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살던 곳은 지옥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인 장소. 아직 어린아이가 창기로 팔리는 것이 차라리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리. 짐승의 고기보다 인간의 살점을 훨씬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동네.
그것이 소녀가 살던 곳, 카다스의 빈민가였다.
그런 지옥 한가운데에서 살면서도 소녀는 천국을 만들고 싶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소녀의 가족에게 천국을 선물하고 싶었다.
실로 아름다운 꿈. 언젠가 닿길 바라는 드높은 이상. 하나 유감스럽게도, 소녀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없었다.
마법을 배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마법의 은혜가 당연시되는 시대임에도, 소녀는 마법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았다.
소녀에게 특별한 자질 또한 존재치 않았다. 조금 눈치가 빠른 걸 제외하면, 평범하고 범속한 신체. 그렇기에 어떠한 특수한 조직에 거두어지는 일 또한 없었다.
그렇지만 소녀에게는 각오가 있었다. 보육원의 아이들, 자신의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굳은 각오가…….
몸이 아파도 새벽부터 일어나 일했다.
사람들이 실종되는 위험천만한 장소를 혹시나 쓸만한 게 있지 않을까 뒤집고 다녔다.
저녁 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도 아이들이 질릴 때까지 함께 놀아주었다.
모두가 잠들면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손가락에 무수한 바늘구멍을 만들어가며 내일 시장에서 팔 인형을 만들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고 침대에 누울 때마다 소녀는 잡생각에 시달렸다.
고통스러웠다.
점점 버티기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졌다.
자신 역시 아직은 어린데, 좀 더 놀고 싶은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또래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아이들은 즐거운 삶을 보내고 있을까? 그 애들은 혹시 연인이 있을까? 자신도 가능하면 멋진 남성을 만나서 연애도 하고 싶은데…….
끊임없이 몰려오는 그런 생각들. 그런 상상의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눈물로 씻으며 소녀는 어떻게든 모든 것을 잊고자 했다.
그저 참았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되면 천국에서 살 수 있게 되리라고 믿으며 버텼다.
그리고 어느 날 소녀는 ‘파트너’에게 선택받았다.
힘을 얻었다. 더는 범죄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빠르게 달리게 되었다. 그 덕에 조금 일찍 잠들고, 늦게까지 쉴 수 있었다.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돌봐준 수녀님에게도 밝은 미래만이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비록 불순한 뜻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친구 역시 사귀게 되었다. 마지막은 조금 나쁘게 헤어졌지만, 사과하고 다시 친해지려고 마음먹었다.
어울리지 않는 행복이었을까?
분수에 어긋난 즐거움이었을까?
그날,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불길과 함께 소녀는 천국째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
‘내가 뭘 잘못한 걸까?’
?
더는 뛸 수 없었다. 팔다리가 재가 되어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인제는 싸울 수 없었다. 내장, 근육, 신경……. 모두 익어버려서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 되었다.
지켜주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자신을 돌봐주던 수녀님은 눈앞에서, 바로 자신의 앞에서…….
?
“아, 아……!”
?
울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익어버려서 한 치 앞조차 보이질 않는 눈에서는 더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
‘왜? 어째서? 내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거야?’
?
수녀님께서 말씀하시던 신을 찾아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질 않았다.
소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녀의 부름에 누구도 답해주질 않았다.
너무나도 외로웠다.
화르르륵-!
?
“……!”
?
몸이 다시 불타올랐다.
이미 고통을 느끼는 기능조차 망가졌다고 생각했건만, 몸이 산 채로 타오르는 고통은 사라질 줄 몰랐다.
?
‘누가 도와줘!’
“끄, 아, 아!”
?
어떻게든 구조요청을 해보고자 하여도, 지금 이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
[나 외에 다른 신을 금한다.]
?
‘무언가’가 소녀에게 찾아왔다.
마치 타오르던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현상.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
[모두 원래대로 돌아갈 시간이다.]
?
마치 시구를 읊조리는 것처럼, 평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음성. 하지만 그 문장이 만들어낸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마치 녹을 벗기는 것처럼, 소녀의 타버린 피부가 벗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소녀가 본래 가지고 있던 구릿빛 매끄러운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게 어떻게 된……?!”
?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라기 무섭게 소녀는 자신이 멀쩡하게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원래대로 돌아왔어!’
?
