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가볍게 몇 자 써 봤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문장이 잘 안 풀리더군요...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걸 쭉 쓰는 형태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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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가슴이 답답하여 바람이라도 쐴 겸 산책을 나섰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길 따라서 쭉 걷다 보니 어느새 처음 보는 동네가 나왔다. 묘하게 다른 느낌이 적잖이 흥미가 생긴 나는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모험하는 심정으로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걷고 등이 땀으로 흥건해졌을 무렵 갑작스럽게 바람을 타고 온 낯익은 냄새에 걸음이 멈췄다. 쇠와 기름의 냄새. 근처를 둘러보니 고철 수거장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고철 수거장의 냄새는 외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고철 수거장을 운영했다. 놀러 갈 때마다 고철이 가득 쌓인 언덕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럴 때면 외할머니는 벌컥 화를 내시면서 위험하니 저리로 가라고 하셨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온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펑펑 울었다.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지금 바로 갈 준비를 해야겠다. 내가 기억하는 인척의 첫 장례식이었다.
그 당시 나는 지금과 비슷하였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 한동안 고심하던 시기였다. 내 인간성의 한 조각 마저 모두 메말라 더 이상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절로 움츠러들던 시기였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외할머니 댁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장례식 장에서 영정 사진을 보고 양복으로 갈아 입고 장례식에 온 손님들을 맞이 하면서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가 더 무서워졌다. 어쩌면 나는 인간이라는 껍데기만 뒤집어 쓰고 있는 무언가가 된 것이 아닐까.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런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저 바쁘게 내가 할 일만 했다.
외할머니는 화장을 했다. 화장터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을 보는 순간이라면서 들어갔을 때 눈 앞에 보인 것은 붕대에 감겨있는 외할머니였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 그렇게 친절하게 해주셨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느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다시는 이런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나는 소실감을 느꼈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나서 나는 다시 눈물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타고 온 낯익은 냄새에 다시 나는 깨달았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는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가슴이 먹먹하지만 이런 먹먹함은 오히려 환영이다.
I Sense a Soul in Search of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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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마드리갈
2016-03-23 23:31:50
그러셨군요.
한동안 잊고 살았던,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에 대한 기억이 우연한 기회로 부활할 때가 있어요.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다 보니, 그리고 그게 지금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보니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나중에는 이게 무의식에 박혀서 피하게 되는데,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어요. 관측선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상황처럼 그런 경우가 생기니까요.
잘 읽었어요. 그리고, 타계하신 외할머니의 명복을 빌께요.
SiteOwner
2016-04-08 21:57:15
느끼신 여러가지, 저에게도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남의 일로 보이지 않고, 그래서 몇 번이고 숙독한 끝에 정리해서 간단하게나마 생각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혈육의 정이라는 게 그런 건가 싶습니다. 일부러 외면하려고 해도 언젠가는 다시금 느껴지게 되는 것.
저도 그래서, 지난 일이고 떠올리면 슬프기는 하지만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꿈에서 또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 떠오르거나 하면 울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Jack the Bear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동화가 나옵니다. 아이가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고 하니까 어머니는 지칠 때 다시 돌아와서 앉을 수 있는 나무가 되어 기다리겠다고. 그게 떠올랐습니다.
타계하신 외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