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의대관련으로 여러모로 논란이 많긴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다 하고 단정짓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양측 모두 타당한 입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으니 문제는 이 대립이 어떻게 원만하게 조정될 수 있을까의 여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논란에 대한 사회여론 전반에 아주 위험한 전체주의적 발상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니 이 점도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군요.
첫째, 의사는 기득권층이고 그들의 목소리는 집단이기주의다.
둘째, 의대지망생은 국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이다.
셋째, 이기주의자의 목소리 따위에 귀기울일만큼 세상이 한가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바로 여기에서 전체주의를 희구(希求)하는 망령이 배회하고 있고, 그 위험성에 대해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는 오피니언 리더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비록 재야의 몸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등교육을 받은 저라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째 논점에 대해서는 바로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의사가 고소득 직업군인 점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사들이 예외없이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부자인 의사도 있는 한편으로 그냥 그럭저럭 사는 의사도 있고, 경영난 등으로 고통받거나 아예 의사로서의 직업을 끝내는 사람도 엄연히 있습니다. 그리 많은 사례는 아닙니다만, 개원의가 경영난 및 채무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습니다. 의사가 되었으니까 그들이 어떤 상태가 있든 간에 기득권층이고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곧 집단이기주의라는 발상은 특정계층이니까 곧 그러하다는 위험한 사고방식의 발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둘째 논점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문을 해 보겠습니다.
"그럼, 자신이 불행해지더라도 국익을 위해 진로를 선택한 사람 나와 봐."
결국 진로선택은 자아실현의 문제. 즉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자신의 여러 측면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제쳐두고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일단 희생하고 보겠다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 만나본 적조차 없습니다. 군인이나 경찰관 등 근무환경이 위험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도 그 직업에 종사하다가 사고로 죽기 위해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의과대학을 지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그렇게 비난해야 할 정당성 따위는 처음부터 없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반문도 가능하겠군요. 그러면 왜 다른 분야가 그만큼 매력이 없어서 인재가 몰리지 않는지는 반성해 본 적이 있냐고. 이미 2016년에 쓴 글인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1. 게임과 공시생과 사교육에서 지적한 문제의 핵심에 대한 깊은 고찰 없는 희생양 만들기(Scapegoating after beating around bush)는 대상만 바꿔서 일어나는 중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직업을 구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의 젊은이들이 아니라 인원도 적고 소득수준도 높은 이른바 기득권층이니까 마구잡이로 두들겨패도 된다는 전체주의적인 폭력이 너무도 쉽게 정당화됩니다. 그리고 8년 전 글의 끝 문장인 "공허한 구호만 외치게 될 것이고, 자율성이 결여된 기형적인 사회로의 이행만을 가속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전락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의 대답은 "이미 그렇게 전락하고 있다." 로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국익을 위해 진로가 강제로 차단된 사람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오탈자(五脱者)가 그것입니다. 로스쿨로 통칭되는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5년 내에 최대 5번의 변호사시험의 응시기회가 주어지고 이 기간내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떠한 이유로든 변호사가 될 자격 및 법조계로 진출할 자격은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완전히 봉쇄됩니다. 그 5년의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예외는 없고 그 오탈자가 다시 로스쿨에 진학해서 졸업했더라도 오탈자의 지위는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고시낭인을 막겠다면서 국가가 법제도로 고정적인 탈락자를 만들어 그 특정인에게 낙인을 찍어버린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의 없는 마당에 의사라면 더욱 더 손쉬운 타격목표인 셈입니다.
셋째 논점은 결국 소수의 목소리는 때려잡아도 마땅하다는 노골적인 폭력.
결국 그렇게 되면 누가 언제 소수가 될지도 모르고 결국 그 소수에 대한 폭력은 상대만 바꿔서 횡행하기 마련입니다. 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난 글인 지나보면 전화위복이라 느낄 때가 있습니다를 같이 읽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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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4-03-05 10:38:50
환자가 죽는다는 뉴스가 나올 시점에는 일반인들 입장에 좀 더 공감했는데, 고소하려면 특정인이 필요하니까 '파업하느라 자리를 비운 동료들 대신 도리를 지키려고 병원에 남은' 의사를 고소했다는 뉴스를 보고 극단주의가 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튜브 쇼츠에는 과거 드라마 "라이프"에서 구승효(조승우 분)가 엘리트 의사들의 방만한 일처리를 박살내던 명장면이 잇달아 올라오고, 심하면 '의주빈(의사+조주빈, 성범죄자의 직업군 중에 의사가 많은 걸 비꼬는 멸칭)'이니 뭐니 하는 말이 돌고...
그런데 동시에 의사를 늘려봤자 산부인과나 피부과 같은 대세 부문으로나 몰리지, 정말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부문에는 사람이 안 가는 세태에 대한 비판까지는 무시하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의사도 엄연히 "생명윤리와 더불어" 이득을 취하는 직업이니만큼 돈을 좇는 것을 뭐라고 할 수야 없고, 이미 열악해진 환경(주로 소아과)에 억지로 사람을 밀어넣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의사파업 현장에서 일부 의사들이 망언을 일삼거나, 이 기사에서 나오듯이 (연구의 중심인) 교수보다 개원의가 소득이 3배 높고 또 비급여 진료 중심의 과잉진료가 횡행하는 등 사익 추구가 다소 심한 게 아닌가 하는 현상도 있으니까요. 특히 후자의 경우 등과 허리가 아플 때마다 신경외과를 갔는데 말 안 하고 비급여 진료를 연속으로 받았더니 돈이 엄청나게 깨져서 기겁했습니다. (아마 나중에 글을 쓸지 모르겠지만) 약 지어줄 테니까 먹어보고, 그래도 아프면 큰 병원으로 가라며 10분도 안 돼서 진단을 끝낸 모 내과의 의사양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전문직 중에 하나인 의사이니만큼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때려부수는 거야 엄청 쉽지만 수습하는 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서 봤으니까요.
SiteOwner
2024-03-09 17:14:15
그렇습니다. 지금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가를 따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전체주의의 악령이 배회하면서 누구든지 걸리면 죽여 버린다는 그런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상황은 해결되지 않고 계속 극단적으로 돌 뿐입니다.
사실 특정분야로의 선호 확대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사익 추구가 해서는 안될 것도 아닙니다. 단지 문제는 어려운 분야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는 충실한 교육이라든지 어려운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충분히 잘 주어지는 것인데, 그런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도 않고 의사만 탓해봤자 그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쿠바의 공산화 및 중국의 문화혁명 등의 급진적인 변혁의 폐해는 지금도 지속중입니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학문분야의 워낙 기초체력이 좋다 보니 문화적 역량까지 처참하게 부서지지는 않았습니다만 프랑스 대혁명 때의 학살의 여파가 커서 인구가 그다지 많이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