더는 아프지 않았다.
타버렸던 팔다리가 원래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코앞조차 보이지 않던 눈 역시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
‘누구지?’
?
대체 어떤 사람이 그녀를 도운 것일까? 혹 그녀가 받은 허명과는 달리 진짜 ‘천사’가 자신을 구원하기라도 한 것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이윽고 소녀의 시야가 완전히 돌아왔고.
?
[안녕하신가, 아가씨?]
?
악마와 마주쳤다.
눈을 뜬 곳은 이미 방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오물을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진흙 같은 괴물체가 살결처럼 요동치며 그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기괴하기 그지없는 풍경. 그 중앙에 ‘그’가 서 있었다.
그는 남자처럼 보였지만 여자처럼도 보였다.
언뜻 아흔이 넘은 노인처럼 늙어 보였지만, 다섯 살도 아닌 어린아이처럼 어려 보이기도 했다.
건강한 모습인가? 하지만 곧 죽을 것 같은 병자 같기도 하다.
혼자서 수천의 군세를 상대할 수 있을 것처럼 강해 보였지만, 동시에 파리 하나 잡지 못할 정도로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
[원래 이런 일을 하던 ‘가면’은 따로 있었지만, 지금 그건 고장 났으니 어쩔 수 없지.]
?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조용히 혼잣말한 뒤, 천천히 소녀를 향해 다가왔다.
?
[아가씨에게 제안을 하나 하도록 하지.]
?
그의 손에는 한 개의 검은 가면이 들려 있었다.
형태는 지극히 단순해, 마치 시장에서 쉽게 구할 것 같은 무면 탈.
?
‘뭐야 저거?’
?
그것을 본 순간, 소녀는 자신의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분명 평범한 형태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그 가면은 기이할 정도로 모독적이었다. 꼭 이 세상의 모든 오염과 혼돈을 뭉그러뜨려 만든 것처럼 역겹고 두려웠다.
?
[이걸 쓴다면 그대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도록 하지.]
?
여전히 그의 어조는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왜인지 소녀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
[좋은 선택이다.]
?
그렇게 소녀, 빅토리아는 가면을 썼다.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
?
?
*** ***
?
?
제스를 제압하는 데는 다행히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진 않았다.
에스텔의 기술에 자신의 소환수가 당한 걸 느끼고 절망한 것인지 녀석은 저항을 완전히 포기했고, 고작해야 몇 번의 공격으로 변신이 해제되었다.
?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
나는 괜찮았다. 솔직히 녀석이 전력으로 덤벼왔어도 쉽게 때려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에스텔.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예상보다도 훨씬 참혹했다.
고작해야 가죽 한 장으로 고정되어 있던 팔.
멀쩡한 곳을 찾기 힘든 피부.
군데군데 녹아내려서 제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뼈와 근육.
여기에 더해 쓰러져서 눈을 감고 있기까지 했으니, 미약하게 들썩이는 가슴만 없었다면 영락없이 에스텔이 죽은 줄 알았을 것이다.
?
‘내가 바로 융합 변이를 발동했으니 망정이지.’
?
조금만 늦었어도 내가 마주한 것은 에스텔이 아닌 그녀였던 시체에 불과했을 것이다.
?
“……앞으로 이런 일은 좀 참아주세요.”
『가능하면 그러도록 하지. 이번에는 확실히 조금 위험했으니…….』
?
걱정하는 마음에 그리 기대하진 않고 투덜댄 건데, 다행히 에스텔도 그리 부정하진 않았다.
?
‘역시 뭔가 변한 것일까?’
?
조금 전의 그 기술. 그건 이전에 에스텔이 보여준 전력을 아득히 넘어서는 위력이었다.
아마도 사도에게조차 조금이나마 타격을 줄 수 있겠지.
평범한 인간과 사도의 격차를 생각하면 실로 실로 무서운 성장이다.
?
‘그리고 분위기도 조금 바뀌었는데…….’
?
뭔가 홀가분해졌다고 해야 할까?
여태까지, 특히 최근 에스텔은 무언가 무거운 것을 짊어진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
‘무언가 귀중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걸까?’
『그래, 어마어마한 것을 깨달았지.』
?
실수했다.
융합 변이 때문에 표층 의식이 읽혔는지, 에스텔의 답변이 돌아오자 나는 살짝 혀를 찼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직접 물어볼까?’
