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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가을이었다

시어하트어택, 2021-10-22 21:00:39

조회 수
110

7월 초의 어느 날. 기온이 한참 올라가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갔다 올게, 그러면.”
“좀 멀리 가는 거였지?”
“그래. 한 석 달 정도는 못 보겠네.”
지방 출장을 떠나던 그날. 그이는 열차에 올라타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꼭 한번 안아 주었다.
“잘 있어야 해. 언제든 연락하고.”
그때가 딱 7월 초,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였다. 그이는 회사 일로 3개월 동안 지방 출장을 갔다. 원래는 나도 그 동네 구경을 좀 할 겸 해서 같이 따라갈까 했지만, 하필이면 그때가 학원 개강 시즌이었던 관계로 같이 가지는 못하고, 그날부로 3개월의 장거리 커플이 탄생하였다.
그이와 인사를 건네고 돌아온 다음 날, 학원 강의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출입문 앞 화단의 해바라기들이 막 피려는 게 보였다. 바로 옆에 있는 단골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막 피려는 해바라기의 향기가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 선생님 오셨네요?”
카페 주인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를 알아본다. 학원을 오가면서 보기도 하고 또 내가 여기를 자주 찾기 때문에 내가 들어오는 자세만 보고도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린다.
“오늘은 예가체프 한번 맛보시겠어요? 지금이 딱 좋을 때예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분에 여러 가지 맛을 보네요.”
그리고 5분 정도 기다리자 나온 예가체프 커피. 추천해준 덕분인지 더욱 은은하고, 깔끔한 맛이 났다.
어느 정도 커피의 맛에 빠져 있는데, 사장이 문득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남자친구 분이 안 오셨나 보네요.”
“네. 멀리 지방 출장을 갔거든요.”
“그래요... 그날이 기다려지겠네요.”
“에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직 한참 멀었어요.”
나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그 말은 그 날 이후 석 달간 내 머릿속을 자꾸만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서 8월이 되었다. 학교의 방학 기간이기도 해서 학원은 한창 바쁠 때지만, 내게는 용케 시간이 생겼고 그때를 이용해서 1박 2일 정도 바닷가로 다녀왔다. 그이가 근무하는 데에 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필사코 오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거기로 가지는 못하고, 혼자서 바람만 쐬고 온 것이다. 가기는 정말 잘했다. 바닷바람도 좋았고 해변의 모래, 숙소 모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거기 가서도 틈틈이 연락은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컸다. 내 옆은 항상, 뭔가 허전했다. 자리가 하나만 있음에도 옆에 자리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았고, 1인분을 시켜도 2인분을 시키고 나 혼자만 먹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작게나마 휴가를 다녀오고 학원에 출근하니, 해바라기가 금세 만개했다. 학생들 역시 내가 못 본 새에 바뀐 것 같았다.
그날도 강의를 마치고, 언제나처럼 카페에 와 보니...
“못 본 새에 많이 달라지셨네요, 선생님.”
“여행을 다녀오니 그런 거죠. 좋은 데에서 바람 많이 쐬고 왔거든요.”
그렇게는 말했지만, 카페 주인은 내가 어딘가 지친 걸 엿본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건 전날이었음에도 피로감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그걸 나름대로 안 것이다.
“이거 드셔 보시겠어요?”
카페 주인은 미리 준비했는지, 얼음을 넣은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산타아나 어때요? 지금의 선생님께 딱 맞는 커피인데.”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걸 다 주시고!”
보통 커피는 조금조금씩 음미하는 게 정석이다만, 그날은 갈증이 좀 있었던 것인지 한번에 반씩이나 잔을 비웠다. 순간 카페 주인도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갈증은 한번에 확 풀렸고, 나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보니, 비가 쏴아아 내리고 있었다. 시원하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질퍽하고, 꿀렁거리는 기분. 여름도 이제 반 정도는 지났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9월 중순.
그이와 헤어질 때 돌아오던 길에 우렁차게 들려오던, 그리고 8월 한 달을 온가득 메우던 매미 울음소리도 이제 더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는 풀벌레 소리가 채웠고, 큰 길가에 심어 놓은 은행나무는 조금조금씩 노란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개학 시즌이 되어서 오전에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점심시간 즈음에 그이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8월 초하고 비교해 봐도 바뀐 게 거의 없었다. 외모, 말투, 심지어는 옷차림까지. 말하자면 나는 9월 중순에 있는데 그이는 아직도 8월 초에 있다는 듯한 느낌?
시간이 되어 학원으로 다시 가니, 어느새 해바라기는 조금씩 시들어 가고, 꽃이 있던 자리에는 열매가 영글어 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대신할 코스모스가 조금씩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 화단에 한 번 더 눈길을 줄 때,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여름이 이제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날도 카페를 갔을 때.
“선생님, 오셨네요!”
카페 주인은 여느 날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드실래요?”
“어... 네!”
어쩐지 따뜻한 커피를 더욱 마시고 싶어진 그날이었다. 처음에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카페 주인이 그렇게 추천해 주니까 마시고 싶어졌다.
약 5분쯤 후, 커피가 나왔다. 후후 불어 마셔야 할 정도로 뜨거운 커피였다. 마시면서 생각났다. 그이도 같이 마주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내 앞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리고 그날.
지방 출장을 나갔던 그이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역의 전광판 앞에 앉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연착 안내 방송도 나오기는 했지만, 생각 외로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4분 정도.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열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차례로 내렸다. 그이를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몸은 좀 떨어져 있더라도 얼굴까지 못 본 건 아니니까. 그리고 3개월 만에 다시 그이를 마주친 그 순간.
순간적으로는 다른 사람 같이도 보였다. 한창 더운 7월에 입은 반팔에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어디서 좀 놀다 온 듯한 사람이 아니라, 베이지색 점퍼를 걸친 웬 진중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뿐.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이에게 와락 달려들어 안겼다.
“잘 갔다 왔어?”
“뭘 그걸 새삼스럽게 물어. 잘 있다 왔잖아.”
그이는 언제나 나를 만날 때의 웃음처럼 웃어 보인다.?
그런 우리의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여름의 따뜻함은 아직 좀 남아 있지만 여름의 것은 아닌 이것.

