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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05화 - 가이드 도착

시어하트어택, 2021-04-28 08:17:13

조회 수
128

오후 9시 30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1층 로비. 로비 한쪽에 있는 카페 테이블에 한 중년 부부가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옆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호텔의 지배인이 공손한 자세로 부부 앞에 서 있다.
“아직도 그 여행사에서는 소식이 없습니까?”
“예, 현재도 대책회의 중이라고 하고,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여지껏 이런 일은 없었는데...”
중년 남자는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표님, 원래 오기로 했던 가이드가 일종의 프리랜서라서, 지금 같은 돌발상황에 여행사도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어서, 최대한 빠른 논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릴 건 감안해 주셔야 합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요청하신 사안이니만큼,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새로운 가이드가 올 겁니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갑자기 가이드가 증발해 버리는 일은 없었거든요. 좀 빨리 이 상황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는데...”
중년의 남자가 고민 섞인 한숨을 내뱉는데, 누군가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빨간 베레모에 노란 상의, 청스커트를 입은, 한쪽 손에는 편의점 봉지를 든 여자다.
“현애 아니니?”
중년 남자는 그 여자를 바로 알아본다.
“어? 찻차이 씨, 왜 거기에... 있는 거죠? 라차야 씨도요.”
카페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지배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중년의 부부는 다름아닌 니라차의 부모님, 찻차이와 라차야다.
“아, 별일 아니야.”
찻차이는 애써 아무 일 없었던 척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별일 아니면, 거기 호텔 지배인하고는 왜 같이 계신 거죠? 지배인님도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아, 그건 말이지...”
“설마, 그 가이드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 때문에 거기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건가요?”
“뭐, 그렇기는 하지.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니까.”
찻차이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현애는 최대한 아까 있었던 일은 숨기고서, 태연한 표정으로, 한마디만 한다.
“좋은 소식이 있겠죠, 내일이면요.”
“그래, 나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란다. 잘 자고, 내일 보자.”
“아저씨도요.”
인사를 하고는, 현애는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한편, 813호실.
“아,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정말!”
참아 보자던 세훈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현애가 안 오니까, 조금 전에 다짐한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성질을 부리기 시작한다.
“정말 어디 공장이라도 갔나 보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직접...”
“저, 세훈 님! 조금만 기다려 봐요!”
손목시계에서 인공지능 *나라의 음성이 드린다.
“금방 올 거예요. 여기서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좀 가만히 있어, 내가 좀 걱정되어서 나가 본다는데 뭐라고 그래!”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올 것 같은데...”
“내가 안 나가 보면 궁금증이 안 풀리겠어!”
세훈이 그렇게 씩씩대며 막 문을 나서려던 그때.

