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e: 핵전력

Nuclear Warfare Potential

Nuclear Warfare Potential


핵전력
核戦力
Nuclear Warfare Potential
Atomkriegspotenzial

공사중인 항목

정의

핵전력은 방사성 원소의 핵분열 또는 핵융합 반응을 이용하여 고안된 무기로 확보가능한 전쟁수행 또는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핵무기는 기존의 재래식무기는 물론, 재래식무기의 살상력을 초월하는 화학무기나 생물무기조차도 비교불가능한 수준으로 뛰어넘는 그 위력 때문에 20세기 초중반 원자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궁극의 무기로서 개발되었지만, 현실세계폴리포닉 월드에서의 실전에서의 운용 이후에 나타난 가공할 대량파괴 및 참혹상, 그리고 무한보복의 가능성을 비롯한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역설적으로 쓰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로 위상이 바뀌었다.

본 항목이 무기 항목과는 별도의 다른 성격의 용어로 정의되어 있는 이유도 핵무기의 파괴력이 낳은 역설에 있다. 또한 폴리포닉 월드에서의 영어 및 독일어 역어에 잠재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핵무기의 종류

작동방식에 따른 분류

핵무기는 작동방식에 따라 분열식과 융합식으로 분류되며, 이 두 방식을 조합하여 제조되는 것도 있다.

분열식핵무기
分列式核兵器 ・ Fission Weapon ・ Kernspaltungswaffe
분열식핵무기는 원자량이 큰 방사성 동위원소를 임계질량 이상으로 결집시켰을 때 일어나는 핵분열 연쇄반응을 이용하는 핵무기이다.
주로 고농축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 239 등의 물질을 이용하여 제조되며, 실전에서 투하된 것도 분열식핵무기에 속한다.

융합식핵무기
融合式核兵器 ・ Fusion Weapon ・ Kernfusionswaffe
융합식핵무기는 수소 원자핵의 융합으로 헬륨이 생성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핵무기로, 수소폭탄, 열핵탄두라고도 한다1).
순수하게 핵융합만을 이용하는 융합식핵무기는 만들어진 적이 없으며, 소형의 분열식핵무기를 기폭장치로 활용하여 수소 원자핵의 융합을 유도하는 2단계 작동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핵융합 자체는 핵분열에서와 같은 폭발후 잔류물을 만들지 않지만, 융합식핵무기의 2단계 작동원리상 잔류물의 생성은 필수적이다. 또한 3F 폭탄의 경우는 3단계에서 대량의 잔류물을 생성, 방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2).

투발수단에 따른 분류

투하
군용기군함 등에 적재하여 이동하다가, 목표물 위로 떨어뜨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군용기에서는 항공폭탄의 형태로 운용하며,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폭탄을 적재한 채로 기지 또는 항공모함으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최대착륙중량의 범위 내에서 장착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 핵폭탄의 적재량은 재래식폭탄 탑재량보다 항상 제한을 받는다. 항공폭탄의 운용은 군용기, 기지 또는 항공모함의 안전 문제에서 약점을 대거 노정하여 20세기말까지 전량 퇴역했고 지하사일로에서 운용하는 ICBM으로 대체되었다.
군함에서 투하가능한 핵무기는 핵폭뢰가 있다. 유도를 위한 전자장비의 성능이 낮았던 20세기 중반에는 핵폭뢰를 투하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적 잠수함을 파괴한다는 발상이 있었지만, 원자력잠수함의 고속화, 디젤잠수함의 잠항심도 대폭 증대 및 은밀성 향상, 폭발후 탐지곤란, 운용 군함의 안전확보문제, 심각한 해양오염 등의 이유로 20세기말까지 전량 퇴역했다.
현실세계폴리포닉 월드 모두, 실전에서 사용된 적이 있고 또한 보유중인 핵무기는 항공폭탄이다.

