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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죄자. 너를 벌하러 왔어. "
"...... 저를...? "
눈앞에 나타난 낯선 여자는, 자신을 단죄자라고 소개했다. 흩날릴 것만 같은 하얀 머리에 붉은 눈이, 이 세상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여자였다. 쏘아보고 있는 눈이 매섭다.
"최근 친구를 잃었지? 괴롭힘을 이기지 못 해 자살한 그 아이에게, 너는 해줄 수 있는 것을 해 주지 않았어. "
"해 줄 수 있는 것을... 해 주지 않았다고요? 그게 무슨... "
"그건, 명계에 가서 생각해보도록 해. "
고등학교 2학년의 끝을 얼마 안 남기고 내 친구는 자살했다. 반에서 그 녀석을 괴롭히던 무리가 있었는데, 결국은 견디지 못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저 침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너의 침묵이 그 아일 죽였어. 사과는 저승에서 하도록 해. "
"...... 저승에 가면... 만날 수 있는거죠? "
"...아마 널 원망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겠지. ...넌 그 아이에게 미안하니? "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자칫 잘못했다간 저도 말려들 수 있었기 떄문에... "
"...... 과오는 알고 있군... "
재훈아, 미안해.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뭘까?
나와 재훈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서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뭐, 다 그렇듯 어색했지만 알고보니 같은 동네 사람이었고, 어릴 적 같은 초등학교에 같은 반이었던 적도 있어서 금방 친해졌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조용한 성격이었던 재훈이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 늘 도서실에 있었다. 그리고 반에서 성적도 꽤 잘 나왔지만 다른 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처럼 우쭐거리거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물어보러 가면 척척 가르쳐 줄 정도로 착했다.
그런 재훈이가 괴롭힘을 당한 건, 1학년에 갓 입학하자마자였다. 당시 학교에서 꽤 유명했던 컨닝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건을 제보했던 게 재훈이였기 때문이었다. 컨닝을 저지른 아이들은 교내 일진으로 소문난 무리였고, 재훈이는 그 후로 그 무리에게 찍혔다.
지금은 다른 반이라 덜한 편이라고 했다. 방과 후와 등교 중에만 조심하면 되니까. 작년에는 칠판 지우개나 실내화가 날아오거나, 일부러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하는 게 부지기수였다.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양동이에서 구정물을 받아 끼얹기도 했다.
물론 나도 그 무리들을 알고 있었다.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거기서도 꽤나 유명한 일을 저질러서 강제 전학 처리가 된 아이들이었다. 어째서 우리 학교로 진학한건지 미스테리일 정도로, 행실도 성적도 좋지 않았다. 그 무리 전원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재훈재훈~ 오늘 야자도 끝났는데 떡볶이 먹을래? "
"아, 저... 나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
"뭐야, 또 그 놈들이야? "
"아, 아냐... "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갔던 재훈이는, 다음날 한쪽 눈에 멍이 들어서 왔다. 재훈이는 부정하고 있었지만, 분명 그 패거리가 어제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가서 떄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들이 이 지경이 되도록 어머님은 뭘 하는건지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다. 익명으로 투서라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방법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재훈이는 학생회 일이 남아있었고, 나는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 무리들이 학교 건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재훈이를 데리고 체육 창고로 향했다.
'저 새끼들... 또? '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서, 몰래 그 무리들을 따라갔다. 낡은 체육 창고는 벽 이곳저곳에도 구멍이 많았고, 문을 닫아도 틈새가 보였다. 밖에서 들여다보니, 안에서 재훈이를 둘러 싸고 있었다.
"야, 돈 가져왔냐? "
"아니... 그게... "
"하- 이 새끼 봐라? 야, 돈을 따박따박 가져와야 할 거 아냐! 너 내가 오늘까지 안 가져오면 죽여버린다고 했어, 안 했어? "
"그...... 미안해, 내, 내일까지는... "
"하- 진짜 골때리는 새끼네... 야, 죽이지는 마라. "
여전히 재훈이는 그 녀석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학주라도 부르러 갈까, 하다가 증거가 없으면 안될 것 같아 나는 핸드폰을 켜고 재훈이가 맞는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나오기 전에 재빨리 창고를 벗어나 수돗가에서 씻는 척 하며 동태를 살폈다.
녀석들이 창고를 나오자,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야! 이재훈! "
"으... 진형아... "
"너 이새끼, 괜찮냐? "
"으... 응... "
"야, 이 새끼야! 너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한테도 말 안 한거야? "
"괘... 괜찮아... "
"하, 새끼... 니네 엄마는 아냐? "
"어, 엄마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아직 모르셔... "
"...... 얌마, 피나 닦고 가자. "
재훈이를 수돗가로 데려가 얼굴에 묻은 피를 씻겼다. 하도 얻어맞았는지 온 몸이며 교복이며 피투성이였지만 학교 수돗가에서 교복을 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도 안경에 깨지진 않았지만 미세한 금이 가 있었던 안경에 묻은 먼지도 대충 털어서 재훈이에게 건넸다.
