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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라는 발언이 나왔는데,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그래서 여기에서 해당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짚어볼까 싶네요.
광복철 경축사의 전문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해 소개해 볼께요(2018년 8월 15일 연합뉴스 기사에 등록된 전문 참조).
1951년 전쟁방지, 평화구축, 경제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럽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
이 공동체가 이후 유럽연합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저는 오늘,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합니다.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과거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약칭 ECSC, 존속기간 1952-2003)는 현재 유럽연합의 모태가 된 것으로 유명한, 벨기에,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및 룩셈부르크의 서유럽 6개국이 결성한 국제기구를 말하는 거예요. 이것은 세계최초의 수프라내셔널리즘(Supranationalism) 사고방식에 근간한 국제기구였을뿐만 아니라, 석탄과 철강을 기본으로 한 국제카르텔이면서 또한 안보, 산업, 무역 관련에서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분야에 따라서는 단일 행위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여러모로 독특한 조직이었어요.
그렇다면, 제안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는 위의 ECSC처럼 철도를 기본으로 한 국제카르텔이라는 것인데, 여기서부터 이해가 되지 않고 있어요. 대체 그렇게 공동체를 결성해서 어디에서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걸까요? 최소한 ECSC의 경우는 산업의 필수 자재인 석탄과 철강 분야에서 공동시장을 형성하여 가격 및 수급상황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서 출발했는데,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에서 철도가 무슨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 자체에서 이해가 막혀 버리네요.
사실, 국제운송에서 철도가 유리한 곳과 불리한 곳은 따로 있어요.
ECSC 결성국의 경우, 양극단을 직선으로 이을 경우 대체로 2,000km 안에 다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게다가 모두 영토가 연접하는데다 육로 이용이 해운보다 거리에서도 소요시간에서도 보다 유리하고, 철도교통을 이용할 경우 전기차량의 경우는 규격이 다르지만 현행 기술로 모두 극복가능한 수준이라서 다양한 규격에 대응하는 전기차량 또는 디젤차량을 이용하면 궤간이 모두 같은 이점을 발휘하여 여객 및 화물수송에 투입할 수 있어요.
그런데,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에서 상정하는 가맹국을 보도록 하죠.
우리나라, 일본, 중국, 러시아, 몽골, 북한, 그리고 미국.
국제교통에서 철도를 이용해야 할 당위성 자체가 없어지네요. 여객은 항공이 더욱 빠른데다 장거리 열차에서처럼 숙식 문제로 추가비용을 써야 하는 문제 자체가 삭감되어 총비용이 더욱 저렴할 수도 있고, 화물의 경우는 석유나 가스는 파이프라인, 육지로 이어지지 않는 국가의 경우 해운이라는 더 좋은 선택지가 있어서 철도는 파이프라인을 쓸 수 없는 컨테이너나 벌크화물의 경우라든지 해운을 이용할 수 없는 내륙환경에서나 적합한 문제가 있어요.
게다가 모두 다른 규격에 공동으로 추구할만한 이익도 없어 보이네요. 사실 규격이 다를 경우에는 규격이 달라지는 지점에서 승객이 환승하거나 화물을 환적하면 되는 것이지 규격을 동일하게 맞춰야 할 이유는 없어요.
설령 상정하는 가맹국을 모두 철도로 연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해소되지 않아요.
미국이 비연속국이라는 점을 잊었으니까요.
미국을 구성하는 50개 연방주 중 알래스카와 하와이는 본토에서 떨어져 있고, 알래스카는 본토와의 사이에 캐나다가 있어요. 그렇다 보니 캐나다를 배제하고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창설해 봤자 의미가 없어요.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는 해운으로 연결하면 되지 않는가 하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같은 논리로 보면 해운을 놔두고 굳이 철도연결에 집착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니까 이 주장도 설득력을 잃게 되어요.
무엇을 운반하는가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더 풀어놓아 볼께요.
