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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한국

SiteOwner, 2014-10-08 20:05:48

조회 수
400

지금까지 국내의 언어생활 사례를 보면 참 재미있는 게 있었습니다.


일본어 잔재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토벌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당시의 언어순화운동 중, 벤또, 바께스, 와리바시, 쓰메끼리 등의 말을 도시락, 양동이, 나무젓가락, 손톱깎이 등의 말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도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일본어계 외래어는 형성과정 자체가 일본의 식민통치 과정에서 유입된 것이라서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최현배의 글을 국어교과서에서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10년대인 지금은, 1980년대까지만해도 널리 쓰였던, 명백히 일본어 계열임이 드러난 외래어는 접하기 힘들어지고 일본식 한자어는 명정(=인사불성으로 술취한 상태, 酩酊), 최기(=가장 가까운, 最寄), 일응(=일단, 一応) 등 몇몇 생소한 용어들이 법률에 잔존해 있을 뿐 다른 것들은 저항감없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요즘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유입된 외래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중2병, 흑역사, 남성향/여성향 등의, 한자발음을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은 것이라든지, 오덕, 박대리(=배터리의 일본어 발음 밧데리의 변형)처럼 한국어의 어휘에 최대한 가까운 형식으로 다듬어졌다든지, 칸코레(함대컬렉션), 오레이모(=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등과 같이 일본의 각종 창작물의 제목의 일본식 약칭이 그대로 통용된다든지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의 어휘들은 아주 대중적인 것만은 아니라서, 서브컬처 관련에 관심이 없다면 접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어계 외래어뿐만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유럽언어에서 차용된 어휘들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꽤 감소했습니다. 학교 내의 과외활동모임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서클로 지칭되었다가 지금은 동아리로 완전히 정착한 상태이고, 아베크족(=데이트하는 연인들), 룸펜(=무위도식자), 인텔리겐챠(=지성인) 등의 말은 이제 사어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러시아어 같은 구 공산권 국가의 언어는 처음부터 별로 수용되지가 않았고, 기껏해야 페치카(=러시아식 벽난로), 토치카(=진지) 등의 몇몇 군사용어 정도에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보면 국어순화는 상당히 잘 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상하게 이러한 국어순화의 기준이 중국어 앞에서는 괴이할 정도로까지 완화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마치 중국어에 특별한 지위라도 부여되어 있는 것 같으니 어떻게 생각해야할지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언어의 변화라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점이적으로 변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각종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신조 유행어가 수년 이내에 사라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 자체가 갑자기 바뀌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사건 이후로 표기법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 그 자체의 기준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신자체 한자 사용이라든지, 독일어의 철자법 부분변경 같은 사례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재 국내에서는 과거의 중국 인명지명은 한국식 한자음으로, 현대의 것은 중국식 발음으로 읽도록 국립국어원이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의 기준은 신해혁명이라는데, 이미 앞에서 특정한 사건이 언어 그 자체의 기준을 바꾸지 못하는데다 신해혁명이 언어관련 사건도 아닌 이상 이러한 기준 자체가 어불성설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당장에 국립국어원도 중국을 쭝궈라고 부르지 않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쭝화런민공화궈라고 부르지 않으니 스스로도 전혀 지키지 못하는 원칙이니 조소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괴이한 원칙 덕분에 한국의 언어생활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 지명
    • 카이펑 (개봉)
    • 시짱 (티베트)
    • 쯔친청 (자금성)
    • 궈자티위창 (중국 올림픽경기장)
    • 베이징 서우두공항(북경 수도공항)
  • 인명 (자연인, 법인 포함)
    • 쿵쯔 (공자)
    • 멍쯔 (맹자)
    • 마오쩌둥 (모택동)
    • 저우언라이 (주은래)
    • 자오쯔양 (조자양)
    • 장쩌민 (강택민)
    • 청룽 (성룡)
    • 저우룬파 (주윤발)
    • 장궈룽 (장국영)
    • 런민르바오 (인민일보)
  • 일반명사
    • 따오샤오몐 (도삭면, 칼로 반죽을 깎아서 만든 국수)
    • 요우커 (여행객)

게다가, 국립국어원도 스스로 원칙을 못 지키니, 언론사들도 갈팡질팡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것입니다. 어차피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는 원칙을, 그것을 제정한 주체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는데, 언론사가 제대로 쓸 리가 없습니다.


특히 상당히 기분나쁜 것 중의 하나가 "요우커" 입니다.