철컥-
현관문이 열린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현애. 한 손에는 과자가 잔뜩 든 봉지가 들려 있고, 두 눈은 멀뚱멀뚱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깜박이고 있다.
“야!”
세훈은 눈앞에 있는 현애를 보고는 대뜸 소리부터 버럭 지른다.
“아니, 왜...”
“너 지금 찔리지? 안 그래?”
“아니, 이렇게 많이 사 왔잖아. 너하고 같이 먹으려고!”
“하, 진짜로 공장 가서 가져온 거 아니야?”
세훈은 반쯤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하면서도, 은근히 현애의 손에 든 과자에 관심이 쏠린다.
“기대해도 좋아. 내가 별 고생을 다 해 가면서 사 온 거니까.”
“좋아. 네가 그렇게 장담을 하니까, 내가 안 먹어 볼 수 없겠는걸.”
세훈은 조금 전까지 성냈던 건 싹 잊어버린 듯 다시 얼굴에 웃음을 가득 품고 말한다.
“자! 제일 맛있는 것 좀 골라 줘.”
“그래. 뭘 사 왔냐면...”
현애가 봉지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자마자, 세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야, ‘허니버터 시리즈’는 어떻게 구했어?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건데!”
“편의점이 보통 편의점보다 2배 이상 크더라. 대신 좀 더 비싸기는 하지.”
“그... 그래?”
현애는 봉지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서 테이블 위에다가 과자를 모두 쏟아놓는다. 테이블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양이다. 거기에, 10개가 넘는 콜라캔들은 덤이다.
“우... 우와! 이거 다 사 오느라고 늦었던 거야?”
“어... 그런데... 어... 그렇지 뭐.”
현애는 대충 얼버무린다. 세훈의 얼굴을 슬쩍 보니, 세훈의 얼굴은 언제 열을 받았냐는 듯 완전히 누그러졌고, 온통 시선이 과자에만 가 있다. 그러더니 잠시 후, 현애를 다시 돌아본다. 얼굴은 완전히 고분고분한 얼굴로 바뀌었다.
“아, 내가 정말 몰라봤어.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사 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 맛있는 것 사 오니까 시간이 좀 걸려도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야, 이 정도면 우리 둘만 먹기에는 좀 그렇잖아?”
“그렇지.”
“다 불러와! 다 같이 먹어야지, 안 그래?”
“야, 무슨 과자 먹는 날이 오늘만 있는 줄 알아?”
“아... 그래. 하긴 그렇네.”
“좋아, 그러면 여기 있는 과자 중에 하나 골라. 나머지는 좀 나중에 먹고.”
세훈은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맨 앞에 놓인 ‘허니버터 시리즈’를 고른다. 그리고 현애에게서 콜라캔을 넘겨받는데...
“오? 이거 뭐 이렇게 차가워. 분명히 바깥에 좀 오래 노출되었을 텐데, 금방 냉장고에서 꺼낸 것 같잖아.”
시원하다. 얼음 속에 오래 들어있었던 것을 방금 꺼낸 것처럼.
“뭐, 이 정도쯤이야, 내게는 식은 죽 먹기지.”
“하긴.”
그렇게 말하고서,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를 하나 집어 먹는다. 한 번 씹자마자 과자의 풍미가 온 입속에 전해진다. 역시 연하고 부드러운 과자의 촉감과 허니버터 시즈닝의 조화는 최고다. 거기에다가 콜라까지! 정말 최고다!
“그러고 보니까...”
세훈이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연다.
“오늘 말이지, 그 가이드 없어진 것만 아니면 정말이지 최고였을 텐데...”
“하긴 그렇지.”
현애는 대략적인 내막을 알고는 있지만, 얼굴은 태연한 척한다.
“패키지 여행은 역시 가이드가 있어야 제격인데.”
“네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아?”
“동면되기 전에 한번 가족들이랑 다녀와 봤거든.”
“뭐, 그렇다면야...”
그렇게 말하고서, 세훈은 과자를 또 하나 입안에 넣는다. 역시 맛이 좋다. 하지만 가이드와 관련된 안 좋은 이야기를 입에 올려서인지 조금 전에 맛봤던 ‘최고의 맛’에서는 약 1~2%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얼른 가이드가 좀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데...”
세훈이 막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데...

♩♪♬

메시지 도착음이 들린다.
“어? 메시지 왔네.”
“누구 폰에서 들린 거야?”
“우리 둘 다 같은데.”
현애와 세훈 둘 다 일제히 메시지를 확인한다.

[가이드를 새로 구했어! - 니라차]

“어? 뭐야... 가이드가 새로 구해진 건가?”
세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니라차가 보낸 메시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구해졌다는 게... 말이 된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현애는 모르는 척 태연한 얼굴로 놀랍다는 듯 말한다.
“세훈이 네가 빨리 니라차한테 전화해 봐! 어떻게 된 건가!”
“뭘 전화까지 하고 그래.”
세훈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태연히 말한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 알 텐데. 안 그래?”
“아... 그건 그렇겠네.”
“그래, 그러면 과자나 먹자.”