석유나 가스같은 유체는, 탱커화차를 이용하여 수송할 수도 있지만, 전용의 파이프라인도 있고, 수송단위가 월등히 커서 운송단가가 저렴한 해운도 있어요. 그러니 이러한 화물들이 어떻게 운송되는가는 시장상황이 결정할 뿐이고, 철도는 만능의 도구가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일 따름이죠.
석탄을 비롯한 각종 광석, 시멘트, 곡물 등의 벌크화물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것도 대체재가 있는 경우라면 녹록치 않아요. 미국, 러시아, 중국처럼 국토 동부와 서부간의 화물수송루트가 사실상 육로밖에 없으면 당연히 이러한 벌크화물은 철도수송이 유일한 선택지일테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동서간 거리가 짧고 물동량도 많지 않다면 이건 도로수송이 더욱 적합하고, 일본처럼 주요도시가 대부분 해안지대에 위치한 해양국가에서는 해운이 월등히 유리하니, 여기에서도 철도가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지는 못해요. 컨테이너같이 규격화된 화물의 경우라도 벌크화물과는 다를 바가 없고, 단거리, 소량이나 직통수송의 경우는 도로수송이 더욱 효과적이니 더 논할 가치조차 없어요.
철도에 초점을 맞춰봐도 이렇게 문제가 노정되는데, 그러면 국제기구에서의 관점에서는 어떨까요?
위에서 이미 ECSC가 카르텔이라고 언급했죠.
카르텔은 의외로 오래 가지 않는 특성이 있어요. 즉 카르텔 형성주체 중 어느 누군가가, 카르텔을 유지할 경우의 이익보다 카르텔을 깨서 얻는 이익이 크다면 카르텔이 약화되거나 깨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또한 실제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국내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국제관계에서 카르텔이 없다면 이것도 또한 이상한 일. 그리고 카르텔 형성국가라도 카르텔 이외의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대립하거나 적대관계일 수 있고, 또한 그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회원국간의 협조도 그렇게 공고하지 못하기 마련이죠.
유럽연합을 탄생시킨 ECSC 말고도 세계에는 유명 국제카르텔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존속중인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약칭 OPEC). 이 회원국들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만 봐도 카르텔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게 보여요.
회원국은 알제리, 앙골라, 에콰도르, 적도기니, 가봉,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리비아, 나이지리아, 카타르, 콩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베네수엘라의 15개국인데, 이 회원국 내부 또는 회원국간의 대표적인 사건이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략한 걸프전, 리비아 내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립, 베네수엘라 경제의 파탄 등. 세계 석유 생산량의 44% 및 확인된 매장량 81.5%를 차지하는 석유에 기반한 카르텔도 이렇게 취약해서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대립, 반목, 비협조 등이 횡행하는데, 이것보다도 강하게 보이는 구석이 없는 철도로 국제카르텔을 형성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추구할 공동의 이익 자체가 불분명하면 카르텔의 형성요인 자체가 발생하지 않아요.
그리고 또, ECSC의 역사를 봤을 때에도 제안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가 과연 희망적이기만 할지도 의문이 있어요.
ECSC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폐허가 된 서유럽국가들의 재건에 공한한 것도 사실이지만, 석탄 관련으로 볼 때는 미국의 석탄 덤핑에 굴복해서 당초의 목적에서는 멀어졌는데다 독일 및 프랑스의 금융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미국과 영국에 국제적인 주도권을 내주기도 하는 등 역효과도 있었어요. 또한, 결성국 중 프랑스가 원자력강국이다 보니 ECSC가 발족할 당시 프랑스의 높은 발언력으로 유럽원자력공동체(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 약칭 EAEC/Euratom)도 같이 설립되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일. 현재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의 다른 가맹국들이 원자력 확대노선을 걷는다면 유지되기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힘의 논리가 이렇게 국내사정을 압박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근거가 있을까요? ECSC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사라졌지만, EAEC는 여전히 존속중이고 유럽연합 회원국 및 스위스를 포함하는 것으로 더욱 확대되어 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어요.
