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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금요일. 세훈은 긴장과 경계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아직 클라인과 그의 패거리, 또 첼시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게다가 오늘은 클라인이 말한 일주일이 되기 바로 전날. 캠핑에서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더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오후 3시 반. 세훈과 주리는 학교 근처의 주택가를 조용히 걷고 있다. 금요일 하교길의 즐거움에 가득 찬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 중에 몇몇 학생들은 내일 있는 ‘코믹 피에스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훈과 주리도 마찬가지로 내일 갈 행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들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세훈과 주리의 표정에는 그런 기대감이나 즐거움 같은 건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메이링 씨하고 앨런 씨한테 이야기는 해 봤어?”
주리에게 질문하는 세훈의 표정은 내일 행사에 가는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지하다.
“아... 맞아. 내가 이야기해 보기는 했는데, 내일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다더라. 내일 오전에 법정에 나가 볼 게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대신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파라 씨한테 연락해 달라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
“내일 메이링 씨가 말한 그 ‘강력한 초능력자’가 올 가능성이 있다더라.”
“하, 정말? 또 피곤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제발 그 강력한 초능력자가 그쪽 패거리만 아니면 좋겠는데.”
세훈과 주리가 한참 캠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때.
“어... 거기!”
“세훈이하고 주리 아냐?”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다. 세훈과 주리가 목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니, 미셸과 디아나가 세훈과 주리 쪽으로 오고 있다.
“그런데... 세훈이 넌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내일 그 코스프레 행사인가 뭔가 간다면서?”
“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긴, 왜 그런지 이해는 가.”
미셸이 세훈의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말한다.
“나 같으면 이런 상황이었으면 쉽게 무너졌을 텐데, 너를 보면 말이지... 존경심마저 들 때가 있어.
“존경심이라니 너도 참, 하하하...”
세훈은 헛웃음 비슷하게 웃고는, 미셸과 디아나 쪽으로 몸을 돌려 미셸과 디아나를 보고 말한다.
“걱정하지 마. 내게 있는 벽은 내가 뚫고 나가는 거니까.”
“물론 네 말도 맞지만 말이야...”
디아나가 세훈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한다.
“한 명보다는 두 명, 두 명보다는 세 명이 벽을 뚫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아... 물론 그렇지.”
세훈은 잠시 다른 곳을 보다가 미셸과 디아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너희도 혹시 내일 거기 가?”
“아니. 우리는 안 가.”
“그래... 아쉽게 됐네. 그럼 다음 주에 보자.”
“그래. 재미있는 거 많이 보고 와.”
미셸, 디아나와 헤어지고 나서, 세훈과 주리는 다시 앞을 향해 걷는다. 한참 걷다 보니, 이번에는 대로변에 세워져 있는 순찰차 한 대가 보인다. 세훈과 주리가 순찰차 바로 앞으로 오자, 경찰관 한 명이 경찰차에서 내린다. 그 경찰관은 다름 아닌 진언.
“아... 난 또 누군가 했네.”
세훈은 진언을 보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한다.
“의외로 표정이 밝구나.”
“어... 그건 왜?”
“나는 또, 요즘 네가 그 녀석들한테 시달리고 있다기에,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는 줄 알았지.”
“아...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왜 걱정을 하지 말라는 거야.”
옆에서 주리가 한마디 한다.
“진언이 오빠, 세훈이 걱정이라도 좀 많이 해 줘! 같은 걱정도 두 사람이 해 주면 무게가 반으로 줄잖아?”
“그래... 맞아. 내가 나서야 하는 일인데, 힘을 많이 보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참, 그리고 있지...”
진언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나하고 서언이가 말했던 ‘그 사람’ 있잖아... 내일은 볼 수 있을 거야.”
내일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딱 특정해서 말할 수 있는 걸까? 시간대를 생각해 보면... 그것뿐이다! 그 사람은 내일 그 행사에 온다는 말 아닌가!
“저... 정말?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야, 내가 정보를 입수하는 루트가 의외로 많아.”
“아... 그래?”
“공식적인 방법만 있는 게 아니야. 비공식적인 방법도 의외로 좀 많지.”
“그래... 알았어. 나중에 또 봐!”
진언은 멀어져 가는 세훈과 주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경찰차에 다시 올라탄다. 잠시 후, 순찰차는 세훈과 주리의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미린역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가면 나오는 전시장 ‘미린 시사이드센터’. 다른 전시장들에 비하면 규모는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바로 앞에 바다를 끼고 있는 탁 트인 전망에, 양옆으로는 해변공원을 끼고 있는 곳이다. 번화가로부터는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해도 자체적으로 쇼핑몰을 갖추고 있어?
마린 시사이드센터 A홀에서, 코믹 피에스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아직 오전 시간대라 사람은 많이 없지만, 홀을 가득 채운 부스들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일찍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벌써부터 이곳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라 있다. 거기에다가 이곳 전시홀이 끝이 아니라, 밖에 있는 해변공원에서도 이런저런 행사가 열리고 있다.
미린 시사이드센터 정문으로, 남학생과 여학생 일행 3명이 들어서고 있다. 한 명은 세훈, 그리고 금발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어깨에 가방을 둘러멘 여학생과 투블럭 머리에 자주색 조끼를 입은 다른 두 명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남학생 한 명. 이렇게 세 명이다.
“주리도 온다고 하지 않았어?”