미사일
미사일의 탄두에 탑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1세기에 존재하는 핵탄두 탑재 미사일은 모두 전략미사일로, 고정기지 또는 이동식발사대에서 운용하는 ICBM,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 전략폭격기에서 발사하는 ALBM 등이 있었으나 20세기말까지 모두 퇴역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각종 전술미사일에도 핵탄두가 탑재되어 있다. 심지어는 적의 폭격기 편대를 핵탄두의 강력한 폭발력으로 섬멸한다는 의도로 설계된 핵탄두 대공미사일도 있었으나 대규모의 피해범위, 자국 영공에서의 운용문제 및 대공무기와 전략미사일의 발달에 의한 전략폭격기의 퇴조 때문에 사장되어 실전투입사례 없이 20세기 중후반에 모두 퇴역하였다.

포탄
곡사포 및 함포의 포탄으로서 고폭탄 대신 소형화된 핵탄두를 사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155mm 곡사포탄이나 아이오와급 전함의 16인치 주포에 탑재하는 핵포탄이 전력화된 적이 있었으나, 핵무기의 역설, 아군에의 피해위험 및 아이오와급 전함의 퇴역에 의해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설치
핵배낭 또는 핵지뢰라고 불리는, 공병부대 또는 특수부대 소속원이 인력으로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경량 소형의 핵무기이다. 이러한 설치형 핵무기는 각종 전략전술 구조물을 폭파하거나 적의 방어선 돌파시도를 저지할 경우에 사용가능하지만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고 20세기 중후반에 모두 퇴역하였다.
또한 이것의 변종으로서, 일정 지역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대규모의 악질적 테러에 사용될 수 있는, 일명 더러운 폭탄(Dirty Bomb)의 존재도 보고되어 있으나 사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개발 및 운용

폴리포닉 월드에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뉴프러시아, 미국, 소련의 3개국이다.
이 국가들의 개발성공연도는 다음과 같다.

  • 미국 - 1945년
  • 소련 – 1949년
  • 뉴프러시아 – 1952년
  • 중공 – 1964년 개발, 1997년 비핵화

자유진영

뉴프러시아-미국-영국 3국은 1943년 8월 19일의 뉴프러시아 협정 및 1944년 9월 17, 18일 양일간의 하이드파크 협정을 체결하여 상호간 적대금지, 타국 동의없는 제3국에의 사용금지, 상호간 동의 없는 제3국에의 수출금지 원칙을 천명하였고, 그 결과 맨해튼 계획이 당시 최강대국인 미국의 주도하에 추진되었다.

미국
최초의 핵무기 개발은 1945년 7월의 실험인 미국의 맨해튼 계획으로 완성되었고, 같은 해 8월에 실전배치되어 프랑스의 쉘부르와 브레스트의 해군기지에 투하되었다. 이 핵폭격 이후 파리, 칼레, 생나자르, 보르도, 리용, 마르세이유, 툴롱 등에의 추가 공격도 검토되었으나, 그 이전에 프랑스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은 효과적인 핵무기의 투발수단에 대해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대륙간탄도탄 및 원자력추진방식 등에 연구를 집중하여 1950년대 중반에 원자력잠수함, 1960년대 초반에 원자력추진의 항공모함 및 순양함을 배치하게 되었다. 이 기술은 뉴프러시아 해군 원자력화 및 핵억지력 확보에 공헌하는 한편 영국 해군 잠수함의 원자력추진으로의 이행을 가속화하였다.

뉴프러시아
핵물리학자 한스 폰 할반(Hans von Halban)은 1928년에 스위스 대신 뉴프러시아로 이주하였다.
뉴프러시아는 방사선의 부작용에 대해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신축건물 및 신제차량, 선박, 항공기 등에 NBC 대응력을 갖춘 소재를 개발하여 적용하였다. 기준에 맞지 않는 기존건물이나 교통수단의 경우에는 해체 후 신축, 리모델링 과정에서의 방사능차폐재 추가 등을 통한 유해방사선 차단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 분야의 기술은 뉴프러시아가 주도적으로 개발했고, 특히 뉴프러시아의 경우 티타늄 등 첨단소재산업, 자원 재활용, 대체에네지, 오염물질처리 등의 선진적인 환경기술 등과 더불어 고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1973년 이후 미국의 경제력을 추월하는 주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방사능 차폐기술의 개발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다양한 비파괴검사법도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미국의 원자력설비, 원자력추진 군함 등의 개발 및 신뢰성 향상에 공헌하였다.