“어떤 깨달음인지 직접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 하지만 그 전에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네, 어떤?”
?
그렇게 말하는 에스텔의 어조는 너무나도 진중했고, 나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직감했다.
잠시간의 침묵.
그 침묵이 깨지길 내가 손에 땀을 쥐며 기다리고 있을 때.
?
『그레고르여,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돌아왔다.
?
“네?”
『이건 소여의 기사로서도, 백작가의 영애로서도 하는 말이 아니야. 나, 에스텔이란 개인은 그대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마음은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그, 그렇군요.”
?
어째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없는데 그 내용은 듣는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다.
?
‘세상에 저런 말을 진짜로 하는 사람이 있구나.’
?
이런 건 전에 오드리가 보던 연애 소설에나 나오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게 되다니!
그 열렬한 고백에 대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내가 고민하기를 잠시.
?
“에헤헤헤.”
?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게 나와 에스텔의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
“에헤헤헤. 배고프다.”
?
마치 어린아이가 할 법한 말이 굵직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있는 것은 마치 이지를 잃은 것처럼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
제스, 빈민가의 왕이자 크투가의 가짜 사도.
변신이 해제된 이후, 내가 끌고 온 녀석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
“배고프다. 맘마 먹고 싶어.”
?
뇌에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변신이 해제된 이후 기절했다가 깨어난 녀석은 꼭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
처음에는 억지로 권능을 끌어쓴 부작용이 아닐까 했지만, 왠지 그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
‘그렇다면 대체 왜지?’
『어쩌면 그림자의 짓일지도 모르겠군.』
?
다행히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에스텔은 제법 그럴듯한 가정을 떠올린 모양이다.
?
“네?”
『일부 기밀 엄수를 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요원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특수한 술식을 체내에 새겨넣는다. 적에게 사로잡혔을 때 자신을 백치로 만들어버리는 시술이지.』
?
그녀의 말이 끝나길 무섭게 융합 변이를 통해 연결된 의식을 따라 에스텔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제스처럼 유아 퇴행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 차림의 남자.
?
『그 그림자가 사용한 것과는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하진 않나?』
?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보였다.
확실히 그때 본 그 그림자의 성격대로라면 이 정도는 준비해뒀어도 이상하진 않겠지.
?
‘빌어먹을!’
?
결국,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 건가?
?
“뭔가 일이 끝나긴 했는데 제대로 해결된 건 없네요.”
?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제스를 쓰러뜨리긴 했지만, 망가진 녀석에게 들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아이들을 산 채로 구한 건 다행인 점인데…….
?
‘저걸 구했다고 할 수 있을까?’
?
아이들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아는 있다. 모두 숨은 쉬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괜찮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저 중에 멀쩡한 몸인 아이는 없다. 소수를 제외하면 타인의 보조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조차 없을 것이다.
?
‘그리고 그나마 멀쩡한 아이들 역시 정신적 타격은 만만치 않겠지.’
?
어쩌면 다시는 불 근처에 가지도 못하지 않을까?
?
‘빌어먹을!’
?
솔직히 제스 같은 녀석이 앞으로 어떤 꼴이 되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나는 구세주가 아니다.
모든 이를 구할 생각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저런 악인 역시 개심시키겠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저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어서 아쉽다고 여길 뿐. 제스 저 빌어먹을 자식이 저 꼴이 된 게 불쌍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지.’
“젠장.”
?
융합 변이는 만능이 아니다.
융합 변이로 나와 합체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힘을 갖춘 자이면서 나에게 짙은 호감을 느끼고 있는 존재뿐.
유감스럽게도 아이들은 그 중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했다.
?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
그렇게 내가 한숨을 쉬려는 순간.
?
“이건?”
?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
“에스텔, 혹시.”
『그래, 나도 느꼈다.』
?
혹시나 착각이 아닐까 했지만, 에스텔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내가 고개를 든 순간.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
“뭐지?”
?
언뜻 그림자가 아닐까 했지만,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녀석의 어둠이 주변을 잠식하는 진흙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어졌다.
?
‘하지만 이건 달라.’
?
그저 밤이 온 것처럼 어두워졌을 뿐. 녀석과는 그 성질 자체가 다르다.
?
‘대체 무슨 일이지?’
?
그 상황에 당황해서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잠시.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리기 시작했다.