금발의 여학생이 세훈에게 묻는다.
“아, 이제 금방 온다는데.”
“네 여친 네가 챙겨야지.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야.”
세훈을 포함한 세 사람이 정문으로 들어가려는데, 세훈의 귀에 어디선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오토바이 소리가 난 쪽을 보니, 헬멧을 쓰고 분홍색 상의, 청바지를 입은 누군가가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있다. 그 사람이 헬멧을 벗는다.
“역시나.”
세훈은 놀라지도 않은 표정을 하며 말한다. 헬멧을 벗은 사람은 다름 아닌 주리.
“어? 나타샤하고 하야토도 왔어?”
나타샤와 하야토가 주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곧바로 주리가 합류하고, 정문에서 입장권을 받아 들어간다.
“그나저나 걱정이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세훈이 주리에게 말한다.
“뭐가?”
“그쪽 패거리도 왔을까 해서.”
“일단은 걱정은 놔. 나타샤하고 하야토 둘 다 그쪽 패거리는 아니잖아?”
“그런데, 여기 온 사람들이 많을 거 아니야? 어떻게 하지...”
세훈은 고민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민폐를 끼쳐 가며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자니 그 패거리는 또 따로 모여서 세훈을 노릴 것이 분명하므로 걱정은 되고... 한 가지 변수라면 그저께 세훈을 습격했던 첼시가 세훈의 요청에 따라 줄지 여부인데...
“응? 세훈아, 저기 저 사람...”
“왜?”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잖아?”
“누구... 아.”
세훈과 주리의 눈에는 체크무늬의 셔츠에 갈색 조끼를 입은 백발의 노신사가 서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 노신사는, 마치 세훈과 주리를 전부터 알던 사람인 것처럼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 세...”
세훈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려 하자, 그 노신사가 바로 인사한다.
“아, 조세훈 군이로군. 먼저 인사부터 하지. 나는 VP재단의 선임 연구원, 스티븐 사이먼 엘더 박사일세. 만나서 반갑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저를... 아세요?”
세훈은 엘더 박사가 마치 세훈을 오래 알던 사람처럼 대하고 인사하는 것, 그리고 보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바로 알고 말한 것에 적잖이 당황한다.
“분명 처음 봤을 텐데...”
“물론 자네를 직접 만나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아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 메이링 변호사와 에반스 사무장한테서 이야기는 들었네. 전에부터 만나고 싶어 했는데, 오늘 뜻밖에도 이렇게 만나니 참 반갑군그래.”
“아... 그렇군요...”
세훈은 엘더 박사가 자신의 사정에 대해 잘 안다니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저... 그런데...”
이번에는 주리가 묻는다.
“여기는 혹시 어떻게 오셨나요? 혹시... 알고 오신 건가요?”
“하하하, 아닐세. 그냥 주말이고 하니 놀러 나온 거지.”
“응? 놀러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그 VP재단이라는 곳은 저기 아이린구에 있지 않아요? 여기하고는 멀 텐데요.”
“아,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말했잖나. 오늘 주말이라고.”
엘더 박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미소를 짓는 듯, 근심스러운 듯, 묘한 표정을 짓는다. 세훈은 옆에서 엘더 박사를 조용히 본다. 그 표정은 어딘가 조금 무거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색해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저 기묘한 표정...
잠시 후, 엘더 박사는 어깨를 몇 번 돌리고, 목도 몇 번 돌리고는, 세훈과 주리를 보고 말한다.
“아... 시간이 됐네. 나는 이만 가 봐야겠군.”
엘더 박사의 얼굴은, 방금 전의 그 기묘한 표정은 사라지고. 다시 아까 세훈, 주리와 만날 때의 그 얼굴로 돌아와 있다.
“그럼, 언제 또 한 번 보겠네. 잘들 놀게.”
“아... 네... 조심히 가세요.”
세훈과 주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엘더 박사는 손을 한 번 더 흔들고는, 그대로 일행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
“하... 엘더 박사님을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세훈은 엘더 박사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크게 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그건 그렇고... 선임 연구원이나 되는 분이 왜 이런 데 놀러 나오셨지? 저런 데 취향이 있으신 건가?”
“에이, 다른 데 좀 들렀다가 오는 길이겠지.”
주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런 행사를 즐기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은데.”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세훈은 주머니 속에서 뭔가 울리는 것을 느낀다.
“아... 뭐지?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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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0-03-11 16:24:13
역시 능력이 강한 초능력자는 감지될 확률도 높아지는 건가 보네요.
이것은, 관점을 달리하자면, 이렇게도 통하겠어요. 정체를 감추고 은밀하게 자객으로 활동하기도 힘들 것이고, 이 페널티를 잘만 활용한다면 강력한 초능력자라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 게다가 뭉치면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니까, 더욱 든든해져요.
코믹 피에스타에 여러 사람들이 참가하는 건 참 좋아요.
그리고 여러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의 이점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SiteOwner
2020-03-15 17:17:37
智者?水仁者?山이라는 말이 있지요.
즉, 지혜로운 자는 물을,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세훈의 상황이 여러모로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바다에 연하고 전망이 좋은 미린 시사이드센터에서 열리는 행사인 코믹 피에스타에 참가하면서 지혜를 얻고 친구 및 협력자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취미에 연령이 제약요인일 수는 없지요. 미래사회니까 역시 이런 점도 나아져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