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도 안 하는 주제에,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는건지? " -베르=빈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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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공부하기 싫다... "
"아서라 아서. 너 이번에도 모의고사 등급 안 오르면 어떡하려고 그래? "
"몰라- 그냥 재수해버릴까? 아니면 취업? "
"너 진로를 너무 막 결정하는데... 너같은 마인드로 공부하면 재수해봤자 제자리걸음일걸? "
"쳇. 하지만 공부는 정말로 싫은걸- "
"옆 학교 명한이가 공부 잘 하는 여자를 이상형으로 꼽는다는데도 싫더냐? "
"뭣? "
이명한. 옆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지만 타는 버스가 같은 번호라 가끔 만나곤 한다.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멋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야자 끝나고 집에 갈 때도 옆 학교 애들하고 맞춰서 가곤 했다.
하지만...
"아으으으- "
문제집을 단 1초만 들여다봐도 두드러기가 올라올 것 같단 말야.
"으으... 복제인간같은 거 있었으면 좋겠다... "
그러고보니 요즘 애들 사이에서는 소원을 들어주는 사이트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사이트의 주인인 베르=빈덴은 사이트 방명록에 남겨둔 소원을 이뤄준다.
"여보세요? 응, 나 정연이- 너 혹시, 소원 들어준다는 사이트 주소 알아? 응... 응, 알았어- 고마워~ "
전화를 끊은 나는 친구에게서 사이트 주소가 적힌 문자를 받았다.
흐흐, 그런데 이런 소원도 들어주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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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이란... 쯧. "
방명록에 올라온 소원이 황당했는지 모니터를 보던 그녀는 마시던 코코아를 풋, 뿜었다.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뭘 얻겠다고 그러는건지... 휴우- "
한숨을 푹, 쉰 그녀는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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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야자를 끝내고 가는 길.
여느때처럼 교문을 나서다가 낯선 여자를 발견했다.
누가 인형이라도 사다 놨나? 하지만 이렇게 큰 인형은 없을텐데?
"얘, 연희야. 저 사람 되게 귀엽게 생겼다. "
"어머, 그러게... 아이돌 가수 같아. "
"으아아- 오늘도 빨리 들어가야지... "
"그래, 너도 얼른 들어가. "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까 만났던 여자였다.
"여기 있었군. "
"??"
"네가 의뢰인이지? 복제인간... "
"아아, 네... 혹시 베르=빈덴씨...? "
"응. "
"와, 정말 오셨군요- "
"...... 정확히 네 소원이 뭐지? "
그녀는 선명하게 붉은 눈으로 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공부도 학교 다니는것도 전부 귀찮아요... 복제인간이 제 대신 공부해줬으면 좋겠어요. "
"그게 전부? "
"네. "
"좋아...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 "
"조...건? "
"네 소원은 이루어졌어. 네 복제인간은 이미 생겼고. 하지만 복제인간에게 너무 과한 일을 시키면 안돼. "
"그게 전부인가요? "
"응. "
"알겠습니다. "
야호!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럼 내일부터 공부는 복제에게 시키고, 난 좀 쉬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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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빈덴에게서 받은 복제인간을 클론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클론에게 학교에 갈 것과 내 대신 공부를 할 것을 지시한 나는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너 이녀석! 수업시간에 뭐 하는거야! "
아차차, 조심히 돌아다닐걸! 하필이면 교감선생님꼐 걸릴 건 뭐람.
그런데 선생님이 호통을 친 쪽은, 내가 아닌 다른 학생이었다.
"저, 학생회라서... 오늘 학교 행사가 있다고 준비하라셔서요. "
"아, 그래? 흠흠... 알겠다. "
어? 내가 안 보이는거야?
신난다! 그럼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어디 놀러갈까?
명한이가 있는 옆 학교로 가서 명한이를 실컷 볼까?
공부는 클론이 내 대신 다해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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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부터인가 늦잠을 자도 엄마가 나를 깨우러 오지 않는다.
뭐, 사실 상관은 없다. 클론이 내 대신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고 있으니까.
