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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을 데가 많다는 수영의 말을 들어 보니 알 것 같다. 현애의 눈에도 보인다. 각 층의 집들부터 시작해서 옥상, 지상에 있는 공원, 지하 주차장 등등. 이 아파트 단지는, 범인이 숨을 만한 데가 너무나도 많다!
“아니, 이래 가지고서는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너는 좀 찾아나 보고 이야기해라.”
수영이 핀잔을 주자,?
“아니, 잘나신 작가님, 무슨 천리안이라도 있어? 뭐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해?”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는. 일단은 찾아 봐야 할 거 아니야.”
“그 녀석이 이 크고 넓은 단지 중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르는데 찾는 게 쉽냐?”
현애와 수영이 말다툼을 하고 있을 즈음.
“거기 뭐, 안 보인다고?”
마르코가 돌아보며 말한다.
“나는 잘만 보이는데?”
“뭐, 찾기라도 했어?”
현애가 수영과 말다툼하다 말고 마르코 쪽으로 간다.
“조금 전부터 카메라만 들여다보고 있던데, 카메라를 그렇게 뚫어져라 보기만 하면 뭐가 보이기라도 하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그런 건 아니지.”
“그럼 뭔데?”
“방금 봤거든. 도깨비불을 쓰는 그 녀석을.”
“하, 그래, 좋아. 어디 있는데?”
“저기 뭐냐... 단지 옆에 상가 건물 있지? 그 꼭대기.”
“하, 상가 꼭대기라고?”
현애가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뱉으며 말한다.
“그래, 좋아. 그 상가라는 데는 여기서 보이지 않잖아? 무슨 투시술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어떻게 거기까지 봐?”
“분명히 나한테는 보인다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
“봐봐.”
마르코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들을 가리킨다.
“저기 새들 보이지? 저 새들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니까. 내 능력을 사용하면 저런 동물의 시야를 빌릴 수도 있고, 그래서 어디든 볼 수 있다고.”
“마르코, 너!”
옆에서 메이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녀석이 있는 데가, 단지 옆 상가 옥상이라고?”
“네, 확실해요!”
“어느 쪽 상가인데? 서쪽, 동쪽?”
“서쪽이요, 서쪽!”
“서쪽 상가라... 어디...”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메이링이 앨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앨런이 바로 서쪽 상가로 달려간다. 어느새 일행이 보니, 그새 더 늘어난 도깨비불들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위아래를 오르내리거나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정신 사납게 만들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자동차 앞을 가로막거나, 아니면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등, 주위를 어지럽히고 있다. 약 30분 전까지의 평상시의 아파트 단지의 풍경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혼란스럽고 두려운 광경이다.
어느새 보니, 도깨비불 수십 개가 일제히 일행을 둘러싸고 있다. 마치 일행이 누군지 안다는 듯, 그리고 여기 왜 왔는지 알기라도 하는 듯. 물론 메이링 앞에는 오지도 못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더 심란하다.
“이거, 너무 많이 붙었는데. 이 도깨비불들이 내가 촬영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
“야! 마르코! 넌 그냥 찍는 것뿐이잖아! 이제는 이것들 얼리기도 힘들다고!”
“하, 그거 초능력자들끼리 잘도 이야기하시네.”
현애와 마르코의 말다툼을 듣던 시저가 빈정거리며 말한다.
“뛰어다니면서 피하기나 해야 하는 나 같은 비능력자는 도대체 어떡해야...”
막 넋두리하는 조로 뭐라고 하려고 할 때.
“이... 또... 또!”
도깨비불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시저의 바로 앞에서 타오른다. 얼른 빠져나가려는데, 뒤에도 또 도깨비불이 있다! 이제는 비명도 못 지르겠다. 그냥 체념하고서 바닥에 엎드려 버린다.
“야! 뭐 하고 있어! 너 내 옆에 딱 붙어!”
메이링의 말을 듣고서, 시저는 곧바로 메이링 쪽으로 가려는데,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도깨비불들이 시저의 앞을 가로막는다. 어찌어찌 그것들을 다 뚫고 메이링 옆에 착 달라붙은 시저의 얼굴은 온통 시뻘겋고 입에서는 가쁜 숨이 배어 나온다.
“시저! 괜찮아?”
“후... 도깨비불이 안 오니까... 그나마 낫네요.”
“도대체 어떤 놈인지, 걸리기만 해봐. 아주 그냥 확...”
메이링이 잔뜩 이를 갈며 말하더니, 앨런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변호사님?”