중국인 여행객이 많다고 굳이 이것을 중국어를 빌려 와야겠습니까? 영미권 관광객이 많다고 투어리스트, 트래블러 등의 영어, 일본인 관광객이 많다고 칸코캬쿠, 타비비토 등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일반명사에까지 중국어를 도입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의 속국이나 속령이 아닌 이상, 나라의 말과 글도 외국의 것에 지배당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다른 외국어에서 유입되어 국어의 일부가 된 외래어를 쫓아내면서 그 역으로 중국어에 대해서는 한국어의 발음체계와도 크게 상이하고 생경한 외국어를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습관이고 문화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유독 중국어에 대해서만큼은 원칙도 주체성도 없는 한국의 언어사용 상태는, 소중화라는 마약에 취해서 자주적인 사고를 포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중국 관련 뉴스를 보도할 때 아예 중국어를 사용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날이 오지 않아야 하는 건데, 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니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SiteOwner

Founder and Owner of Polyphonic World

10 댓글

안샤르베인

2014-10-08 21:17:46

어제 방송에서 요우커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길래 뉴요커를 중국인버전에 맞게 쓴건가? 하고 잠시 고민했었는데 그게 그냥 여행객이라는 의미였군요. 확실히 썩 보기 좋아보이진 않네요.

SiteOwner

2014-10-08 21:41:56

중국이 급성장하니까 중국어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까지는 좋다고 치더라도, 그게 중국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직접 작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요우커" 운운하는 언론사들의 행태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요우커라고 중국어를 써야 한다는 억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이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많은 일본의 경우를 가리킬 때도 영어, 일본어 등을 써야 한다는 억지도 통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주를 사케라고 칭하는 것도 웃깁니다. 사케는 그냥 술이라는 뜻인데.

HNRY

2014-10-08 21:27:36

뭐어 중국어가 아니더라도 자동차 업계에서 은연중에 사용되는 '쿠페라이크' 같은 것도 그렇고 패션업계의 무분별한 한영혼용체(속칭 보그체)도 그렇고 뭔가 외국어를 쓰는 방향이 잘못된 부분이 좀 있죠. 딱히 중국어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냥 외국어의 무분별한 사용에 사람들이 많이 무뎌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HNRY

2014-10-08 22:34:11

수정하였습니다. 잠시 착각하였나보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SiteOwner

2014-10-08 21:45:50

말과 글을 생각없이 다루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섞어쓰는 현상이 범람합니다. 각급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이나 언론사에서도 상태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입니다. 내용이 충실하지도 않고, 언어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살리지 않고...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언론매체로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까지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념은 분명히 해 두어야겠습니다. 외래어는 외국의 언어에서 기원하여 한국화된 한국어 어휘입니다. 그래서 외래어 자체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의 괴이한 어휘, 문체는 정확히는 외국어 남용입니다.

대왕고래

2014-10-09 12:13:58

제시하신 예시들을 보니까, 뭔가 어이가 없다고 해야하나, 웃음이 나오네요.

그냥 중국인 여행객이라고 해도 될 걸 뭐가 귀찮다고 요우커라고 칭하질 않나, 아니 성룡이면 성룡이지 뭐하러 청룽이라고 부릅니까?;;;;

그냥 바보들의 집합이라고 생각되네요, 이건.

대왕고래

2014-10-13 23:30:46

바이러스같죠. 백지에 바보 바이러스를 물들이면 쉽게 바보가 되거든요, 그 사람도.

아무튼 참 이런이런입니다.

SiteOwner

2014-10-10 00:45:14

언어오염의 참상을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전부터 중국어 표현을 생각없이 유입시키는 경향이 팽배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외교노선도 친중, 어문정책은 친중...중국에 대한 사대는 지나간 왕조시대의 역사로 충분할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바보들로 인해 입는 피해가 많습니다. 게다가 바보는 타인을 감염시키니 문제이지요.

TheRomangOrc

2014-10-13 23:54:12

전체적으로 무척 공감이 많이 가는 내용입니다.

특히 전 회사가 국제행사를 많이 하고 그 중에서도 중국 전시가 많다보니 비즈니스상 회사 내에서 지명과 인명을 저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었죠.


다만 그래도 명사는 그리 하지 않았는데 되려 신문사에서 그러다보니 좀 놀랐어요.

회사일이야 비즈니스상이니 해당 국가에서 전시회를 할 때 장소와 상대 인명을 그에 맞추어 부르는거야 당연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자국내에서까지 써야 하는지는 확실히 의문입니다.

SiteOwner

2014-10-15 21:24:43

말과 글을 다루는 언론사가,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국내의 상당 언론사들이 함량미달인 셈이지요.

그리고 사안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 주셨습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화자들끼리 한국어를 쓰지 않고 외국어를 생각없이 섞어쓰는 언어생활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는 사실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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