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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813호실. 현애와 시저, 니라차가 테이블 앞에 모여앉아 과자를 먹고 있다. 어느새 과자는 세 봉지째 비워져 있고, 음료수 역시 거의 다 마셨다. 시간은 이제 9시 40분을 지나고 있다. 시저와 니라차는 시종일관 함박웃음을 짓고 있지만, 현애는 그렇지 못하다.
“아, 왜 안 와. 전화를 다시 한번 해 봐야 하나...”
현애는 초조하게 AI폰의 시계를 보며 말한다. 전화기를 자꾸 들여다본다고 세훈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다든가, 전화를 받을 리는 없지만.
“40분째 안 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건데...”
“에이, 걱정 마.”
니라차가 과자를 하나 집어먹으며 말한다.
“혹시 어디서 구경하는 데 한 눈이 팔렸을지, 아니면 어디 들러서 뭘 더 사 올지 어떻게 알아? 좀만 기다려 보자고. 그리고 어제 너도 좀 늦었잖아?”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현애가 한숨을 쉬며 되묻는다.
“너희는 가까운 편의점, 하다못해 집에서 한 200m 정도 떨어진 가게에 가서 과자 같은 걸 사 온다고 하면, 40분이나 걸려서 갔다 와?”
“아니, 그건 아니지.”
“40분씩 걸려서 가는 건 백화점 정도고...”
니라차와 시저 둘 다 현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지. 그럼 이제 한번 전화를 더 해 봐야겠어.”
한편 그 시간, 호텔 지하 1층 아케이드.
세훈을 향해, 날아든다. 의자, 쓰레기통, 조각상들이, 일제히,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아, 안돼!”
날아드는 물체들을 보고, 세훈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 지른다.
“이것들... 대체...”
“뭐긴 뭐겠어, 순순히 입을 열지 않은 녀석에게 우리가 주는 처벌이지.”
페넬로페가 히죽거리자, 에시모도 페넬로페를 따라 웃는다.
“조용히 처분을 받아들이면 되지, 왜 그렇게 발악을 하고 그러시나?”
“몰라서 그래. 너희들이 내 능력을 아직 맛보지 못해서 그런데...”
그렇게는 말했지만, 세훈 역시 난감하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몇 초. 거기에다가 세훈의 능력을 가지고는 세훈 자신을 지켜 주지도 못한다. 고작해야 타인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것뿐인데... 이 상황은...
그때다.
세훈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다.
“그래... 그렇게 하면...”
시간이 없다. 생각났을 때 즉시 써야 한다.
도박이다. 성공하면 살고, 실패하면 죽는다...
“이 녀석들... 받아라!”
세훈의 외침에도 페넬로페와 에시모는 마치 하등한 생물을 보듯 한다.
“하, 뭐래.”
“그냥 얌전히 받기나 할 일이지.”
세훈의 손에서 뭔가가 뻗어나가는 것을 느끼자, 세훈은 눈을 꽉 감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세훈은 눈을 뜬다.
호텔의 아케이드 그대로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히, 세훈의 도박은 성공한 모양이다.
살짝 몸을 일으켜 본다.
발 앞에, 페넬로페와 에시모가 쓰러져 있다.
세훈은 일어서서, 발 앞에 쓰러져 있는 페넬로페와 에시모를 본다.
둘은 아까 자기들이 가져왔던 기념품과 화분 더미, 그리고 의자와 쓰레기통 등에 파묻혀서, 팔다리만 버둥거리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그 기념품과 화분, 쓰레기통 같은 물체들이 마치 의지라도 있는 듯, 페넬로페와 에시모를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왜 그래, 내가 좀 가르쳐 줄까?”
세훈은 버둥거리는 페넬로페와 에시모를 보며 말한다.
“그러니까, 너희의 능력을 과신하니까 나한테 이렇게 당하는 거 아니야!”
물체들 사이에 껴서 겨우 세훈을 올려다보는 페넬로페와 에시모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고통스럽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솔직히 몰랐거든? 그런데, 너희들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니까, 이 사물들에게 자아가 생겨 버린 것 같네? 그래서 통제를 벗어나서, 도리어 너희들을 공격하게 된 거겠지?”
“당장 치워라, 이 자식...”
페넬로페가 신음을 흘리며 악을 쓴다. 옆의 에시모는 겨우 한쪽 손을 물체 더미 밖으로 내놓고서는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그 으르렁거림은, 마치 털을 다 뽑히고 팔다리가 다 부러진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것과 같다.
“이걸 다 치우는 대로, 네 녀석과 망할 파울리를 머리부터 발까지...”
“시끄럽네.”