내가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말하자고 했지만 재훈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엄마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시고, 선생님꼐 말해봤자 그 녀석들이 더 심하게 보복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하긴, 그게 우리네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너, 그래도 정말 참기 힘들면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말해라. 그러다가 너도 힘들어지고 네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져. "
"응... "
"근데 너 안경에 금 간 거 같은데 괜찮냐? "
"아, 전에 쓰던 거 있어서 괜찮아. "
"임마, 우리 누나가 안경 써서 아는데 안경은 지금 쓰고 있는 거 쓰는 게 좋대. 나중에 하나 새로 해라. "
"아, 응... "
나는 그저,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방학동안 나와 재훈이는 보충을 들었지만, 그 녀석들은 공부와는 학을 뗐는지 보충은 커녕 학교 앞에 한 발짝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녀석들이 학교 근처에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학주가 교문 앞을 지키고 있어서 녀석들도 어쩌진 못 했다.
나는 재훈이 몰래 그 동안 모아왔던 증거들을 모아오고 있었다. 그 동안 괴롭힘 당했던 영상들, 재훈이가 입은 상처... 그리고 재훈이가 최대한 그 녀석들하고 맞닥뜨릴 일이 없게 도와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고 가방을 열어보신 선생님은 재훈이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이재훈, 잠깐 선생님 따라 교무실로 오도록 해. 진형이 너도. "
"예. "
"네. "
선생님이 우리 둘을 교무실로 부르셨다. 교무실에 내려가니 선생님이 우리 두 사람 앞에 꺼낸 것은 담뱃갑이었다. 누가 봐도 그 녀석들이 피우는 담배였다.
"이재훈, 네 가방에서 담뱃갑이 나왔더구나... "
"네? "
"이 녀석,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안 돼지. 순 범생이인 줄 알았더니? "
"죄송합니다... "
"야, 임마! 니가 뭐가 죄송해? "
"오진형, 넌 가만히 있어. "
어쩐지 분했다. 그 녀석들이 몰래 담뱃갑을 가방에 넣는 걸 분명히 봤지만, 재훈이는 그 죄를 자기가 다 뒤집어썼다.
"이 새끼야, 니가 피우는 거 아니잖아! 그 새끼들이 니 가방에 몰래 넣는 거 내가 다 봤어! "
"하지만... "
"그게 무슨 말이니? "
"하아... 선생님, 재훈이를 1학년때부터 괴롭혔던 무리가 있는데, 걔들이 넣어둔 거예요. 여기 증거요. "
내가 내민 것은, 어제 우연히 찍은 사진이었다. 원래 찍으려고 했던 건 우연히 발견한 새였지만, 그 옆에 녀석들이 재훈이 가방에 손을 대는 것도 같이 찍혀 있었다.
"제가 봤어요. 얘네들이 재훈이 가방 속에 담뱃갑 넣는 거. "
"이 녀석들은... 작년에 컨닝으로 물의 일으켰던 애들이네? "
"네, 그 때 재훈이가 녀석들이 컨닝한 걸 얘기했다가 지금까지... "
"그럼 이건 재훈이 담배가 아니라는 얘기지? 알겠어, 가 봐. ...이재훈, 그 녀석들이 또 괴롭히면 선생님에게 얘기 해. "
"...네... "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이 문제를 덮어두길 원했다. 학교의 명예가 떨어진다는 같잖은 이유에서였다. 내가 보기엔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그 녀석들을 강제로 전학이라도 보내야 할 것 같았지만.
그리고 재훈이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재훈이는 끝까지 자신의 아픔을 쉬쉬하려고만 하는 학교 때문에, 그리고 그 녀석들 떄문에 울다가 갔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성인이 되겠지. ...그게, 가장 역겹고 분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당신이 단죄자라면, 죽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어요. "
"...뭐지? "
"왜... 가해자가 웃고 피해자가 우는 거죠? 가해자가 벌을 받고 피해자가 행복해지는 건... 전부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인가요? "
"그건 말이지... 소설 몇 페이지로 끝나는 가해자가 울고 피해자가 우는 결말이라는 건, 현실에서는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어서 그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은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지. "
"...... "
"...그 녀석은, 특별히 내가 더 빨리... 단죄해줄게. 그 아이가 눈물 흘린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
그렇구나. 그럼 언젠가 그 녀석들도, 기약없는 세월이 지나면 우는 날이 오겠지...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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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마드리갈
2018-08-10 14:12:23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이 격언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 쉽지만, 실제 교우관계에서 정말 예의 격언이 만족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반문해 보면 별로 많지 않아요. 일단 저만 하더라도, 중학생으로서의 첫 해에 고초를 겪을 때 어쩔 수 없다며 한둘씩 떠나가더니 결국 제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겪어봤으니...
이미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어 보이네요. 이런 점에서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