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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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눈앞에 두고도 현실이 인식되질 않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하룻밤의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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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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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진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으로 현실을 확인할수록 그것이 계속해서 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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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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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해야 한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사고하고, 이해한 뒤 행동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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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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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칠 것 같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싫기라도 한 것인지, 두뇌가 녹아내린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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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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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언제부터 상황이 이렇게 뒤틀린 거지?
아니, 그 이전에…….
?
‘내가 뭘 잘못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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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게 되니 상황이 역이 되었다. 머릿속에 나의 모든 행적이 떠오르며, 그것들이 전부 실책인 것처럼 느껴졌다.
빈민가에서의 사건이 끝난 이후에 내가 오드리의 신상을 파악하지 않은 것이 문제일까? 아니, 그때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블레어 녀석과의 거래를 만만히 보고 오드리에게 배달을 맡겼기 때문일까? 그때 우연히 휘말린 것이라면 사실이겠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그도 아니면 애초에 내가 오드리에게 사도야행에 대해 발언한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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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할 시간이에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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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드리와 있었던 일.
포기하지 않기를, 맞서 싸우기를 다짐한 순간. 그리고 늦은 밤, 평범한 색이면서도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나던 그 눈동자를 맞이한 날.
그것이 잘못이었던 걸까?
애초에 나는 거기서 그녀와 대화했으면 안 됐던 걸까?
지금의 나는 애초에 거기서 홀로 도망쳤어야 했다는 걸까?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회한이 그런 자기 부정에 도달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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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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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섬광처럼 검게 물들어가는 마음을 파고들었다.
멍한 눈으로 고개를 보니,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도 나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빅토리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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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면 우리와 상담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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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에스텔의 단단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부드럽게 떠받치는 것 같은 미성도 들려왔다.
한순간 멍해진 머리.
그 둘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기 부정으로까지 나아가려던 사고가 끝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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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짓을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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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득-!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이를 강하게 물었다. 그 충격에 잇몸이 상했는지 비린 맛이 입안을 점령했지만, 그 기분 나쁜 감각을 나에 대한 벌로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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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진짜 문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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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후회해도, 나의 행적과 나 자신을 부정한다고 이런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오드리가 이렇게 된 일에 나의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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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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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몇 번이고 곱씹으며 후회해봤자 어떤 생산적인 결론은 나오질 않는다.
그런 것은 고작해야 비참한 자기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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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시간 따위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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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게 그런 사치스러운 것을 할 시간은 없다.
해야 할 것은 한 가지.
당장에라도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입안에 감도는 피 맛에 자극된 머리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먼저 떠오른 질문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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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오드리를 이렇게 만든 거지?’
?
나는 에스텔과 싸우던 오드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가능성을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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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조종되던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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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오드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긴 했어도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격 자체를 건드리는 무언가를 했다는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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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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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격이 변하거나, 기억을 잃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마법이 일상이 된 오늘날, 사람의 영혼이나 의식 따위 조종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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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오드리가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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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저주, 암시.
어느 쪽이든 마법을 이용한 세뇌는 사도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이미 사도인 인물에게만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사도가 된 이상, 인간 마법사가 건 열등한 술식 같은 건 모조리 해제될 터다. 새끼 매를 가두던 새장이 다 큰 매를 가둘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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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에 소여 백작도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세뇌해 나간다는 귀찮은 방법을 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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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썼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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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마음에 걸리는 건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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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폭주한 빅토리아 역시 그 그림자 녀석에게 받은 가면을 쓰고서는 날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빅토리아의 행적은 평소와는 달랐고, 기존의 인격이 말살된 것처럼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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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그냥 짐승처럼 날뛰는 것에 불과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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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빅토리아는 짐승처럼 변하긴 했어도 여전히 빅토리아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약이나 술에 취해 날뛰는 것 같은 상태. 그렇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오드리는 거의 새로운 인격을 받은 상태. 그때의 빅토리아와 비교하기 힘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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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야 그 빌어먹을 자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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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그림자와 블레어. 그 둘은 대체 무슨 관계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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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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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오른손에 쥐어진 가면을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저 가면이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대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스도 빅토리아도 가면을 사용해 녀석과 계약을 맺었다.
