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다루는 모험물의 결말로 흔히 등장하는 게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장소에 도달해 보니 상자는 텅 비었고, 안에 이런 쪽지만 하나 남아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 온 너희들의 여정이 보물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보물이 이러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결말 패턴은 여러분도 한두번은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일본의 만화 '원피스'는 전설적인 보물을 찾아 나서는 해적들의 이야기인데, 이런 결말 아니냐는 독자들의 질문에 작가 오다 에이이치로는 '그런 건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못박아 두기도 했습니다.
오늘 낮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결말들의 원류는 사실 동화 '오즈의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알다시피, 집으로 돌아가고픈 소녀 도로시가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는 길에 두뇌를 가지고 싶은 허수아비, 마음을 가지고 싶은 양철나무꾼, 용기를 가지고 싶은 사자를 만나 함께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법사를 만나고 보니 사실 마법사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허수아비, 나무꾼, 사자는 오는 여행길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던 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체득하게 됩니다.
결국 오즈가 이렇게 말해주는 셈이죠. '여기까지 온 너희들의 여행길이 너희들이 원하던 것을 주었다'
그래서, 전 오즈의 마법사가 '여기까지의 여행이 사실은 보물'이라는 클리셰의 기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꼭 걸맞는 건 아니지만, 긴 여행의 목적, 원하던 목표가 사실은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일이었다라는 면에서 맥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라는 색다른 것에서 자신이 원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원하던 것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그리고 밴드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재해석한 웹툰 하나를 소개해 드리는 걸로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홍작가'님이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한 '도로시 밴드'라는 작품입니다. 많은 구작들이 유료화되던데, 이건 상당히 옛날 작품이고 출판까지 됐는데도 유료화가 안 되어 있더군요. 코믹한 면도 있고, 또 감동적인 면도 있어서 추천해 드립니다.
대강당과 티타임, 아트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운영자입니다.
1 댓글
마드리갈
2013-07-12 13:38:15
도전과 응전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그리고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오는 성장은 정말 값진 보물이지요.
이러한 것들이 있기에 성장스토리는 시대가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 감동과 교훈을 주는 게 아니겠어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되돌아보고 있어요.
노란 벽돌길을 따라간다는 가이드라인은 있되, 나머지의 문제는 모두 직접 해결해야 하고, 그것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쌓여간다...정말 의미깊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깊이있는 작품인 것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