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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벅참을 주는 곳.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 찾는 이 없는, 마치 신이 고이 감추어 놓은 것과도 같은 이곳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눈앞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우뚝 서 있다. 모래사장은 넓게 펼쳐져 있지만, 그 끝 역시 막혀 있다. 거기에다가 모래사장에 서면,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망망대해에, 멀리 보이는 섬은 무인도다.
“오, 마침내 도착했군.”
그리고 한 척의 배가 그 해안에 다다른다. 딱 봐서는 20명 정도 탈 수 있는 소형 유람선으로 보이고, 거기에서 한 명의 남자가 내린다. 키는 180cm 정도 되어 보이고, 선글라스를 쓰고, 상의는 꽃무늬의 품이 넓은 셔츠, 하의는 검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다. 척 보기에는 바닷가에 놀러 온 관광객으로 보인다. 그의 뒤를 따라 몇 명의 남자들이 더 내린다. 선글라스를 쓴 남자와는 달리 그들은 모두 정장을 입었다. 그것도 넥타이를 매고 정장까지 입은, 아무리 봐도 이 더운 날씨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라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예, 실장님, 약속장소에 잘 도착했군요.”
정장을 입은 남자들 중 가장 앞에 선, 키 19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건장한 키의 남자가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말한다. 어딘가와 연락을 지속하는 것인지, 한쪽 귀에는 교신기를 끼우고 있고,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해변이 가까워지자, 그 남자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럼 실장님, 이제 상륙하겠습니다.”
“잘 준비하라고. 오늘 거래가 잘 되면 회장님께서도 기뻐하실 테니.”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는 부하들로 보이는 정장 입은 남자들이 닻을 내리고 널빤지를 대자 거기에 맨 먼저 발을 닿더니, 곧바로 해변에 내린다.
“좋아, 다들 잘 들으라고. 이런 곳에서 거래를 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그게 단순한 기밀 유지를 위해서라면...”
“엡실론, 너 생각 없지!”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는 큰 키의 남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엡실론이라고 불린 그 남자는 뒤따르는 다른 정장 입은 남자들보다 높은 지위임에도,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몸을 움츠린다. 그리고 온몸이 굳어 버린 듯, 매우 공손해진 자세를 하고서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에게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한심하다, 한심해! 내가 만약 회장님이었으면 너 같은 녀석들은 그냥 아주 확!”
마치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할 듯 그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주먹을 흔들자, 엡실론은 곧바로 다시 굳어버린 자세가 되어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를 뒤따른다.
“다들 나를 따라오라고. 혹시 우리를 노리는 녀석들이 있는지, 경계를 늦추지 마.”
엡실론은 실장을 뒤따른다. 다른 정장을 입은 남자들도 엡실론을 뒤따른다. 엡실론은 무언가 불만이라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실장이 문득 엡실론을 뒤돌아본다.
“어디야?”
“네?”
엡실론이 되묻자, 실장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근엄한 얼굴을 하고 말한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여기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가는지 실감이 안 나지? 이 거래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주는 건지,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거지?”
“아... 아닙니다.”
엡실론이 얼굴과 자세 다 굳어져서 말하지만, 실장은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확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아무리 해도 실장은커녕 과장에도 못 오르는 거야. 언제까지고 그렇게 일선 대원으로 썩을래? 회장님이 요즘 어디에 관심이 있으시고, 또 어디가 우리의 경쟁상대인지도 모르는 거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엡실론의 눈은 순간 불타는 듯 타오르지만, 실장은 그것까지 보지는 못한 듯, ‘후’ 하고 날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이윽고 한마디 덧붙인다.
“똑바로 해라. 이 거래에서도 삐끗하면, 그때는 이것만으로는 끝내지는 않을 거라고.”
실장이 말을 마치자마자, 엡실론의 다리에 불꽃이 튀는 듯하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닌 엡실론은, 일단은 공손한 자세를 취한다.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엡실론의 뒤에 서 있는 다른 부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실장님.”
뒤에 있는 직원들 중 한 명이 입을 연다.
“이제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실장은 엡실론에게 쏟아낸 분이 아직 풀리지 않은 건지, 꽤나 까칠한 소리로 말한다.
“잡담 같은 거 떨지 말고, 거기 거북이들 알 낳아 놓은 곳을 뒤져봐.”
“네...”
실장의 위압적인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어서인지, 부하 직원들은 곧바로 준비해 온 연장을 챙겨서 해안에 있는 구덩이들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다. 엡실론 또한 머뭇거리다가, 금세 삽을 들고서 구덩이를 판다. 그걸 보고서 실장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서, 곧 다시 몇 마디 더 한다.
“너희들 지금 뭐 하냐?”
실장의 지시에 따라, 엡실론을 비롯한 부하 직원들은 거북알 둥지를 파 내려가며, 문제의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해변인데 거기에다가 내륙 쪽에서 뜨거운 바람까지 불어오니 작업은 더디 걸렸다.
“이것들아! 이러니까 회장님이 아무리 결과를 보여줘도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거 아니야! 빨리 못 해!”
실장이 그렇게 닦달하자, 엡실론을 비롯한 직원들은 속으로는 실장을 향해 불만과 증오가 섞인 한숨을 내뱉지만, 겉으로는 그러지 못하고 실장이 지시하는 대로 열심히 거북알 둥지를 파내려갈 뿐이다. 그러는 중에도, 실장은 어디엔가 열심히 통화하고 있다.
