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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808호실.
세훈, 조제, 외제니, 니라차, 시저는 거실에 모여서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잠시 후 시작될 게임 리그 중계 방송을 보기 위해서다. 그것도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테이블에 과자와 음료를 잔뜩 채워 놓고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 누구 나온다고 했지?”
조제가 문득 외제니에게 말하자, 외제니가 바로 대답한다.
“우선은... 리틀 비라든가... 델피 알파 등등.”
“생중계라고 했나?”
“어... 맞아. 정확히 말하면 5분 지연방송.”
“뭐, 오늘은 또 어떤 신출귀몰한 플레이가 나올지는 봐야겠지만...”
그렇게 잠시 막 과자를 먹으려고 하다가...
“아 참, 맞다.”
니라차가 뭔가 생각난 듯 별안간 말한다.
“현애는 왜 안 와?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뭐 사러 갔대잖아. 좀 있으면 오겠지.”
세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다른 일행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전화해 봐!”
“또 어디 이상한 데로 간 거 아니야?”
다른 일행이 성화를 부리자, 세훈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건다.
“아, 알았...”
바로 그때.
지잉-
808호실 문이 열리고 노란 상의와 청스커트를 입은 한 사람이 들어온다. 한 손에는 과자 봉지를 들고 있다.
“어, 현애 왔어?”
“시간 딱 맞춰 왔네?”
“딱 맞춰 왔다고?”
딱 맞춰 왔다는 말을 듣자 현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뛰기까지 한 건데.”
“아직 좀 있어야 하거든? 지금 사회자들이 만담 하는 시간이니까 늦지 않았어.”
“아, 그런가...”
“그건 그렇고, 뭘 사 온 거야?”
“아, 과자를 좀 사 왔는데...”
“어, 과자? 꺼내 봐!”
과자라는 말을 듣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디 어디, 뭘 사 왔나 한번...”
현애가 봉지에서 호수 사원 모양 과자 3봉지를 꺼내자...
“어? 뭐야.”
의외의 반응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든가, 최소한 추임새는 넣어 주나 했는데, 고작 저런 싱겁다는 반응뿐이라니?
그러고 보니 보인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과자 봉지의 사이사이에는 그 호수 사원 모양의 사다리꼴 과자도 여러 개 섞여 있다. 까진 봉지를 자세히 보니 현애가 가져온 그 호수 사원 모양 과자가 든 노란 봉지와 같은 색이다.
“에이, 내가 헛고생 한 건가...”
“어? 아니지, 아니지, 그건!”
“그렇겠지, 세훈아?”
“그럼, 그럼! 먹을 과자가 더 많아졌잖아?”
“그래.”
현애는 아주 자연스럽게 소파의 빈 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잠시 후 시작될 중계방송에 눈과 귀를 집중시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8시 40분, 호텔 로비.
“벌써 여행 셋째 날이네요! 월요일은 잘 보내셨나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로비 한쪽에서는 미켈의 목소리가 로비 어디서든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들린다.
“우선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오늘의 일정은 저녁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테르미니 시내에서는 조금 먼 곳을 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돌아보는 곳이 많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오늘도 같이 떠날 준비 되셨죠?”
“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일행은 다같이 큰 소리로 대답한다. 미켈은 거기에 신이 났는지,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 후 출발합니다. 우선 오전에 둘러볼 곳은 ‘사원 A지구’입니다. 그럼, 기대하시기를!”
미켈의 말이 끝나고 약 1분 후. 미켈이 앞장서서 로비를 나서고, 다른 일행도 차례로 그 뒤를 따라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탄다.
한편, 이 광경을 로비의 카페에서 지켜보는 몇 사람들이 있다.
“음, 그런데, 사원 A지구가 어디지?”
모닝커피를 마시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발레리오. 그리고 비토리오와 메이링, 파라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 발레리오 씨. 여기 지도를 보시면...”
메이링이 홀로그램으로 지도를 켜서 보여준다. 큰 호수가 동쪽에 있는 테르미니의 지도가 나오고, 서쪽 교외 지역에 붉은 면으로 표시된 곳이 나온다.
“흠... 여기? 맞아. 그러고 보니 사원들이 좀 많이 모여 있군. 어림잡아 40채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제가 어제 한번 요 근래 1년간의 테르미니와 그 주변의 여행업계, 유적 발굴업계의 데이터를 수집해 봤는데, 이쪽 동네가 업계의 주 관심 대상이더군요. 거기에다가 여행사는 유적 발굴업체와 협력 관계인 경우도 많고, 심지어는 에이전시 업체들을 매개로 해서 서로 한몸이 되어 버린 경우도 상당수예요.”