“앨런? 듣고 있지? 그 녀석, 잡히면 내 앞에 끌고 와. 알았지?”
“그 도깨비불 쓰는 녀석 말하는 건가요?”
“그렇지!”
하... 메이링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가슴이 두근댄다. 괜히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꼭 잡아야 할 텐데, 꼭...
“도망갔어요.”
전화 너머의 앨런이 허탈하게 말한다.
“뭐? 도망가?”
“하, 그 녀석, 제가 막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저를 보자마자 그대로 도망가 버리더라고요.”
“어디로 도망갔는데?”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까지는 봤는데요...”
그러고 보니까,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단지 안을 가득 덮고, 사람들을 위협하던 도깨비불은 어느새 모두 사라졌다. 하나도 남김없이!
메이링의 입에서 10년은 묵은 것 같은 한숨이 ‘파’ 하고 쏟아진다. 안도감보다는 허탈함이 얼굴에서 배어 나온다. 그 녀석을 잡으면 무엇이라도 밝혀낼 수 있었을 텐데...
허탈한 얼굴은 메이링뿐만이 아니다. 현애, 주리, 시저, 마르코도 마찬가지로 아쉬움이 가득 섞인 한숨을 내뱉고 있다. 이렇게 기껏 왔는데 잡지를 못하다니...
“갔어요?”
“하... 꼭 잡았어야 하는 건데...”
“저 녀석, 또 설쳐댈 텐데요...”
메이링은 애써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일행을 달랜다.
“후... 어쨌든, 오늘 다들 와 주느라 수고했어. 이제 앨런이 오면 가자.”
“네... 네.”
메이링도 생각 같아서는 같이 아쉬워하고 싶지만 말이다.
잠시 후.
일행이 모여 있는 곳에 앨런이 돌아오자, 메이링이 손을 흔들며 앨런을 부른다.
“여기야, 여기!”
“네, 변호사님!”
“후... 수고했어.”
메이링은 가방에서 음료수병을 하나 꺼내서 앨런에게 건네준다.?
“그런데 혹시 도깨비불 쓰는 녀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봤어?”
“후, 그러니까 있죠.”
앨런은 일단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말한다.
“그 녀석이 도망가려고 할 때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몇 장 찍었는데, 의외로 멀쩡한 얼굴이었어요. 처음에는 좀 음침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어... 그래?”
멀쩡한 얼굴이라니? 금방 생각해서는 뭔가 매칭이 되지 않지만... 아무튼, 그게 누군지 알아야 한다.
“앨런, 일단 사진 공유 좀 해 줘. 내일 한번 좀 자세히 보자.”
“네, 변호사님.”
“저... 앨런 씨?”
메이링과 앨런의 말을 듣고 있던 수영도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앨런을 부른다.
“앨런 씨, 저 좀...”
“네, 작가님.”
“혹시 그 사진, 저도 공유 가능한가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서 말이죠.”
“아... 그건...”
앨런은 메이링을 잠시 한번 돌아본다. 메이링은 수영을 한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메이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자, 앨런은 빙긋 웃으며 말한다.
“얼마든지 공유해 드리죠.”
수영은 메이링과 앨런에게 손을 흔들고는 먼저 길을 나선다. 일행에게서 완전히 멀어지기 전, 현애와 한 번 더 1초 동안의 눈싸움을 한 건 덤이다. 지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노려보고서, 둘은 헤어진다.
수영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메이링은 일행을 보고 다시 한번 묻는다.
“혹시 어디 몸에 이상한 데 있는 사람 있어?”
다들 대답이 없다. 주리와 마르코는 그냥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좋아. 그럼 수고 많았어. 돌아가도 돼.”
그 자리에서, 다들 헤어진다. 문득 메이링이 보니, 다른 사람들은 단지 동문 방향으로 향하는데 시저만 혼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 너는 왜 그쪽으로 가?”
“저희 집은 이쪽으로 가면 금방이에요.”
“아... 그래. 조심히 돌아가고.”
“수고했어, 앨런.”
“아니오, 변호사님이 더 고생했죠.”
약 5분 후, 메이링과 앨런은 골드스타 단지 동문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변호사님, 뭐 드실래요?”
“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와야지. 이제 딱 이 시간에 온다고 했는데...”
그때.
“변호사님-”
동문 오른쪽에서 아냐의 목소리가 들린다. 돌아본다.
아냐의 뒤에 서 있는 건...
“어, 레아잖아.”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사각형 문양이 가득한 원피스를 입은 레아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단발머리의 키 큰 이레시아인 남자도 서 있다.
“그리고... 호렌 씨였지...”