분명 저기에 원인이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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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는 것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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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 같은 유혹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것을 써본다면 대체 오드리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이 뇌의 안쪽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평소라면 이런 것 역시 그냥 억눌렀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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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게 정말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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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 번 써보는 것이 나을까?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 외에는 이 상황의 해결책이 떠오르질 않는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서서히 가면을 내 얼굴로 옮겼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칠감을 파고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무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살가죽에 닿으려던 순간.
화륵-!
갑작스레 솟아오른 촛불 크기 정도의 불꽃이 내 손에 작은 화상 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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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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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거나 고통스럽기 이전에, 뜨거운 것에 대한 손이 반사적으로 가면을 놓아서 가면이 땅바닥을 굴렀다.
?
‘뭐야 이건?’
?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한 손에서 마법으로 작은 불꽃을 피워내고 있는 덩치 큰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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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겨우 쫓아왔더니 위험한 짓을 하고 계시는군요.”
?
보어헤스 백작.
언제 나를 따라왔는지 모를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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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여기에 있지?”
“위기 상황에서 구해준 사람에게 할 말입니까?”
“위기?”
“그거 말입니다.”
?
그의 쭉 펴진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가면. 고작해야 촛불 수준의 불꽃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법의 화염에 휘말렸는데도 약간의 탄 자국조차 남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
“당신이 저걸 쓰려는 순간 저게 어쨌는지 압니까?”
“…….”
“웃고 있었습니다. 마치 당신이 쓰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뭐라고?”
?
가면이 웃어?
녀석의 말에 다시 한번 가면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그저 평범한 무면탈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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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 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그렇게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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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더 의심스럽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자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렇게 잠시간의 의미 없는 눈빛 교환이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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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믿어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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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녀석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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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감사합니다만, 다른 것 하나도 좀 해결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젠 사도도 아니라서 이거에 찔리면 죽을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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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감사해 보이지 않는 어투로 감사하다고 말하며 보어헤스 백작은 자신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 그의 말에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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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마력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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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처럼 가늘긴 하지만 분명 에스텔이 만들어낸 마력의 칼날 일터.
고개를 돌려 에스텔과 빅토리아 쪽을 바라보니, 기겁하고 있는 빅토리아의 모습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살기를 풍기고 있는 에스텔의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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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살짝만 움직여도 베일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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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헤스 백작은 여전히 너스레를 떨며 자신의 목 근처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생기는 것이 아마도 그의 말 자체는 진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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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살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보어헤스 백작. 당장 당신이 이전에 한 일과 지금 이곳에 오자마자 한 일을 떠올려보도록.”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그를 구하려고 했던 겁니다만……, 이거야 원 지금까지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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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고 떠드는 입과는 전혀 다른 행동.
그런 그의 행동에 에스텔의 표정이 더욱더 살벌해지자, 나도 더는 조용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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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합니다, 에스텔.”
“……이 자를 신용할 수 있겠나?”
“신용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지금 싸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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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 녀석이 보여준 태도를 보아 우리를 적대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녀석을 제압하겠다고 날뛰기도 좋지 않았다.
슬쩍 시야를 틀자 제일 먼저 빅토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려서 부러진 다리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지금 상태로 방치하는 것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그리고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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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가 언제 깨어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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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깨어난 오드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다.
다시 날뛰게 될까?
아니면 가면을 벗겼으니 나를 알아볼까?
만약 알아보지 못한다면 오드리를 제압해야만 하는 걸까?
다시 그런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해졌다.
이런 내 심경을 읽은 것일까? 에스텔 은 한숨을 쉬더니 굳은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고, 이내 보어헤스 백작의 목 앞에 놓여있던 푸른 빛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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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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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굉장히 정중한 어투인데, 저 얼굴이 묘하게 도발하는 것처럼 보여서 기묘하게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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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빠르게 주제로 넘어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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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간 내가 에스텔에게 이 녀석의 목을 베자고 먼저 제안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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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야기의 계속을 하려고 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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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폭발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 전, 녀석은 오드리의 소멸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 해줄 예정이었다.
단순히 오드리를 찾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더는 이 자식과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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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취소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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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는 여전히 오드리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단순히 오드리를 찾는 것만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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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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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최소한 이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게 될 터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늘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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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그럴 예정이었습니다만,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뭐?”