그랬다.
가을이었다.

-------------

연재작 쓰면서 틈틈이 써 본 단편입니다. 어느 카페의 이벤트를 위해 써 봤는데, 예상보다는 분량이 훨씬 덜 나왔습니다. 나중에 손볼 기회가 있으면 살을 덧붙여서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 보고도 싶습니다.

로맨스라는 장르에는 처음 도전해 봤는데 아무래도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게 참 쉽지 않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제 도전은 계속되어야 할 겁니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3 댓글

마드리갈

2021-10-23 20:01:33

이렇게 로맨스 단편소설을 쓰셨군요.

역시 뭐랄까, 로맨스라는 게 골자 자체는 단순하지만 배경과 심리를 묘사하기는 그렇게 쉽지가 않죠. 그러니 접근 난이도는 쉬워도 전개 난이도는 만만치가 않아요. 그래도 최소한 상황묘사만큼은 상당히 잘 하셨다고 보고 있어요.

첨언을 좀 하자면, 분명 간절함이 있기는 한데 그것의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꼭 그를 기다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암시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현재 상태로는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같은데 보고 나면 왜 저렇게 되었을까 의문을 가질만한. 그러니 그 점에 보다 집중하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시어하트어택

2021-10-24 22:34:05

마드리갈님 의견을 보고 다시 읽어 보니 확실히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 좀 나네요. 마감 기간에 쫓기느라 그랬던 것이지만, 감정 묘사에는 좀 소홀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고쳐 써 봐야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근사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잘 만들어진 로맨스 한 편이 나오겠군요.

SiteOwner

2021-11-13 14:49:40

예전에 장거리연애를 해본 적이 있다 보니 여러모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군요.

게다가 이것을 여성의 시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저 또한 동생이 평한 것처럼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긴 이야기 없이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시작일 것입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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