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지속적으로 멍해진 틈을 활용해서 하나씩 정리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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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 게임의 번역 프로젝트는 12일부로 완전히 끝나서 더 이상의 작업은 맡지 않고, 그동안의 번역 비용을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웃긴 사실은 (지금까지의 번역을 포함한) 정식발매는 10월인지 11월인지로 미뤘다는 겁니다. 심지어 7~8월 사이의 작업은 더욱 급한 게 있다면서 작업 순서를 바꾸거나 기한을 줄여버렸다는 점에서 더더욱 황당하고 괘씸한 상황이죠.
다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 신경을 여기에 쏟은 탓인지 꿀 같은 휴식기가 찾아왔는데도, 무엇을 하면서 즐겨야 할지 도무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크게 즐겁지도 않았습니다. 당장 광복절이 낀 연휴도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기만 했죠. 그런가 하면 26~27일에는 매년마다 열리는 BIC가 있었으니 다녀올 수 있었는데도, '딱히 볼 게 있는가'와 '멀리까지 급하게 다녀오기 힘들다' 등의 이유가 겹쳐서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기존에 다니던 어느 보드게임 모임에서는 '여성 회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쩌다 보니 남성 회원들만 모인 상황에서) 모임에서 나가달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즐거워야 할 휴식기가 즐겁기는커녕 피로와 우울한 상황들만이 겹치니 도무지 신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나마 아는 대표님을 (저는 저녁을 선호했지만 워낙 바쁘신 분이어서 맞춰드리느라 출근 직전인 오전에) 뵈어서 기분이 좀 풀렸네요. 일에 대한 열정을 잃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고민상담에서, 대표님의 차기작에 대한 온갖 아이디어 회의까지 진행하느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대표님께서 자주 만나자고 말씀하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마냥 멋대로 자주 불러낼 수도 없으니 안타까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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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즐거웠던 것도 잠깐이고, 그 이후로는 진짜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보냈습니다. 그저께의 경우 14시간을 푹 자서 그런지 피곤한 기색은 가셨습니다만, 상술한 모임에서 쫓겨난 일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를 표하신 회원분이 전화 온 것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네요. 게다가 정말 바보같이, '어떤 분인지 기억이 안 난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얘기한 겁니다. 내쫓긴 입장으로서 그 모임에 더 이상 미련이 없으니 퉁명스런 기색이 저도 모르게 나왔을지도 모르지만요. 결국 언제 한 번 뵈었으면 좋겠다는 상투적인 말로 마무리했지만, 제가 쫓겨났을 때 집까지 바래다 주신 분도 '연락처 교환하자'는 말을 거절했더니 (마당발 회원을 통해서) 딱히 연락하지 않으시는 걸 보면 저도 그 분들도 의례상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한 달 사이에 온갖 일들이 벌어지다보니 '인간은 원래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라는 말을 얼마나 되뇌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직업상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미(ex. 보드게임)로도 제가 판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이제는 제가 스스로 고독을 택하는 건지 어쩌다보니 고독으로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원래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었나보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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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C에 얽매일 일이 없으니 자유롭게 바다 보고 올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거 하나 때문에 멀리 다녀오기도 귀찮네요.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면 앞으로 몸이 쏠리는 현상 있죠. 그것처럼 이번 달 초까지 열심히 일했다가 푹 쉬게 되니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고 어색한 것 같습니다. 이만한 대규모 작업과 거액의 번역료를 또 언제 챙기겠냐는 생각도 들고...
그림이라도 그릴까 했는데, 문득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소재가 없네 어쩌네 하기는 무슨, 더럽게 비싸게 구네' 하는 생각도 드네요. 원래 계획은 여캐릭터의 헤어스타일과 교복을 연습해 보려고 했는데, 볼펜으로 그려서 고치기 힘든 것도 있고 이런저런 문제가 겹쳐서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크게 그리면 자잘한 실수나 인체 비율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구나 싶지만 원래 크게 그려본 적이 없으니 낯서네요. 예전처럼 과거 고전게임들을 제 스타일대로 재해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요새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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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3-09-01 00:21:54
우선, 프로젝트 종료에 대해 축하의 말씀을 드릴께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잘 일하는 것이 중요한만큼 잘 쉬는 것도 중요해요. 흔히 말하는 여가선용도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고 나서의 이야기니까 당분간은 정양(?養)하시면서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 가장 우선적일지 않을까 싶네요. 한꺼번에 해결되는 건 없으니까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이 좋겠네요.
근황을 소개해 주신 점에 감사드려요.
그리고, 자신에게 약간 더 관대하시기를 당부드릴께요.
Lester
2023-09-03 10:05:59
우선순위라... 허리와 등이 계속 쑤시는 것부터 처리해야겠네요, 그럼. 이미 병원에 자주 다니긴 했지만 이게 운동부족인지 정말로 등을 다쳐서인지 헷갈리긴 합니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다리 스트레칭을 했더니 좀 나아지는 걸로 봐서는 몸이 굳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싶지만 이상하게 무슨 일이건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병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가지고 정신과까지 가야 하나 고민이네요.
SiteOwner
2023-09-01 23:55:09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일단 비틀즈의 노래 Hey Jude를 소개해 드려야겠습니다.
Hey, Jude, Refrain.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
특히 이 부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긴 이야기보다는 이렇게 음악 한 곡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Lester
2023-09-03 10:07:38
온 세상은커녕 저 자신에 대해서만으로도 이렇게 마음고생이 심한 게 문제입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사는 게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뭘 이루려고 하는 욕망 자체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그냥 '내가 갈 길이 아니었나보다' 하고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뭐 이렇게 말은 쉽게 하지만, 역시 실천하는 게 어렵네요. 특히나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