다음 날 아침 7시 40분, 호텔 2층 레스토랑.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고, 그 너머로 테르미니의 시가지가 보인다.
상당히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꽉꽉 메우고 있다.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고, 홀로그램으로 뭔가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다. TV에는 테르미니의 날씨 정보가 나오고 있다.
“오늘 기온은 아침 18도, 낮 24도로 오후까지 약간 구름이 끼겠지만 나들이에는 지장이 없겠습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겠고...”
한쪽에서는 한껏 멋을 낸 일행이 아침식사를 고르고 있다. 비교적 평범한 편인 세훈도 고르고 고른 청재킷을 걸쳤고, 니라차는 머리에 선글라스를 얹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조제, 외제니, 시저도 마찬가지로 잘 차려입었다.
현애는 앞에 놓인 토스트에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세훈은 로스트치킨 샐러드와 양송이버섯 수프를 하나씩 가져간다. 이어서 과일도 고르고, 쿠키도 하나씩 고르고 하다 보니, 다 골라서 자리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친구들이 먼저 앉아 있다.
“거 참, 많이도 가져가네.”
“하하하, 그런가?”
“여기저기 많이 다니려면 많이 먹어야지!”
현애와 세훈은 니라차의 바로 앞에 앉는다.
“참, 오늘 어디 간다고 했더라?”
현애가 토스트를 먹기 전 니라차에게 묻는다.
“그 호수 안에 있는 유적이라고 했었던가...”
“맞아. 필수 코스야. 여기 오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가 본다고 하더라고.”
“어, 그래?”
기대감을 가득 품고서, 다들 한 입씩 먹으려는데...
“어, 너희들!”
누군가 일행을 부른다. 돌아보니, 니라차의 부모님이 앞에 서 있고,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 한 명이 그 옆에 서 있다.
현애는 바로 알아본다. 익숙한 얼굴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익숙한 건 아니다. 현애만 그렇다.
“새로 가이드가 오셨어.”
콘라트를 대신해 온 그 가이드, 다름 아닌, 미켈이다!
현애와 미켈은 묘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인사해라. 미켈 파울리 씨다. 원래 오시기로 했던 분 못지않은 경력을 갖고 계신 분이지. 파울리 씨, 저희 일행입니다.”
일행 모두 눈짓으로 가볍게 인사한다. 미켈 역시 일행에게 가볍게 웃어 보인다.
“영광입니다. 제가 이번 여행의 가이드를 하게 되어서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야말로요. 급하게 뽑히셨을 텐데, 더욱 수고하셔야죠.”
찻차이는 미켈의 손을 꽉 잡으며 몇 번씩이고 감사의 뜻으로 웃어 보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한편,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푸른 조끼를 입고 안경을 쓴 그 남자는, 곧바로 둘러앉은 동료들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말한다.
“저 녀석, 미켈 파울리 맞지?”
“맞아. 왜 저딴 녀석이 저런 거물의 가이드를 하는 거야.”
“난들 아나. 그 콘라트가 죽어 버린 건 좋았는데...”
“콘라트가 잡고 있던 걸 파울리 녀석이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는 거 아니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격앙된 반응을 쏟아낸다.
“그럼 좋아. 파울리 녀석을 처치하고, 우리가 되찾아야 해. 그리고, 저 녀석이 ‘태양석’ 일을 가져가게 놔둬서는 안 돼!”
푸른 조끼의 남자가 주먹을 꽉 쥔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4-28 22:26:56

정말 세상이 좁다는 것을 이번에서 느꼈어요.

현애가 니라차의 부모님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이 대체파견된 가이드는 조금 전까지 현애를 적대했던 그 미켈 파울리...

참으로 기묘해요. 이렇게 오월동주인 일이 처음부터...

그런데 먼발치에서 그 미켈 파울리에의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이...보통 일이 아니겠네요.


테르미니의 기상상황은, 역시 청스커트를 입기에는 딱 좋은 날씨같네요. 좀 다니다 보면 더워지기 마련인데 저 정도면 다리에 달라붙지도 않고 그러니까요. 매년 조금씩 다르지만, 제 경우는 4월에서 10월까지.

시어하트어택

2021-05-02 21:17:03

테르미니의 날씨는 제가 어렸을 때 미국 서부에 가본 것을 어렴풋이 떠올려 가며 상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유적 같은 게 좀 많은 이집트 나일강 유역 같은 곳을 떠올리기도 했고요...

SiteOwner

2021-05-06 19:10:29

여행에서는 참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데, 여기서도 그렇군요.

담당가이드가 갑자기 사정상 오지 못하게 되어서 대체인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 정말 난감합니다. 사실 여행, 운수업계의 숙명이기도 하지요.


현애의 냉기능력이 의외로 이런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게 재미있군요. 그나저나, 주인공 일행 및 가이드 미켈 파울리를 먼발치에서 보는 수상한 사람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저 대화내용만으로도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 아닌 건 명백하군요.

시어하트어택

2021-05-09 21:56:37

저도 돌발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그런 때가 닥치면 우왕좌왕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조금 실감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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