타국에의 영향
방사능의 부작용, 핵무기의 투발수단 및 원자로 설계, 운용 및 처분에 대한 공동연구결과는 우선 뉴프러시아, 미국, 영국의 3국에서 먼저 실용화되었으며, 뉴프러시아와 미국은 일본과 독일에 합동연구된 기술을 수출하였다.
천안문 대학살의 실상이 알려진 이후 뉴프러시아의 방사능 차폐기술과 소재가 자유진영 전반에 대규모로 채용되게 되었고, 뉴프러시아의 경제력이 보다 성장하고 대외영향력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동맹

소련은 미국에서 첩보활동으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중공은 소련에서 첩보활동으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고, 특히 열핵탄두보다 중성자탄의 개발에 주력하였다. 김일성의 집권 후 반대세력 학살에 중성자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다가 결국 천안문 대학살에서 중성자탄 사용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축출당하고, 김일성 사후 강택민 체제로 이행한 후에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비핵화를 달성했어야 했다. 이행강제를 위해 차후 중공에서 핵무기가 발견될 경우 상임이사국 군사력에 의한 북경, 천진, 단동, 태원, 낙양, 서안 등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폭격을 허용하는 방안이 인천조약에서 확정되었다.

이외 상임이사국

일본
한일전쟁, 국공내전의 중공 승리 및 소련의 핵보유 등으로 누적되는 대외불안이 심화된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의 핵폭격 직후의 항복이 큰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6.25 전쟁으로 전후부흥의 기반을 마련한 일본은 장차 한국에서의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결전병기로서의 핵전력이 필수적이라는 여론이 비등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제2의 한일전쟁 발발 및 일본의 핵전쟁 개전을 우려하여 통상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회유책으로서 일본에의 핵우산 제공 및 발전용도로의 원자력기술 수출을 추진하여 일본의 핵개발 의지를 연착륙의 형태로 억제시켰다.

독일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역외영토도 없었고, 뉴프러시아의 전략핵전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았다.

영국
국토가 좁고 육상에서 ICBM을 운용하기 어려운 영국에서는 발사 플랫폼으로서의 잠수함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탄두 소형화, 신뢰성 향상 및 재활용 기술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 결과 부상해야 발사가 가능한 미국의 레굴루스 순항미사일을 완전히 대체하는 수중발사형 SLBM이 실용화됨은 물론 각종 중단거리 무기에의 핵탄두 탑재도 가능해졌다. 비록 중단거리 핵무기는 중거리핵전력폐지조약의 체결 이후 폐기되었지만, 영국 주도의 기술개발로 인해 전략잠수함이 탄생하게 됨은 물론 핵무기 감축 및 비핵화 조치후의 부산물 처리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독자적인 핵전력 보유는 뉴프러시아와 미국의 영국 전후부흥을 지원하면서 핵우산 및 신소재기술을 제공하는 동시에 남극영유권을 포기하게 하는 압박도 동시에 가했기 때문에 영국내의 여론은 경제개발 집중과 실리추구의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또한 자국의 영토를 시험장으로 공여하지 않으려는 호주의 방침도 있어서 영국은 핵전력 개발을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
프랑스는 1976년에 복권되기까지 원자력을 발전의 용도로만 사용할 것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수행할 수 없었고, 그 결과 기술축적이 되지 않아서 개발 프로젝트 자체가 돈좌했다. 또한 역외영토도 1977년까지는 자유진영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핵실험을 할 수도 없었다.
이후 일본에서의 첩보활동을 통해 원자력기술을 습득한 이후에는 원자력발전은 물론 군함의 원자력추진에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의 기술개발에 성공하였다.

재편

핵전력 감축조약

핵전력의 감축 필요성이 196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현실세계에서와는 달리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PTBT),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핵확산금지조약(NPT), ABM조약 및 모스크바조약은 체결되지 못하고 주로 적대진영간의 양자조약으로 감축이 추진되고 있다. 현실세계와 동일하게 체결된 양자조약의 경우 자유진영과 공산동맹간의 조약으로 변경되어 있다. 인천조약은 이례적인 특정국의 완전비핵화 이행강제를 위한 다자조약으로, 국제연합의 1989년 체제의 집행력을 발휘한 다자조약인 동시에 1998년 체제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핵전력 감축에 대한 폴리포닉 월드의 조약은 다음과 같다.

