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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웅
-끼이익, 쿵
굉음이 들리더니, 오토바이 한 대가 넘어져서 도로 이 쪽에서부터 저 쪽까지 끌려갔다. 무리해서 운전하려던 오토바이가 사거리에서 신호에 맞춰 달려오던 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다가 생긴 일이었다. 사거리 모퉁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굉음을 내며 끌려간 오토바이는, 신호등 기둥에 부딪힌 후에야 겨우 멈췄다.
"이, 이게 어떻게 된... "
"직접 보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아. 되게 처참하게 죽었거든, 너. "
"죽...어? 내가? "
"너, 지금 내가 보이지? 난 널 데리러 온 저승사자야. "
멀뚱히 서 있는 그에게, 온 몸에 붕대를 휘감은 여자가 다가와 하얀 티켓을 감았다. 흡사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이나 클럽에 입장할 때 감는 종이 티켓같이 생긴 그것은, 종이로 만든 것 같았지만 손으로 찢어보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았다.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아, 난동부렸다간 공무집행방해죄로 즉사할수도 있으니까. "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여자를 따라 걸어가다보니, 자신처럼 손목에 무언가를 감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향한 곳은, 지하철 역 지하에 있는 낡은 승강장이었다. 새로 승강장이 신설된 후로 쓰이지 않는 곳인데도 가끔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곳이었다.
붕대를 감은 여자는 손목에 감긴 티켓이 검은색인 사람을 대기실로 보내고, 흰색 티켓을 찬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그리고 곧이어, 열차가 도착하자 안에서 검표원이 내렸고, 흰 티켓을 감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열차에 올라탔다.
"3번 칸 2번 좌석에 앉아주세요. "
제법 어린 티가 나는 검표원은, 손목에 감인 티켓을 흘긋 보고 자리를 안내했다. 안내받은 3번칸에 가 자리에 앉으니, 금방 옆 사람이 도착했다. 그리고 열차는 어딘가로 출발했고, 이내 명계로 도착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죽은 것이 실감이 났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아마도 처참하게 죽었겠지.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할까?
"방금 도착하신 분들이군요. 이 표를 받고 중앙 재판정으로 가 주세요. "
은행에서나 볼 법한 번호표를 받은 그는 다른 직원의 안내로 중앙 재판정에 도착했다. 명계 최심부에 있는 재판정은, 마치 백악관을 보는 듯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프론트 업무를 보는 직원들도 있었고, 바삐 서류를 움직이는 직원도 있었다.
그 시간, 재판정 중앙.
"제우스 님, 이번 열차를 타고 도착한 망자들 정보표 프린트해왔습니다. "
"끄응... 분량이 많군. 보자... "
막 법복을 입고 있는, 제우스라 불린 중년의 남성이 직원에게서 건네받은 표를 보고 있었다. 이번 타임도 꽤 들어온 모양이군, 목록들을 쭉 확인하던 남성은 잠깐 멈칫, 하더니 목록 한 쪽에 형광펜을 죽 긋고 볼펜으로 별표를 그렸다.
"379번은 스틱스에 등록된 인간이군. 아마 사고사로 명계로 온 모양이지... 다른 법관들에게 379번에 대한 판결을 우선적으로 하라고 전해 줘. 스틱스에 등록된 인간이라고 하면 아마 무슨 말인지 알 거야. "
"알겠습니다. "
재우스라 불린 중년의 남성은 직원에게 목록을 전해주고, 법복을 마저 입고 재판정으로 향했다. 제우스라 불린 남자가 막 도착했을 때, 나머지 열한 명의 법관도 379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는지 하나둘 법복을 입고 재판정에 들어서고 있었다.
"스틱스에 등재된 인간이 들어왔다고 했나? "
"네, 제우스님 말로는 그렇다고 하네요. "
"그런가... 요즘 스틱스에 등록된 인간들이 꽤 많이 들어와서 피곤하단말이지... 이쯤되면, 스틱스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점을 줘야 할 판이야. "
"그래도 행적들을 보면 헤라 님은 딱히 판정할 게 없을 것 같은데요? 결혼도 하기 전에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
제우스를 필두로 한 13법관이 자리를 잡고 앉자,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여자가 아까 데려온 남자를 재판정 안으로 들게 했다.
"재판번호 379번, 장우영씨. 들어오세요. "
"네? 네. "
법관들은 방금 들어온 망자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펜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재판정 내부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한참동안의 침묵 끝에, 헤라가 입을 열었다.