“분명, 그 태양석 때문에 그런 거겠지?”
“그렇죠. 그게 가장 크니까요.”
메이링이 무겁게 말하자, 옆의 파라의 표정도 어두워진다.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는 있고,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무리 못해도 큰 파란이 일어날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지요.”
“그리고 그 태양석을 누가 그토록 갈망하고 있는지는 자명한 것이고.”
발레리오의 말에 비토리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형님. 프리모가 왜 목숨을 바쳐 가며 그 녀석을 막은 거겠어요. 그 녀석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죠.”
“그래. 아무튼, 우리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돼.”
발레리오가 잠시 생각하다가, 비토리오를 돌아본다.
“비토리오, 혹시 같이 갈 의향이 있어?”
“뭐, 형님이 같이 가자고 하면 저도 가야겠죠...”
“맞아. 이미 재단 요원들이 곳곳에서 도와주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도 행동해야지.”
“그렇죠...”
“잠깐, 이사장님.”
심각한 얼굴을 하고 듣고 있던 파라가 손을 든다.
“어? 자네는 왜?”
“혹시 된다면 제가 비토리오 씨하고 같이 가 봐도 될까요? 생각해 보면, 이건 아무래도 제가 가야 할 것 같아서...”
“음... 자네가?”
발레리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한다.
“아, 자네 능력이라면 괜찮을 수도 있겠군. 그래... 괜찮다면 오늘 하루는 비토리오와 동행을 좀 부탁해도 될까?”
비토리오와 파라 모두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네. 오늘은 둘에게 한번 맡기겠네.”
“그건 그렇고요, 발레리오 씨...”
메이링은 어느새 테이블 한쪽에 쌓아놓은 팸플릿과 홍보 전단을 보고 있다.
“이번에 패키지 여행 하는 거, 앞으로의 일정이 좀 많이 화려하네요.”
“첫날이 호수 사원이었고, 어제는 유적 공원에 갔다고 했지. 그럼 첫 두 날은 맛보기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군.”
“마... 맛보기... 아, 네. 그렇죠.”
호수 사원과 유적 공원이 맛보기라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팸플릿들을 수백 개나 들여다본 메이링은 금세 발레리오의 말에 수긍한다.
“그리고 가이드 미켈 파울리가 속한 에이전시에서 보유 중인 채굴권이 있는 사원들 8곳 중에 3곳이 오늘의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고...”
“네.”
“그에게 태양석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그 태양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하지만 형님, 그 에이전시도 태양석을 노리고 있고, 또 그걸 찾으면 그 에이전시도 나름대로 그걸 가지고 할 게 많을 텐데, 우리가 달라고 하면 순순히 줄까요?”
“물론 돈은 달라면 얼마든지 줘야지. 그건 각오하고 있어.”
자리에 앉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무겁게.
시간은 흘러 오전 9시 50분.
일행이 도착한 곳은 테르미니시 서쪽 교외에 있는 사적공원이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의 눈을 확 사로잡은 건, 단연 눈앞에 들어오는 언덕이다. 모르는 사람이 얼핏 보면 동네 뒷산 같이 보이기도 한다.
“혹시... 오전에 가는 데가 저긴가요?”
시저가 미켈에게 묻자 미켈은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 저게 건축물이라고요?”
미켈은 또다시 끄덕거린다.
미켈을 보니, 현애의 머릿속에 문득 스쳐지나가는 게 있다. 그러고 보니, 어느 황제의 무덤은 도굴 같은 걸 우려해서 겉면을 작은 언덕처럼 꾸며 놓았다고 역사 시간에 들은 게 있다. 하지만 저런 게 황제의 무덤일 리는 없고... 그럼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저게 오늘 아침에 말한...”
“맞습니다. 테르미니시 서쪽 교외에는 이레시아인이 지은 종교 유적들이 많습니다. 아직 종교 시설인지 전시 시설인지 논쟁이 있는 호수 사원과는 달리, 이쪽에 있는 건물군은 확실히 종교 시설로 판명되었죠. 현재 이레시아인들의 종교시설 구조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인데, 그런 설명은 좀 뒤로 미루고, 이제 구경을 시작하시겠습니다.”
일행은 미켈을 따라 제법 잘 단장된 유적의 입구로 들어선다. 입구 자체는 그냥 평범한 박물관 입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다. 매표소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팸플릿 거치대도 있는 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안쪽에 있는 큰 문을 하나 통과하자...
