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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02화 - 공항에서 호텔까지

시어하트어택, 2021-04-16 06:51:56

조회 수
122

테르미니 우주공항 터미널 서쪽 윙.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한쪽에, 현애와 벙거지를 쓴 남자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벙거지를 쓴 남자는 경멸스러운 시선을 풀지 않는다.
“하하하, 내 이름을 알고 싶다고?”
벙거지를 쓴 남자가 호쾌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사태파악을 못 하는 녀석은 처음 보는데.”
벙거지를 쓴 남자는 어이없는 듯 웃다가 모자의 챙을 약간 올린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잔뜩 찌푸려진 눈썹이 드러난다.
“하, 그럼 알려주지. 나는 ‘콘라트’라고 한다. 시추 전문업체 ‘M&P 마이너’와 협력 관계지.”
현애는 웃기지도 않다는 듯 가만히 팔짱만 끼고 서 있다. 남자는 열이 받았지만 애써 억누르는 척하며 말한다.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내 이름을 들은 걸 감사히 여겨야 할 거다. 나하고 붙어 본 얼간이들 중에는 내 이름도 못 들어보고 처치된 녀석들이 많거든.”
콘라트는 은밀히 드라이버를 꺼내 보인다. 여러 번 해 본 실력인지, 능숙하게 꺼내 들었음에도 근처를 지나가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건 드라이버이기는 하지만, 나는 흔적도 안 남게, 칼보다도 확실하게 찌를 수 있지. 만약 출혈 흔적이 남는다고 해도, 윗선에서 덮어 버릴 거고.”
“왜? 정말로 찌르게?”
“네 녀석이 자꾸 건방지게 나온다면.”
벙거지에 반쯤 덮인 콘라트의 두 눈이 떨리고, 드라이버를 쥔 오른손도 부들거린다.
“그거, 정말인 거야?”
“말대답 작작 해라!”
콘라트의 드라이버 끝이, 현애의 눈앞에 가까이 다가간다.
“마지막 경고다. 나는 말로 그치지 않는다. 한다면 한다!”
“안돼!”
드라이버를 보자 현애의 목소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바뀐다.
“이대로 나를 찌른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
“하! 겁먹었군?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콘라트의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어느새 그는 악에 받친 듯 박박 소리지른다.
“그럼 해 주마! 네 녀석이 직접 보여주는 거다! 이참에 네 녀석의 버릇을 고쳐 주마!”
콘라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든 드라이버의 끝이, 현애의 배에 닿는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콘라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말도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그저 이글거리는 눈으로 현애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그의 손이 얼었다.
마치 얼음조각처럼 온통 얼음으로 덮여 버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덮은 얼음이, 그의 팔을 타고 온몸으로 번진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현애는 얼음상이 되어 가는 콘라트를 한번 슥 보고는 등을 돌리고 제 갈 길을 간다.
“예의도 없이 나대는 인간은 이렇게 얼음상이 되는 게 어울려.”
‘이... 이 같잖은...’
콘라트는 애써서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뿐. 벙거지 밑으로 드러난 그의 살기를 띤 두 눈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이나 행동, 어느 무엇도 바깥으로 드러나는 일 없이, 콘라트는 그 자리에 드라이버를 쥔 자세 그대로, 온몸이 얼어 버린다. 마치 그 자리에 이전부터 조각해 놓은 얼음상처럼.

어느덧 6시 47분.
니라차의 가족, 세훈 등을 포함한 일행이 버스 정류장 출입구 근처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온 일행에, 한 명이 빈다. 니라차가 시계를 보니, 버스가 오기까지 이제 3분 남았다. 전화를 해 봐야 하나 막 고민하던 바로 그때...
“여기-”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빨간 베레모에 노란 상의, 청스커트를 입었다.
“야! 남궁현애! 너 왜 이제 와!”
“기다렸잖아!”
“아, 그런 일이 있었어.”
다들 뼈빠지게 기다렸다고 뭐라고 하지만, 현애는 태연히 말한다.
“그런데 많이 늦은 거야?”
“아, 늦은 건 아니지... 3분 있으면 오니까.”
그렇게는 말하지만, 니라차의 말투는 은근히 핀잔하는 투다. 니라차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은근히 현애에게 눈치를 주고 있다.
“어... 그래? 3분? 많이 늦은 거 아니야?”
“그렇게까지 늦은 건 아니지만, 다들 기다렸잖아.”
“하, 하긴.”
그때, 문밖에 금테와 화려한 장식을 두른 검은색의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있는 게 보인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호텔 리무진 버스인 모양이다.
“다 왔네. 타자!”
다들 니라차를 따라간다. 니라차의 부모님은 일행이 다 타기를 기다렸다가 가장 나중에 올라탄다. 일행이 모두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의 문이 닫히고, 버스는 스르르 미끄러지듯 정류장을 빠져나간다.