"젊은 나이에 죽어서 그나마 결혼 관련된 죄는 없네. 난 이번 판결에서 빠져야겠는걸. 다음. "
"뭐.... 예술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없으니 저도 패스하겠습니다. 다음. "
"쓰레기 몇 번 길바닥에 버린 건 있지만 패스. 다음. "
"살아온 행적치고 사랑은 꽤 건실하게 해 온 모양이네... 패스. 다음. "
"저는 죄를 물어야 할 게 있으니, 패스하실 법관들부터 말씀하세요. "
"불과 관련된 죄라... 자, 그럼 패스할 법관들 더 있습니까? "
판결할만한 죄가 없어서 법관들이 패스하던 찰나, 처음으로 죄를 물어야겠다는 법관이 나왔다. 그 뒤로도 두어명정도가 더 패스를 하고, 다시 죄를 물어야 할 게 있다던 다섯 번째 법관의 차례가 되었다. 붉은 머리를 드레드락으로 묶은 건장한 인상의 남성이었다.
"피고 장우영. 그대는 친구의 몸을 담뱃불로 지지는 죄를 지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
"친구의 몸을 담뱃불로 지지다니... 헤파이스토스, 그 죄는 내가 같이 물어도 되겠지? "
건장한 남성이 친구의 몸을 담뱃불로 지진 이유를 묻자, 옆에 앉아있던 구불구불한 머리를 기른 남성이 끼어들었다.
"피고 장우영, 그대는 무고한 친구를 단지 재수없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떄렸다. 인정하는가? "
"...... "
그는 소위 말하는 일진이었다. 그래도 한때의 치기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패거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고 본인도 정신차리고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 것도, 여자친구에게 줄 100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배달 아르바이트를 뛰다가 일어난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이 짙푸른 머리를 가진 남성이 말을 꺼냈다.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엄숙한 목소리를 가진, 3~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그것은 내가 물어도 되겠는가? 이 자는 스틱스에 등록된 자일세. "
"한꺼번에 물어볼거라면 데메테르, 디오니소스와 헤르메스 몫까지 부탁해도 되겠지? "
"물론이지... 피고인 입장에서도 중구난방으로 묻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몰아서 묻는 게 낫겠지. 자... 피고 장우영씨. 이 곳은 명계의 재판정입니다. 당신이 살아생전 저질렀던 죄에 대해 판결하고, 거기에 대해 벌을 내리는 곳이죠. 지금부터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왜, 아무 죄 없는 같은 반 친구를 자살하게 만들었습니까? "
"!!"
고등학교에서 만났던 같은 반 범생이가 있었다. 만만하게 생긴 것 같아서, 꼬투리를 잡아서 두들겨 팼다. 집이 잘 사는 것 같아서 돈도 뜯었고, 그 녀석이 좋은 걸 들고 있는 것 같아서 뺏었다. 기분이 더러운 날이면 담뱃불로 지지기도 했다. 학교? 거기서는 문제를 쉬쉬하길 좋아하는 곳이라 별로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녀석이 선생님께 찌르기라도 하면, 그걸 빌미로 때리면 그만이었다.
"아레스의 죄, 폭력은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죄. 헤르메스의 죄, 도둑질은 그 친구의 물건을 멋대로 훔쳐간 죄. 헤파이스토스의 죄는 무고한 친구를 담뱃불로 지진 죄. 디오니소스의 죄는 미성년자이면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린 죄. 데메테르의 죄는 그로 인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죄. "
"...... "
"마지막으로 나 하데스가 묻는 죄는... 그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어 죽음으로 몰고 간 죄입니다. 이상, 더 물을 죄가 있습니까? "
"그것까지만 해도 이미 중죄예요. "
어른들은 다 마시는 술을 왜 우리는 못 마시게 할까, 그게 싫었다. 그래서 성인인 척 하고 몰래 술을 마셨다. 씁쓸하면서도 마실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노곤해지는 맛이었다. 기분 좋게 과자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웬 할아버지가 귀찮게 하길래 몇 대 때렸다. 그 다음날, 선생님과 부모님이 할아버지의 가족에게 연신 빌었다는 말과 함께 할아버지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는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게 왜 방해하고 난리야?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변론하시겠습니까? "
"저... 물건들은 걔가 줘서 받은 것 뿐입니다. "
"줘서 받았다고? 지금 그 말을 우리보고 믿으라는거예요? "
"어쩜 스틱스에 등재된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뻔뻔할까? "
"진정하게, 헤르메스. "
헤르메스를 진정시킨 하데스는 재판정 안으로 누군가를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커다란 물통과 함께 증거품들을 가져왔다.
"이 물통이 보이십니까? 아케론에서 그 학생이 흘렸던 눈물입니다. 장우영씨 당신때문에요. 그리고 이것들은 전부 피해자의 증언과 상처들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폭력에 대한 상처, 담뱃불로 지져서 남은 흉터... 당신이 물건을 뺏어가면서 억지로 들려준 낡은 물건, 당신이 술에 취해 할아버지를 때릴 때 썼던 소주병.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증거들이 있어요. "
"전 친구니까 같이 놀자고 했던 것 뿐이었어요. 노는 방식이 거칠었을 뿐이었다고요. 애초에 여기가 재판정이면 피고 원고의 의견을 종합해서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정말 한 떄의 실수였고, 저는 정신차리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
"그만. 변론을 더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
하데스는 그의 말을 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우스, 나는 판결을 이미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마 다른 판관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재판은 이만 끝내도록 하죠. "
하데스는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젓고 자리에 앉았다.