?
‘이건?’
『눈?』
?
그것은 무언가가 닿자마자 물이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그 결정의 형태는 누가 보아도 눈송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처음 보는 순간 그것을 눈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
‘색이 왜 이렇지?’
?
그건 검은색이었다.
분명 눈이란 건 흰색인 것이 당연할 텐데,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마치 숯가루처럼 칠흑 그 자체였다.
내가 그 색상에 당황하든 말든, 천천히 내리던 눈은 어느새 지금이 겨울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시야를 가득 메워갔다.
그리고 다시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
“그어어어어어.”
?
무언가가 울부짖었다.
그것은 언뜻 한탄 같기도 했고, 분노에 찬 고성 같기도 하였다.
기괴한, 그리고 소름 끼치는 소리.
하지만 그 기괴한 외침을 내는 음색은 너무나도 내게 익숙했다.
?
“빅토……리아?”
?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거기에 있는 것은 해골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투구를 쓴, 얇은 갑주를 입은 한 사람의 모습.
?
“어째서?”
?
그 갑주의 형태는 평소 빅토리아가 걸치던 것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본디 빅토리아의 갑주는 은빛. 마치 겨울 그 자체를 잘라낸 것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
『검은색?』
마치 제스의 투구처럼……!
내가 그것을 눈치챈 순간.
쾅-!
크게 발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느껴지는 기척은 아이들이 있는 곳!
?
‘설마?!’
?
서둘러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니 검은 갑주를 입은 빅토리아가 그곳에 있었다.
?
“아. 아아아아!”
?
아이들을 해치려는 생각은 없는지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저 손을 뻗고 울고 있었다.
?
“아아아아아!”
?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명실상부한 통곡.
주르륵-!
?
‘울고 있어?’
?
그녀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명 물 따위는 순식간에 얼어붙을 기온인데도 어째서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만큼은 얼지 않고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
“빅토리아…….”
?
그 모습에 내가 그녀를 위로하고자 다가가려는 순간.
?
“그아아아아아!”
?
마치 분노가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괴성을 지르더니 그녀의 모습이 다시 한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선 곳은 제스의 앞.
?
“헤헤헤헤!”
?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지, 제스는 그저 헤헤 웃고 있을 뿐이었다.
?
“그아아아아아아!”
?
다시 한번 괴성이 울리자, 빅토리아의 등 뒤에 검은 얼음의 촉수가 돋아났다. 하나하나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운 얼음의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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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빅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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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고 불길한 감정을 느낀 내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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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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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움직인 순간 눈앞에 제스는 더는 존재치 않았다. 그저 큐브 스테이크처럼 깍둑썰기가 된 시체만이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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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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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기 조각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잔혹하게 밟아버리면서. 빅토리아의 괴성만이 침묵 속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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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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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설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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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외모의 베이스 이미지를 설명할 캐릭터는 바로 블레어입니다. 블레어는 Act 1의 메인 악역이자, 이후로도 등장할 캐릭터라 조금 다양한 캐릭터를 모티브로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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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의 외모 베이스는 “Fate/Grand Order”의 난릉왕(이미지 링크 #)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체형이 어느 정도 미소년 형태에 가까운 난릉왕과는 다르게, 완전히 가슴이 작고 마른 성인 여성에 가까운 체형이지요. 대충 “라스트 오리진”의 나이트엔젤(이미지 링크#)에 가깝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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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는 피부색이 굉장히 창백한데, 그냥 하얀 피부라고 말할 정도가 아닙니다. “오버로드”의 샤르티아 블러드폴른(이미지 링크#) 같은 흡혈귀 캐릭터 수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흰 피부는 장식이 아닌지라, 햇빛에 굉장히 약합니다. 여름에 30분 정도 햇빛을 받고 돌아다니면 피부에 화상을 입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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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나 표정의 경우는 “오버로드”의 클레만티느(이미지 링크 #)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늘 싱글벙글 웃고 있긴 합니다만, 그게 정겹다기보다는 상대방을 장난감으로 보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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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등장한 인물 중 불행한 과거를 자랑하는 인물은 많지만, 그중 최고는 블레어입니다. 캐릭터 자체가 직접 그런 걸 떠들고 다닐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자세한 건 나오진 않겠지만, 다른 캐릭터가 평범해 보일 정도로 최악이에요. 그의 성격이 이렇게 망가진 건 이런 과거 역시 7할 정도 영향이 있습니다. 타고난 이상성은 여전하지만, 제대로 된 부모 밑에서 성격은 이상해도 사람 구실은 하고 살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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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는 그냥 넘겼지만, 블레어가 사창가의 가짜 딸이란 얘기를 오드리가 들으면 깜짝 놀랄 겁니다. 왜냐하면 사창가의 가짜 딸 중에 블레어 같이 비교적 멀쩡한 사람은 드물거든요. 사창가의 가짜 딸을 만드는 약 자체가 강제로 자식을 기형아로 만드는 불법 약물에 가까운지라, 대부분은 사람 구실도 하기 힘든 상태로 태어납니다. 때에 따라서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블레어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살아남아서 그렇게 되었으니 운이 나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SiteOwner
2021-05-17 19:18:12
빈민가가 멀쩡하기를 기대하기는 극히 힘들지만, 카다스의 빈민가의 상황은 정말 심각하군요.