“오오! 이거 뭐냐?”
현애 옆에서 걷고 있던 세훈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다.
“야! 무슨 리액션이 그렇게 과격하냐?”
“아니, 왜? 그냥 놀라워서 그러는 건데.”
현애의 핀잔에도 세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너는 이런 데 오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안 드냐?”
“아... 아니! 딱히 내가 가슴이 안 뚫린다는 건 아닌데...”
“그렇지? 너도 시원하잖아.”
“어... 그렇지.”
과연, 조금조금씩 걸어 내려가니 공기가 조금씩 서늘해지더니, 어느새 완전히 시원한 바람이 모두의 피부를 가득 적신다. 동굴 한가운데 들어온 것 같다. 어둑어둑함, 눅눅한 듯한 공기, 그리고 은근히 찬 발밑까지. 만약에 눈을 가리고 들어오게 한다면, 누구라도 여기를 동굴 한가운데라고 할 것이다.
한편 그 시간, 매표소의 매표원은 일행이 내려간 자리를 유심히 보다가, 다시 자리로 와서 앉는다. 모자를 쓴 매표원이 모자를 벗고, 옆에 있는 기계실로 간다. 산발한 머리에 수염까지 기른 얼굴이다.
“파울리 녀석을 드디어 내 손으로 손봐 줄 수 있게 됐군.”
매표원은 기계실의 버튼을 몇 개 누르고는 다시 매표소에 와서 앉아서, 홀로그램을 켠다. 홀로그램에 민머리의 남자가 나온다.
“왜 연락했어? 지금 근무 시간 아니야?”
“파울리가 방금 여기 A사원으로 들어갔다.”
“정말? 뭐... 예상은 했는데...”
민머리의 남자는 태연한 표정을 하고 말한다.
“이걸로 우리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으면 좋겠군.”
“그쪽은 잘 되어 가고, 리브?”
“나는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 이게 다 우리 ‘단장’ 덕분이잖아?”
“아... 그렇지. 하긴, 별로 우리 눈에 안 띄면서도 은근히 하는 건 많지. 솔직히 그 친구 아니면 숨겨진 정보들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리브라고 불린 민머리 남자의 말에 매표원도 맞장구친다.
“그렇지. 뭐... 아무튼 수고해 줘. 아즈탄의 한도 풀고, 우리도 얼른 그 태양석을 찾아야지?”
“그렇지.”
홀로그램을 끄자, 매표원은 매표소 한쪽에 있는 삼각대를 하나 가져다가 세운다.
[내부 긴급보수중]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6-18 23:09:16
문제의 태양석이라는 건 실체가 확인된 건 아닌데 기묘하게도 테르미니 및 주변지대의 업계사정까지 바꿀 정도네요.
그리고, 긴 시간을 살아온 발레리오 형제도 실물을 못봤다니, 더욱 이상한데요. 그렇다면 그 태양석은 실체가 없는지, 단지 묘하게도 사람들의 눈길이 아직 안 닿은 데에 있다는 건지, 실체가 있었는데 이제는 소멸했는지...확증할만한 게 없네요.
이미 문제의 인물들이 사적공원에 와 있었군요. 그리고 저런 공작까지...시어하트어택
2021-06-20 23:02:11
태양석은 키 아이템입니다. 전작에서도 단편적으로나마 언급은 했던 적이 있습니다. 용어는 다른 용어를 쓰기는 했습니다만...
그래서 전작과 상당한 연관성을 지녔지만, 최대한 전작 없이도 스토리가 이해가 되도록 써 보려고 합니다.
SiteOwner
2021-07-05 19:51:48
간혹 해외채널의 트레저헌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합니다. 정말 몇 안되는 단서로 보물을 찾아내는 그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구체화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술력에 놀라고는 합니다. 이 세계의 유적발굴업자들 또한 대단합니다. 게다가 초능력을 보유한 사람들도 있고...
그런만큼 위험도 도사리고 있겠지요. 그리고 그 트레저헌터들 중에는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는 완전히 배제는 못하겠고..
사원 모양의 과자에서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의 우나기파이(うなぎパイ)가 생각납니다(슌카도 공식 웹사이트, 일본어). 장어 카바야키같이 생겨서 우나기파이입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7-17 20:33:45
사실 사원 모양의 과자는, 피라미드의 일화에서 착안했습니다. 원래 고대 이집트어로는 '메르'였는데, 그리스에서 피라미드 모양의 과자를 따서 피라미드라고 했던 일화가 떠올라서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