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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일본어를 여쭤봤습니다.

YANA, 2019-05-01 17:07:30

조회 수
197

제가 현재 조교 일을 하는 교수님은 (그나마도 학기말이라 이제 끝입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아십니다. CV를 보면 묘하게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 많고 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업종에 종사한 것 외에 일본 효고 현에서 현지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아내분이 일본 분이세요. 여기 관련해선 제가 교수님 일본 거주 시절의 일기장을 웹에서 찾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 관련 섹션이 따로 있을 줄이야...(혹시나 해서 적는건데, 교수님이 공개를 염두에 두고 쓴 일기입니다.)

여튼 교수님은 꽤나 자유롭게 일본어를 구사하는게 가능하십니다만-교수님과 일하는 도중에 아내분과 메시지를 잠시 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아무래도 직종이나 주변 환경이 일본어하고는 관련이 없다보니 일본어로 말씀하시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여쭤볼까 생각했습니다만 자칫하면 예의에 어긋날까봐 엄두를 내지 못했다가, 결국 오늘 호기심이 극에 달해 여쭤보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학생들과 있는 가운데? 다른 학생들이 못 알아듣도록 한국어로 비밀 대화를 하면 좋을텐데-라고 하시던 분이라,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흔쾌히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해주시더라고요.

왠지는 모르지만 (제가) 분위기가 어색해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정작 교수님께선 살짝 즐거워 보이셨습니다만...?으아아 왜 그랬을까?그 와중에 제가 몇마디 알아듣고 일본어로 "이거 이상해요 일본어로 말하는거 그만둬주세요"라고 하니 해맑게 "오 일본어 어떻게 아니? 애니메이션에서?" 라고 몸 쪽 꽉 찬 돌직구를 날리시더라고요. Well yes, but actually no 일련의 엄청나게 어색했던 일본어 대화가 끝나고 제가 다음 학기에 일본어를 배운다 하니 "오 왜? 애니메이션 때문이니?" 라고 연속 투구를 하셨습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서 반박(?)하기도 뭣하더라더요. 그래도 일본어를 배워서 교수님이랑 유창하게 대화하고 싶다는 소소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근데 아직도 손발이 오그라지는거 같아요. 으아아 왜 여쭤봤지!

그나저나 언어에 대해 교수님이랑 얘기를 하다가 재미있는 말이 나왔는데요, 교수님이 "아시아권 언어는 음절의 갯수를 늘리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고문해서 예를 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영어도? 격식을 차린 표현은 그렇지 않은 표현보다 훨씬 더 길지 않느냐고 반문했지만요. 으 음... 그러고 보니 언어를 막론하고 더욱 예스러운 표현은 그렇지 않은 표현보다 길이가 기네요. 어째서일까요.

YANA

You are not alone.

9 댓글

마키

2019-05-01 17:15:16

뭐 저만해도 취미생활을 위해 기초만 배운 일본어 가지고 아마존 재팬 직구도 하고 그러는걸요.

공부라는게 동기부여도 중요해서 취미를 위해 일본어를 배운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이 학창시절때 공부가 가장 재밌었던 순간이었죠.

YANA

2019-05-01 17:22:52

저의 경우엔 중학교 때 100개 가량의 보컬로이드 노래를 가사와 함께 핸드폰에 집어넣고 외우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잊었지만서도...

3학년 때 외국어를 배우니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인도로 가게 되서 일본어를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다음 학기에 배우게 되서 기쁘네요. 그래도 교수님이 애니메 얘기를 꺼냈을 땐 으크헉!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일본어를 배운다 하면 그런 이유로 주로 배우는가 싶더라고요.

마드리갈

2019-05-01 20:25:24

YANA님의 바로 곁에서 상황을 본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그리고, 역시 그렇게 느껴지네요. 애니메이션 세계의 제1언어는 일본어라고.


제 경우는 일본어를 활자와 음악으로 먼저 익혔고, 애니는 의외로 상당히 나중에 봤어요. 집에 있는 일본어 서적이 오빠가 즐겨 읽던 옛날 것이 많은데다 음악도 꽤 오래전의 것이라서, 일본인과 대화하다 보면 나이에 비해서 일본의 옛 문물에 친숙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어요. 저 또한 YANA님처럼 정식으로 일본어를 배운 건 아니고, 오빠의 지도를 받아가는 형태의 독학으로 익힌 것이지만요.


그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네요.

일단 아는 언어들을 살펴보면, 서양 언어들은 대체로 별개의 수식어를 붙이거나, 독일어처럼 부가된 수식어를 이어서 새로운 긴 단어를 만들거나, 대명사를 쓸 때 복수형이나 대문자로 시작하는 등의 특별한 표기방식을 쓰거나 하는데, 동양 언어, 더 좁히자면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의 경우는 별개의 어휘를 쓰거나, 같은 어휘를 쓸 때 어간은 그대로 두되 접사를 길게 첨가하여 붙이는 식으로 음절이 꽤 많아지거든요. 일례로 한국어의 경우 "하다" 를 "하시다" 로, 일본어의 경우 앞의 예와 동일의미의 어휘 "스루(する)"를 "사레루(される)"로 쓴다든지. 게다가 일본어의 경칭표현은 정말 길어지는 경우가 많죠.