한편 그걸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겉보기에는 그냥 여행객처럼 보이는, 로만 칼라의 검은 셔츠를 입고 투블럭 머리를 한 남자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출입문 너머의 검은 리무진 버스, 정확히는 그 일행에 있는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
“저 버스,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로 가는 버스 아니야?”
남자는 리무진 버스의 외관만 보고도 어느 호텔로 가는지 알아 맞출 정도로 눈썰미가 있다.
“아까 그 노란 상의의 여자, 콘라트 녀석을 처리했어.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처음 보는 여자라서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을 것 같군. 보통 녀석이 아니야.”
남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로 향한다는 걸 알아낸 이상. 나도 여기서 허송세월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남자는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콘라트가 있었던 곳으로 향한다.

저녁 7시 30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테르미니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이곳은 테르미니에 있는 많은 호텔 중 하나지만, 특유의 병풍같은 붉은 외관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곳이다. 해가 완전히 진 저녁 시간임에도, 이곳은 특별한 조명을 쓰지 않았음에도 더욱 붉게 빛난다. 그 모습이, 군데군데 보이는 유적들과도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자, 그럼 얘들아!”
호텔 로비에 모여 있는 일행. 니라차가 일행에게 뭔가 말하고 있다.
“짐 갖다만 놓고, 7시 40분에 다시 여기 모이자. 일단은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 일정은 끝. 내일 일정은 이따가 설명할게. 알겠지?”
다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짐 놓고 와!”

약 30분 후, 호텔 1층 레스토랑. 조금 늦은 저녁식사 시간이지만, 테이블마다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에, 일행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는 중년 부부가 식사를 하면서, 8인용 테이블을 흘끗흘끗 보고 있다. 니라차의 부모님이다.
“자, 얘들아! 내일 일정을 설명할게.”
음료수를 마시던 니라차가 음료수를 다 마시고는 손뼉을 치며 말한다. 식사를 하던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니라차에게 집중된다.
“일단 내일 갈 곳이 어디냐면...”
테이블 한가운데 홀로그램을 켜자, 테르미니의 지도가 나타난다. 한가운데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의 위치, 그리고 한쪽에 있는 큰 호수 근처에 점이 몇 개 찍힌다.
“여기 호수 있지? 호수에 수중 유적이 하나 있어. 아마 도시 소개 영상 같은 데서도 봤을 거야. 필수 코스 중 하나로 되어 있기도 하고. 오전에 여기 갔다가, 그 다음은 자유 일정이야. 알겠지?”
“그런데 말이야, 니라차.”
세훈이 불쑥 말한다.
“왜?”
“보통 이런 패키지 여행에는 가이드가 딸리는 법인데, 이 패키지가 자유도가 높은 건 그렇다 쳐도 첫날에 가이드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아... 그게, 부모님도 알고 계시는데...”
니라차는 잠시 머리를 긁다가 입을 연다.
“여행사에서 그러는데, 원래 오기로 했던 가이드에게 급하게 사정이 생겨서 못 오게 됐대. 그래서 내일 아침에 가이드가 온다고 그러더라.”
“아니, 니라차.”
음료수를 마시던 현애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연다.
“갑자기 가이드가 바뀌는 게 어디 있어. 비싼 패키지 여행인데 이렇게 허술해?”
“알아. 나도 알기는 한데...”
니라차도 난처한지 머리를 긁는다.
“사실은 우주공항에 오면 연락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어서.”
“아니, 가이드가 왜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딱 우리가 리무진 버스를 타려는 그 시점에서 부모님이 연락해 봤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급히 여행사에 전화하고 아주 고생도 아니었어.”
“아까 버스에서 너희 부모님 통화하신 게 그거야?”
“맞아.”
“하, 여행이 시작부터 이렇게 안 좋으면 어떡하지.”
듣고 있던 조제가 불쑥 걱정스럽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한다.
“이러다가 어디 무인도 같은 데 가서 낙오하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넌 괜한 걱정을 다 한다.”
“그러니까.”