상정하는 회원국의 철도는 물리적 규격뿐만 아니라 철도운영주체 또한 천차만별인데다, 설령 국제기구를 결성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일 필요가 없는 경우 또한 엄연히 현실이예요.
중국, 러시아, 북한은 국영철도, 몽골은 자국정부 및 러시아정부의 공동출자, 우리나라는 공기업, 미국과 일본은 민영이고, 특히 미국과 일본의 간선철도 사업자는 전국에 걸쳐 네트워크를 가진 게 아님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즉 영업범위내에서 이익을 추구할 뿐이지 그것을 버려가면서 목표도 수익도 분명치 않은 국제협력에 나서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니, 이것을 추진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저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네요.
게다가, 불행히도, 동아시아 철도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철도 관련에 한정된 국제기구는 이미 있어요.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철도사업자간의 국제기구인 국제철도연맹(Union Internationale des Chemins de fer, 약칭 UIC)에는 북한만 관여하고 있지 않고, 소련 주도로 1957년에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설립된 철도국제협력기구(Организация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Железных Дорог)에는 러시아, 중국, 북한, 몽골이 가입해 있는 상태로 2018년에 우리나라도 가입했으니, 여기서 목적도 공동이익도 불분명한 국제기구를 만들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네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의 성격과 전망을 추론해 봤을 때, 의문만이 남을 뿐 이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솔직히 판단을 못하겠어요. 그게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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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8-08-18 22:30:01
제가 제대로 읽고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이렇게 요약되네요.
"철도로 묶일 이유가 없다" "철도가 반드시 교류에서 만능은 아니고 더 좋은 카드가 많다" "이렇게 묶여있는 집단의 경우 제대로 존속될 것이라는 건 너무 심한 낙관론이다"
더 요약하자면 "철도공동체는 이상만이 앞선, 현실과는 동떨어진 표제어이다".
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최상의 이익을 끌어내겠다는 게 있어야겠죠. 그것을 발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주제를 갖고 무언가를 하겠다고 내세운 게 있음 그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니... 설마 그게 없지는 않을 테고요. 그 생각만 드네요.
마드리갈
2018-08-19 01:45:23
정확하게 보셨어요.
공동체라는 건 글자 그대로 공동의 접점, 관심사 등이 있어야 유지되는 건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좀 더 파헤쳐 보죠. 각국의 강점.
미국의 경우는 세계 최대의 철도네트워크 보유, 철도회사의 경영으로 확립된 현대적 기업의 비즈니스모델, 마일트레인(mile train, 길이가 km 단위인 초장편성 열차)으로 대표되는 화물철도 운용, 디젤기관차의 세계표준 등의 강점을 지니고 있어요.
일본은 어떨까요? 경쟁체제, 비상히 높은 정시성과 안전성, 다양한 철도규격에서 유래한 각종 기술에 대응된 철도기자재 커스텀 생산력 및 기술, 신칸센으로 대표되는 고속철도의 종가, 해저터널의 개척자 등의 강점이 있어요.
중국은 세계최대 인구에 기인하는 광범한 고객층 및 네트워크의 급격한 양적 발전 및 의외로 높은 철도차량 제작기술, 세계 각국 철도기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효과 및 기술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등의 강점을 무시할 수 없어요.
러시아는 1520mm 궤간의 주도국가이자 각종 혹심한 환경하에서의 대응실적, 가스터빈 기관차의 부활, 천연가스연료 사용 등의 기술적 특이점, 초장거리 여객 및 화물철도 운용의 노우하우 등이 고유의 강점.
그런데 우리나라의 철도에서 찾을 수 있는 장점은 뭘까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외쳐본들 구심점이 될만한 강점이 없어요.
더 자세한 게 나와야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봤을 때는 의문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