  • 1972년 –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
  • 1979년 –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I)
  • 1987년 – 중거리핵전력폐지조약(INF)으로 중단거리 전술 대공/대지/대함 핵무기 전면폐기
  • 1991년 – 제1차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I), 1994년 비준
  • 1994년 – 인천조약으로 중공 비핵화 착수, 1997년에 중공 비핵화 완료.
  • 2010년 – 제2차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II), 2011년 비준

전술핵전력 폐기

중거리핵전력폐지조약 이후 모든 전술무기에서 핵탄두가 제거되었으며, 핵탄두를 탑재한 각종 대공/대지/대함미사일, 핵어뢰, 핵폭뢰, 핵기뢰, 핵지뢰, 핵포탄 등은 전량 퇴역되어 해체되고, 탄두제작에 쓰인 핵물질은 원자력발전 및 원자력추진의 연료로 전용되었다. 이 작업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수행되었고, 이후 인천조약에 의한 중공 비핵화의 예행연습으로서 충실히 작용했다.

중거리핵전력폐지조약에는 각국의 복잡한 사정이 있었고, 이 문제는 소련에서 특별히 대두되었다.

  • 소련에서는 핵탄두 탑재 전술무기의 테스트 및 취급상의 부주의로 대형사고가 다발하여 개발인력, 설비 및 군부대가 심각한 피해를 입어 대량의 비전투손실 누적이 연발하였고, 전력의 10% 가량을 상실한 후에는 전술핵전력을 강력한 무기보다는 실전에 투입되기 전 아군의 전력을 잠식하는 성가신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추가 전력손실의 방지책으로 핵탄두 탑재 전술무기의 폐기가 검토되었으나 자유진영의 상호폐기 없이는 전력우위의 상실 문제도 있어서 먼저 폐기할 수 없는 입장이 있었다.
  • 뉴프러시아와 미국은 첩보를 통해 소련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를 알게 되었고, 핵탄두 탑재 전술무기의 신뢰성, 기존 제작품의 경년열화문제 및 방사능에 의한 취급인원의 건강 문제 등에 대해 검토하게 되었다.
  • 이러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핵전력을 전략용도에 한정하는 조약이 중거리핵전력폐지조약으로 현실화되었고, 폐기된 무기에서 회수된 핵물질은 원자력발전 및 추진의 동력원으로 전용되었다.
  • 중공 비핵화 조치에 따라 수거된 핵물질은 전략핵전력 보유국들에 공여되어 원자력발전 및 추진의 동력원으로 전용되었다.
  • 감축의 검증방법은 상호교차검증 및 위성데이터 검증으로 이루어진다.

전략핵전력 감축

전략핵전력을 가진 국가는 뉴프러시아, 미국, 소련의 3개국이다. 그리고 전략핵전력은 오로지 항공폭탄의 형태로만 존재하며, 지하사일로 및 트럭이나 철도차량 등의 이동플랫폼에서 발사하는 육상발사 플랫폼에서 운용하는 ICBM, 전략잠수함에서 운용하는 SLBM, 전략폭격기에서 운용하는 ALBM 등의 다른 형태는 모두 금지되었다.

  • 우랄산맥 이서의 유럽대륙지역에는 핵무기의 지상배치가 전면금지되어 있다.
  • 감축의 검증방법은 상호교차검증 및 위성데이터 검증으로 이루어진다.

1991년의 제1차 전략무기감축조약으로 2000년까지의 모든 핵전력을 항공폭탄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ICBM, SLBM 및 ALBM의 핵탄두는 전량 해체되었다. 또한 수십년 전부터 제작되어 배치중인 기존의 ICBM은 우주발사체용으로 전용되었다. 전략잠수함도 2000년까지 퇴역했다.

2010년의 제2차 전략무기감축조약이 이전의 전략핵전력 관련 조약을 전량 대체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실세계의 뉴스타트에 해당된다.

관련항목

1)
Thermonuclear Warhead의 역어이다.
2)
Fission-Fusion-Fission Bomb.
핵전력.txt · Last modified: 2023/09/21 20:06 by 12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