YANA

2019-05-03 11:16:59

저의 경우엔 일본어 단어나 일상 어구를 한두마디 주워들어 알아듣는 정도라, 일본어를 안다고 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저의 경우엔자각이 많이 뒤떨어져서인지 독학이 힘든지라, 수업을 듣는 식으로 공부를 해야 그나마 남는게 있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일본어 수업을 듣게 되어서 상당히 기뻐요. 한국에 있었다면 중학교 3학년 때 들었을텐데,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인도에 가게 되어서... 거기선 일본어 수업이 없어서 들을 기회가 영 없다가, 대학교 교양으로 이제야 듣게 되었습니다. 두근두근하네요.


언어 관련해서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만, 교착어 계열의 격식 표현은 오히려 영어보다 더 편리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영어는 격식 표현을 적으려면 단어 선택이나 표현을 아예 뜯어 고쳐야 되니까요... 으으. 어째서 격식 표현은 비격식 표현보다 긴 것일까요. 아니, 반대로 비격식 표현이 원래보다 짧아지는 것일까요? 은어나 유행어의 줄임말을 보자면...

앨매리

2019-05-01 22:35:51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생활을 위해서 일본어를 배워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에 써진 교수님의 말이 저한테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뜨끔하게 되네요.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중국어를 배우다가 그만둔지 오래되어서 니하오 같은 아주 기본적인 말 외에는 다 잊어버렸습니다만, 일본어와 달리 취미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어 자체를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열심히 배웠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에도 참 특이하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다시 배우라고 하면 그때처럼 언어 자체가 즐겁게 느껴질지 장담을 못하겠더라구요.

YANA

2019-05-03 11:28:50

교수님한테서 애니메 얘기가 즉각 나오신 걸 보면, 교수님이 일본어를 할 줄 안다 하셨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대략 어떤 식인지 가늠이 가능해지더라고요. 큿흠...

뭔가 배우는데 즐거우면 확실히 확확 느는 법이죠. 반대로 흥미가 없으면 뇌 속에 욱여넣으려 해도 나중 가면 전부 잊게 되더라고요.

Lester

2019-05-02 01:38:46

일본어는 이제서야 히라가나의 80%를 외우고 가타카나로 못 넘어가는 상황입니다만, 영어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밥벌이에 일조하고 있네요. 어디까지나 GTA 세계관의 스토리를 알고 싶어서 학교 영어에서 좀 더 발전했을 뿐인데, 여기까지 올 줄은 저도 정말 몰랐어요. 정말 즐긴다는 것의 힘이 이렇게 큰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어도 어떻게든 '즐기는 것'을 바탕으로 공부해야 할 텐데... 즐기기 이전에 아예 기초가 안 잡혀 있어서 가망이 없네요;;;

YANA

2019-05-03 11:33:21

뭐든 즐길 수는 없는 법이죠. (그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확실히 언어는 뭔가 취미나 관심사에 연결되어 있으면 쭉쭉 크더라고요. 게임을 하는데 한글판이 부실하거나 미지원이라서 울며 겨자먹기로 스토리를 찾아가면 영문판을 한다던지, 자막을 구하기 힘든 애니를 본다던지...

SiteOwner

2019-05-04 16:29:56

재미있는 경험담 덕분에, 고온이라서 다소 나른해진 주말 오후가 상당히 유쾌하게 느껴집니다.

즐겁게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효고 현 하니까 생각나는 건 일본 3대 쇠고기 중의 하나인 고베규(神?牛). 고베시내의 중심가 역인 JR 산노미야역 주변에 고베규 스테이크를 파는 레스토랑이 수십개 몰려 있다든지 한 게 생각나는군요. 미국의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 1978년생)의 이름 코비가 그 고베규에서 유래한 본명입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엄청난 소프트파워를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지요. 매분기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발표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굉장한 창작자들이 얼마나 많길래 이럴 수 있는가...그런데 1990년대 이후의 장기불황으로 인해 이 업계에 명암이 꽤 현저한 것을 보면 걱정이 안 될 수도 없지요. 그래도 희망을 버릴 단계는 아니고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접분야인 게임의 경우는 침체 후 부활에 성공했다 보니 선순환도 기대됩니다.


역시 격식을 차리는 분야는 뭔가가 많아지지요. 건축물, 의복, 장식품, 미술품 등의 실물은 물론 언어, 음악 등의 무형의 것도 마찬가지로, 여러 요소가 첨가되고 조합되어 정교함과 조화로움의 미가 완성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궁정문화가 화려한 것도 이런 데에 기인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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