냥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지만 토마는 정신건강에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만화부장 윤진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도 기대됩니다만...시어하트어택
2023-02-12 21:45:58
토마 입장에서는 기껏 일을 벌려 놨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심리적으로 압박도 컸을 겁니다. 장난 같은 걸 그만두지 못하는 걸 보면 아마도 천성이겠죠.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어 주지 않는다면 더 큰 일을 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