느긋하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나가면 그만이다.
어느덧 이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클론에게 기르는 개의 목욕과 밥주기도 부탁했다.
나보다도 잘 돌보잖아? 앞으로 강아지는 내가 돌보지 않아도 돼!
베르=빈덴씨는 클론에게 많은 것을 시키지 말라고 했지만, 이건 결코 많은 게 아니다.
엄마의 집안일에 비하면 극히 일부니까, 엄마도 가끔 도와드리고 용돈도 좀 타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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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몸이 투명해졌다.
클론에게 있었던 각인이 내 손등에 새겨졌다.
엄마는 나를 깨우러 오지도 않고 아침도 차려주지 않는다.
어째서지?
학교에 있어도, 내 친구들은 나를 보지 않는다.
내가 아닌 클론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다.
어딜 보는거야, 그 쪽은 클론이라니까?
"결국 이렇게까지 와버렸나... "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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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
"내가 얘기했잖아. 너무 과한 일을 시키지 말라고... "
"학교에 나가고 개를 돌보고 엄마를 거들어드리는 게 과한 일이라고요? 어째서? "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지. 그리고 너,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거 아니잖아?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것도 하나의 일이지... 네가 공부만을 지시했다면 넌 적어도 이렇게까지는 돼지 않았을거야. 클론-아니, 이제는 그 쪽이 오리지널인가-은 클론인 채로 있었겠지. "
"지, 지금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
"늦었어. 이미 너라는 아이덴티티는 오리지널쪽에 완전히 빼앗겼다고. 너와 오리지널, 두 측에서 각각 자신의 아이텐티티를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까? 아이덴티티가 사라질 때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 했니? "
"징후......? "
"날 만난 다음날. "
그러고보니 교감 선생님, 내가 분명히 거기에 있었는데도 날 알아보지 못했다.
그 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아이덴티티를 잃어갔다는걸까...
"그, 그럼 이제 전... "
"괜찮아. 너도 누군가의 클론이 돼서 다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뻇으면 돼. "
"그... 그렇게 할 수 없다면요? "
"그럼, 사라지면 돼. 시간이 얼마 없을텐데 괜찮겠니? "
"...... "
아, 나도 이대로 끝인걸까...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내 친구들도......
나를 기억은 할까. 아니, 클론을 기억하려나.
나는 클론인가, 오리지널인가...?
분명히 나는 오리지널이었는데...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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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13-08-06 03:05:18
클론이 오리지널을 대체해 버리고, 오리지널은 사라진다...이건 분명 무서운 일임에 틀림없어요.
그리고 클론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뺏긴 후의 해법이 무서워서 오싹한 기분이 들고 있어요. 남의 것을 뺏든, 사라지는 것을 택하는 결론은 원래의 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일테니까요.
이미 고전문학인 옹고집전에서도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의 이야기가 나올만큼, 자신의 존재를 대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류는 양립하기 힘든 두 생각 속에서 고민하는 듯해요.
블랙홀군
2013-08-07 16:47:18
이거 쓸 때 소재를 얻었던 게 애들이 가끔 뭐 해주는 로봇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였어요.
거기다가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클론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격언 추가요.
작가로서 스포일러를 좀 주자면, 사실 주인공의 클론은 주인공의 쌍둥이 동생입니다. 다만 쌍둥이 동생은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사망하고 주인공만 살아남았다는 얘기.
라비리스
2013-08-07 20:26:48
클론과 본체의 싸움은 전통적인것 같아도 흥미진진하죠.
SiteOwner
2020-02-22 23:22:22
논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테세우스의 배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항해를 마치고 난 배를 수리하면서 이전에 쓰였던 판자와 기둥을 새로운 것으로 갈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재료로 다시 배를 만들면 그것은 원래의 배인가, 아니면 원래의 배는 수리를 마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 테세우스의 배.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습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수리를 여러번 거친 그 배와, 원래의 재료를 모아서 새로이 만든 배 2척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아예 하나만 남아 있다는 것. 그러니 그 결말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