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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의 이야기입니다.
교수가 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자네, 동양화 좀 하나?"
전 그림 자체에 소질이 없는 것을 잘 알다 보니 그다지 흥미가 없습니다. 보통의 서양화도 그런데 동양화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으니 동양화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교수가 "그럼, 서양화는 하나?"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서양화에도 관심이 없고, 그림 자체를 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의 교수의 말이 저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가 그림 이야기를 했나? 동양화, 서양화 몰라?"
진짜로 의미를 모르는 저를 위해 교수가 한 설명은 이것이었습니다.
동양화는 화투를, 서양화는 플레잉카드, 통칭 트럼프를 부르는 속어. 역시 이런 카드게임에도 관심이 없다 보니 이런 속어의 존재 자체를 알 리가 없었던 저는 문화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 카드게임에도 완전히 문외한인 저에 대해서 교수도 꽤나 놀랐나 봅니다.
그 뒤의 발언.
"술도 안해, 담배도 안 피워, 동양화도 서양화도 안해. 그럼 자네는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나?"
사람의 사는 방법도 참 여러가지이긴 합니다.
그리고 그게 오늘 갑자기 생각납니다. 찾아보니 그 교수도 이제는 정년퇴임해서 명예교수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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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Lester
2022-07-10 03:31:19
동양화와 서양화 비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종종 듣긴 했네요. 아무래도 도박 같은 퇴폐적인 게 금지된 미션스쿨인지라...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라고 해야 하나, 미션스쿨답게 독실한 학생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기독교(기독교 학교니까) 신자라서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한테 게임이나 소설 이야기를 하면 별로 관심이 없거나,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꽤 만족스럽게 사는 듯이 평소 얼굴에 여유가 가득했습니다. 딱히 종교에 대해 긍-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건 아니지만, '제대로 된' 종교인이라면 '인생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SiteOwner
2022-07-13 17:36:56
저는 그런 표현을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역시 문제의 동양화 서양화 비유가 시대는 물론 지역분포도 크게 다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놀이의 각종 구호도 지역별로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알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덴시찌 데덴시찌" 라는 구호가 자주 쓰였던데 그게 통용되는 타지역이 얼마 안되는 것을 알고, "나라가 좁다 해도 좁은 게 아니네?" 라고 감탄하게도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입니다.
즐거움을 얻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종교활동 또한 그것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종교활동에서 즐거움을 찾지는 않지만, 전근대 교회음악에는 관심이 많다 보니 그레고리오 성가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파 시대의 폴리포닉 교회음악을 많이 즐긴다든지 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러면서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의 지식을 얻고, 신학에 대한 것도 좀 알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적 호기심 충족의 차원이지 종교활동은 아니다 보니 선을 긋고 있긴 합니다.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Lester님께서 언급하신 그 독실한 학생들은 직접 배우나 각본가나 연출가로서의 활동을 즐기는, 저는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향유하는 부류라서 접점은 있되 중첩되지는 않는 그런 상태라고 해야겠지요.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놓자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차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 중 후자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