세훈은 무심한 듯 에시모의 손을 밟는다.
“끄... 으윽...”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누군지 알고 여기 올 정도의 머리가 있었다면 이런 일도 겪지 않았겠지? 그런 머리도 없이 어떻게 너희들의 몫을 되찾는다는 거야.”
“개... 같은... 자식...”
“당장... 돌려 주지 못해...”
“받고 싶으면 파울리한테 가서 정정당당하게 따지든가.”
세훈이 막 자리를 뜨려던 그때.
♩♪♬♩♪♬♩♪♬
“아, 또 안 오냐고 전화 왔네.”
바로 전화를 받는다.
“아, 여보세요? 그러니까 나, 갑자기 편의점에 사람들이 많아져서...”
“무슨 소리야. 얼른 와! 지금 과자 다 먹어 가고 있다고!”
“아니, 그러니까...”
세훈이 막 전화에 대고 뭐라고 하려는데...
“여기야, 여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누가 이쪽으로 온다.
미켈, 그리고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이다.
“어? 뭐야. 벌써 상황이 끝난 거야?”
미켈을 제외한 다른 크루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다.
“기껏 도와주러 왔더니만...”
“어? 파울리 씨!”
세훈은 미켈을 보자마자 큰 소리로 외친다.
“여기... 이 사람들이...”
“알아. 스코프 녀석들, 정말 머리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라니까.”
“어떻게 된 거야, 너?”
미켈을 뒤따라 온 바리오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그러니까.., 제가 여기를 막 걷던 중이었는데...”
세훈이 막 뭔가 말하려는데, 전화 너머의 현애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야, 조세훈! 너 어디 있어? 과자 빨리 안 사 와? 콜라도! 지금 몇 분째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빨리...”
“아, 알았어, 금방 갈게!”
세훈은 서둘러 전화를 끊고, 미켈과 다른 테르미니 퍼스트 일행을 돌아보며 말한다.
“저, 죄송하지만 가 봐야겠어요. 내일 봐요!”
이렇게 한마디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마치 급하게 출동하는 경찰이나 소방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훈은 서둘러 현장을 벗어나 사라진다. 헐레벌떡 뛰어가는 세훈의 뒷모습을 보던 비앙카가 일행을 돌아보고 말한다.
“우리... 이걸 어부지리라고 해야 하는 건가? 한 것도 없는데, 큰 걸 얻은 거 아니야?”
“에이, 그건 아니지.”
미켈이 바로 말한다.
“스코프 녀석들이 자멸한 거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누가 적인지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이런 꼴이 된 거야. 안 그래?”
“음... 나는 그것보다는... ‘베푼 게 돌아온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네 말도 맞는 것 같군. 저 친구에게는 내일 따로 뭐라도 좀 해 줘야겠지.”
“뭐 해, 미켈?”
미켈과 비앙카가 바리오를 돌아보니, 바리오는 이미 페넬로페와 에시모를 누르는 물체들을 하나 둘씩 치우고 있다. 직접 치우려니 많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페넬로페와 에시모는 정신을 잃어서 능력이 해제된 상태라, 물건들에는 더 이상 의지가 실려 있지는 않다.
“이 녀석들 묶자고. 그렇게 느긋하게 이야기만 하지 말고.”
“그... 그래.”
그날 늦은 밤, 테르미니 시내의 한 5층 높이의 빌딩. 5개 층 중 홀로 불이 켜져 있는 2층의 한 사무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소규모 회사가 쓰는 사무실이다.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둘러앉아,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웃음을 띠는 사람도 하나 없고, 다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콘라트 뮐러가 갖고 있던 이권이 꽤나 어마어마했나 보는군.”
검은 로만 칼라 셔츠를 입은 남자의 말에,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을 연다.
“맞아. 여행사 8곳과의 우선 협상권부터 시작해서, 사원 7곳의 발굴에 대한 권리, 그리고 그곳에서 나올 경우 태양석에 대한 권리까지! 여기 테르미니의 이권은 다 그 녀석이 헤쳐 먹으려고 했지.”
“그래, 맞아. 그 녀석, 이상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어. 온갖 폭력에, 심지어 살인도 불사하고 이권을 차지하려고 했던 건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석연찮은 건, 밀무역계의 거상 ‘탈라스 곤’과의 강한 커넥션이었지.”
“그게... 확실히 증거가 있던 거였나?”