“안녕하세요!”
레아가 손을 흔들며 메이링에게 인사한다.
“어, 그래. 저녁에 다 나와 주고 고맙다.”
“아니죠.”
“호렌 씨도 그렇고요.”
“에이, 뭐 이런 걸 다 가지고요.”
“음...”
메이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목소리가 점점 떨린다.
“레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네... 네.”
“혹시... 자비에의 행방은 좀 알 것 같아?”
“일주일 정도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서 찾아봤는데, 못 찾겠더라고요.”
“후... 그래?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그런데 말이죠, 저희가 조사하다 보니까, 자비에 씨하고 비슷한 동선에 있는 실종자가 또 있나 봐요.”
비슷한 동선의 실종자라니? 메이링의 눈이 확 뜨인다.
“그래? 그게 누군데?”
레아가 대답하는 대신, 호렌이 AI폰을 꺼내서 뭔가 보여 준다. 보니, 미린경찰서의 한 경찰관의 소개 페이지다.
[테렌스 엘더, 경위, 순찰3팀장]
“음... 이 경찰관이 실종되었다는 건가?”
“아니오, 정확히는 이 경찰관도 누군가를 찾고 있죠.”
잠깐... 메이링의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이 경찰관의 성 ‘엘더’. 혹시... 설마?
시저가 일행과 헤어진 후, 단지 안에 있는 집을 향해 걷고 있었을 때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시저가 보니, 조금 멀리 단지 너머로 미린 라이트레일 고가와 벌집 모양의 ‘하이브 원’ 빌딩이 보인다. 이제 조금만 걸으면 집이 가깝다. 조금만 가면 되는데...
순간.
돌부리 같은 것에 걸린 것 같다. 몸이 순간 기우뚱거리더니...
“엇?”
눈앞이 확 돌아간다!
이런! 넘어지겠다!
그때.
누가 시저의 팔을 잡는다. 그리고 일으켜 준다. 후... 십년 감수할 뻔했다. 그런데 누구인가, 일으켜 세워 준 사람은? 돌아본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녁이지만 조명이 환한데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보이지가 않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별이 힘들다.
“고, 고맙...”
“조심하셔야죠.”
“네... 네.”
친절하면서도 은근히 음침하게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다.
“아 참, 지갑을 흘리셨는데...”
“어? 지갑이요?”
모자를 쓴 남자는 시저에게 지갑을 쥐여 주고는, 그대로 등을 돌리고 제 갈 길을 간다.
“저... 저기! 잠깐만요!”
시저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멀리 사라진다.
“잠깐... 저 좀 보세요!”
그러자 남자가 한번 뒤를 돌아보고, 웃는 것 같은 표정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뿐, 남자는 이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가 지갑을 봤을 때...
[XXX-XXXX-XXXX]
뭔지 알 수 없는 번호가 쓰인 명함이 같이 있다.
“뭐야, 이 번호는?”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1-14 00:53:56
도깨비불이 아주 난리네요.
이래서는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협적이고 성가시네요.
여기서는 마르코의 능력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되네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시야도 공유가능하다면, 이런 조합도 가능하겠어요.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리나의 능력이 같이 엮인다면 레이더와 무장을 갖춘 전투기같이 움직일 수도 있겠어요.
테렌스 엘더의 성씨가 엘더네요. 실종된 그 엘더 박사의 일족일까요?
시어하트어택
2020-11-15 21:43:24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두 능력의 조합이라면 정말 궁합이 잘 맞을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같이 나올 일은 있을 것인가...
SiteOwner
2020-12-26 19:53:26
정신사나운 도깨비불의 난리, 역시 실제로 저런 것을 봤다면 패닉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사실 여러 영상물에서 공포분위기를 묘사할 때 맹수들이 접근하면서 눈에 불을 켠 모습이나 불덩어리가 난무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제 정신으로 있기는 힘들 듯합니다.
역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벌인 짓이 확실하군요. 도주했다면 잡히기 전까지는 다시 나타날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당분간은 안 들키기 위해 잠복할테니 이게 또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군요.
시저의 빈정거림, 현애와 수영의 반목 등은 정말 난감합니다.
사실 작정하고 저지르는 자에게는 힘을 합쳐도 대응이 힘들기 마련인데, 이래서야...걱정이 앞섭니다.
시어하트어택
2020-12-29 23:16:38
그래도 제 작품 같은 가벼운 분위기니까 어느 정도 넘어가는 경향이 있지, 정말 무거운 분위기였으면 그냥은 못 넘어갔을 겁니다.
저렇게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워지는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