“지금은 더는 이야기해드리기 힘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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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에스텔에게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어졌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이를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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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얘기해드릴 것은 단순한 정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 가면은요.”
“이 가면이 어쨌다는 거지?”
“가면이 있다는 건 ‘그’가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니까요.”
“그러니까 ‘그’가 누군데?”
“그것 역시 지금은 못 말씀드립니다. 제가 아니라 이드라 님이나 다른 옛 군주님들도 그러실 겁니다. 이건 단순히 저희만이 아니라 여러 명의 옛 군주의 동의가 있어야 발설 가능한 내용이거든요.”
“……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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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라 님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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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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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뭔가 일이 커진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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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더 많은 옛 군주님들, 정확히는 그분들의 사도들을 불러 모을 예정입니다. 최소 세 사람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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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녀석은 품에서 꺼낸-그 몸에 딱 맞는 옷 어디에 이런 걸 넣어뒀는지는 모르겠지만-무언가를 우리 앞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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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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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고풍스럽다 못해 70대 할아버지가 만든 것 같은 양식의 고루한 초대장이었지만, 거기에는 분명 보어헤스 백작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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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후에 저택으로 와주시죠. 제가 가능한 한 빠르게 다른 분들을 소집할 테니까요.”
“다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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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 영감인가?
문득 스테파니 씨의 모습과 은인이긴 하지만 기분 나쁜 노인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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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 쪽은 아시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그분만 오시는 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더 모여야 하거든요.”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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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가 파악하기도 전에 에스텔이 먼저 이해했는지, 살짝 놀란 것처럼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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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이 놀란다는 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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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의 태도에 나 역시 이해하고 표정이 굳어가려던 찰나, 보어헤스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와 에스텔의 추측을 사실로 만들었다.
?
“크루거 가문의 사도와 마이어스 가문의 사도. 그 두 분 역시 오실 겁니다.”
?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8-22 17:07:27
그레고르의 눈앞에 놓인 모든 상황이 이해불가이고 혼란 그 자체네요.
누가 그레고르의 입장이 되든, 이 상황에서 온전히 자기 정신을 유지하고 있기가 쉽지 않을 듯하네요. 그리고 오드리에 대한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도중 그레고르도 그 가면을 쓰려 하다 보어헤스 백작에게 제지당하네요.
보어헤스 백작은 역시 그런 인상이네요. 명문가의 자제로서 고급스러운 예법이 몸에 배어 있지만 그 예법이 도저히 진실되게 여겨지지는 않는. 그렇더라도 그레고르에게 닥칠 뻔한 위기를 막은 건 보어헤스 백작이니까 원망하기도 그렇죠.
그럼 이제 4대 가문의 사도가 모두 모이는 건가요.
크루거 가문의 사도와 마이어스 가문의 사도까지...
Papillon
2021-08-26 03:02:43
그레고르 입장에서는 혼란 그 자체지요. 그가 이 혼란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가 이번 Act의 주요 내용입니다.
다음 챕터에는 4대 가문의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입니다. 다음 화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크루거와 마이어스 쪽 인물은 여태까지 나온 사도들과는 조금 다른 타입의 인물일 예정입니다.
SiteOwner
2021-09-05 17:49:05
그레고르가 겪은 혼란을 읽으니까 저의 14년 전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완전히 뒤틀린 것 같은 현실, 그리고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같은 절망감 속에, 몸은 완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여전히 크게 상처입었던 게 생각이 나고 그렇습니다. 그때 저에게 동생이 있었다 보니 그해 겨울이 다가올 쯤에는 재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레고르의 경우는 오드리에 대해서는 오로지 그만 알고 에스텔도 빅토리아도 완전히 기억이 사라져 있으니...
사람이 알면서도 당한다는 게 있지요.
그 상황을 멈춰준 보어헤스 백작은 과거의 적이었지만 현재도 적이어서는 안될 것 같군요. 저의 경우는 과거의 동지가 결국 처음부터 적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나서 배신에 치를 떨기도 했습니다만, 이 점만큼은 보어헤스 백작이 저의 과거의 동지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역시 오월동주는 중요합니다.Papillon
2021-09-16 01:38:08
과거에 적이었던 이라도 필요하다면 동료가 될 수 있어야겠지요. 물론 100% 신뢰하는 건 여전히 힘들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