“아니. 바보도 아니고 그런 녀석들이 금방 발각될 증거를 남길 턱이 없지. 내가 몇 개월간 은밀히 뒷조사를 해서 밝혀낸 거야. 처음에는 마치 견고한 방패처럼 그게 잘 안 먹혀들었는데, 어느 시점이 되니까 마치 양파 껍질 벗겨내듯 술술 나오더라. 그래서 내 계획으로는 한 내일쯤 해서 콘라트를 습격할 생각이었는데, 어제 갑자기 죽어 버렸지 뭐야.”
민머리의 남자가 분한 듯 말한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
로만 칼라 셔츠의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지금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테르미니 퍼스트라는 조직이 콘라트가 틀어쥐고 있던 대부분의 권리를 가져갔어. 경쟁자들로부터의 원성이 장난이 아니야.”
“그리고 그 중에... 스코프 컴퍼니는 섣불리 대들었다가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지.”
크고 둥근 안경을 쓴 남자가 가만히 입을 연다.
“아니, 너는 그게 스코프 컴퍼니라는 건 어떻게 아는데?”
“뭐,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지. 아침에 푸른 조끼 입은 녀석한테 슬며시 가서 부추기니까, 하루 만에 저렇게 되던데? 덕분에 우리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잖아? 경쟁자도 제거하고, 파울리의 전력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됐고.”
“푸른 조끼? 리카이린 말하는 거지?”
“맞아.”
“잠깐...”
또 한 명의 남자가 AI폰을 보더니 다급히 말한다.
“스코프 컴퍼니 멤버들이 모두 당한 것 같은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아냐고? 거기 호텔 직원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몇 명 있거든?”
“그래... 역시 정보원이 있으니까 최신 뉴스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고 좋네.”
“아무튼... 조금 우리에게 판이 유리해졌다고는 하지만...”
로만 칼라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연다.
“긴장을 늦추지는 말자고. 승리를 위해서는 기회를 잘 잡아야 하니까.”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다른 한 명의 여자가 민머리의 남자에게 묻는다.
“탈라스 곤이 대체 누구야?”
“누군지는 아직 드러난 게 많지 않아. 하지만 단편적인 자료로 알 수 있는 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인물, 그리고 그 사람이 오고부터 여기 초능력자가 급증했다는 것.”
“그래... 누군지 몰라도 위험한 녀석인데.”
로만 칼라의 남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것 말고 더 없지? 좋아,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로만 칼라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6-03 12:59:32
온갖 물건들이 날아가는 그 상황...
정말 끔찍하죠. 아직도 날짜까지 기억나는데, 2010년 9월 1일. 그날은 서해안을 타고 온 태풍이 서울을 직격하는 날이었죠.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학기의 개강일이었는데 무서운 강풍에 온갖 물건이 휩쓸려 날아가는 터라 하루종일 밖에 나갈 수 없었고, 근처의 골프연습장은 철골 지지대가 부러져서 꺾였고...세훈이 느낀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가 바로 예상되네요.
세훈의 능력은 상대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힘. 이것이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할까 사실 이전 회차까지는 이해가 안되었거든요. 누군가가 도우러 와서 그의 힘을 증폭시키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적의 능력을 증폭시켜서 사물들에게 자아를 생성시키고, 그 사물들이 역공을 하게 만든...정말 기발했어요. 이렇게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또 제3의 세력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네요.
그런데, 도처에 정보원이 심어져 있네요. 진짜 섬찟하네요. 호텔직원은 물론 여러 곳에 첩자가 숨어 있다니...시어하트어택
2021-06-05 23:56:43
정말 잊혀지지 않으시겠군요. 저희 어머니 같은 경우도 태풍 때문에 유리창이 날아가고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잊혀지지 않으시다는군요.?
세훈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적을 이긴 거죠. 그리고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도, 저렇게 쓰는 방향에 따라 잘 쓸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준 거고요.
SiteOwner
2021-06-23 18:34:58
애니에서 잘 묘사되는, 온갖 물건들이 날아다니는 상황은 화면 너머의 시청자가 보기에는 볼만하지만, 그 현장상황의 당사자가 되면 생각이 시청자일 때와 같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훈에게는 정말 절체절명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발상으로 세훈이 그 위기를 넘겼군요. 페넬로페와 에시모의 능력을 증폭시켜서.
이런 도박이 제대로 먹혀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안그랬으면 세훈은 비록 살아남더라도 상황이 처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클레이모어가 터진 앞에 있는 상황으로 귀결되겠지요.
누군가가 오고나서부터 초능력자가 늘어났다...
그게 또 신기하군요. 누군가가 초능력자를 늘려서 뭔가 노리는 게 있는 듯한데...시어하트어택
2021-06-24 07:54:34
정말 '모 아니면 도' 심정일 겁니다. 저런 위기에 처하면 없던 힘도 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저 '누군가'가 정말 중요한 인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