어느덧 시간은 오후 9시. 현애는 식사를 다 마치고 호텔 지하 1층의 아케이드를 구경하고 있다. 역시 5성급 호텔답게 지하 아케이드도 시선을 휘어잡는 곳들로 가득하다. 간편식당을 겸한 편의점, 패밀리레스토랑, 오락실 등등. 이용료가 좀 비싼 게 흠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아케이드를 걷고 있을 때.
차가우면서도 축축한 느낌이 뺨에 묻어난다.
“엇...”
불쾌한 느낌. 우호적이지 않은 예감이 든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거기, 잠깐만.”
현애의 귀에 한 남자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그럴 만한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젊은 남자의 목소리인데...
“여기야, 여기.”
돌아본다.
현애의 눈에 들어온다.
팔짱을 낀 검은 투블럭 머리의 남자가 아케이드 한쪽 구석에 서 있다.
한눈에 봐도, 우호적인 표정은 아니다.
“늦은 저녁에 어딜 그렇게 가는 거지?”
“그건 알아서 뭐하게.”
남자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한다.
그런데...
“‘알아서 뭐하게’라니.”
“뭐야, 당신.”
좋지 않은 예감, 점점 커진다.
“너한테서 알고 싶은 게 있지.”
“나한테서 알아낼 건 없어.”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든다.
순간 현애의 몸속 피가 모두 얼어 버린 듯, 찌릿거린다.
눈앞에 보이는 것.
드라이버다.
아까 우주공항에서 콘라트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것이다!
“왜, 놀랐나?”
“이걸 왜...”
“설마 이걸 모른다고 하지는 못하겠지.”
순간 눈이 흔들리지만, 현애는 곧바로 시치미를 떼고 모른척한다.
“드라이버잖아? 드라이버가 뭐 어째서?”
현애의 말에 남자가 코웃음을 치더니, 이윽고 AI폰을 켜서 이미지 하나를 보여준다.
얼음상이 되어 바닥에 쓰러진 콘라트의 사진. 그리고 그가 쥐고 있는 드라이버.
“눈이 떨리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걸 보니까, 알고 있는데?”
순간, 날아든다.
조금 뺨에 묻어났던 그 불길한 기운.
손바닥에 또 묻어난다.
그리고 보인다.
그 부위가, 스멀스멀 녹아내린 것 같은 모습이!
“말해 줘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네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니!”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4-16 15:26:19

역시 그 수상한 사람은 자객이었군요.

드라이버로 사람의 급소를 찔러 암살을 수행하는 수법, 참 참신하네요. 물론 참신하다고 해서 그게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 자객 콘라트는 현애를 해치려다 그대로 보기좋게 얼어버렸고...그런데 그 상황을 멀리서 보는 남자가 있네요. 그 또한 자객같이 보이네요. 처음부터 별별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는 여행, 정말 9박 10일만에 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


여행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기 마련인데, 여행 첫날부터 원래 동행하기로 한 가이드가 안 오는 건...

게다가, 콘라트와 같은 수법을 구사하는 또다른 자객이 현애를 노리네요. 왜 하필이면 현애인 걸까요...

시어하트어택

2021-04-18 23:39:44

드라이버가 좀 날카롭기는 합니다. 굳이 드라이버가 아니더라도 젓가락 같은 것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긴 하죠...


그 원래 가이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어지는 회차에서 밝혀질 겁니다, 아마도.

SiteOwner

2021-04-18 22:07:22

짖는 개가 물지 못하는 법이지요. 그렇게 처음부터 적의를 드러낸 콘라트는 현애를 찌르려고 드라이버를 찔러댔지만 결과는...

한 고비는 넘겼지만 가이드가 갑자기 오지 못하게 된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국내외 여러곳을 여행해 봤고 단체여행의 경험도 제법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원래의 가이드가 갑자기 못 오게 된 상황은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조종사나 스튜어디스의 경우는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서 다른 항로에 급거 투입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만, 역시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겠군요. 주최자인 니라차의 입장이 난처해질만합니다.


또 다른 자객이 현애를 노리는데, 그냥 해치는 게 목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 해치려면 몰래 다가가서 일격에 죽이면 되긴 하지만 그걸 놔두고 일부러 긴 말을 하는 건 아닐 것 같고...

시어하트어택

2021-04-18 23:42:12

사실 오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오지 못하게 되면 참 혼란스럽죠. 특히 저렇게 단체여행에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드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혼란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래서 임기응변이 나름 중요한 것입니다만, 정작 저렇게 닥쳐 버리면 보통은 우왕좌왕하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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