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썼던 비올라 다모레 관련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쉽게 접할 수 없지만 음색을 접해 보면 의외로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는 악기 그 두번째 이야기를 풀어 볼께요.
이번에 소개할 악기는 세르팡. 로마자 표기가 Serpent라서 바로 뱀이 연상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구불구불한 몸과, 개별 악기에 따라서는 정말 실제의 뱀을 닮은 듯한 무늬까지 입혀지는 표면 덕분에 정말 뱀같이 생겼어요. 뱀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거예요. 뱀 자체는 물론이고 뱀을 닮은 것조차 경계하는...사실 저도 그런데, 이 괴이한 인상과는 달리 소리를 들어보면 의외로 끌리는 부분이 많다는 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러면 일단 영상부터.
투박하고 거친 음색에, 연주음 뒤로 들리는, 공기가 예측불가능한 듯이 마찰되는 것같은 잡음까지 있다 보니 세련된 소리를 연주한다고는 빈말조차 할 수 없는 세르팡.
이 악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1590년에 프랑스에서 에드메 기욤(Edmé Guillaume)이라는 인물이 발명하였다는 주장도 있어요. 아무튼 이 악기는 18세기에 관현악 및 취주악에서 등장했다가 19세기 후반에는 날씬한 튜바같은 형태의 저음 금관악기인 오피클라이드(Ophicleide)로 대체되고, 이 오피클라이드조차도 튜바(Tuba), 유포니엄(Euphonium) 같은 저음역의 악기들로 대체되었다 보니 세르팡, 오피클라이드 모두 고음악의 재현을 목표로 하는 정격연주가 아니면 좀처럼 접할 수가 없어요.
간혹 이 악기의 한 종류를 바송 루스(Basson Russe), 즉 러시아식 바순이라고 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러시아에서 유래한 것도 아니고, 2장의 리드를 겹쳐 그 사이로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게 하는 바순과도 구조가 다르다 보니 그다지 적합한 이름은 아니예요.
위에서 잠깐 언급한 오피클라이드도 소개할께요.
사실 오피클라이드는, 19세기에 급속히 발전한 기계공업 및 금속가공기술을 토대로 기존 악기의 개량 및 신종악기의 발명 붐을 타고 만들어진 것 중의 하나로, 보다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세르팡이었고 1817년에 탄생한 이래 19세기의 프랑스 작곡가들이 만든 오페라에도 잘 등장하는 악기였어요. 황동 소재로, 기동성이 우수하고 링크로 작동되는 키를 적용하여 연주하기에도 편리하게 제작된 오피클라이드는 이름의 의미도 뱀의 그리스어 오피스(Ophis/ὄφις)와 키의 그리스어 클라이스(Kleis/κλείς)의 합성어로 근대화된 세르팡이라는 의미.
이것의 연주영상도 있어요.
위의 영상은 2009년 2월 스위스 베른 음악대학(Hochschule der Künste Bern)에서의 공연영상.
그런데 오피클라이드는 20세기에 들어서는 잊혀지게 되어, 이제는 이런 악기의 존재감조차도 일부러 작정하고 찾아보는 게 아닌 이상 알 수가 없게 되었어요. 게다가 오피클라이드의 등장 이후 벨기에에서 탄생한 색소폰이 유려하면서 매력적인 음색을 선보이면서 이렇게 투박하고 공역학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설계에 기반한 오피클라이드는 결국 세르팡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고 말았어요. 게다가 유포니엄 같은 대체재가 얼마든지 있기도 하죠.
이렇게 소박한데다 인지도가 낮은 악기인 세르팡, 그리고 근대화의 흐름을 타고 부활하려나 싶었지만 결국 퇴조한 오피클라이드를 소개했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이 악기의 싫어할 수 없는 매력이 전해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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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앨매리
2019-09-26 19:10:48
듣자마자 떠오른 인상은 서양 애니메이션의 코믹한 장면 전용 BGM이었습니다. 목관악기 특유의 묵직함에 더해 공기가 마찰되는 음색이 섞여 약간 허스키하게 빵빵거리는(?) 느낌이 매력적이네요.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음색의 대체제가 나오면서 점점 잊혀지는 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음악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작정하고 찾아서 쓰지 않는 이상 찾는 사람도 드물 테고요.
마드리갈
2019-09-26 19:48:16
앨매리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에서, 의외로 코믹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새로이 느꼈어요!!
묘하게 거친 게, 뭐랄까, 잘 정제된 고운 밀가루로만 만든 부드러운 빵을 먹다가, 다소 거친 호밀빵을 먹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묘미가 연상되기도 하고 그렇죠. 세르팡의 매력이 잘 전달되었음을 확인하니 정말 기뻐요.
19세기의 유명 작곡가들 중에서 일부러 특수효과를 내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를 동원하거나 아예 실제로 고안하여 주문제작한 경우도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의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 1830년에 작곡된 이 작품의 악보에 세르팡 및 오피클라이드가 1대씩 배정되어 있는데, 대체로 이것은 튜바로 대체되어 연주되지만 드물게 오리지널 편성대로 연주된 경우(5악장 일부의 유튜브 영상링크)가 있어요.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고안한 바그너 튜바(Wagner Tuba)는 호른의 마우스피스를 이용가능하면서 호른보다 낮고 깊고 어두운 음색을 보이는, 호른과 트롬본의 중간에 위치하는 독특한 악기로서 바그너의 악극작품을 비롯한 근대 이후의 클래식 음악작품에서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세르팡/오피클라이드 및 바그너 튜바 모두 프랑스와의 접점이 있는 것. 사실 밸브로 구동되는 근대적인 호른의 형태가 갖추어지기 전의 내추럴 호른은 프랑스에서 정립되었고,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발명가들이 근대식 호른을 발명했지만 그것들도 여전히 영어로는 흔히 French Horn으로 표기되는 데에서 그 역사가 엿보이고, 예의 바그너 튜바는 튜바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호른의 변종인데다 바그너가 파리를 방문한 이후에 창안했으니까요.
마키
2019-09-27 21:20:24
앨매리님의 평가대로 저도 톰과 제리 같은 구시대 미국 애니메이션이 생각나는 느낌이네요.
목관악기의 묵직함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에요.
마드리갈
2019-09-27 21:31:14
역시 사물은 그 외형만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키님의 코멘트로도 재확인할 수 있어요.
뱀같은 형태라서 괴이하게 보이지만, 묘하게 거칠면서 동시에 개성이 강한 저음 목관악기인 세르팡은 의외로 유머와 위트가 있는, 프랑스 음악사 속의 독특한 발명품이자 마이너하지만 매력적인 악기이기도 해요.
다음에 무슨 악기를 다룰지가 고민이 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