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의 출석부에 대해 회고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출석부에 기재된 누군가의 이름에 빨간줄이 그인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대상이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정황이 있습니다. 그 처음은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 1984년 9월이었고 그 끝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95년 9월이었습니다.
1984년 9월의 어느날, 저와 친했던 한 학생이 선생님의 통지와 함께 모두의 앞에서 인사를 하고 그날을 끝으로 더 이상 오지 않게 된 것이 기억납니다. 그 뒤로는 출석부에 빨간 줄이 그여 있었고 "전학" 이 사유로 추기되어 있던 게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 뒤로도 몇몇 학생들이 떠나갔고 그때마다 그 출석부에는 같은 방식이 적용되었습니다. 1987년 3월에는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모두의 앞에서 인사를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 채 그 학교를 떠나 다른 동네의 다른 학교에서 4학년 1반 38번으로 등록되었습니다(4학년 1반 38번의 비오는 그날 참조). 당시 그 학교의 출석번호 기재순서가 남학생이 1번에서 시작했고 여학생이 남학생의 번호가 다 끝난 다음으로 정해지는 방식이었다 보니 이미 완성된 1987학년도에서 저는 38번이라는 남학생으로서는 유일한 번호대를 부여받았고 이름 또한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 쓰이는 것이다 보니 여학생으로 오인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1987년 3월까지 다녔던 그 국민학교의 출석부에서 제 이름에 빨간줄이 그어졌는지 안 그랬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 학교의 행정처리상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자체는 예측가능하다는 것. 그때 다른 학생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이유는 영영 알 길이 없어졌지만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
이때부터 친구들의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고교 입학 때부터 금방 친해지게 된 친구는 1학년, 2학년 및 3학년까지 모두 같은 반이었습니다만 결국 그가 1995년 하반기가 시작할 무렵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같이 졸업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1년 전이었던 1994년에 이미 가장 오랜 친구였던 D군이 목숨을 잃은 충격이 여전했는데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35년 전의 만남, 10년의 친교, 그리고 25년... 참조).
그리고 그때도 역시 출석부상의 그의 이름에는 빨간줄이 쳐졌습니다. 사유는 딱히 기재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최소한 교내에는 없었습니다.
또한, 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출석부에 빨간 줄을 긋는 교사의 심정이 되어 본 적이 있습니다.
고교 때 교내의 도서부원으로 일하면서 학생들의 도서대출카드를 관리하는 일도 했다 보니 전교생의 현황을 거의 다 파악하고 있었고, 학적변동이 생기면 도서부가 그 상황을 하달받아서 그날중에 처리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전산화수준은 객관식시험답안을 OMR카드로 작성하여 채점하는 그 정도의 수준이었고 다른 부문에서는 한참 미진하거나 아직 시작조차 못했던 단계였으니 저처럼 1천여명을 좀 넘는 학생들의 신상을 거의 대부분 기억가능한 사람은 꽤나 유용했습니다.
그 친구의 비보가 교내에 알려진 날의 오후.
결국 그의 도서대출카드도 정리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존재를 말해주던 한 장의 카드는 교무실로 회수되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고교 졸업식을 맞이한 후 대학생으로 새출발하자는 그와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하고, 청운의 꿈의 첫걸음은 서울에서 홀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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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Lester
2024-04-14 01:28:48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 시를 여기에 인용하는 것이 옳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명탐정 코난이나 코코의) 명대사를 인용할까 하다가 주제넘은 소리일 것 같아 생략했습니다.) 다만 이런 해석(링크)도 있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저 계속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완주한 다음에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노라고 회고하는 것이야말로 먼저 간 이들에게 가장 큰 보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SiteOwner
2024-04-14 17:33:21
좋은 시를 인용해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읽다가 간만에 눈물을 많이 흘리며 울었습니다. 과거 생각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회고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만. 소개해 주신 시를 읽고 있다 보니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이 그대로 일거에 터진 것 같습니다.
먼저 간 이들에게 가장 큰 보답...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게 결코 헛된 건 아니었겠군요.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