"피고 장우영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기 전에... 장우영씨. 이 곳의 판관들은 당신이 생전에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한 것들을 전달받습니다. 당신이 스틱스에 등록된 것과 별개로 말이죠. 스틱스에 등록된 것과는 별개로, 지금까지 다른 판관들이 물었던 죄... 그것만으로도 온전히 환생하기는 힘들겁니다. "
"...... "
"그리고 당신은 마음의 고통을 안겨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로 스틱스에 등록되었습니다. 당신의 순번이 379번인데 왜 우선적으로 재판을 진행할거라 생각하십니까? 스틱스에 등록된 자들에 대한 재판은, 다른 누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처럼, 목숨 하나를 죽게 방관하고 밀어넣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죠. "
중앙에 앉아있던 제우스는 판결을 내렸다.
"피고, 장우영은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무고한 사람을 폭행하고, 담뱃불로 지지고, 물건을 갈취하고,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의 변론을 들어보면, 거기에 대해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군요. 만년형에 처하겠습니다. "
판결을 마친 제우스는 법봉을 세 번 쳤다.
"자, 자, 잠깐만요! 그, 그건 실수였어요, 실수였다고요! 어릴 때의 실수말이예요. 누구나 실수는 다들 하는거잖아요! "
"세상에 실수로 사람을 무자비하게 패고 자살하게 만드는 사람은 없어요. "
"...... "
"장우영씨, 형기도 충분하니 형벌 대신 다른 걸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
"다른 방법이요? "
"여기서 벌을 받는 대신, 무간지옥에서 만년동안 일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느쪽이던 만년 후에 죄를 씻고 당신은 환생하게 될 겁니다. "
벌을 받는 대신 똑같은 기간동안 일을 하면 된다,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무간지옥이라는 곳에서 만년동안 일만 하면,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는 무간지옥으로 가는 것을 수락했고, 곧 카론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무간지옥으로 갔다.
"무간지옥에서도 마침 인력이 필요했다니 잘 됐군. 뭐... 거기서 일하는 것보단 차라리 벌받는 게 낫겠지만 말이지. "
무간지옥은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고 붉은 대지였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별다른 인수인계 절차도 없이, 막 도착한 붉은 머리의 여자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무간지옥의 4층이었다. 자신을 카렌이라며 소개한 여자는 빨간 하이힐을 신고 있었고, 앞에는 근사한 만찬들이 놓여있었다. 빨간 하이힐에 눈이 가긴 했지만, 붉은 머리에 색기있는 얼굴을 한 여자였다.
"이 녀석, 만년동안 여기서 일하게 됐어. 마침 4층 근무인력 없었다며? "
"어머, 정말? 고마워~ 안그래도 이번에 인력 하나가 기간 채우고 나가서 곤란했던 찰나였거든. 자, 자~ 일단 앉아. 여기, 코스 1인분만 더 줘. 신입이 들어왔으니 만찬을 줘야지~ "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와 이렇게 성대한 만찬을 먹으며 함께 일하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그는 생각했다. 붉은 머리의 여자가 돌아가고, 성대한 만찬이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간지옥으로 오면서 카론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만찬으로 내어 온 스테이크에서, 금니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3 댓글
마드리갈
2021-06-16 13:25:45
무덤덤하게 읽다가 분노하다가...마지막에는 토할 뻔 했어요...
그렇죠. 한때의, 한순간의 이런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그 수식어가 틀린 건 아니죠.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수식의 대상은 없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잘못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죠.
무간지옥이 왜 달리 지옥인지...역시...추운 오늘 오후가 더욱 춥게 여겨지고 있어요.
국내산라이츄
2021-06-17 23:23:56
참고로 벌 받기 싫어서 무간지옥으로 오는 걸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다시 물를 수 없습니다. 꼼짝없이 만년동안 저기서 일해야돼요. (일명 낙장불입이라고 하죠)
SiteOwner
2021-07-01 19:28:54
진짜 끔찍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인간들 많지요.
그런 자들의 미래가 좋으면 그건 그것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겪었던 일 몇 가지를 떠올리면서 담담하게 읽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경련을 느꼈습니다.
1995년 6월 29일 저녁, 교내에서 어떤 누가 저를 습격했고 저는 영문도 모르고 맞았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가 자존심이 세니까 보복하려 들면 위험하니 참으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보복을 위해서 그를 예의주시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곤경에 처하게 하려고 증거를 모으고 있었는데 영원히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불량학생은 그 자존심 덕분에 폭력사태에 휘말렸다가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어 생을 마쳤다 보니 결국 계획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일말의 동정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자기 자존심 내킨다고 타인에게 함부로 폭력을 휘둘렀던 그도 저렇게 무간지옥에 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