카니발리즘이 대놓고 횡행한다는 점에서는 현실세계의 범죄조직 따위는 명함조차도 못 내미는 지독한. 그러나 그 지독한 카다스의 빈민가에서도 희망이 죽은 건 아니었고 상황을 바꿔보고 싶었던 한 소녀가 있었군요. 그녀가 바로 그 빅토리아...그리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다시 태어난 빅토리아.
제스를 제압한 에스텔, 싸움에 이긴 기사일 뿐만 아니라 에스텔이라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격을 온전히 찾았군요.
그리고 그레고르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말했는데, 꼭 그 타이밍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제스가 방해를...
이 순간은 그레고르에게도 답이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이어지려는 생각의 흐름이 탁 막혀 버렸으니...
부활한 빅토리아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증오와 복수심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으로 제스를 죽여버렸군요. 이제 아이린 수녀의 원수를 갚은 것일까요.
설정의 블레어에 참고된 이미지를 보니, 역시 정상이 아니군요. 클레만티느의 표정을 하고 있다니, 식은땀이 나고 있습니다.
출생에 관련된 것도 결코 정상이 아니군요. 갑자기 목을 만져보고 있습니다.
Papillon
2021-06-02 02:45:33
카다스 빈민가의 상황은 최악이죠. 이렇게 된 이유는 4대 귀족입니다. 사도야행 도중에는 사망자나 실종자가 대거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이 죽어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놓은 셈이거든요.
결국 빅토리아가 아이린 수녀의 원수를 갚은 셈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녀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죠. 현재 빅토리아의 정신 상태는 다음 화에 밝혀집니다.
블레어는 여러모로 정상이 아니죠. 사실 초기에는 단역으로 만들었습니다만, 어째 비중이 커버린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마드리갈
2021-05-22 13:03:23
승리라는 의미를 내포한 이름, 빅토리아.
빅토리아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었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죠. 그리고 그들을 해친 불구대천의 원수 제스를 가만히 놔둘 수 없겠죠. 그 분노를 투사하여 결국 이렇게 제스를 짓뭉개 죽여버렸네요.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어요. 빅토리아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거니까요.
확실히 경험치의 차이라고 할까요. 그레고르와 에스텔은 생각의 깊이가 다르네요.
저렇게 유아퇴행해 버린 제스에 대해서 그레고르는 기괴함을 느끼는 정도였지만, 에스텔은 보다 설득력 높은 추론을...
블레어의 이미지에 참조하신 캐릭터를 보니 확실히 끔찍하네요.
카이저 인사이트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 갑자기 클레만티느같은 표정...그냥 처음부터 추물인 게 더 낫겠다 싶네요.
Papillon
2021-06-02 02:50:34
빅토리아가 결국 원수를 갚긴 했지만, 상태가 정상일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세한 건 다음 화에 밝혀질 예정입니다.
그레고르가 나이는 더 많지만, 이런 실전 경험은 없다시피 하니까요. 반면에 에스텔은 일단 실전에 투입된 적이 있는 기사니, 저런 상황에 익숙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블레어도 그렇고 이미지 예시인 클레만티느(원작 일러스트레이터인 so-bin의 일러스트 링크 #)도 사실 굉장한 미인이긴 하죠. 하지만 표정과 인성이 모든 걸 갉아먹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