“예, 거기가 맞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거래는 예정대로...”
엡실론이 듣기에, 분명히 ‘거래처’와의 통화일 것이다.?
“어, 실장님, 이것 같은데...”
잠시 후, 직원 한 명이 둥지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실장을 부른다. 실장은 직원의 그 말에 얼른 부하 직원들이 작업 중인 곳으로 온다. 그러자 실장의 눈에 보인다. 제법 큰 다이아몬드 몇 개가, 자루 안에서 보인다. 틀림없이 ‘거래처’에서 약속한 그대로일 것이다.
실장은 얼른 그 다이아몬드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말한다.
“이것이로군.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어림도 없지.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이 다이아몬드를 얻었어. 회장님도 기뻐하시겠지. 이제 우리가 자금난에 시달릴 일은...”
하지만 실장이 말을 미처 다 마치기도 전...
“어... 엇?”
실장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미처 알지 못한 채, 해변의 모래바닥에 쓰러져 버린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실장의 눈은 어느새 살아있는 사람의 눈이 아니게 된다.
“훗, 그러게 원한을 사지를 말았어야지.”
어느새, 엡실론이 쓰러져 있는 실장을 보더니, 무심하게 한 마디 남긴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 자신이 책임자였던 것처럼, 아까 타고 온 보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자, 실장이라는 녀석은 신경쓰지 말고, 이제 가자고. 솔직히 너희들 역시 실장이었던 그 녀석에게 많이 당했잖아? 회장님께는 내가 알아서 잘 보고하겠다. 그러니 다들 안심하고, 가자고.”
엡실론은 한술 더 떠, 손수 실장을 모래구덩이에 파묻어 버리고는, 맨 먼저 보트에 올라 떠날 준비를 마친다. 그 뒤를 따라 부하 직원들이 보트에 오른다. 이어 자신이 직접 회장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를 꺼내려는 참이다.
하지만...
“엇...”
엡실론 역시도, 조금 전의 실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서 있던 보트의 난간에서 고꾸라져, 바다로 떨어져 버린다. 그대로 헤엄쳐 오르지도 못한 채로 엡실론은 바다로 가라앉아 버린다. 그 뒤로, 부하 직원들이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 이런 좋은 걸 가지고 왜 회장님이니 뭐니 하는 거지?”
“그러게. 우리도 이제 이 조직에서 벗어나서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됐는데!”
“실장이나, 엡실론이나, 다 개죽음이지 뭐.”
“자, 가자고.”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고 있던 한 명에게, 다른 한 명이 묻는다.
“야, 너는 왜 말이 없어?”
“아, 그러면 내가 배 댈 곳을 알아보도록 하지.”
”역시 너밖에 없어!“
그렇게 배가 예정된 곳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나서 몇 시간쯤 지났을 때.
마치 사전에 연락이라도 주고받은 듯, 그 배를 다른 몇 척의 배들이 둘러싼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 그 배에서 몇 번의 총성이 울린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척의 배가 그 배의 바로 옆에 도착하고, 거기서 한 명의 선글라스를 낀 나이 지긋한 남자가 양옆에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옮겨 탄다. 그러자마자, 총성이 울린 배에서도 한 명의 정장 입은 남자가 나온다. 아까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있던, 바로 그 남자다. 그는 나이 지긋한 남자를 보자마자, 곧바로 허리를 90도 숙이고 말한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말씀하신 거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더불어 명을 받아 배신자들을 처리했습니다.“
“수고했네.”
회장은 그렇게 한마디 할 뿐이다. 이윽고 정장 입은 남자는 회장의 뒤를 따라 옆에 있는 배로 옮겨타고, 원래 탄 배에는 다른 정장 입은 남자들이 들어간다. 그리고 바다의 뒤로 해가 지고 있다. 그 붉은색이, 마치 핏빛과도 같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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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3-08-11 23:56:54
배신에 배신에 또 배신...
결국 실장이든 엡실론이든 부하들든 시간차를 두고 다 제거당해 버렸네요.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그리고 어이없이. 결국 그 탐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네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말의 무게가 이렇게도 전달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3-08-13 23:59:49
사실 어느 이벤트에 제출하기 위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어두운 작품도 써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합니다.
범죄조직에서 의리란, 없는 거죠. 의리를 표방하는 자들도 결국은 위선에 불과할 뿐.
SiteOwner
2023-09-02 21:34:46
짧지만 섬뜩함은 꽤 오래 남아 있습니다.
저런 업종은 최종결정권자 이외에는 누구든지 도구에 불과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무슨 꿈을 꿨던 간에 모두가 헛된 일장춘몽이고 목숨을 잃는 것은 한순간...
그런데 그 상공에는 초계기나 드론 같은 것은 없었을까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9-17 23:07:06
그야말로 배신과 배신이 난무하는 거죠. 그리고 자신이 장기말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든가, 아니면 알지만 자신은 장기말이 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지만, 결국은 장기말이 되어 버리는 거죠.
저기서는 회장이 그 다이아몬드를 가져가는 것으로 끝났지만, 오너님의 의견도 나름 괜찮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